00013 두 번째 접속 =========================================================================
“지금 너 날 걱정하는 거냐? 그따위 총을 들고서?”
“......”
태상은 이 총으로 이미 수많은 괴물을 죽였던 전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남자가 이 총의 데미지를 견뎌 낼 수 있을 지 걱정됐다.
“나참, 쌩 초보니까 봐준다. 이봐 꼬맹이. 아는 동생이 새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이런 F등급 퀘스트 할 일 없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그러니까 쓸데없는 거정하지 말라고. 아니, 애초에 그쪽이 날 맞출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남자의 말에 태상은 그를 걱정해 주고 있던 마음을 싹 사그라트렸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걱정을 사서 해줄 정도로 태상은 착하지 않았다.
“그래? 분명히 말 했다. 그쪽 다쳐도 내 책임 아닌 거야.”
“큭큭큭....그래그래.”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태상은 그 여유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속으로 생각하며 총을 제대로 쥐었다.
“시작하면 되나?”
“그러라고 꼬맹이.”
‘꼬맹이라.’
어릴 적에도 듣지 않았던 말이다. 늘 상 도련님으로 불렸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취급은 나름 신선했다. 앞에선 어려워하고, 윗사람으로 대해주지만 뒤에선 욕을 한다는 것쯤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는 그런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곳에선 ‘힘’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누구누구네 집 아들이니 뭐니 그런 게 없지 않은가.
‘아예 바닥부터 시작인 건가.’
지금 현실에서도 태상의 상황은 이것과 비슷했다. 둘 모두 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 태상은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을 그리 나쁘지 않다 여기는 이유가 있었다. 태상은 이곳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명진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몸이 바뀌었다 뭐다 믿지 않을 말들로 복수를 하기엔 어려운데, 이곳에서는 그런 방법 말고 좀 더 육체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 가능했다. 그게 태상의 마음에 가장 많이 들었다. 이런 신선한 경험도 해보고 말이다. 덕분에 태상은 점점 더 이곳이 마음에 들고 있었다.
남자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팔짱을 끼고 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너무 쉬운 것 아닌가 싶어 미심쩍으면서도 그는 마나건을 그에게 겨눴다.
잠시 머뭇거림이 있긴 했지만 태상의 손가락은 결국 움직여 마나건을 쏘았다.
탕!!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분명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던 남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한발자국 옆으로 움직여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남자는 다친 곳 없이 멀쩡하고 말이다. 태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자가 낄낄 웃어댔다.
이에 오기가 생긴 태상이 마나건을 마구 쏘아대기 시작했다.
탕!! 탕탕!! 탕!!
계속해서 그를 노리고 쐈지만 남자는 절대 맞지 않았다. 언제 움직였는지 모르게 계속해서 이리저리 피한 것이다. 태상이 분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는 일부러 태상을 약 올리려고 하는 건지 크게 움직이지 않고 살짝살짝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약이 오르는 것이다. 태상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10연사가 끝나 마나를 충전해야 했다.
“왜 그러지? 좀 더 화끈하게 덤벼 보라니까.”
“......”
으드득 절로 이가 갈렸지만 열 받게도 남자의 실력 하나는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마나건이 마나를 다 충전시킨 것을 보고 남자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래, 화끈하게 놀아 보자고.”
만약 태상이 그에게 능력을 사용하고 마나건을 썼다면 남자는 그대로 그의 총에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거리 능력자라고만 알도록 해야 하기에 일부러 능력을 쓰지 않았다. 대신 태상은 마나건을 쏠 때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놈은 마나건에서 쏘아져 나오는 마나탄을 볼 정도로 시력이 좋은 게 아니었다.
총구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보고 피하는 거였다. 지금 그를 약 올린다는 이유로 거리를 크게 두지 않고 살짝살짝 움직이고 있으니 마나탄이 조금만 휘어져도 놈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태상은 일부러 탄에 방향을 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지라 곧장 그의 생각대로 탄이 움직여주지는 않았다. 때문에 적중률이 더욱 낮아지기 시작했다.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튀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비웃었다.
“지금 어딜 쏘는 거지?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나?”
“....”
태상은 답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총을 쏘는 것에 집중을 했다. 또 다시 10발은 금세 다 쓰고 잠시 쉬어야 하는 시간이 생겨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탄환이 계속해서 채워진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라마스에게 받은 장비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한편 태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남자는 태상의 마나건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장비가 좋은 건 아닐 거다. 자신도 저것과 똑같이 생긴 마나건을 쓰던 놈을 본 적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놈의 탄환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웬만한 공격에 끄덕이 없는 재질로 되어 있어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사방팔방에 총자국이 남고 말았을 것이다. 마나건이 쌔진 게 아니라면 사람이 달라 저렇게 위력이 다른 것일 거다.
사실 이미 태상은 합격을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좀 더 태상의 능력을 보고 싶어 시간을 끌고 있었다.
애초부터 초보자가 자신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5년을 구른 배태랑이다.
그런데 이제 막 이곳에 들어 온 것으로 보이는 놈이 자신을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건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은 거였다. 보통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방어구를 마련하는 거다. 그런데 태상은 천조가리를 입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 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놈이 분명했다. 전단지에 초보자 가능이라고 적어 놓긴 했지만 이런 생초짜가 올 줄은 생각 못했었다.
초짜한테 무언가를 바라긴 어려우니 재미삼아 실력을 본 거였다. 근데 그 초짜의 실력이 점점 탐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강한 동료를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이 굳이 초짜를 받는 의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인재를 구하려는 수단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생 초짜까지는 범위에 넣지 않는다. 대충 중간정도 올라 온 놈들을 탐색해서 자기네 길드로 데려간다. 초짜 데려다가 키워봤자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거나, 허무하게 죽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이번 일이 아는 동생이 해야 하는 미션만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이런 뜻밖의 인재를 만난 것이다.
비록 그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 파워와 집중력이라면 될 성 싶은 놈은 맞는 듯 했다.
성격도 이곳에선 살아남기 좋은 편이고, 실력도 초짜면서 이 정도면 상위였다.
남자는 이제 테스트는 그만하고 태상과 대화를 나누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상은 그를 맞추기 전까지는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탕! 탕탕!!
그가 마나건의 탄환이 다 채워졌음을 깨닫고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남자가 이제 그만하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몸을 피하던 방향을 향해 탄환이 휘어지면서 남자의 옷깃을 스쳐 벽에 박혔다.
남자가 우뚝 멈춰서고, 태상도 더 이상 총을 쏘지 않았다.
대신 태상의 얼굴은 득의양양하게, 남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후~”
태상이 마나건 총구에 바람을 불고 총을 물렸다. 남자는 잠시 그렇게 굳어 있다가 태상을 진지한 얼굴로 바라봤다.
‘우연이겠지?’
자신이 많이 방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그는 몸을 피했었다. 그런데도 탄환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고 옷깃을 건드린 것이다. 만약 그걸 뒤늦게 보고 피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를 맞췄을 것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그 정도까지의 실력이 있는 건지는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어찌됐든 예사 놈은 아니다 이거지...?’
“뭐야? 맞은 거 아니었어?”
태상은 그가 멀쩡한 모습이자 쯧! 하고 혀를 찼다.
“헹, 제법 배짱은 있는 것 같구나. 합격이다.”
태상이 아쉬워하는 얼굴이 가득하자 헛웃음을 지었다. 태상은 정말로 자신을 맞출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인지, 무지에서 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는 태상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 클라우다. 반이라고 부르고. 난 내 파티원한테는 존댓말 안 쓰니까 기분 나쁘면 너도 반말 쓰라고.”
“그러지 뭐.”
“하! 큭큭큭.”
태상의 대답에 반이 헛웃음을 짓다가 이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따라와라. 네가 제일 마지막이니까.”
그동안 마음에 드는 놈이 없어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드디어 원거리까지 구했으니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딱 보기에도 생 초짜 같았기에 반이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알긴 알고 있나 애송이?”
“아니, 여기 온 건 지금이 처음인데.”
“뭐? 처음이라고? 네 계약자가 설명도 안 해줬나?”
“뭐...그냥 여기에 데려다놓고 동료인지 뭔지 구하라고 해서.”
“......그 말은 미션을 하라는 게 아니라 길드에 들라고 한 말 같은데.”
태상이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자 반이 말했다.
“충고하나 하지. 계약자의 말을 너무 다 믿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시하는 건 좋지 않아.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한다 해도 손해 보는 건 없거든.”
“그래서 나가라고?”
“오! 그럴 리가. 이번에 잘만 하면 우리 길드에 넣어준다는 뜻이었다. 어때? 그럼 네 계약자 말을 어긴 건 아니게 되지 않나.”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그놈이 시킨 일을 하고 싶은 생각 없는데?”
생 초짜를 길드에 넣어주겠다는 건 굉장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보통 초보자들은 자신을 길드에 넣어달라고 애원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야 그들이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장이 바뀌게 되다니. 반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무척이나 웃겼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반의 길드는 굉장히 유명한 길드에 속했다.
놈이 자신의 길드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놈은 그걸 알아도 지금과 똑같은 태도를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꽤 재밌는 놈이었다.
“그래그래. 부디 좋은 활약 보여줘서 우리 길드에 들어주실 바라마. 가자고.”
반이 태상을 안내했다. 308호를 나가 1층으로 내려간 그는 아까 전 태상에게 퉁명스럽게 얘기를 하던 직원에게 다가갔다.
“접수 끝냈소.”
당연히 이번에도 퉁명스럽게 애기할 거라 생각한 태상은 직원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하 웃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에게 한 태도와는 전혀 다르게 정중하게 얘기를 해왔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녀석을 구한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뭐...재미는 있어 보이는데, 쓸모까지 있는 놈인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할 듯싶네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수수료입니다.”
“예.”
직원과 대화를 끝낸 반이 태상에게 다가왔다.
태상은 여전히 직원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하고 있던 중이었다.
“뭐하는 사람 놈인데 저렇게 사람 대하는 게 달라?”
반도 그의 그런 이중적인 태도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말했다.
“다들 그렇지. 강한 놈, 쌘 놈한테 고개를 숙이지. 그러니 이곳에서 존중 받고 싶다면 강해지라고.”
그가 태상을 데리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성큼성큼 어디론가 계속해서 걸어갔다. 태상을 함께 할 동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다.”
“오셨어요?”
누군가가 반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