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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304화 (304/306)

< 304화. 에필로그 (1)  >

“하하하하! 이 평민놈들아 개처럼 일하지 못하겠느냐!”

소하의 낭랑한 목소리가 포츠머스 클럽하우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역사적인 전관 우승 이후, 50일. 그간 참으로 많은 일이었다.

특히나 영국 왕실에서 소하에게 수여한 훈장과 기사 자격은 아직도 상당한 눈길을 끄는 화제였다.

CBE. (3등급 훈장)

Knight Bachelor. (기사 작위)

두 가지를 한방에 받아내며 위대한 감독, 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성소하 감독이 아니라, 서(Sir), 성소하 감독이라고 부르는 게 공식 명칭이란 이야기였다.

혹은, 성소하 경이라던지.

“네 이놈! 감히 평민 놈이 이 기사님의 얼굴 앞에서 숨을 쉬어?! 죽고 싶은 게냐?”

해서, 귀족이 된 소하는 광증이 도져버렸다.

덕분에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역시나 그의 제자들이었다.

“으아아아! 여긴 지옥이야. 감독님이 미쳤다고!”

“난 지금 회귀라도 한 걸까? 중세시대로? 믿기지 않아….”

“원래도 미친 사람이었는데, 꿈도 이루고 신분 상승까지 해서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역시 감독님. 기사의 위엄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십니다.”

“저를 종자로 삼아주십시오…!”

지랄이 나도 단단히 났다.

어느 정도 이럴 줄 예상했지만, 예상의 정도를 한참 벗어난 폭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과 직원들에게는 때아닌 시련이었다.

“….”

“….”

이런 엉망진창인 포츠머스의 모습을 지켜보던 새로운 영입생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맙소사….’

‘이게, 그 전설의 팀?’

03년생의 잉글랜드와 독일 국적의 두 선수는 환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던 포츠머스라면,

단 6년 만에 신화를 쓴 신화적인 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라는 영광에 도전하는 전설적인 감독의 팀.

아직도 주전 선수들이 무척이나 어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팀.

세계의 모든 선수가 꿈에서도 입단하고 싶어 하는 환상적인 팀.

일단 들어간 순간 우승컵은 무조건 가져오는 승리자의 팀.

등등, 모두가 원하고 또 원하는 ‘드림 클럽’, 그 자체였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영 딴판이었다.

아직 5개월이나 남은 발롱도르 수상을 이미 확정을 지었다는 슈퍼스타이자, 세계 최고의 윙포워드인 조쉬 킹은,

“어? 신입 애송이들이잖아? 이리 와서 나랑 같이 바벨이나 들자!”

무척이나 수수한, 심지어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고 등장해 다짜고짜 체력단련실로 끌고 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안녕? 내가 잘생겼냐? 이 사람이 더 잘생긴 거 같냐?”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유망주이자 이미 세계에서 손꼽는 공격수가 사진을 들이밀었다.

에링 홀란드라는 이름을 가진 그 선수가 내민 사진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젊은 사진이었다.

“…비, 비슷하네요.”

“키, 키는 더 크시네요.”

너무나도 험악한 인상에 절로 아부성 발언이 튀어나왔다.

뭐랄까. 그냥 생존본능이었다.

“흐음…. 너희들이 그 녀석들?”

심지어 끝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자신감을 내뿜는 한 선수는 한참이나 이리저리 훑어보며 그들을 스캔했다.

그러고선,

“아직은 나에게 미치지 못하는군. 날 따라잡으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할 거야. 피똥 쌀 때까지 말이지…. 그래도 제법 싹수는 보이네.”

7살이나 어린 선수들을 무척이나 경계하며 품평하는 델리 알리였다.

세계 유수의 구단들이 모두 탐을 내는 월드 클래스 미드필더로서의 품격 따윈 개미 뒷다리만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장님?”

“….”

03년생의 두 어린 유망주들은 슬쩍, 옆에서 구단을 소개해주던 포츠머스의 주장을 바라봤다.

케빈 도슨.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붙박이 주전 수비수이자,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

대단한 지도력으로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선수라면 모두가 원하는 꿈에도 그리던 주장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환상도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역시 감독님이야. 기사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백작위까지는 받으셨어야 했는데.”

“….”

“참으로 기사라는 작위에 어울리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말 그대로 감독님의 위엄에 날개를 달아준 격입니다.”

“….”

“하아…. 저 자랑스러운 모습. 정말 본받고 또 본받아야만 합니다.”

이건 뭔, 그냥 광신도였다.

그가 찬미하는 대상인 소하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말을 타고 훈련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트랜지셔널 아머를 입고서!

암만 좋게 봐주어도 중세시대의 중증 마니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큼큼.”

불신 어린 시선이 쏟아지자, 케빈 도슨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선 천천히 신입들이 기대하던 믿음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우리의 모습과는 조금 동떨어진 모습일 겁니다.”

조금이 아니라 매우,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계의 정상에 올랐어요. 그냥 조금 괴짜들이 서로 같은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개성 넘치는 이들이 소하라는 매개체로서 한데 모였다.

그리고 이루어냈다.

이것이 바로 포츠머스였다.

“그래도…. 괜찮지 않습니까? 아마도 여러분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전 그렇게 믿어요.”

케빈 도슨이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두 어린 천재들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뭐…. 환상이 깨지긴 했지만요.”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요.”

확실히, 이곳은 편했다.

입단하는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이들이 너무나도 편하게 대해줬다.

마치 원래부터 함께였던 사이였듯이.

함께 경기장을 누빌 동료들은 거리낌 없이 다가와 줬으며, 신입생들을 괴롭히는 관행조차 없었다.

저렇게 훈련 따위는 버려두고 마구 노는 것처럼 보여도 수준 자체는 미친 듯이 높았다.

또한 프런트의 모든 직원이 그들을 환영했다.

무지막지한 외모의 체력코치 겸 영양사는 엄청난 열정으로 그들의 영양을 챙겨주었다.

물론 옆에서 이를 도와주는 나이가 지긋한 친할머니 같은 영양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클럽하우스의 설비는 모두 현세대의 최고를 자랑했으며, 스태프진 하나하나가 빛이 나는 인재들이었다.

포츠머스가 자랑하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은 좀처럼 쉬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곳이었다.

비상식과 상식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금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곧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반드시 말이죠.”

확신에 가득 찬, 케빈 도산의 목소리.

이에, ‘주드 벨링엄’과 ‘자말 무시알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쏴아아.

때는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이 끝난 후 일주일 뒤.

포츠머스로 돌아와 상당히 바쁜 나날들 보내고서 간신히 맞은 휴가의 첫날이었다.

소하는 모처럼 바다가 보이는 공원에 찾아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큼큼. 큼큼. 큼큼.”

연신 헛기침을 내뱉는 소하.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휴가가 시작하자마자 한국으로 날아가지 않은 것부터가 이상했다.

게다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안절부절못한 채 연신 정서불안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이래저래 굉장히 긴장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긴장하게 한 걸까?

세계 최고의 감독이자, 곧 기사 작위를 받는 잘난 남자는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오, 오래 기다리신 건 아니죠?”

마침, 에밀리아 존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따라 굉장히 아리따운 옷을 입고 예쁘장하게 꾸민 그녀라면, 소하의 불안감을 쉽게 보듬어 주리라.

“히, 히익.”

하지만, 이게 웬걸.

소하의 정서불안이 그녀가 등장하자 더욱 심해졌다.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꼴이,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가 걸린 어린아이 같다.

“가, 감독님?”

“아, 안녕하세요. 벼, 별로 기다리지 않았어요.”

“다행이에요!”

환하게 웃는 에밀리아 존슨의 미소에 소하의 식은땀은 양이 곱절로 늘었다.

“그런데 웬일이세요? 이런 한적한 공원에서 보자고 하시고. 무슨 일 있으신가요?”

“….”

“아! 혹시 이번에도 매니저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시려는 걸까요? 좋아요! 하기야, 정말 바쁜 휴가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맡겨만 주세요!”

“…윽.”

심장을 부여잡는 소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투지를 불사르는 그녀의 모습은 심장을 콕콕 찌르며 괴롭혔다.

게다가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인다. 평소에는 그냥 귀여운 처자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먹은 지금은 왜 이리 달라 보이는지 모르겠다.

“….”

소하는 찬찬히 에밀리아 존슨을 바라봤다.

그녀와 처음 만난 지 6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거늘. 나이라고는 하나도 먹지 않은 모습이다.

여전히 사슴 같은 두 눈동자에는 찬란한 생기가 가득했으며, 자상했다.

라우라 맥닐처럼 빼어난 절세 미녀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옆에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녀가 계속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소하가 말없이, 그것도 얼굴을 붉힌 채 바라만 보자 에밀리아 존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 아프세요?”

무척이나 걱정되어 다가갔지만, 소하는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우, 움직이지 마! 지, 지금부터 움직이는 놈은 다 범인이야.”

“…네?”

“아, 아니에요. 자, 잠깐요. 거기 서서 잠깐만 기다려봐요.”

자기도 모르게 중년 탐정으로 빙의했던 소하는 뒤를 돌아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뭐 하는 거야! 병신 새끼야.’

자신의 한심함에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며칠 전 절친한 친구인 김용한에게 여자를 소개해준다면서 여자를 상대하는 법을 읊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잘라 말해, 연애를 책으로 배운 머저리였다.

‘후우. 좋아 넌 할 수 있어.’

몇 번이나 심호흡한 소하는 드디어 어느 정도 침착함을 찾았다.

“저! 에밀리아 씨! 그, 그게….”

그녀를 바라보자마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로 변했지만 말이다.

“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짓는 에밀리아 존슨.

평소에도 장난기가 심했지만,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조금 걱정이 되면서도 왠지 모를 기대감이 차올라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아니겠지….’

혹시, 라는 생각을 떠올리자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게다가 한번 생각하니 계속 의식해버려서 그녀 또한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난데없는 냉전 체제에 돌입했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미리 준비했던 대사를 떠올리려는 소하.

갑작스럽게 의식해버린 덕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끄러워하는 에밀리아 존슨.

그렇게 미묘한 거리를 유지한 채 두 남녀의 대립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꿀꺽.”

그리고, 드디어 소하가 결심을 세웠다.

마른침을 세차게 내 삼킨 소하는 간신히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죠….”

마음을 먹었어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수십, 수백의 기자들 앞에서도.

수천억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 앞에서도.

수백조의 자산을 자랑하는 대기업의 회장 앞에서도.

수백, 수천만의 대중들 앞에서도.

단 한 번도 떨지 않았었는데. 고작 한 여자의 앞에서는 이리도 떨리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 어떠한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꿈을 이루어내지 않았던가!

이제 다음 꿈을 잡아내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꾸, 꿈을 하나 이뤘으니까…. 다, 다음 꿈을 이루고 싶거든요?”

“그, 그러셔야겠죠…. 그, 그런데 어떤 꾸, 꿈이 신가요?”

“그, 그게 말이죠…. 토, 토끼 같은 부인과 하, 함께, 여, 여우 같은 딸과, 해, 행복하게 사, 사는 거거든요….”

“저, 정말…. 머, 멋진 꿈이네요….”

소하의 말이 이어질수록 에밀리아 존슨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

이제는 아예 홍익인간이 따로 없다.

저 멀리 한반도에서 첫 번째 나라를 세운 단군의 의지가 이국만리 섬나라에서 이루어졌다.

잠시 말을 멈춘 소하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 그래서 말인데요! 저, 저와 함께 꿈을 한번 이루어보실래요?! 내, 내 꿈을 도와주세요!”

맙소사. 정말 최악의 고백이었다.

해적단의 선장이 동료들을 영입하는 멘트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전 세계를 뒤져봐도 이 정도로 쓰레기 같은 프러포즈는 없을 거다.

게다가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부터 하자고 들이대다니.

보통 사람이었다면 허락 대신 강렬한 싸대기를 올려붙였을 거다.

하지만 에밀리아 존슨은 보통의,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 그게 뭐예요오….”

고개를 들며 수줍게 웃는 에밀리아 존슨.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제안이었기에,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 304화. 에필로그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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