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96화 (296/306)

< 296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2) >

이베리아반도의 오래된 나라, 스페인.

원래도 축구와 축제의 나라였지만 그 수도 마드리드는 축구의 축제가 열렸다.

18-19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유럽 최강팀을 가리는 경기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 시비타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비록 자국팀이 결승전 무대를 수놓지는 못했지만, 68,000석의 좌석은 모든 자리가 매진!

엄청난 축구 열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드리드 공항에 그들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잉글랜드의 4부리그에서 6년 만에 세계최강의 자리를 노리는 팀.

바로, 포츠머스 FC가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것이었다.

“왔다!”

전용기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온 푸른색 저지를 뽐내는 포츠머스 선수와 스텝의 등장한 공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쉬 킹이야! 이번년도의 발롱도르에 가장 근접했다는 초신성!”

“델리 알리도 있어!”

“저게 바로…. 에링 홀란드인가…?”

“북해의 빙벽, 주장의 귀감! 케빈 도슨이 내뿜는 아우라 좀 봐봐.”

“이것이 바로 동화의 주인공들인가….”

스페인 쪽 기자들과 포츠머스의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잉글랜드를 넘어 바다와 대륙을 가로지른 포츠머스의 위명은 대단했다.

아니, 다른 나라였기에 그 명성은 더더욱 뛰어올랐음이 분명했다.

자고로 소문은 거리에 비례해 부풀어 오르는 법이었으니까.

“앗! 나온다! 맨 마지막에 드디어 성소하 감독이 나왔다!”

“이 시대 최고의 감독!”

“동화책 작가!”

“마술사다!”

“희대의 유소년 육성가!”

선수들이 다 빠져나온 뒤, 마지막으로 소하가 등장하자 함성은 더더욱 커졌다.

성소하, 비선출 감독으로선 그 누구도 비교가 불허한 불세출의 감독!

독특한 언행과 그에 비례하는 뛰어난 실적 덕분에 그의 인기는 어지간한 선수를 발라먹을 정도를 자랑했다.

“Hola! Buenas tardes!”

호응에 맞춰 손을 번쩍 치켜들고 스페인어로 인사를 외치는 소하.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웠던 포츠머스의 입국은 더더욱 뜨거워졌다.

“바로 저것이군요.”

이를 지켜보던 스페인 측 기자들은 감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감독이라 하면, 선수들 때문에 위엄을 유지하기에 바쁘죠. 카리스마가 없는 감독 따위,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성소하 감독은 자신을 광대라 자칭하며 쇼맨십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달리 말하면 체면 같은 건 내다 던졌다는 이야기죠.”

“그런데도 선수들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아요. 저 젊은 청년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감독일지도 모르겠군요. 부럽군요.”

잘라 말해, 부러웠다.

저 성소하라는 감독을 배출한 잉글랜드가 매우 부러웠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축구의 열기는 점점 식어가는 판이다.

축구를 시청하는 평균 연령은 나날이 높아졌고,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저런 상업성 높은 젊은 감독은 축구 자체의 구명줄과 다름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축구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소하와 포츠머스의 비상은 원래도 앞서나가던 프리미어 리그의 인기를 넘보기 힘든 최강의 자리로 올려뒀다.

그야말로, 스페인 축구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부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참으로 이상하군요.”

감독이란 굉장히 보수적인 직업이었거늘. 어떻게 스페인 보다 훨씬 꽉 막힌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저런 별종이 나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어려웠다.

“운이겠죠….”

아쉬운 한숨을 내뱉는 한 기자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

소하와 포츠머스가 머물 호텔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장 근처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측에서 훈련장을 무료로 빌려줬기에, 소하는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역시 근본 있는 팀이야.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진 기억 때문에 우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욱 환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기야, 자신들을 이긴 포츠머스가 유럽 챔피언에 오른다면, 명예로운 죽음으로 포장할 수 있지 않던가.

일개 신흥팀에게 진 게 아니라, 최강팀에 졌다는 자기 위안이 가능했다.

“자, 그럼 너희들은 훈련장에서 가볍게 몸이나 풀어라. 난 기자회견이나 하고 올 테니까.”

“넵.”

소하는 짐을 풀기 무섭게 바로 다음 일정에 참가했다.

‘인기남의 삶이란. 피곤하구만.’

배부른 생각을 잔뜩 하며 기자회견장에 도착하자 인산인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직업도 오래 할 게 못 돼.’

조금 전까지는 의기양양했건만.

이제는 은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단상의 자리에 앉자 본격적인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로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당연한 일을 해치운 느낌이었습니다.”

“네?”

“우리가 최강의 팀이니 잉글랜드 무대를 정벌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는 이야기죠.”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폭발한 소하의 대답에 기자회견장은 난리가 났다.

“역시. 캐릭터 한번 좋아.”

“이런 기자회견장에서 저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감독이 몇이나 있을까.”

“오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네.”

겸손과 예절을 지치는 판에서 나타난 이단아는 굉장히 새로웠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십니다. 그래도, 포츠머스 같은 약소구단을 이 정도까지 키우기 위해선 고난도 많으셨을 텐데요?”

“물론, 산 넘어 산이었죠. 힘들었으며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성공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저를 비롯해 모두가 말이죠. 이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강해진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의 뒤에 피나는 노력이 있다는 점은 종종 망각하기도 하죠.”

“바로 그거에요. 그렇기에 우리는 당당히 강자임을 자랑할 수 있는 거죠.”

소하의 말이 끝나자 떠들썩했던 기자회견장은 잠시나마 엄숙해졌다.

엄청난 성공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노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4부리그 팀이 이 자리에 오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범인들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저 질식사할 것만 같은 압박감과 피나는 노력이 있을 거라 어렴풋이 떠올렸을 뿐.

그 누구도 포츠머스의 지난 세월을 완벽히 동감하진 못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다른 기자가 질문의 화두를 바꿨다.

“아주 좋습니다. 참으로 운이 좋아요. 마드리드와 포츠머스의 시차는 겨우 1시간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해요.”

“더군다나 날씨도 좋지 않습니까?”

“맞아요. 정말 날씨가 좋네요. 대부분 우중충한 잉글랜드의 하늘 아래에서 살다 왔더니 마치 천국이라도 온 듯한 기분이네요.”

“하하하!”

소하도 사뭇 숙연해진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담을 했다.

물론, 효과는 굉장히 좋았다.

날씨야말로 스페인이 자랑하는 것들 중 하나 아니던가.

이점을 정확히 꼬집어서 칭찬해주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덤으로 소하를 냉정한 눈빛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호응을 자아내기도 했다.

‘미디어 핸들링이 극한에 다다랐군.’

‘정말 뛰어난 감독이야.’

‘감독을 하지 않았으면 사기꾼으로도 대성했을 말재간이군.’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관록을 보여주는 건지 이해가 어려워.’

까면 깔수록 정말 뛰어난 인재였기에 점점 더 배알이 꼴렸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날카롭게 해서 실수를 유도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경기로 인해 라리가의 시대가 끝나고 프리미어 리그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감독님께서도 이에 동의하십니까?”

제법 예리한 질문이었다.

만약 조금 전처럼 자신만만하게 프리미어 리그가 최고라고 호언장담한다면 호의적인 분위기도 꺾일 터.

그렇다고 프리미어 리그가 최고가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애매했다.

‘훗. 풋내나는 질문이군.’

다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소하라면 남의 선의에는 민감하지 않아도 악의에는 누구보다 예민한 남자.

순식간에 의도를 파악하고 모범 대답을 내놓았다.

“리그마다 자기들만의 색이 있긴 하지만, 현대 축구는 각자의 장점을 모조리 흡수한 축구죠. 따라서, 프리미어 리그 팀들이 모두 결승전에 올라온 건 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의 축구의 장점을 흡수한 덕분입니다.”

“….”

“게다가, 프리미어 리그 팀들이 강해졌다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언제라도 빅이어를 들어 올릴 만한 저력을 갖춘 팀이죠. 결국 이번 시즌의 흐름이 프리미어 리그에 흘렀을 뿐. 다음 시즌은 또 다를 겁니다.”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대답에 질문을 던진 사람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강함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화법은 예로부터 만병통치약이었다.

이렇듯 스페인 측의 매콤한 질문마저 잘 넘겨주던 소하.

하지만, 그로서도 잘 넘기기 힘든 질문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제 동화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을 꺾어야 합니다.”

“….”

“리버풀과의 상대 전적이 매우 열세인 상황에서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실 겁니까?”

일부러 소하를 긁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그냥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리버풀이 상대라면.

그리고 소하 또한 굉장히 신경을 쓰는 관계였다.

1승 2무 4패.

완벽한 열세였으며 지금은 잊었다곤 하나, ‘무패 우승’을 훼방 놓았다.

또한, 쉬워 보였던 프리미어 리그의 우승을 마지막 라운드까지 끌고 가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적자.

리버풀은 포츠머스의 대적자였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이들을 만났다는 건, 신이 내린 최후의 시련임이 분명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리버풀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 대해서 반박할 순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겁니까?”

“싸움은 마지막에 서 있는 쪽이 승리자라는 겁니다.”

대적자? 신의 시련?

모두 다 빌어먹을 만큼 쓸모없는 이야기다.

소하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복수를 위한 무대가 챔피언스 리그라니! 이 얼마나 멋진 상황이란 말인가. 호재였다.

“여기서 선언하죠. 우린 승리할 거고 상대 전적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증명해내겠습니다.”

벌떡 일어서서 열화와 같이 외치는 소하의 모습은, 자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축제의 전야제로서는 완벽한 기자회견이었다.

***

소하의 뜨거운 열기에 감화되었는지,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도 뜨거운 선언을 했다.

“저희 또한 포츠머스를 하나의 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참에 벽을 깨고 정상으로 향할 겁니다.”

사실, 포츠머스가 리버풀을 어려워하듯 리버풀 또한 포츠머스를 어려워했다.

포츠머스만 없었다면.

이번 시즌 바라고 바라며 염원하던 리그 우승은 그들의 차지였을 테니까.

이래저래 리버풀에도 포츠머스는 너무나도 큰 벽이었다.

상대 전적에서 앞서긴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결국 우승컵을 쓸어 담는 팀은 포츠머스였고 리버풀은 무관이었다.

그리고 이 현실은 리버풀로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소하는 위르겐 클롭의 승부욕에 박수를 보냈다.

비록 상대는 더욱 강해지겠지만 심심한 결승전보다는 재미있는 결승이 백배는 좋았다.

하여튼, 양 팀 감독들이 모두 투지를 불사르자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더욱 마음이 들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듯.

-양 팀 다 공격적인 성향의 팀들이라 재미만큼은 보장이지.

-역대급 결승전일지도.

팀의 전력도 얽히기고 설킨 이야기마저도 양보가 없는 두 팀이었기에 흥행은 이미 보장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배팅 사이트의 배당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똑같았다.

포츠머스= 2.

리버풀= 2.

그냥 같았다.

너무 박빙이라 어느 팀에 걸어도 똑같은 배당을 자랑했다.

즉, 누가 이겨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드디어 날이 지나 경기 시간이 점차 다가왔다.

모든 준비를 마친 포츠머스의 선수들 또한 이제 시비타스 메트로폴리타노로 향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럼, 가자. 얘들아.”

“예. 감독님.”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는 소하와 포츠머스의 선수들!

훗날 마드리드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결승전의 시작이었다.

< 296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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