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301화 (301/306)

< 301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7) >

시간은 느리지만 빠르게, 빠르지만 느리게 흘러갔다.

어떻게든 동점 골을 넣고 싶은 포츠머스에게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이에 반해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리버풀에게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느리게만 흘러갔다.

-후하.

거친 숨소리를 내뱉지 않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친 듯이 공격하느라, 미친 듯이 수비를 하느라 수비수들은 체력이 바닥났다.

-후하.

쉴 새 없이 경기장의 중원을 누비던 미드필더들은 이미 입에서 단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땀은 비오듯 줄줄 흘렀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소리가 귓바퀴에 울렸다.

-후하.

쉴 새 없이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공격수들 또한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미 한계였다. 강한 체력으로 유명한 두 팀 모두가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움직이는 다리는 멈추는 이는 없었다.

세차게 심장이 요동쳐도, 폐가 산소가 필요하다고 발악을 해도 계속해서 움직였다.

여기까지 와서 주저앉기엔, 지난날의 노력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 자리에서 포기하기엔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기에, 엄청난 피로로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음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교체가 슬슬 필요한 시점입니다. 성소하 감독,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톰 힉스가 처절한 목소리로 의견을 내었다.

그 또한 격렬한 경기의 중계를 맡아, 목이 다 쉬어버렸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 그의 입술은 그도 선수만큼이나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교체가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해요.]

나단 필립스 또한 맛이 가버린 음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성소하 감독은 조금 더 멀리 보고 있음이 분명해요. 아마, 연장전을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죽어가는 노인처럼, 너무나도 지쳐 말꼬리가 절로 흐려진 나단 필립스.

이번에도 그의 말은 옳았다.

‘믿는다. 너희들을.’

소하는 지금 경기장에 뛰고 있는 선수들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빠르게 굴러가는 머리가 냉정한 계산을 마쳤다.

‘남은 시간은 10분. 현실적으로 역전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남은 것은 연장전. 연장전에 대비해야만 한다.’

선수들은 유례가 없을 만큼 지쳤다.

따라서, 만약 기적적으로 연장에 들어간다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너무 심했다.

물론, 지금 당장 동점 골을 넣지 못한다면 다 허사인 일이긴 하다.

그래도 이럴 땐 믿는 수밖에 없었다.

우직하게 믿고 기다려서 승리로 가는 길을 열어내야만 했다.

이에 반해,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슬슬 교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선수들을 믿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도 소하만큼이나 선수들을 믿었다. 때문에 연장전까지 가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보낸 것이었다.

‘수비를 강화한다.’

수비적인 교체를 고려하는 한편, 마음 한쪽에 작은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이르게 수비진을 내렸다. 내 실수야. 차라리 1~2골 내주더라도 1골 더 넣었다면 달랐을 텐데.’

뒤늦은 후회였다.

저렇게만 했다면, 포츠머스가 골을 넣긴 했어도 이리 위험에 처하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많은 공격 기회를 내준 것이 이번 경기의 패착이었다.

최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이라는 격언을 망각한 작은 실수의 여파였다.

지금이라도 공격으로 나서면 되지 않겠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기세에서 너무나도 밀려버렸다.

흐름이 아예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가드를 푼다는 건, 치명적인 공격을 대놓고 얻어맞겠다고 광고하는 행위였을 뿐.

게다가 이미 리버풀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은 덕에 공격 의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리버풀이 교체를 지시합니다. 알렉산더 아놀드가 빠지고, 조 고메즈가 오른쪽 풀백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바이날둠이 나가고 제임스 밀너가 경기장을 밟습니다.]

[수비적인 교체에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1골 차이 리드를 지키겠다는 의지에요.]

공격적인 알렉산더 아놀드 대신 중앙수비수가 본업인 조 고메즈가 앞으로 나왔다.

상당히 지친 바이날둠 대신 활동량이 대단한 베테랑 선수, 제임스 밀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6분.

뚫어내야 하는 포츠머스와 막아내야 하는 리버풀의 혈전도 거의 끝에 다다랐다.

***

엄청난 투지를 온몸에 두르고 경기에 임하는 포츠머스 선수들.

이러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자기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난 선수가 몇 있었다.

‘공격수인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잖아…?!’

‘이건 굴욕이다.’

팀의 주포이자 세계 최고의 포워드라고 칭송받는 조쉬 킹과 에링 홀란드였다.

에링 홀란드야, 아직 유망주의 나이를 벗어나지 못한 나이라고 쳐도 전성기의 초입인 조쉬 킹에겐 다른 이야기였다.

‘이대론 거짓말쟁이로 남는 거야.’

분명, 그가 부모님보다 따르는 소하에게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약속했건만.

이대로 바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없었다.

세계 최고라면, 세계 최고의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줘야만 했으니까.

적어도 조쉬 킹은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미친 듯이 경기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후반 41분, 조쉬 킹이 달성한 활동량은 15.2km.

윙 포워드들의 평균 활동량이 11~12km였고,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동량이 12~13km라는 점을 보았을 때, 이는 정말 무지막지한 운동량임이 분명했다.

이 엄청난 움직임은 리버풀이 공격조차 시도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괜히 전반전에 날뛰던 앙투안 그리즈만이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어째서 그가 이번 연도의 발동도르 수상에 가장 유력한 선수인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가히, 인간임을 의심케 하는 놀라운 활약이다.

하지만, 조쉬 킹은 엄연히 사람이었다.

가끔 외계에서 왔다고 오해받지만 엄연한 호모사피엔스였다.

즉, 이미 육체가 육체의 한계를 넘어 과부하의 상태까지 도달했다는 이야기였다.

-욱씬.

일순, 허벅지 뒤쪽에서부터 따끔한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뭐야?’

짧지만 강렬한 고통에 조쉬 킹은 인상을 찌푸렸다.

‘모기에 물렸나?’

무지한 건지, 혹은 너무나도 억센 건지.

조쉬 킹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그 순간, 조쉬 킹에게 기회가 왔다. 3선부터 시작된 데클란 라이스의 멋들어진 공간 패스였다.

‘일단 뛰자!’

속도 경쟁을 하라는 패스의 의도를 읽은 조쉬 킹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막던 조 고메즈도 속도를 올려보았지만, 조쉬 킹의 그림자를 밟기만 할 뿐, 따라잡지는 못했다.

이대로라면 좋은 크로스 기회다.

역전의 시발점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악!”

외마디 비명이 경기장 안을 울렸다. 동시에 조쉬 킹이 허벅지를 부여잡고 넘어지는 모습이 관중들에게 보여졌다.

보지 않아도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삑!

곧이어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고 소하는 버럭 소리쳤다.

“뭐야?! 의료진 빨리 들어가세요!”

거의 반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만큼 놀란 소하가 재빨리 의료진을 투입했다.

“네!”

들것을 들고 후다닥 경기장으로 들어간 의료진.

잠시 조쉬 킹의 상대를 들여다보고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미친…. 햄스트링이 꿈틀거리잖아?’

울룩불룩, 허벅지 뒤 근육이 자기 멋대로 요동치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 정도로 근육에 경련이 생기려면, 훨씬 전부터 심한 고통이 찾아왔을 거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뛰게 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종종, 위기의 상황에서 정신력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 딱 그 순간임이 자명했다.

‘계속 뛰는 건 불가능해.’

의료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곧바로 조쉬 킹을 들것에 실은 그들은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돌아왔다.

“안 괜찮죠?”

소하 또한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 물음에 의료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경기는커녕, 한두 달 재활해야 할 겁니다. 운이 없으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알겠어요. 하여튼, 최대한 좋은 응급처치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조쉬 킹을 한 차례 쳐다본 소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경기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눈짓했다.

어쩔 수 없었다.

조쉬 킹은 해줄 만큼 다해줬다.

경기장이 아니었다면, 저 상태가 되도록 뛰어준 조쉬 킹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또한, 혼을 내고 싶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조지려고 작정했냐고 격하게 혼쭐을 내고 싶었다.

지금은 꿈을 놓칠지도 몰랐으나, 그에게는 무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조쉬 킹은 생각은 달랐다.

“감독님….”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쉬 킹은 들것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전…. 할 수 있어요.”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는 고통과 애절함, 그리고 강한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소하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헛소리 말고 치료나 잘 받아라.”

“전…. 할 수 있다고요!”

조쉬 킹을 떼를 써봤지만, 소하는 냉정하고 논리정연하게 반박했다.

“네가 얌전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말해주마. 첫째, 넌 이제 경기장에서 쓸모없다. 제대로 뛰기는커녕 움직이지도 못하겠지. 지금 상황에서 10대 11의 싸움을 하라는 거냐?”

반박하기가 불가능한 논리였다. 조쉬 킹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둘째. 지금은 그냥 치료받으면 낫겠지만, 여기서 괜히 경기에 나가서 헛짓거리한다면 일 년은 푹 쉬어야 할 거다. 다시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지.”

감독으로서 당연한 결정이다.

오늘만이 날이 아니다.

언제나 기회는 다음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부상이 악화하여 탐내 최고의 선수가 망가진다면 다음 기회 또한 사라진다.

요컨대, 조쉬 킹의 떼를 받아주는 건 여러모로 최악의 결정이었다.

현재도, 미래도.

모두 나쁜 결과만 불러올 최악의 선택이다.

이 사실은 조쉬 킹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전….”

“시끄러워.”

“전,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요!”

“다음에 지키면 된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약속을 소하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거절했다.

물론, 조쉬 킹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감독님. 지금 이 자리에서 멍청이처럼 사라진다면 전 영원히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을 거예요.”

“….”

“최고의 순간에서 이렇게 도망가는 놈이 어떻게 최고가 되겠어요? 믿어주세요. 전 해낼 거예요. 아니, 할게요.”

소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힘든 결정이다.

이성으로는 내보내는 게 맞았으나, 마음속 한쪽에는 그가 무언가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또한 있었다.

그렇다고 선수의 미래를 팔아버리자?

이건 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이성과 감성의 싸움.

현실과 꿈의 싸움.

분석과 믿음의 싸움.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소하에게는 억겁 같은 고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소하는 곧 결정을 내렸다.

“해내라.”

허락하고야 말았다.

사람이 가진 의지의 힘을 믿었다.

조쉬 킹의 간절한 바람을 밀어줬다.

“모든 것은 제 책임이에요. 감독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쉬 킹은 주먹을 불끈 쥐며 투지를 다시금 불살랐으나, 소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 선택이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까, 넌 아무 생각 없이 해내기만 하면 된다.”

“네.”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조쉬 킹은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약속을 잘 지키는 남자였다.

***

경기가 재개되었다.

교체를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쉬 킹이 다시금 나오자 경기장이 술렁거렸다.

[어? 심각한 부상으로 알았는데, 다행입니다. 조쉬 킹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니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여요. 무슨 판단일까요?]

교체 카드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교체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의아한 결정이었으나,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믿어 봅니다. 분명 성소하 감독과 조쉬 킹에게는 계획이 있을 겁니다.]

[당연하죠. 아무런 계획 없이 이러한 결정을 할 리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월드클래스이니까요.]

아쉽게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는 거품을 물었으리라.

하여튼, 조쉬 킹의 재투입은 소하의 예상대로 포츠머스에 고난을 부여했다.

엄청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을 커버하던 그가 멈추자, 리버풀의 공격이 살아나 버렸다.

그리고 리버풀의 공격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포츠머스의 공격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금 비등비등한 경기로 돌아온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

어느덧 정규시간은 끝이 났고, 추가시간에 접어들었다.

추가시간은 4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고, 포츠머스로서는 총공격을 감행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추가시간 2분에 접어들었을 무렵, 오히려 리버풀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양 팀이 모두 한 번씩 골을 얻어냈던, 코너킥 기회.

리버풀은 포츠머스로서 얄밉게도, 중앙수비수 두 명은 후방에 배치하고서 코너킥을 진행했다.

즉, 짧은 코너킥 이후 시간을 끌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거칠게 압박을 시도했다.

그리고 너무나 의욕이 앞섰던 걸까.

페널티 에어리어에 공간을 너무나도 많이 남겨줘 버렸다.

-툭.

덤으로 얄밉게 선수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앙투안 그리즈만의 크로스까지.

매우 좋지 않았고 위험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에서, 피르미누가 오픈 찬스를 잡았습니다.]

[아아! 안 돼요!]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의 비명을 뒤로 한 채 피르미누의 정확한 오른발 슛이 작렬했다.

목표는 오른쪽 아래 구석!

굉장히 예리한 슛이었고, 그대로 골망을 가르는 듯했으나, 아론 람스데일의 슈퍼세이브가 나왔다.

-틱.

간신히 손으로 쳐냈다.

미리 어디로 찰지 예상하고 먼저 몸을 던지지 않았으면 막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쳐낸 공은 또다시 리버풀 선수에게 넘어갔고, 다시금 슛을 했다.

-뻥!

골대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터진 조던 헨더슨의 슛.

엄청난 기회였으나, 이번에도 아론 람스데일이 막아냈다.

-텅!

연속으로 이어지는 슈퍼세이브의 향연이었다.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아론 람스데일의 미친 활약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난전은 끝나지 않았다.

골대를 막고 튕겨 나간 공은 왼쪽 골대 근처에서 대기하던 사디오 마네에게 떨어졌다.

워낙 좁고,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난전 상황에서 사디오 마네는 기어코 발을 가져대었다.

-데굴. 데굴. 데굴.

빗맞아 힘은 없었으나, 비어있는 골대를 향해 제대로 굴러간다.

이젠 끝인가? 이젠 끝이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또다시 영웅이 등장했다.

“으아!”

후벵 디아스가 몸을 날렸다.

아니, 머리를 날렸다.

난전 상황에서 넘어져,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던 그가 골대로 굴러가는 공을 향해 머리를 가져댔다.

날카로운 축구화의 스터드가 코앞에서 스쳐 지나감에도 그는 용맹하게 얼굴을 던졌다.

-툭.

막아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막아냈다.

그리고 이어서 포츠머스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뻥!

시작은 칼빈 필립스였다.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후벵 디아스가 걷어낸 공을 전방으로 길게 내질렀다.

목표는, 조쉬 킹이었다.

‘제발 해줘라!’

간절한 염원이 담긴 패스였고, 이제 추가시간은 단 30초밖에 남지 않은 때였다.

***

-하아.

조쉬 킹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왼쪽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과 지칠 대로 지친 체력 때문에 눈앞이 어지러웠다.

-하아.

조금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냥 고집을 부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였다.

-하아.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음이 무너지려는 찰나.

칼빈 필립스의 놀라운 전진 패스가 시야에 잡혔다.

‘왔다.’

다 죽어가던 눈빛에 활력이 돌았다.

완전히 고갈되었다고 여겼던 몸에 마지막 체력이 돌았다.

게다가, 워낙에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조엘 마팁과 번질 반다이크의 스프린트가 조금 늦었다.

골인 줄 알았으니까.

골을 넣고 경기를 끝낸 줄 알았으니까.

더군다나 그들이 마크하는 조쉬 킹은 제대로 서이지도 못했지 않은가.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질 만도 했다.

하지만, 조쉬 킹은 고통과 고갈의 싸움에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래서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먼저 출발을 끊을 수 있었다.

[포츠머스! 마지막 기회입니다! 칼빈 필립스의 걷어내기가 중앙선 근처에서 서성이던 조쉬 킹의 앞을 향해 떨어졌습니다!]

[조쉬 킹이라면 할 수 있어요!]

경기의 끝에 다다른 시점에 얻은 절호의 기회였다.

조쉬 킹은 먼저 준비한 만큼 먼저 앞서나갔다.

그의 눈앞에는 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조엘 마팁과 버질 반다이크가 그를 양옆에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부상 때문에 온전한 컨디션도 아니었거니와, 두 중앙수비수의 주력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하아.

조쉬 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또다시 후회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자리에 마리오 발로텔리가 있었다면. 그는 충분히 끝까지 달려가 골을 넣을 텐데.

-하아. 하아.

왼쪽 허벅지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점점 더 거세졌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에 그냥 이대로 넘어져서 울부짖고만 싶었다.

-하아. 하아. 하아.

시야가 어두워졌다.

이젠 다리가 움직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로서도 이상했다.

하지만 곧 어째서인지 그는 깨달았다.

고통과 피곤 때문에 잊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가라! 넌 조쉬 킹이야!”

“머저리야! 이건 해줘야지!”

“믿습니다! 가세요!”

동료들의 고함이 들렸다.

“제발 해줘!”

“우리의 끝은 여기가 끝이 아니야!”

“믿을게! 킹아 믿을게!”

서포터들의 응원이 들렸다.

“조쉬 킹! 약속 지켜라!”

소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아직 멈출 순 없었다.

이대로 멈춘다면, 이건 자살이었다.

다치거나, 죽거나.

선택은 쉬웠다.

그렇기에 그는,

“나는!”

포기하지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다리에 힘이 다시금 돌아왔다.

부모님들의 꿈이.

서포터들의 꿈이.

동료들의 꿈이.

감독님의 꿈이.

그의 다리에 다시금 힘을 주었다.

“으아아아아아!”

포효하는 조쉬 킹!

거의 다 따라잡혔다고 하는 순간!

조쉬 킹은 놀랍게도 엄청난 가속력을 보이며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조쉬 킹이! 다시 거리를 벌립니다!]

[조쉬 킹이 달려요! 달리고 있어요!]

그는 마치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섬광이었다.

‘어떻게?!’

‘무슨…?!’

조엘 마팁과 버질 반다이크는 점점 멀어지는 조쉬 킹의 등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뒤에서 보이는 그의 허벅지 근육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거늘.

같은 선수였기에,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아는 그들로서는 상식 밖의 모습이었다.

-파파파파팟.

이제, 완벽하게 두 중앙수비수들을 떨쳐냈다.

남은 건 알리송 베케르, 하나였을 뿐.

그러나, 골키퍼 혼자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툭.

골키퍼를 완벽하게 피해 휘어져 들어가는 멋진 감아차기!

그 슛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포물선은 그리며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동점 골이었다.

[골입니다! 골입니다아아아아아!]

[해냈어요! 해냈어요! 동점 골이에요! 조쉬 킹이 해냈어요! 그는 전설이에요!]

엄청난 함성과 함께 그대로 후반전이 종료되었고, 조쉬 킹은 곧바로 쓰러졌다.

곧바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조쉬 킹.

그는 서둘러 다가온 소하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때요? 약속 지켰죠?”

이에, 소하 또한 엄지를 들어 올렸다.

“네가 세계 최고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제 양 팀의 혈전은 연장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301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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