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11화 (11/251)

00011  피해자와 가해자.  =========================================================================

“꼴이 그게 뭐냐?”

“...뭐야? 진짜 온 거야?”

송이는 진짜 올 줄 몰랐는데, 그가 진짜 오자 당황스러워했다. 더욱이 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는 아르바이트들을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당장 그 옷 벗어. 내가 다 벗겨버리기 전에.”

“이분 누구시죠, 임송이씨?”

“아...그게...”

매니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송이가 당황해서 답을 못하자 태상이 대신 대답을 하면서 송이의 손목을 잡아챘다.

“나 이 여자 남편입니다. 그러니까 데려 가겠습니다.”

송이의 손에서 대걸레를 던져 버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끌려가 계단을 올라갔다.

“명진아! 명진아아! 이것 좀 놔봐!”

“내가 돈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말을 안 듣지? 날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앞으로 내가 시키는 데로 움직이는 게 당신 신상에 좋을 거야.”

“내가 말 했잖아. 지금 그만두면 지금까지 일한 거 못 받는 다니까? 이번 달만 한다고 했잖아! 더군다나 이번 달, 빠듯하다고 했잖아.”

“빠듯? 뭐가 빠듯한데.”

태상의 말에 참고 참았던 송이가 폭발했다. 그동안 그녀가 명진의 뒷바라지를 하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그런데 그가 알뜰하게 살아 온 그녀의 노고를 전혀 모르는 듯 한 말을 하자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세금도 내고, 월세도 내고! 생활비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알아?! 생활비 한 번도 줘 본 적 없으면서 그런 속 태평한 소리 좀 하지 마! 이럴 때마다 너 얼마나 질리는 지 알아!?”

송이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태상과 송이를 힐끗힐끗 쳐다보기 시작했다. 1층 병원 로비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송이의 말에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거나 하는 대신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줄게. 생활비. 아주 많이. 네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너 진짜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 할래? 받아주는 것도 한 두 번이..꺅!”

태상이 말을 하는 송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는 병원을 나와 그녀를 택시에 태우고 자신도 옆에 탔다. 송이는 잠시 반항을 하다가 팔짱을 끼고 그를 외면하고자 창문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근처에 아무 백화점으로 가주세요. 가장 큰 곳으로.”

“예~”

당연히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태상이 엉뚱하게 백화점으로 가자 하자 황당해 송이가 결국 먼저 그를 바라봤다.

“백화점은 왜!”

“시끄러워. 조용히 있어.”

“싫어! 백화점은 왜 가냐고!”

“.....”

태상이 자신의 팔끼리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답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송이가 택시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바꾸려 했으나 태상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차 좀 돌려주...!”

“택시비 내는 건 접니다. 제가 가는 곳으로 가주세요.”

“너 진짜!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 거야?”

송이는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당연히 청소부 유니폼은 매우 촌스러운 하늘 색깔이었고 말이다. 그 유니폼에 돈이 들어있을 리가 만무했다. 옷이며 지갑이며 핸드폰까지 모두 그곳 락커룸에 들어가 있었기에 그녀는 어찌됐든 그곳에 다시 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송이가 잣니의 손에 끼워져 있는 고무장갑을 신경질 내듯 벗어 던지고 말했다.

“어떡할 거야! 거기에 내 옷이며 지갑이며 다 있단 말이야.”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듯싶었다. 태상은 그녀에게 딜을 걸었다.

“앞으로 3시간 동안 내 말에 모두 yes만 한다고 약속해. 그럼 내가 가서 가져 와 줄 테니까. 아니, 그 구질구질한 걸 굳이 다시 가져와야 하나?”

“됐어! 내가 가도 되거든?”

“내가 안 보낼 건데?”

“.........”

송이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벙긋댔다.

“빨리 약속해. 내가 하라는 대로 3시간 동안 하겠다고. 전부 yes만 하는 거야.”

“그럼 너도 약속해. 내가 3시간 동안 yes만 해주면 넌 이제부터 펴어엉생 나만 데리고 사는 거야.”

“뭐? 갑자기 여기서 그 소리가 왜 나와?.”

“이럴 때 약속 확실하게 받아 놔야지 네가 또 딴 마음 안 먹는단 말이야.”

아무래도 이명진은 그녀에게 굉장히 신뢰도가 낮은 남편이었던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말이다. 태상은 난감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이 택시는 백화점에 다다랐는지 멈춰섰다.

태상이 차에서 내려 송이를 억지로 밖으로 빼내고, 택시기사에게 오 만원권을 주고 보냈다. 송이가 놀라 태상의 등을 짝! 하고 내려쳤다.

“야! 너 뭐하는 짓이야! 거스름돈 안 받아?!”

“....하아.”

태상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솔직히 이 여자 반응이 재밌어서 더 참견하게 됐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폭력까지 쓰는 여자일 줄은 몰랐다.

이런 스타일? 예전의 태상이었으면 말 한 마디도 섞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제 태상이 해야 할 일은 이 여자를 매정하게 버리고 돌아서는 거다. 그래야 맞는 거다. 그런데 그의 발걸음은 땅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 여자는 아직까지 그에게 이용할 가치가 많은 여자였다.

‘젠장!’

자신에겐 이 여자가 필요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필요가 없어질 때까진 계속 데리고 살아야 하니까 그때까지만이라도 저 여자가 자신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약속할 테니까 너도 약속해.”

“응? 뭐가?”

그녀는 심지어 머리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까 그거! 너 평생 데리고 살 테니까 너도 내가 말 한 거 약속하라고. 앞으로 3시간...아니, 앞으로 평생 넌 내 말에 무조건 yes인 거다.”

송이는 흐음~ 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콜.”

“좋아. 그럼 가자.”

태상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졸졸 따르며 송이가 여긴 왜 왔냐고 그에게 계속 물어댔다. 그녀는 청소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창피하지도 않은 지 아예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척이나 당당하게 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태상은 간단하게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옷 사러 간다.”

“옷? 웬 옷? 너 돈 있어? 나 돈 없는데?”

송이는 그 옷의 주인을 태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굳이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내가 돈 있어.”

“네가 돈이 어디서 나와.”

아침 만해도 그녀에게 차비를 꾸었던 태상이었다. 그녀에게 대답을 해주기 전에 그들은 의류 매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의 차림새가 딱 봐도 재벌2세와 그의 마음을 훔친 신데렐라 아가씨로 보인 듯했다. 직원들이 구석에서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태상은 송이를 가만히 세워두고 직원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직원 한 명이 다가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하자 태상이 말했다.

“여기 오늘 문 닫으세요.”

“네?”

직원이 당황스러워하자 태상이 말했다.

“문 닫으라고. 어차피 팔 거 없을 거니까.”

“그게....무슨...소리신지..?”

안타깝게도 직원은 이런 식의 갑질을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꽃무늬가 그려진 마네킹을 가리킨 후 품에서 카드를 꺼내들고 말했다.

“저런 꽃무늬 그려져 있는 옷들 빼고 전부 다 계산하세요. 사이즈는 이 여자 사이즈들로.”

“....!!”

직원이며 송이며 주변에서 옷을 고르고 있던 손님까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태상을 봤다. 송이는 그가 미친 게 분명하다 생각했다.

“야아..!! 너 진짜 미쳤어?”

송이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의 옷깃을 붙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손을 저으며 직원에게 어색하게 웃었다.

“죄, 죄송합니다. 얘가 더위를 먹었는지 좀 상태가 안 좋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가 사과를 하건 말건 태상은 직원에게 꾸여꾸여 카드를 쥐어주었다.

“주소 적게 쪽지.”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매니저가 일단 태상의 의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그는 태상이 허투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더욱이 저런 행동이 자연스럽다는 건 자주 해봤다는 뜻이 된다.

“저희 직원들이 일처리가 미숙해 정말 죄송합니다. 빠르게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매니저가 90도로 고개를 숙여 태상에게 말했다. 그는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얼굴을 했다. 이에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송이였다. 저 카드가 어디서 난 건지는 모르겠으나 계산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쪽이 팔리겠는가.

송이는 필사적으로 애원하듯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태상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계산 됐습니다 고객님.”

원래 갑이 갑질할 땐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했다. 심심해서 돈 뿌려 준다는 데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어야 했다. 다 년간의 노하우로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그에게 카드를 내밀자 태상이 대수롭지 않게 카드를 받아들었다. 송이는 카드 계산이 됐다는 말에 아연해졌다.

“도대체....어떻게?”

“방금 전에 약속 한 거 잊지 않았겠지? 넌 내 말에 무조건 yes인 거다. 빨리 여기서 마음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매니저는 그 말을 듣고 재빨리 직원 전화를 돌렸다.

누군진 모르겠으나 vvip가 떴음을 알려야 했다.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끼어들어 혹시 이곳 vip 회원이신지를 물었다. 태상은 이곳 백화점 계열을 이용했기에 회원권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건 강태상의 회원카드지 이명진의 카드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사용할 순 없었다.

그는 새로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회원 이름은 송이로 했고 말이다.

단순히 애인 사이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꽤나 미래가 있는 사이인 듯 했다. 속으로 저런 남자를 잡은 송이를 부러워하다가 태상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고 나온 송이의 모습을 보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했다.

옷이 날개라고 유니폼을 벗고 꾸며진 그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송이가 종종걸음으로 태상에게 다가왔다.

“...어때?”

그녀도 여자가 맞긴 맞았는지 예쁜 옷을 입는 게 싫지 않은 듯했다. 송이의 모습을 쭉 훑은 태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치...근데 너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이 돈 뭐냐구.”

태상의 입에서 예쁘다는 소리가 나오길 바랐지만 그렇지가 않자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기분이 나빠지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 자신이 예쁜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런 드라마 같은 상황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준 사람이 명진이라는 것도 아직까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저 카드가 진짜 된다는 게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고 말이다.

갑자기 경찰이 들이 닥치거나 하진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궁금해 하지마. 안 알려줄 거니까."

============================ 작품 후기 ============================

오늘도... 3연참....비축분이 떨어져간다...

큰일이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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