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두 번째 접속 =========================================================================
“너 진짜 이럴 거야?”
주변에 있는 직원들을 의식해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송이였다. 태상은 송이에게 말했다.
“내 말에는 무조건 뭐라고 했지?”
“.......”
그녀가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에는 뭐든 yes로 대답하겠다고 방금 전에 얘기했던 송이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된다. 이런 문제를 묻지 말라니 말이다.
“취소해 그거!”
“이 여자가 진짜 멍청하네. 취소하겠다고? 정말로?”
그 거래에서 송이는 태상과 평생 살 수 있는 약속을 받아냈다. 비록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킬 생각은 없다 해도 분명 중요한 것임은 틀림없었다.
적어도 그가 그녀를 버릴 때, 송이가 유일하게 그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게 그 약속일 테니 말이다.
송이는 그의 물음에 말문이 탁 막혔다.
잠시 생각을 하던 송이가 태상에게 물었다.
“그 돈.... 불법적인 거야? 이것만 대답해줘.”
사실 그가 가져 온 돈은 불법이라면 불법일 수 있었다. 엄연히 남의 금고에서 빼온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이 남들에게는 불법일지 몰라도 태상에겐 아니었다.
“아니, 원래부터 내 거였어. 내걸 되찾아 온 것 뿐인데 불법일 리가 없잖아.”
태상의 말에 송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내 알았다며 그를 믿겠다고 말해왔다.
“그럼 이제 문제없는 거겠지?”
“응. 문제없어.”
솔직히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즐겨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녀도 사람인지라 이런 꿈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영영 12시가 되지 않길 바라는 신데렐라처럼 말이다.
태상과 송이는 그 후로 백화점을 전세라도 낸 것 마냥 직원들을 달고 움직였다.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들이 그들에게 향했다. 이래서 부자들은 영업이 끝났을 때 백화점에 오는 거다. 그래야 저런 불쾌한 시선들을 받지 않고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잔뜩 신나서 구두며 옷이며 악세서리며 질러버린 송이는 뒤늦게 걱정이 들었다. 저것들을 놓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오늘 송이가 산 것들은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집 가격의 두 배가 넘었다. 태상이 모두 카드로 해결했고, 그녀에게 가격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게 뭔지 알아?”
“응?”
“그 구질구질한 집. 당장 집사러 가자.”
“에에에에?!”
백화점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반짝거리는 몇 천 만원짜리 것들로 둘러싸고 나온 송이는 마치 자신이 돈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한 가격은 보지 못했어도 비싼 건 비싼 태가 나는 법인지라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돈을 흘리는 것 같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런 그녀에게 태상은 더 기가 막힌 얘기를 하며 그녀의 심장을 뚝 떨어트렸다.
이쯤 되니 정말 송이는 환장할 기분이었다. 도대체 저 돈을 어디서 났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미 물어보지 않겠다고 했기에 차마 물을 수도 없었다.
“쯧, 비서부터 고용해야겠어. 이거 뭐 귀찮아서....”
그의 어처구니없는, 하지만 태상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을 들으며 송이는 오늘 하루 전체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현실이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그냥 이게 꿈이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역시 그렇지? 하고 웃어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기분 좋은 꿈을 꾸었으니 복권이나 사고 말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건 절대 꿈이 아니었다.
태상은 송이를 부동산으로 데리고 가 부동산 사장이 추천한 곳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하고서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태상은 그 주택을 본 적 있다며 괜찮은 곳이라고만 하고 덜컥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덕분에 송이의 뒷목이 넘어갈 뻔 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송이는 집으로 돌아와 곧장 골아 떨어졌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많이 힘들었다. 다음날 깨어난 송이는 낡았지만 정겨운 자신의 집을 보며 그래, 꿈이지? 하고 웃었다가 거실에 쌓여 있는 거대한 백화점 쇼핑백들의 산을 보고 풀썩 주저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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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강태상 계약자님.”
“라마스.”
태상이 눈을 뜨자 보이는 라마스를 보고 반가워했다. 라마스는 태상의 두 번째 방문을 축하해주었다.
“두 번째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새삼스럽긴, 그래. 오늘은 뭘 하는 거야?”
처음 왔을 때 태상은 이곳에 꽤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이 싸우게 하는 몬스터라는 것을 잡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치 컴퓨터 게임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랄까? 더욱이 계속 싸우다 보면 점점 실력이 느는 것 같아 더욱 재밌었다. 놈들이 갑자기 힘이 사라져 당황하는 꼴도 재밌고 말이다.
태상은 처음 보조 능력이라고 해서 실망했다가 지금은 굉장히 흡족해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근데 이 능력이란 거 말이야. 현실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거야?”
만약 이 능력이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
“아뇨, 이 능력은 몸에서 벗어나 영혼 상태가 된 지금 현재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그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그곳에 피해가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자신이 가진 것 외에 다양한 능력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얻었다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뽐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떤 기사에서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으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건 또 그렇네. 정말 완전 게임 속에 접속한 기분이야.”
“하지만 이곳에서 죽으면 정말 죽는다는 걸 상기하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가장 귀한 게 내 목숨인데 쉽게 생각할 리가 있나.”
라마스는 그가 여전히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본래 이 정도 실력이라면 F등급 퀘스트를 받아 실전에 돌입해도 됐지만 라마스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부터 동료를 구하는 파티매칭을 하게 되실 겁니다.”
라마스의 말에 태상이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난 다른 사람들이랑 몰려다니는 거 딱 질색인데.”
백화점에서는 그렇게도 잘 몰려 다녔으면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라마스가 어림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혼자 다닐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는 이상 1인으로는 다닐 수 없습니다.”
그런 법칙은 없지만 라마스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를 말리려고 했다. 다행히 태상은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 혼자 다닐 정도의 실력은 얼마나 돼야 하는데?”
“그건 직접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지만 파티를 맺지 않으면 실전 미션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를 찾아주십시오.”
라마스의 말을 끝으로 태상이 서 있는 공간이 바뀌었다. 이미 공간이 바뀌는 건 익숙해졌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바뀐 공간을 구경하며 흥미를 보였다. 그의 앞에는 많은 인파가 움직이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자 나무판이 보였다. 나무판에는 덕지덕지 종이가 한가득 붙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글자가 모두 한글로 보여 읽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응?”
태상이 나무판에 있는 글자를 가까이 보기 위해 다가가려는데 자신의 손에 갑자기 생소한 것이 들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을 아래로 돌려 손을 보니 언제 생겼는지 모를 익숙한 마나건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라마스가 준 것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태상은 마나건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잡은 뒤 다시 나무판에 신경을 쏟았다. 라마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럼 결국 그 혼자서 이곳에서 동료인지 뭔지 그것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복잡하게.”
나무판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할 미션과 구하는 사람의 조건, 그리고 난이도 등급이 적혀 있었다. 태상의 경우에는 초짜이기 때문에 F등급의 미션을 하는 파티에 들어가야 했다.
종이에 써진 등급은 굉장히 다양했다.
C등급, A등급, B등급....D등급...그리고 F등급!
태상의 눈에 F등급이 띄자 그가 그 종이를 나무판에서 뜯어냈다.
[미션 - 황금사과 2개 구하기
조건 – 원거리 능력자 1명 혹은 근거리 능력자 1명(초보자 가능)
등급 – F ]
겨우 찾은 F 등급인데, 구하는 게 원거리와 근거리 공격자였다. 태상의 능력은 하필 보조계열로 구분이 되서 저곳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총도 있는데 그냥 원거리 공격자라고 속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졌다.
“그럼 이건 보류하고....”
다른 F등급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것들을 찾아보기로 했지만 결국 그는 초보자 가능이라는 글은 더 이상 발견할 수가 없었다.
F등급이라도 오히려 초보자 사절이라는 글이 더 많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초보자들은 실수를 하니, 잘 끼워주지 않는 듯 했다. 태상은 그냥 초보자가 아니라고 속이고 가는 것보단 차라리 원거리 능력자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 듯 했다.
종이를 들고 나무판 바로 옆에 있는 입구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시끌벅적한 술집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테이블에 각자 모여 앉아 있는 이들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돌아다닌 티가 났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그곳엔 태상처럼 가벼운 차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없었다.
모두 중무장을 했는데, 그 모습이 꼭 중세시대 기사 같았다.
태상은 휘파람을 불며 그들을 구경하다가 이내 직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종이를 들이 밀고 그가 물었다.
“이것 좀 해보고 싶은데 여기서 등록 해주는 겁니까?”
“여기에 칸 채워주면 접수 됩니다.”
직원은 그에게 퉁명스럽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가 종이를 보자 그곳엔 굉장히 심플하게도 무슨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적는 칸과 경력을 적는 칸이 있었다. 그 외에는 적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깨끗했다.
덕분에 태상은 적기가 굉장히 편했다.
모두 적고 내밀자 직원이 힐끗 보곤 계속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원거리능력자라....308호로 들어가면 됩니다. 거기가 면접 보는 곳이니.”
한쪽에 계단이 있었기에 308호로 가기 위해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태상이 3층으로 올라가 8호 문을 열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덩치 큰 한 놈이 부리부리한 눈동자로 태상을 바라봤다.
“들어오슈.”
남자가 태상을 보곤 말했다. 태상이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돌연 손을 내밀었다. 태상은 그것이 종이를 달라는 뜻이라는 것을 곧장 눈치 채고 그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가 종이에 적힌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읽다가 말했다.
“처음?”
“네.”
“새파란 애송이가 왔군. 그나마 원거리 능력자니 운 좋으면 오래는 살겠어.”
태상은 그가 자신을 깔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쪽보다 오래 살 거니까 그건 그쪽이 신경 쓸 일 아니고. 처음 본 사이에 반말은 좀 삼가 하시고. 그래서 뭘 면접 보겠다는 건지 말해보시죠?”
당돌한 태상의 행동이 건방지다 볼 순 있지만 이곳은 워낙 목숨이 오가는 곳인지라 오히려 이렇게 나오는 이를 더 선호했다. 소심하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꼭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때문에 태상의 까칠한 태도에도 남자는 허허 웃어보였다.
“성격은 화끈 한 것 같네. 한 번 실력도 화끈한지 한 번 볼까?”
“그러시던가.”
남자가 몸을 푸는 듯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팔을 휙휙 저었다.
“무기는 거기 들고 있는 그거냐?”
“맞아.”
“좋아. 그럼 그걸로 날 맞춰봐라.”
“..뭐?”
이 인간이 미쳤나 싶었다. 지금 총으로 자신을 쏴보라고 한 게 진짜인가 잠시 의심됐다. 라마스가 말 했다시피 이곳에선 진짜 맞으면 죽는 거다. 그걸 태상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이가 그렇게 말을 하니 황당할 밖에 없었다.
태상이 뭘 걱정하는 지 눈치 챈 남자가 하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그의 기분 나쁜 웃음에 기분이 상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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