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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302화 (302/306)

< 302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8)  >

“잘했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연장전을 준비하기 위해 짧은 휴식시간을 가진 선수들을 소하가 크게 환영했다.

“특히나, 디아스! 너! 넌 정말 멋졌어. 네가 싼 똥을 모조리 치웠다!”

소하는 후벵 디아스가 다가오자 꽉 끌어 안아주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두 번의 실점에 관여했으나, 하나의 골과 한 번의 몸을 내던지는 투혼으로 골을 막아내었다.

그야말로 결자해지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꺾여버린 제 의지를 다시 세워주신 덕입니다.”

후벵 디아스도 소하를 꽉 끌어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전반전에만 3-0이었던 경기를 후반전에 3골을 몰아넣어 연장전까지 이끌다니.

본인이 경기장에서 해낸 일이었음에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는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였다.

조쉬 킹이 기적의 질주로 동점 골을 넣었을 땐, 어찌나 흥분했는지 잠시나마 그 순간의 의식이 사라질 정도였다.

“그리고 너도 잘했다.”

이번에는 후반 막바지에 놀라운 선방 쇼를 보여준 아론 람스데일을 치하했다.

“…아직 하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아론 람스데일은 그리 만족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두 골을 막았다곤 했지만, 3골을 실점한 그로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소하는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줬다.

아론 람스데일은 조금 부끄러운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선수들이 모두 라커룸에 앉자 소하는 연장전에 대한 계획을 말해주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큼큼.”

왠지 모르게 굉장히, 거의 승리를 손아귀에 쥐었다고 생각할 만큼 밝은 표정이다.

자신감은 넘치지만 자만은 싫어하며 간신히, 정말 기적적으로 따라잡은 감독의 모습이 아니다.

덕분에 델리 알 리가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다짜고짜 본론을 들어가기엔 애매한 느낌이라, 먼저 조쉬 킹의 안부를 물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본론일지도 몰랐다.

“조쉬는 어떤가요?”

굉장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다.

하기야, 밝은 표정이었지만 고통 때문에 온몸을 덜덜 떨면서 나간 절친한 친구의 상태가 너무나도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은….”

소하가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의사와도 같았다.

“….”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 여기까지 동료들을 인도하다니. 저런 동료는 한번 죽어 다시 태어나도 만나지 못하리라.

조쉬 킹에 대한 애도와 어떻게든 그에게 빅이어를 선물하겠다는 투지가 용솟음쳤다.

그렇게 잠시나마 모두가 결의를 다질 때쯤.

라커룸의 문이 세차게 열렸다.

“요! 다들 잇몸의 환상적인 동점 골을 보았나? 풋내기들아 이 몸이 바로….”

무척이나 밝은 표정으로 등장한 조쉬 킹. 목발을 짚은 채로 나타나 신나게 떠들다가 장례식장 분위기를 감지하고 말을 흐렸다.

“뭐야? 누구 죽었어? 아니면 이 몸의 위대한 실력을 보고 자신의 한계를 느낀 거야?”

대답 따윈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이상한 말을 꺼낸 인간한테 몰렸다.

“…감독님?”

이 원숭이가 왜 이렇게 펄펄 날뛰는지 설명하라는 요구였다.

“아니…. 너희들이 먼저 멋대로 숙연해진 거잖아.”

“….”

“아무튼 한 달 푹 쉬면 멀쩡해질 거라고 하더라. 솔직히 말이야, 내가 보기엔 킹이는 병원보다는 NASA에 보내야 해. 생명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할 거야. 비록, 본인에게는 아쉽게도 해부당하겠지만.”

“….”

되려 뻔뻔하게 나오자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사실은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조쉬 킹이 건강하다는 사실은 다른 일들을 사소하게 만들었다.

“새끼. 처음으로 인정한다. 간만에 1인분은 했으니까.”

“솔직히 내 골 아니야? 미친 슈퍼 패스였다고.”

“진작에 넣지. 왜 그랬어.”

전반전 종료와는 다르게 굉장히 밝은 분위기다.

기적적인 동점으로 인해 마음이 풀어진 것은 아니다.

그저 이 경기를 즐기는 경지에 올라갔을 뿐이었다.

“자자, 잡담은 됐고, 연장전의 전략을 설명하겠다.”

흐뭇하게 제자들은 바라보던 소하는 분위기를 정리했다.

“일단 여기까지 따라온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겠다. 모두 잘했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네!”

“덕분에 우리는 리버풀보다 완벽하게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네?”

완벽하게 유리한 고지라니.

너무 이른 발언인 것만 같다.

“우리의 연장전 전략은….”

이어지는 소하의 전략 설명에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들 또한 확신하게 되었다.

***

-삑.

연장전, 전반이 시작되었다.

선공은 포츠머스.

선수교체는 일단 한 명이었다.

당연하게도 부상으로 빠져나간 조쉬 킹의 자리였고, 그 대타는 마리오 발로텔리였다.

[자, 드디어 이 치열한 경기가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일단, 포츠머스가 유리해요. 극적인 동점 골로 기세가 오는 만큼 올랐을 테니까요. 모두 보시다시피 표정들이 아주 밝아요. 아주 좋아요.]

확실히, 포츠머스 선수들의 표정이 훨씬 가볍다.

리버풀 선수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절벽 끝에서 몸이 반쯤 나가버린 상황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공격적인 전술로 사기가 엉망이 된 리버풀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맞아요. 성소하 감독의 스타일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승기를 잡을 확률이 높아요.]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는, 굉장히 지쳤지만, 무척이나 들뜬 음색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반쯤 빅이어를 손에 넣었다.’

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대로 포츠머스가 밀어붙인다면 승리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소하의 전략은 달랐다.

그들의 생각처럼 밀어붙여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긴 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격렬한 록이라고 생각했던 경기의 장르를 느린 미국 남부 풍의 재즈로 바꾸어버렸다.

[어? 포츠머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생각만큼은, 아니. 상당히 느리게 경기를 운영하는 중입니다.]

[확실히, 수비 라인을 내리고 공간패스보다는 주고받는 패스가 많아졌어요. 점유율을 중시하는 모양이에요.]

좀처럼 이해가 어려운 경기 운영이다. 리버풀이 정신적으로 몰려있을 때야말로 처형을 집행하기에 최적의 시간이거늘.

그간 알아 왔던 소하와 포츠머스는 이런 기회에서 발톱을 감추는 약한 사나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비판의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무슨 생각이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소하 감독과 포츠머스이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다른 팀이었다면 거침없이 문제점을 짚었겠지만, 이건 무슨 다른 속셈이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과 팀도 아니고 소하와 포츠머스지 않던가.

기적적으로 3-3, 동점을 만든 팀이 갑작스럽게 느슨한 플레이를 할 리가 없었다.

‘그냥 편안하게 보다 보면 무언가를 또다시 보여줄 거다!’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는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서포터들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만큼은 이러한 움직임에 골머리를 앓았다.

‘무슨 생각이지?’

거대한 게르만인이 인상을 쓰자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끝낼 수 있을 때 왜 뜸을 들인단 말인가?’

3-0이던 경기를 3-3까지 따라잡히고 연장전에 들어간 덕분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모처럼 라커룸 안에서 선수들을 크게 혼내고 온 참이었다.

즉, 아직 리버풀의 선수들이 평정심을 되찾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회복할 시간을 주는 거지? 도대체! 어째서!’

소하 같은 유능한 감독이 상대 팀 선수들의 심리를 모를 리는 없을 터.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다.

게다가 위르겐 클롭 감독은 선수들에게 역습을 지시했다.

기세가 잔뜩 오른 포츠머스가 몰아붙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슬슬 아군 진영으로 끌어들여 날카롭게 뒷공간을 파버릴 예정이었다.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체력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체력을 아끼며 기선을 제압할지도 몰랐었다.

‘이걸 노린 건가? 내 생각을 읽고 역으로? 그게…. 더 이득이라 판단한 건가?’

정말 아리송했다.

역습에 대비한다고 손에 쥔 승기를 놓아버린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영리하기보다는 어리석다.

‘뭘까…?’

슬쩍, 옆에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소하를 훔쳐봤다.

얼굴과 표정을 읽어 속마음을 엿보려는 행동이었지만, 얻어낼 수가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정말 젊고 잘생겼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이러한 경기 흐름을 원한 건지.

혹은 선수들이 방만해져 지시에 따르지 못하는 건지.

괜히 더 헷갈린다.

괜히 소하를 훔쳐봤다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어렵군. 하지만, 우리에게 좋은 상황이다. 남은 교체 카드 한 장을 조금 더 아껴봐야겠어.’

시선을 거두며 주먹을 불끈 쥐는 위르겐 클롭 감독.

그에게도 이 경기를 어떻게든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올랐다.

***

“네? 뭐라고요?!”

때는, 연장전이 시작하기 몇 분 전.

소하가 드디어 전술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감독님! 외람되지만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늘 기적의 시발점이자 자랑스러운 주장, 케빈 도슨이 선수들을 대표해 나섰다.

“그래.”

소하가 흔쾌히 허락하자 케빈 도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구심을 표했다.

“상대는 지금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입니다. 마치 전반전이 끝난 우리처럼 말이죠. 그들도 우리처럼 부활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 제법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런데 어째서 적에게 회복한 시간을 줄 만큼 경기를 느슨하게 진행해서 승부차기로 가자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소하는 연장전을 대충 넘기고 승부차기를 원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를 판단이었다.

“응. 다시 한번 말하지. 승부차기에 들어가면 우리가 이길 확률이 높다.”

“…어째서입니까?”

“간단하다. 우리가 승부차기를 훨씬 잘하니까.”

“….”

“너도 알잖아? 우리의 페널티킥 키커들은 세계 최고라고….”

말을 흐리며 소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케빈 도슨과 선수들의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 약해진 상대를 강하게 물어뜯어 완전히 끝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몰린 상대를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칠지도 몰랐다.

“알다시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고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의 코를 깨무는 법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상대하는 팀이 지렁이나 쥐 따위 같은 미물이 아니라는 거다.

“약한 상대면 확실한 승부수다. 그러나, 너희들도 알다시피 리버풀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세계 최고의 팀이다. 너무 거칠게 다루면 오히려 때리던 우리의 주먹이 부서질지도 모른다.”

따로 예시를 찾아보지 않아도, 이미 포츠머스가 산 증인이다.

3-0이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기어코 꿈틀거리며 동점을 만들지 않았던가.

그 엄청난 돌풍이 역으로 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해서 승리를 할 확률은 70%쯤이다.”

70%.

높은 확률이다.

100해서 70번이나 이긴다.

하지만 더욱 확률이 높은 방법이 있다면 30%나 질 확률을 가진 전략이었다.

“마리오 발로텔리, 에링 홀란드, 모하메드 살라, 델리 알리, 마이클 반즈, 케빈 도슨. 킹을 제외해도 훌륭한 페널티킥 키커가 넘친다. 이에 반해 리버풀은 제임스 밀너 빼고는 페널티킥을 어려워한다.”

압도적인 숫자 차이였다.

게다가 소하가 언급한 선수들의 페널티킥 성공률은 모두 80~85% 근처다.

심지어 마이클 반즈는 성공률이 100%다. 12번 차서 12번 성공.

다른 팀이었다면 모두가 전담 키커로서 자리를 잡아도 문제없었다.

이래저래 리버풀과는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 결과, 승부차기로 들어가는 게 이길 확률이 더 높았다. 이제 내 속내를 다 말했다. 이의 있는 사람?”

당연하게도, 있을 리가 없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연장전 전반이 끝났고 연장전 후반도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슬슬 승부차기를 떠올리지 않기가 힘들 때쯤. 소하가 드디어 숨겨왔던 비수를 꺼내 들었다.

[오! 드디어 성소하 감독이 남아있던 교체 카드 2장을 소모하려고 합니다!]

[도봉산은 지친 리버풀을 혼내주려는 카드로 보이지만, 마이클 반즈는 의외로군요…. 마이클 반즈라…. 아…!]

마이클 반즈의 이름을 되뇌던 나단 필립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거였군요! 이거였어요! 성소하 감독은 애초부터 승부차기로 들어갈 작정이었던 거에요!]

몸에서 전율이 돌았다.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가르려고 작당하는 감독이 나오다니!

심지어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이길 확률이 매우 높은 전략이었다.

승리로 향하는 길을 보는 능력만큼은 정말 미친 수준으로 보였다.

“아…!”

마침내 리버풀의 클롭 감독도 눈치를 채고서 신음성을 흘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판을 짤 줄이야. 세계적인 감독인 그로서도 예측할 수 없었을 만한 기행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

공격을 명령해봤지만 어느새 연장전은 끝나버렸다.

-삑! 삑!

[이제 경기는 승부차기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가온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이었다.

< 302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8)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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