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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99화 (299/306)

< 299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5)  >

호베르트 피르미누의 선제골은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그 치열하고 멋진 경기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골이 들어가다니.

정신을 차리고 싶어도 차리기가 힘들 지경이다.

“….”

“….”

소하와 밀러 또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소에 하지도 않았을 실수로 골까지 먹힌다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 비하면 이러한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먼저, 공을 던져준 아론 람스데일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았다.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나라 잃은 애국지사의 얼굴이었다.

더불어 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공을 지켜내지 못한 후벵 디아스는 원통한 듯 경기장의 지면을 연신 후려쳤다.

“으아아!”

주먹이 까져서 피가 조금 새어 나왔음에도 한이 풀리지 않은 모습이다.

이럴 때야말로 감독의 지도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하는 큰 목소리로 독려하려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필드의 감독이 나섰다.

“겨우 한 골입니다. 한 골 정도, 우리는 얼마든지 넣을 수 있지 않습니까? 머릿속에서 잊으세요. 사소한 일입니다.”

주장, 케빈 도슨이 실수를 저지르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선수들을 독려했다.

“아, 알겠어. 주장.”

“노력하겠어요.”

손으로 뺨을 세차게 치며 다시금 전의 붙잡는 아론 람스데일과 후벵 디아스.

괜히 수많은 감독이 훌륭한 주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난 참 운이 좋아.”

케빈 도슨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말대로, 한 골 차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기에 마냥 저런 주장을 가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실력도 뛰어나며 통솔력도 갖춘 선수라.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고, 이러한 주장을 보유한 포츠머스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 맞았다.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전반 30분, 다시 재개된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한 골 차이를 따라잡기 위해 기어를 계속 올리는 포츠머스.

한 골 차이를 지키면서 호시탐탐 추가 골을 노리는 리버풀.

치열한 공방전이었고,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쪽에서는 절로 박수가 나왔다.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따라가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훌륭한 팀이에요. 보통, 저런 실수로 실점을 한다면 다리에 힘이 풀리기 마련이거든요. 바로 이거에요. 하나로 똘똘 뭉친 저 자세가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거거든요.]

톰 힉스는 물론, 까칠하기로 유명한 나단 필립스마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수한 선수야 당연히 흔들리겠지만, 때때론 동료들이 더욱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츠머스의 실상은 겉보기보다 썩 좋지 않았다.

‘답답하다. 분명 해볼 만한 경기였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잘 풀리지 않아.’

‘따라잡을 수 있다고는 믿지만 한 번 더 그런 실수가 나온다면….’

‘뒤가 신경이 쓰여.’

‘조금 더 활동량을 가져가야 할까?’

작은 실수에서 나온 실점은 마음의 틈을 만들었다.

다른 경기였으면 몰라도,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이 가진 압박감은 그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게다가 리버풀은 굉장히 영리했다.

혹은, 포츠머스의 처지로서 보자면 굉장히 교활했다.

[리버풀이 경기를 잘 풀어나갑니다. 슬쩍슬쩍 유인하며 체력소모를 유도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얄밉습니다!]

[마치, 스페인식 투우를 하는 모습이에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채 잔뜩 흥분한 소를 농락하고 있어요.]

나단 필립스의 비유는 무척이나 정확했다.

잔뜩 화가 나고 불안한 소, 포츠머스가 마구 들이받았지만, 슬쩍슬쩍 피해내며 약을 올린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했다.

투우에서 보듯이 잔뜩 약이 오른 소는 자제심을 놓치고 이성을 잃지 않던가.

포츠머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기도 모르게 너무 앞으로 쏠렸고, 이 때문에 수비진과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이 크게 벌어졌다.

물론, 한 번에 크게 벌어진 건 아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벌어지던 틈은 어느새 ‘피그마’라고 불리는 리버풀의 공격진들이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안 돼! 얘들아! 정신 차려라! 간격이 너무 벌어졌잖아!”

이를 눈치챈 소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한발 늦었다.

-뻥!

소하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알렉산더 아놀드의 정확한 중거리 패스가 벌어진 공간에 정확히 떨어졌다.

당연하게도 그 공간에는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 앙투안 그리즈만이 대기하고 있었다.

[위험합니다! 2대3 싸움이 됐습니다. 포츠머스, 위기입니다!]

[양쪽 풀백마저 극단적으로 올라가 있던지라 수적 열세에 빠진 포츠머스에요. 가장 큰 위기에요.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같은 숫자라도 공격자가 유리한 게 축구라는 스포츠다.

그런데, 여기서 공격자가 더 숫자가 많다? 골을 넣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수준이란 말이다.

“….”

가장 먼저 공을 받은 앙투안 그리즈만을 막기 위해 케빈 도슨이 나섰다.

입술을 질끈 감은 채 두 눈을 부릅뜨고서 앙투안 그리즈만에게 접근했다.

그의 판단은 측면을 내주더라도 중앙을 막는 위치를 잡는 것.

훌륭하게 중앙으로 향하는 패스 길과 드리블할 공간을 막아섰다.

어째서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붙박이 주전 수비수인지 여실히 증명하는 판단이다.

하지만, 앙투안 그리즈만은 그리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케빈 도슨이 잉글랜드의 주전이라면, 앙투안 그리즈만은 프랑스의 주전.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툭.

앙투안 그리즈만은 왼발 아웃프런트를 이용해 중앙으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그것도, 케빈 도슨의 가랑이 사이를 노려서.

완벽하다고 보였던 수비의 유일한 틈이기도 했다.

“아…!”

환상적인 패스에 케빈 도슨은 탄식을 흘렸으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앙투안 그리즈만의 패스를 받은 중앙의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곧바로 왼쪽의 사디오 마네에게 전진패스를 찔러 넣어줬다.

당연히 호베르투 피르미누를 막기 위해 뒷공간을 열어줬던 후벵 디아스는 이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붙지 않았으면 어땠느냐는 가정은 쓸모없었다.

붙지 않았다면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그대로 앞으로 나가서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 했을 테니까.

애초에 이러한 2대3 싸움을 하게 만든 팀의 형태가 문제였을 뿐이었다.

[사디오 마네가 골키퍼와 1대1 기회를 잡습니다. 이젠 믿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어떻게든 막아내야 해요. 혹은, 사디오 마네가 실수하길 바랄 수밖에요.]

간절히 빌어봤지만, 사디오 마네는 그리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툭.

달려나 온 아론 람스데일 골키퍼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깔끔한 로빙슛.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감각적인 그 슛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아아아!”

사디오 마네의 우렁찬 포효와 상반되게 포츠머스 선수들의 얼굴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

전반 40분에 터진 사디오 마네의 추가 골은 포츠머스에게 치명타였다.

점수 차이도 점수 차이었을뿐더러, 선수들의 정신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차이였다

리버풀은 지난 시즌에도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 왔었던 팀이라 능숙했고,

포츠머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올라온 자리여서 미숙했다.

젊음의 강점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젊음의 약점으로 여기까지 몰렸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굳건하던 주장, 케빈 도슨마저 제정신을 잃었다. 즉, 다른 선수들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다.

어찌나 혼이 빠졌는지,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열정적으로 지시하는 소하의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토록 바라던 꿈을 손을 쥐었다고 생각했건만. 이 바람이 깨질 위기에 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후벵 디아스에 비하자면 다른 선수들의 정신 붕괴는 애교 수준이었다.

‘내가…. 모두의 꿈을 망쳤다….’

그는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자살골을 넣거나, 상대 팀의 공격수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넣어준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히려 피해자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얼마나 얼굴빛이 죽었는지 케빈 도슨마저도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이제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한 가지를 바랐다.

‘빨리 전반전이 끝났으면 좋겠다.’

비겁한 도망이자, 애처로운 후퇴였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소하에게 질타를 받고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리버풀은 이대로 포츠머스를 라커룸으로 곱게 들여보낼 생각이 없었다.

전반 44분.

전반전 종료가 1분 남짓 남은 시간, 코너킥 기회를 잡은 리버풀은 추가타를 때려 넣었다.

-뻐엉.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드는 알렉산더 아놀드의 위협적인 코너킥.

목표는 후벵 디아스와 격렬한 자리 싸움 중인 버질 반다이크였다.

그리고, 마음이 꺾인 후벵 디아스가, 독하게 마음먹은 세계 최고의 수비수를 이겨낼 리가 없었다.

-텅! 철썩!

골대의 왼쪽 위를 맞추고 그대로 들어가는 버질 반다이크의 헤더 골.

경기가 거의 끝났음을 알리는,

포츠머스의 숨통이 거의 끊어졌음을 통보하는,

리버풀의 장송곡이었다.

***

3-0으로 끝난 전반전 이후, 포츠머스의 라커룸은 당연히 장례식장이 따로 없었다.

“….”

“….”

“….”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를 탓하고 싶어도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간 고생했던 동료 한 명을 콕 집어서 매도할 만큼 인성이 바닥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적적하고 음울한 침묵만이 그들에게 어울렸다.

이러한 분위기는 라커룸 안에 소하가 들어왔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덜컥.

그들이 무엇보다 따르고 존경하는 소하의 등장에도 늘어진 머리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미안했고, 죄송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으며, 그냥 욕을 한 바가지로 먹고 싶기도 했다.

그저 소하의 처형을 묵묵히 기다리며 바라는 포츠머스의 선수들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졌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강하게 틀어박혔다.

포기라는 단어가 점점 선명하게 그려졌다.

“흠.”

처음 보는 선수들의 좌절한 모습에 소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 눈을 감아라.”

잔잔한 새벽의 호수 같은 음색이었다.

분명 거친 고함이 터질 거라 예상했던 선수들은 너무나도 편안한 목소리에 홀리듯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라.”

무슨 소리냐는 의문도 들었지만, 선수들은 묵묵하게 소하의 부탁에 따랐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의 혼탁한 절규밖에 들렸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관중들의 소음이었다.

“….”

조금 더 귀를 기울여봤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스!”

“포……!”

“할…다!”

“목소…여!”

“…까지!”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익숙한 소리였다.

선수들은 어느새 자책을 잊은 채 최대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자책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그때.

드디어 익숙한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포츠머스! 포츠머스! 포츠머스!”

“포츠머스는 이겨낼 수 있다!”

“할 수 있다! 너희는 해낼 거야!”

“목소리를 높여! 더 높여!”

“외쳐라! 선수들에게 들릴 때까지!”

순간, 선수들은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이 요동치며 울컥했다.

그렇다. 그들은 아직 포기 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그들의 소중한 팬들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머나먼 스페인까지, 없는 살림에도 자신들을 응원하겠다며 날아온 그들만큼은 아직 마음이 꺾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눈을 감고서 고개를 들어라.”

이어서 소하의 다른 부탁이 들려왔다.

선수들은 마찬가지로 홀린 듯이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감은 채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있었으나, 표정은 한결 괜찮아졌다.

소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입술을 뗐다.

“눈을 뜨고 나를 보아라.”

눈을 뜬 선수들은 소하가 보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소하의 모습이 보였다.

3-0이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선수들의 시선이 모이자 소하는 시를 읊듯 유려하고 잔잔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피치에 올라갈 모든 선수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포츠머스고, 너희들은 포츠머스를 위해 뛰는 거다. 잊지 마라. 서포터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고개를 떨궈서는 안 된다. 그들의 영웅은 너희니까.”

잠시 숨을 고른 소하는 곧이어 그 어느 때 보다 힘차고 강하게 외쳤다.

“할 수 있다고 믿어라. 우린 해낼 수 있다. 나가서 우리의 꿈을 잡아내라. 가서, 영웅이 될 기회를 잡아라!”

소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설이 끝났다.

좌절 때문에 죽어버린 선수들의 두 눈동자에 부활의 불꽃이 터져나왔다.

이는 마치, 자신의 시체에서 다시금 태어나는 불사조와 같았다.

< 299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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