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3) >
경기 시작 1시간 전.
포츠머스의 감독 소하와 리버풀의 감독 위르겐 클롭 감독은 모두가 고대하던 선발 명단을 공개했다.
먼저, 포츠머스는,
[GK: 아론 람스데일.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후벵 디아스.
RB: 아슈라프 하키미.
DM: 데클렌 라이스.
MC: 칼빈 필립스.
MC: 델리 알리.
LW: 조쉬 킹.
RW: 모하메드 살라.
ST: 에링 홀란드.]
중요한 경기마다 주저 없이 꺼내 들었던 주전선수를 건실하게 동원했다.
그래도 사실 소하는 딱 한자리에서 많이 고민하긴 했다.
칼빈 필립스와 도봉산.
이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갈림길에서 소하는 조금 더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면을 선택했다.
리버풀이란 공격적인 팀을 맞이해 도봉산-델리 알리는 너무나도 공격적이라 수비적으로 불안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국 가장 익숙한 명단을 공개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도봉산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일은 일이었으니까.
“감독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오냐. 언제든 경기에 투입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어라.”
실망스러울 법한 결정이었음에도 도봉산은 의젓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애초에 소하가 없었으면 챔피언스 리그란 무대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터.
더군다나 첫 번째 옵션이란 점은 명확했기에 사기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여튼, 늘 보여주던 모습으로 준비한 포츠머스의 성향은 언제나 공격적이었다.
조쉬 킹.
에링 홀란드.
모하메드 살라.
세계급 포워드가 하나도 아닌 셋이나 존재하는 만큼 쉴 새 없이 상대방의 진영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공격 시에는 최후방 수비수 두 명을 제외한 8명 모두가 중앙선을 넘어 공격을 가담한다.
때로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두가 공격에 가담하기도 하는 공격에 미친 팀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팀의 형식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포츠머스의 강함은 위대한 공격진의 힘을 보여주지만, 그 뒤를 받쳐주는 중앙수비수와 골키퍼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보여준다.”
한 전문가의 말처럼 포츠머스의 진정한 강함은 이렇게 공격적으로 해도 수비에 강하다는 점이었다.
17경기 무실점, 프리미어 리그 신기록 달성!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공수가 완벽한 팀이라는 평가가 딱 들어맞는 최강의 팀이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리버풀의 위용도 전혀 밀리지 않는 강함을 과시했다.
[GK: 알리송 베케르.
LB: 파우지 굴람.
CB: 버질 반 다이크.
CB: 조엘 마팁.
RB: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
DM: 파비뉴.
MC: 바이날둠.
MC: 조던 핸더슨.
LW: 사디오 마네.
RW: 앙투안 그리즈만.
ST: 호베르투 피르미누.]
세계최강의 팀을 가리는 자리에 올라온 팀답게 막강한 선발을 선보였다.
‘피그마’라고 불리는 공격진의 아름다운 하모니와 엄청난 활동량으로 중원을 받쳐주는 미드필더진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여기에 더해서 세르히오 라모스와 더불어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가 이끄는 수비진까지.
심지어 골문까지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알리송 베케르 골키퍼가 지킨다.
18-19, 현 시즌에서 포츠머스와 맞먹을만한 팀은 리버풀밖에 없다는 말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바뀌기 전의 미래와 큰 차이는 없는 위용이었지만, 역시나, 앙투안 그리즈만과 파우지 굴람이 눈에 띈다.
앙투안 그리즈만은 소하가 모하메드 살라를 훔쳐 간 반동으로 온 괴물이었고, 파우지 굴람도 마찬가지였다.
파우지 굴람.
전 나폴리 소속 왼쪽 풀백으로서 대단히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선수다.
“다만, 절정의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부상이 발생해서 선수 인생이 망가진 경우지.”
월드 클래스에 근접했다는 평을 받을 때마다 다쳤다.
그것도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이 연이어.
그래서 소리도 없이 사라진 선수였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예외였다.
소하가 앤디 로버트슨을 미리 빼내 간 덕분인지, 그는 매우 건강하게 리버풀로 이적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세리에A를 씹어먹었던 그 파우지 굴람에서 더 성장한 상태로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린다는 뜻이다.
188cm의 장신.
빠른 속도.
경기당 1회 이상의 결정적 패스를 기록할 정도의 훌륭한 킥 능력.
긴 스로인 특기 보유자.
매우 뛰어난 축구 지능.
잘라 말해, 앤디 로버트슨보다 뛰어난 선수였다. 약점이 전혀 없는 완벽한 풀백이다.
덕분에 이 선수가 리버풀로 이적하는 모습을 본 소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더러워서 리버풀 선수는 그냥 내버려 둔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괜히 소하가 리버풀 소속 예정자에게 관심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하여튼, 이토록 강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리버풀 또한 기초적인 전술은 포츠머스와 비슷했다.
아니, 정확히는 포츠머스가 리버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소하, 본인이 위르겐 클롭 감독의 전술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
언제나 공격적이며 후방 수비수를 제외한 모두가 공격에 참여한다.
양쪽 풀백의 쉴 새 없는 오버래핑을 통한 측면공격은 포츠머스와 맞먹는 수준이다.
다만,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양 팀은 결정적으로 두 가지 부분이 달랐다.
일단 포츠머스의 원톱은 에링 홀란드였고 리버풀의 원톱은 호베르투 피르미누라는 점이다.
진짜 9번의 정점과 가짜 9번의 정점.
이 차이는 공격 시 움직임에 차별점을 가져다주었다.
에링 홀란드가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전진하면서 양쪽 윙포워드들에 자유를 선물했다면,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최전방 수비수’라는 별명답게 전방에서 적극적인 압박을 선보였고 미드필더진과 연계를 위해 내려오며 양쪽 윙포워드들에 공간을 선물했다.
이러한 전혀 다른 특기 때문에 양 팀의 미드필더진 조합 또한 달라졌다.
포츠머스는 공격진과 미드필더 진의 연결을 위해 델리 알리라는 공격력이 좋은 미드필더를 기용했으며,
리버풀은 피르미누가 그 역할을 대신했기에 좀 더 균형 잡힌 선수들로 중원을 구성했다.
즉, 포츠머스가 조금 더 공격적이었지만, 중원의 균형 자체는 리버풀이 앞선다는 이야기였다.
이래저래 서로 비슷해 보여도 상당히 다른 두 팀. 그야말로, 챔피언스 리그라는 결승전에 어울리는 팀들이었다.
***
“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이매진 드래곤스가 등장하자 시비타스 메트로폴리타노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매진 드래곤스.
대한민국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높은 그들은 매우 열렬한 모습으로 ‘Believer, Thunder, Radioactive, On top of the world’를 줄여서 열창했다.
음악의 분위기는 단연코 모두가 기대하는 결승전에 매우 어울려, 경기장을 찾은 모든 이들을 흥분케 했다.
종종 어울리지도 않은 무대를 선보이는 음악가들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트집 잡을 틈이 없었을 정도다.
그렇게, 이매진 드래곤스의 열정적인 무대가 끝나자 들떴던 경기장에는 슬슬 긴장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 경기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30여 분. 그렇다. 이제 곧 선수들이 등장할 시간이 다가왔다.
잉글랜드에서 스페인까지 먼 길을 찾아온 각 팀의 서포터들은 물론, 즐기러 온 현지인조차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렇게 긴장과 기대가 공존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질식할 때쯤.
어느덧 공연 때문에 난잡했던 경기장은 모조리 청소되었고, 드디어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챔피언스 리그를 상징하는 축구공 모양의 거대한 원형 깃발!
그와 함께 선수들의 출입문에서 카펫이 깔렸고, 거대한 두 개의 손잡이를 자랑하는 트로피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빅이어!
The Big Ears Cup.
공식 명칭은 Coupes des Clubes Champions Européens!
모든 축구 선수가 월드컵 우승컵 다음으로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위대한 우승컵의 등장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경기장을 찾은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빅이어를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물이 고였다.
“아…. 실감 난다….”
“우리가 진짜 여기까지 왔구나….”
“저게 빅이어구나….”
아직 경기는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그들은 그냥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대로 죽기엔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빅이어를 들고 환호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후우.”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자, 이제는 흥분이 가슴 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원형 깃발과 빅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은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제 선수들이 입장하는구나…!”
그렇다.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위대한 결승전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이 등장할 시간이었다.
***
입장하기 전, 포츠머스의 라커룸 안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긴장과 흥분을 몸속에 갈무리한 선수들은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는 이매진 드래곤스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한 번, 또 한 번. 계속해서 마음을 갈고닦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뿐.
요컨대 그들은 한 자루의 칼이었다.
장인이 수십, 수백 시간을 갈고닦은 예리한 한 자루의 명검이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라커룸 안을 가득 채웠다. 평범한 사람이 이 장소에 실수로라도 들어온다면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도망갈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다.
“흐음.”
이 안에 드디어 소하가 등장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말끔한 정장을 쫙 빼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손질한 모습은 그 소하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다들 준비됐냐?”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예기가 난무하는 공간에서도 소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건들건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소하의 목소리는 마법처럼 선수들의 무장을 해체했다.
“그럼요.”
“쫄았냐고 묻지 마세요. 이미 완벽하게 정신력을 끌어올렸으니까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저 또한 감독님처럼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입니다.”
“몸이 근질근질한대요?”
씨익 웃으면서 대답하는 선수들.
물론, 약간의 긴장감은 보였다.
단 한 번도, 단 한 명도 이러한 큰 무대에 서본 적이 없는 초짜들이었으니까.
그러나 큰 경기를 앞두고 약간의 긴장감은 오히려 이득이었기에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곧 시작이다.”
소하가 시작을 입에 담았고, 선수들은 귀를 기울였다.
평상시라면 경기전에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소하다.
보통,
‘이겨라.’
‘죽여라.’
‘골을 많이 넣어라.’
‘지면 훈련 200배.’
등등. 짧지만 강렬한 말을 건네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언가 연설을 펼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보통 무대도 아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지 않은가.
당연한 예상이었지만 여지없이, 아쉽게도 잘못된 예감이었다.
“가서 죽이고 와라.”
이번에도 여지없이 등장한 소하 특유의 라커룸 대화!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선수들에게는 분명, 그 어떤 말보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을 것이었다.
***
‘아…!’
주장인 케빈 도슨은 자신의 앞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기다리는 빅이어의 모습에 감탄성을 내질렀다.
화면으로만 보던 저 위대한 트로피를 실제로 본다는 감상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래. 가지고 싶었다.
욕심이 별로 없다고 자부했지만, 자제심 따위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탐이 난다.’
그간 말로는 저 트로피를 원한다고 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들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소유욕이 흘러넘쳤다.
‘어떻게든 승리한다.’
보면 볼수록 탐이 났기에,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옆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빅이어에 시선을 고정한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의 열기도 느껴졌다.
‘조던, 당신 좋은 사람이지만, 이건 양보할 수 없겠군요.’
대표팀에서 만난 후, 제법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건만.
친분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조던 헨더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엔 먼저 알은 채를 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지금은 빅이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잠시간 빅이어를 바라보던 케빈 도슨. 어느덧, 그의 귀에는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일어설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음악이 들려왔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선율.
산뜻하면서도 장엄하고 웅장한 선율.
절로 가슴을 울리는 첼로 소리였다.
그리고,
“입장해주십시오.”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케빈 도슨은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그토록 동경하던 노랫소리가 가슴에 꽂혔다.
[Ce sont les meilleures équipes,
Es sind die allerbesten Mannschaften
The main event.
Die Meister,
Die Besten,
Les grandes équipes,
The champions.
Une grande réunion,]
[저들은 최고의 팀이다.
그들은 진정 최고의 팀들,
가장 중요한 이벤트.
장인들,
최고들,
위대한 팀들,
챔피언들.
위대한 화합.]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가 섞인 챔피언스 리그의 주제곡, Ligue Des Champions였다.
절로 투지를 불사르게 만드는 노랫소리에 케빈 도슨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난 해낸다.”
나를 위해서.
동료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누구보다 존경하는 그의 보스를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불태우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순간이었다.
< 297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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