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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98화 (298/306)

< 298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4)  >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동전 던지기에서 승리한 포츠머스가 킥오프를 시작했고 꽤 좋은 출발이었다.

“음. 동전 던지기에서 이기다니. 시작이 좋은걸? 매우 느낌이 좋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기고 시작했으니 이겼네!”

“맞습니다!”

소하와 밀러는 굉장히 즐거워했다.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원래 이런 중요한 무대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가 크게 신경 쓰이는 법이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포츠머스는 주저 없이 공격을 진행했다.

-뻥!

잠깐 숨을 돌리자마자 이어지는 케빈 도슨의 멋들어진 측면 전환 패스.

왼쪽 후방에서 시작된 유성 같은 긴 패스는 오른쪽 전방의 모하메드 살라에게 정확히 도달했다.

매우 정확하고, 아주 빠른, 굉장히 멋진 킥 능력을 선보인 케빈 도슨!

얼핏 보아도 오늘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역시! 포츠머스의 기둥이자 북해의 빙벽이란 별명을 가진 남자입니다. 이런 무대에서도 한치의 떨림이 없군요.]

[겉모습만 보면 밥을 먹듯이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 오는 선수 같아요.]

포츠머스 측, 해설과 아나운서의 극찬이 이어졌다.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주장의 건재함은 그 무엇보다 든든했으니까.

일단, 케빈 도슨은 건재하다. 그렇다면, 공을 건네받은 모하메드 살라의 컨디션은 어떨까?

-착.

빠르고 묵직했던 케빈 도슨의 패스를 매우 부드럽게 받아냈다.

흡사, 발에 자석이라도 붙여둔 느낌.

보통 선수들의 컨디션은 그날의 첫 번째 터치로 알 수 있었고, 상당히 좋은 신호였다.

[모 살라의 볼 컨트롤은 이미 경지에 올랐네요.]

[부상으로 제법 오래 쉬었는데, 경기 감각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좋아요. 분위기가 좋습니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선수가 모하메드 살라였건만.

오히려 다른 선수들보다 몸이 가벼워 보이자 절로 신이 났다.

[자, 모하메드 살라 뜁니다. 파우지 굴람이 막아서 보지만 속도와 힘으로는 상대가 어렵죠!]

파우지 굴람이 막아서 봤지만, 살라의 질주를 막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내달린 모하메드 살라.

중앙으로 들어갈 것인지,

측면으로 한 번 더 파고들 것인지.

갈림길에 선 그는 왼발 아웃프런트 킥으로 중앙을 향해 공을 내주었다.

파우지 굴람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

제대로 의표를 찌른 선택인지라 모하메드 살라의 패스는 정확히 원하는 곳으로 향했다.

‘기회다.’

패스를 받아낸 선수는 델리 알리.

그는 한 박자 빠른 컷백 덕분에 페널티 에어리어의 왼쪽 중앙 부분에서 좋은 기회를 잡았다.

-툭.

바로 예리한 감아차기를 선보였다.

많은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정확하고 엄청난 회전이 걸린 우아한 중거리 슛이었다.

-휘리리리릭.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델리 알리의 슛은 그대로 골망을 가를 거란 착각마저 들 만큼 우아한 포물선을 그렸다.

하지만, 리버풀에는 리버풀의 수호신, 알리송 베케르가 버티고 있었다.

“흡!”

신음성과 함께 몸을 쭉 늘린 알리송 베케르!

마치, 일본의 유명 만화 속 주인공처럼 몸이 늘어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톡.

기어코 공을 건드렸다.

손으로 쳐내지는 못했지만, 손가락 중에서 가장 긴 중지로 공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걸로 델리 알리의 슛을 막기엔 충분했다.

너무나도 완벽히 계산한 각도였기에, 조금만 궤도를 틀어도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텅!

골대를 강타하고 튕겨 나오는 델리 알리의 회심의 슛.

정말 아쉬운 장면이었지만, 대전이 시작했음을 알리기엔 충분한 장면이었다.

***

멋진 슛과 멋진 슈퍼 세이브를 보여준 포츠머스와 리버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이제는 한 대 얻어맞은 리버풀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줄 차례였다.

아니, 보여줘야만 했다.

이대로 얻어맞기만 한다면 초반의 기선 싸움에서 패배하는 꼴이 아니던가.

기선제압을 당한 팀이 승리하기란 녹록지 않았기에 리버풀은 공격의 고삐를 당겼다.

반격의 시작을 준비하는 리버풀.

당연하게도 공격의 선봉장은 리버풀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성골 유소년 출신,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였다.

오른쪽 풀백임에도 어지간한 미드필더들의 뺨따귀를 후리는 긴 패스를 보유한 초신성!

그의 오른발이 기세에 밀리기 싫어 불을 뿜었다.

-뻐엉.

목표는 왼쪽 측면에서 맹렬하게 오버래핑을 하는 파우지 굴람이다.

모하메드 살라한테 한 대 얻어맞은 게 분했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측면을 내달리는 파우지 굴람.

그는 알렉산더 아놀드의 패스를 받자마자 곧바로 다시금 측면 전환 패스를 시도했다.

-뻐엉.

이번의 목표는 오른쪽 측면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앙투안 그리즈만!

당연하게도 매우 정확하고 강한 패스는 그대로 허공을 갈라 목표지점에 정확히 떨어졌다.

놀라운 빌드업이며, 리버풀의 장기였다.

단 두 번의 패스로 페널티 에어리어의 왼쪽 측면까지 공을 운반하는 실력이라니.

어지간한 미드필더보다 뛰어난 플레이 메이킹 능력을 갖춘 풀백들의 환상적인 호흡이었다.

[적이지만 굉장한 모습입니다. 역시, 리버풀! 풀백들이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놀라운 모습을 여러분들은 실시간으로 보시는 겁니다!]

[대단해요. 이러한 빌드업은 아마 리버풀 말고는 그 어떤 팀도 하지 못하리라 생각해요.]

포츠머스 측, 아나운서와 해설을 맡은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마저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플레이다.

혹자는, 그냥 오른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더 빠르지 않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상대의 압박 수비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위아래로 움직이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오른쪽, 왼쪽, 오른쪽, 그것도 끝에서 끝으로 패스가 이어진다면, 압박 수비의 견고함이 흔들린다.

공의 위치에 따라 대형은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좌우로 흔들리다 보면 결국 수비 대형이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수많은 현대축구의 강팀들이 전환 패스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포츠머스 또한 이러한 공격방식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즈만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드리블에 성공했습니다. 포츠머스, 조심해야 합니다!]

[정말 완벽한 선수예요. 성실함, 기술, 신체적 능력, 지능,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 정말 무섭네요.]

그리즈만도 모하메드 살라처럼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았다.

슛이냐, 패스냐.

모하메드 살라는 패스를 했으니, 그리즈만은 슛하기로 작정했다.

애초에 현 위치 자체가 패스보다는 슛하기 더 좋은 위치였다.

-투확!

그리즈만의 왼발이 불을 뿜었다.

각도가 그리 좋지는 않았으니, 방향은 뻔했다. 그렇기에 이럴 땐 강슛이 제격이었다.

골키퍼의 얼굴을, 정확히는 골키퍼의 얼굴 옆을 노리는 강맹한 슛!

이러한 슛은 골키퍼가 사람인 이상 반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거나 공포를 느껴서 몸이 굳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론 람스데일은 용맹했다.

팀 내에서도 야망이 넘치기로 유명한, 이 선수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흥.”

코웃음을 치며 심드렁하게 그리즈만의 강슛을 머리로 막아버렸다.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과격한 선방이었다.

그만큼 그리즈만의 슛은 손을 쓰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와. 정말 억센 선수입니다. 저걸 그냥 머리로 받아버립니다!]

[저게 바로 우리 팀의 수문장이에요. 장군감이 따로 없죠.]

시원하고 호쾌하게 막아낸 공은 케빈 도슨이 깔끔하게 치워냈다.

이래저래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화끈한 공방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양 팀의 모습이었다.

***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가 없다곤 하지만, 적어도 포츠머스와 리버풀의 경기는 전혀 아니었다.

현 시간은 전반 23분.

단 23분만에 그들은 각각 10개와 12개의 슈팅을 선보였고, 유효슈팅은 각각 6개씩 동률을 이루었다.

거의 1분당 1 슈팅이 나온 격렬한 경기이자, 잘 차고 잘 막았다는 이야기가 쉬지 않고 들려오는, 멋진 명경기였다.

점유율도 51:49로, 포츠머스가 근소하게 앞서긴 했지만 별로 의미가 없는 지표였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입니다. 솔직히 말하죠. 미치겠어요! 언제 골을 넣어도, 언제 골을 헌납할지도 몰라서 똥줄이 탑니다! 그냥 기절했다가 경기가 끝나면 눈을 뜨고 싶습니다.]

포츠머스 측, 아나운서로 특별초빙된 톰 힉스는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포츠머스의 열렬한 서포터인 그로서는 정말 정신이 이상해질 만큼 재미있고도 힘든 경기였다.

[…정말 누가 이길지 모르겠어요. 우열을 가릴 수 없어요. 그냥, 운이 좋은 팀이 이길 거 같네요. 실력으로는 이미 동등해요.]

마찬가지로, 특별초빙된 나단 필립스 해설은 얼굴이 반쪽이 됐다.

평상시에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의심스러웠건만. 이젠 아예 아사 직전에 처한 조난자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서로 가드를 내리고 주먹질만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편히 보겠는가?

이런 경기에서는 자칫하다가 턱에라도 한 대 맞는 순간, 순식간에 끝날지도 몰랐다.

물론, 포츠머스만 힘든 경기는 아니었다. 리버풀을 응원하는 사람들 또한 포츠머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포츠머스, 정말 강합니다. 저 세 명의 공격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심장이 가출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인데요.]

[성소하 감독은 도대체 어떤 괴물을 키워둔 겁니까?!]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만년 약팀이 ‘근본’을 자랑하는 자신들과 맞먹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였다.

다만, 어느 팀도 응원하지 않는 중립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화려한 결승전입니다!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서 이렇게 서로 공격만 해대는 경기가 또 있었나요?]

[아니, 벌써 25분이 지났나요? 시, 시간이 너무 잘 갑니다. 그냥 경기 시간을 300분으로 늘려버리고 싶어요!]

선수들이나, 각 팀의 서포터들에게 잔인한 말을 내뱉을 만큼 무척이나 즐겁게 지냈다.

그간 제법 훌륭한 경기도 많았지만, 단연코 재미만으로서는 이번이 최고였다.

분당 슈팅이 하나라니.

아, 하면 또 슈팅이 이어지고 그걸 막아내면 또 어느새 반대쪽에서 슛하는 기묘한 장면에 축구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정말 화끈했다.

화끈했기에, 외줄 타기를 하는듯한 긴장감이 돋보였고,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경기입니다. 이럴 때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경기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톰 힉스가 나단 필립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나단 필립스는 매우 확고하게 단언했다.

[운이 필요하며, 실수를 줄여야 승리할 수 있어요.]

축구계의 현자답게 옳은 말이었다.

이러한 팽팽한 승부에서의 운은 또 다른 결정적 승리 조건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수도 보통의 실수가 아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웃고 넘어갈 작디작은 실수다.

하지만, 그 작은 실수가 이러한 완벽한 경기에서는 큰 균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상황을 속단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만큼은 확실해요.]

[뭡니까?]

[먼저 실점을 허용한 팀은 무너질 거예요. 확신해요.]

무너지는 팀이 포츠머스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라는 나단 필립스였다.

***

나단 필립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실수, 정말 작은 실수는 포츠머스 쪽에서 나왔다.

전반 28분경.

조던 헨더슨의 힘없는 중거리 슛을 잡아낸 아론 람스데일은 재빠르게 공을 던졌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공을 주는 방식이 문제였다.

그리 멀지 않았던 후벵 디아스에게 오버핸드 스로로 공을 던졌다는 게 문제였다.

평상시처럼 언더핸드 스로로 주거나 발로 줬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상황이었다.

물론, 후벵 디아스라는 최고급 수비수에게 위든 아래든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상대에게는 최전방 수비수라고 불리는 가짜 9번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후벵 디아스는 조금 당황했다.

그와 동시에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지척까지 다가왔음을 눈치챘다.

밭 밑으로 향하는 공이었다면 문제가 없었다.

그냥 다시 뒤로 주거나 곧바로 다른 쪽에 패스를 건넸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다만 높지도, 낮지도 않게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공중볼은 처리하기 애매했다.

머리로 처리하기에도,

발로 처리하기에도,

그렇다고 가슴으로 처리하기에도.

너무나도 애매했지만, 그런데도 후벵 디아스는 최고의 답을 찾아냈다.

‘일단 몸으로 공을 막자.’

최적의 판단이었고, 후벵 디아스는 곧바로 공을 품듯 막아섰다.

100점 만점의 100점짜리 답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말했듯이,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존재였다.

그는 공격수임에도 유달리 공을 잘 빼앗는 재능을 가진 별종이지 않던가.

어떻게 공을 빼앗을지는 공격수 중에서 최고였고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슬쩍.

참으로 교묘하게, 심판이 공격자 반칙을 불기 망설일 만큼 후벵 디아스를 밀쳤다.

심판 100명 중 51명은 그냥 넘어가고, 49명은 호루라기를 불었을 그런 교묘한 움직임이었다.

휘청.

덕분에 공을 가로막은 후벵 디아스의 균형이 무너졌다.

‘기회다.’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무너진 균형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미꾸라지처럼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받아냈다.

[대실수! 대실수가 나왔습니다! 위기에요! 포츠머스!]

[아니, 이건…. 이건…!]

톰 힉스와 나단 필립스의 절규를 뒤로 한 채,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골대 앞까지 달려갔다.

골키퍼 일대일 기회!

골 결정력이 좋지 않다고는 하나, 이런 기회에서 날려 먹을 만큼 어리석은 선수도 아니었다.

-철썩.

리버풀의 선제골.

단단했던 포츠머스가 흔들리게 되는 계기였다.

< 298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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