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95화 (295/306)

< 295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1)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 전에 결승전이 열리는 스페인의 마드리드로 떠날 예정이니, 오늘이 포츠머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필승과 필사의 각오로 최후의 훈련을 진행해야 할 마지막 기회.

이 소중한 기회를 두고, 소하는 옹기종기 훈련장에 모인 선수들에게 명했다.

“오늘은 휴가다!”

이미 소하의 비상식에 매우 익숙한 선수들마저도 또다시 버티지 못했다.

“…?”

“…!”

“…?!”

그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뭐라고 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뭐야?”

그러든 말든. 소하는 선수들의 시선을 시원하게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하루 더 훈련한다고 결승전에서 호랑이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푹 쉬고 컨디션 조정이나 해라.”

사실 일주일간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한 선수들이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큰 경기를 앞에 둔 덕분에 본인들은 눈치채진 못했겠지만,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착했을 터.

체력회복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하루 정도는 푹 쉬어주는 것이 좋았다.

물론, 소하가 단순한 휴식만을 요구할 리는 없었다.

“다만, 그냥 쉬면 심심하니까 두 명씩 짝을 지어주겠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이걸 깐부라고 하거든? 오늘 깐부끼리 재미있게 푹 쉬도록.”

“….”

“저녁 6시까지 잘 지내다가 해산해라. 내일 비행기 시간에 늦지 말고.”

“….”

선수들은 혼란에 빠졌다.

쉬라는 소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챔피언스 리그에 등록된 선수는 25명. 그러니까…. 한 명은 혼자다…!’

혼자를 탐내는 선수도 있었으며 꺼리는 선수도 있었다.

“참고로 혼자 남은 친구는 나와 함께 할 예정이니, 영광으로 알도록.”

“….”

마찬가지로, 매우 탐내는 선수도 있었으며 매우 꺼리는 선수도 있었다.

“그럼 발표하겠다.”

소하는 의기양양하게 깐부를 발표했다.

[아론 람스데일. - 페트르 체흐.

앤디 로버트슨. - 알랑 생막시맹.

후벵 디아스. -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아슈라프 하키미. - 잭 해리슨.

데클란 라이스. - 니콜로 바렐라.

칼빈 필립스.- 유리 틸레만스.

델리 알리. - 마이클 반즈.

조쉬 킹.- 로빈 고젠스.

모하메드 살라. - 매튜 다이스.

에링 홀란드. - 마리오 발로텔리.

존 말로리. - 아담 웹스터.

도봉산.- 아다마 트라오레.

케빈 도슨.- 위대한 감독님.]

희비가 교차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선수들은 벌써 무엇을 하고 보낼지를 이야기했다.

반대로 동료가 아닌 인간으로서 서먹한 사이끼리는 어색한 기류가 넘실거렸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저 악마 같은 감독에게 걸리지 않았다는 정도?

케빈 도슨이라면 소하의 추종자라 오히려 선물이었기에 모두가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발표였다.

“그럼 해산!”

소하가 외치자 선수들은 저마다 그룹을 만들어 훈련장을 떠났다.

오직 한 사람, 포츠머스의 주장이며 잉글랜드 국가대표의 핵심 수비수인 케빈 도슨을 제외하고선.

“영광입니다. 감독님. 절 일부러 선택해주시다니.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요즘 나탈리랑 부부관계가 별로니? 왜 이렇게 엉겨 붙어.”

“그야 당연히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부인의 이름이 나오자 눈빛이 조금 흔들렸지만, 케빈 도슨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얼핏 보면 장난 같지만, 뜯어보면 주전과 후보끼리 짝을 지어주셨습니다! 그것도 서로 비슷하거나 호흡을 자주 맞춰야 하는 포지션끼리 말이죠. 즉, 챔피언스 리그를 대비해 각자의 상성을 높이기 위한 책략으로 보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해 교체가 이루어질지 모르니까요.”

“….”

“또한, 저를 일부러 감독님과 함께 묶으신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경기장 안에서의 감독은 바로, 저 아닙니까? 요컨대, 감독님께서는 경기장 안에서의 감독을 맡아줄 저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위함이시겠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 그래. 그, 그런 거지.”

소하는 떨떠름하게 긍정했다.

저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눈빛을 외면하고 대충 주사위를 굴려서 골랐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저희는 무엇을 할 예정이십니까? 경청하겠습니다.”

사부에게 직전 무공을 하사받는 제자의 기개가 솟아올랐다.

이에, 소하는 사악하게 웃으며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고 반문했다.

“후후. 뭐긴 뭐야.”

“…?!”

“뭘 하는지 훔쳐봐야지!”

“흐음…. 과연. 알겠습니다!”

“….”

제멋대로 이해한 케빈 도슨을 보며 소하는 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

첫 번째 목표는 가장 주의할 인물인 조쉬 킹과 로빈 고젠스였다. 그 둘이 향한 곳은 바닷가 근처 공원.

워낙 덩치와 신장이 좋은 이들이라 공원에서 휴식을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중이었다.

“둘의 사이는 어떠냐?”

“동료로서는 괜찮지만, 사적으로는 그리 친하지 않습니다. 일단,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긴.”

저 멀리서도 풍기는 어색한 분위기는 훔쳐보던 소하마저도 어색한 기분이 들게 했다.

“영어도 못 하는 킹이가 독일어를 할 줄 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맞습니다. 감독님. 조쉬가 독일어를 한다면 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가죽을 뒤집어쓴 외계인이 분명하니까요.”

“역시. 주장은 답을 잘 아네. 그나저나 고젠스는 아직도 영어가 어렵데?”

“팀에 적응은 잘했으나…. 언어적인 재능은 전혀 없습니다.”

“쯧.”

소하는 혀를 찼다.

비싸디비싼 속성 영어강좌까지 보내줬건만. 2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복잡한 회화를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시간을 보내는 것 같군요.”

“말보다는 보디랭귀지가 많긴 하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산책이라니. 좋은 선택입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이 걷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법이지요.”

“재수 좋게 얻어걸린 거겠지.”

“음? 감독님. 사람들이 드디어 그들에게 몰려갑니다.”

소하와 케빈 도슨은 사람들이 드디어 용기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하자 바짝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자 조쉬 킹과 로빈 고젠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인?! 오케이. 팍팍 가져오라고! 난 사인을 거부하지 않는 남자다!”

“사인. 어디에?”

잔뜩 인기를 누리는 조쉬 킹의 신난 목소리와 어눌한 로빈 고젠스의 영어가 들렸다.

덕분에 한산했던 공원은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이봐! 내일이면 스페인으로 떠나야 하는 녀석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내, 내 친구들 거까지 해주면 안 될까? 진짜 완전 팬이라고.”

“고젠스, 좀 더 힘내라고. 너라면 앤디 로버트슨을 뛰어넘을 재능이야!”

“아직도 영어 진짜 못하는구나…. 너 인터뷰할 때마다 답답해 죽겠어!”

연예인 뺨치는 인기 폭발이었다.

하기야, 포츠머스시에서만큼은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스보다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꿈을 선사한 동화 속 용사 같은 존재들이었으니까.

“…훗. 참으로 좋습니다.”

잠시, 동료들과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바라보던 케빈 도슨이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뭐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시민들과 저렇게 한데 어울릴 친구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

“또한, 무질서한 것처럼 보여도 선수들에게 질서 있게 다가가며 선을 넘지 않는 포츠머스 시민들의 모습도 좋습니다. 경호원도 없이 편히 다닐 수 있는 이유겠지요.”

“…그래서 네가 이 깡촌을 좋아하는 거겠지.”

“옳은 말씀이십니다. 참으로 좋은 곳이에요.”

주변을 잔잔한 눈빛으로 훑어보는 케빈 도슨은 정말로 이 도시가 사랑스러웠다.

소하도 같은 마음이긴 했지만, 괜히 심술을 부렸다.

“흥. 생선 비린내 안 나는 게 다행이지. 됐다, 그럼 이제 다른 놈들 찾으러 가보자.”

“네! 감독님. 그런데 말입니다….”

“왜?”

소하는 케빈 도슨이 말꼬리를 흐리자 발걸음을 멈췄다.

“꼭 이런 복장을 해야 합니까? 보자기에 검은 선글라스라니…. 오히려 더욱 눈에 띌 거 같습니다만….”

“뭘 모르는군. 이건 말이지….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감독님께서 알려….”

유프 하인케스의 비기라고 설명하려던 찰나. 한 여자아이가 소리쳤다.

“앗! 케빈 도슨이랑 성소하 감독님이다! 엄마! 여기 감독님 있어!”

어찌나 목청이 크던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야 모조리 쏠리기 시작했다.

“…튀, 튀자.”

“가, 감독님?”

“누, 눈치 빠른 꼬맹이는 이래서 싫어. 전생에 간첩이었나?”

“….”

빛살 같은 속도로 순식간에 사라진 그들이었다.

***

다음 타겟은 요주의 인물 중 수위권을 차지한 델리 알리였다.

더군다나 그의 파트너는 마찬가지로 주의할 인물인 마이클 반즈.

굉장히 위험한 조합이다.

조쉬 킹과 로빈 고젠스는 조쉬 킹이 압도적인 폭탄이었을 뿐이지만, 이 조합은 둘 다 폭탄이다.

이를 증명하듯, 알음알음 알아봐서 찾아간 소하와 케빈 도슨이 목격한 그들은 아직도 클럽하우스 앞이었다.

“낚시야말로 최고의 취미라구.”

“얼어 죽을 낚시 같은 소리 하지 마시고 그냥 게임이나 하러 가자니까요. 포트나이트라고 아세요? 이게 전 세계 낚시인보다 많이 하는 취미라고요.”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구. 마음을 조절하는 비약이랄까. 아마 감독님도 이걸 원하셨기에 너와 나를 짝지어준 거야.”

“아니죠. 선배가 너무 낚시만 하니까 이참에 다른 취미를 가져보라고 묶어주신 거겠죠!”

해산한지 한 시간이 넘었거늘.

아직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두 마니아를 두고서 소하는 짧게 평가했다.

“지랄 났네.”

“…거친 언행이시지만 동감합니다.”

게임 마니아와 낚시 마니아.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언쟁은 계속 진행되었다.

“모처럼 쉬는 날 낚시라니요! 만약 바늘에 찔려서 다치면요!”

“걱정하지 마. 낚시 마스터가 있는데 다치기야 하겠니? 이참에 따스한 햇볕이나 맞으면서 태닝이라도 하자구.”

“뭐, 뭐라고요? 지금 그거 인종 차별성 발언이죠!”

“인종차별은 네가 한 거겠지. 흑인도 태닝을 한다구.”

견해차가 좁혀질 생각조차 없이 먼 산으로 가자, 케빈 도슨이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후우. 안 되겠군요. 주장으로서 중재를 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소하는 얼굴 가득 썩은 미소를 짓고선 말렸다.

“아냐. 참아. 난 저 녀석들을 믿어.”

“…그, 그렇습니까?”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 얼굴인지라 소하바라기인 그 케빈 도슨마저도 머뭇거렸다.

소하의 말에는 절대복종했지만, 이번만큼은 어려웠다.

만약 저 둘의 사이가 진짜로 나빠진다면? 큰일을 앞둔 상황에서 팀 결속력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격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주장의 책임감이 경종을 울렸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소하의 말을 어기려고 했지만, 마침 둘의 논쟁은 극적인 합의점을 맞이했다.

“잠깐만요. 선배.”

“왜? 무슨 미끼 쓸지 물어보려구?”

“…그건 아니고요. 일단 정리해보죠. 선배는 낚시를 하고 싶고 전 게임을 하고 싶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지.”

“그러면 낚시게임이나 할까요? 얼마 전에 신작 나온 거 사두긴 했거든요. 전 발매하는 게임은 하지 않아도 사두는 편이라….”

참으로 돈을 막 쓰는 델리 알리였다.

하지만, 그의 연봉에 비하면 평범한 회사원이 껌 하나 사는 정도였을 뿐이다.

하여튼, 델리 알리의 타개책은 매우 효과가 좋았다.

“낚시…게임? 그런 것도 있어?”

“엄청 현실적이라던데요. 초보에게는 어렵겠지만, 뭐, 현실의 낚시왕인 선배가 있으니까 해볼 만하겠죠.”

“좋아. 아주 좋아. 자, 그럼 가자. 근데 어디로 가야 해?”

“우리 집이요. 게임방 만들어놨으니까. 따라와요.”

“아주 좋아…! 게임 낚시라니! 아직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낚시…. 후후후.”

그답지 않게 광소를 터뜨리는 마이클 반즈는 재빨리 델리 알리가 모는 차의 뒤를 따라 운전하기 시작했다.

“어때?”

“극적인 타결이군요…. 마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정상회담 같았습니다.”

“…뭐, 비유가 좀 그렇지만, 아무튼 잘 됐지. 저 둘은 고집이 더럽게 세도 결국 타인을 위해 양보하는 선량한 마음을 가진 애들이니까.”

“과연, 또 하나 배워갑니다.”

소하에 대한 믿음이 더더욱 깊어지는 케빈 도슨이었다.

***

이렇듯 소하와 케빈 도슨은 포츠머스 전역을 누비며 선수들을 훔쳐봤다.

아다마 트라오레의 팔 힘에 붙들려 헬스장으로 끌려가는 도봉산.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이슬람 사원에 방문하는 매튜 다이스.

함께 도시를 누비며 ‘미남 형제’라는 이름으로 SNS에 사진을 마구 올리는 에링 홀란드와 마리오 발로텔리.

촌뜨기 같은 앤디 로버트슨을 꾸며주겠다며 명품가게로 끌고 간 알랑 생막시맹.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화관에서 영화만 본 데클란 라이스와 니콜로 바렐라.

등등. 각자 그들의 만의 방식으로 최후의 날을 즐겼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게 퍼졌던 긴장감 대신 편안한 웃음이 걸렸다.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이라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해방된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과연. 이런 뜻이셨군요.”

다시금 해안 공원으로 돌아와 석양을 바라보는 케빈 도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쫄아 있더라고.”

“그렇다면 동료들의 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는 기둥이니까.”

“….”

“힘들 때마다 저 녀석들을 떠올려라. 그럼 넌 버틸 수가 있을 거다. 그리고 네가 버티면 저 녀석들도 무너지지 않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케빈 도슨은 각오를 불태웠다.

분명 힘든 경기가 될 거다.

그렇기에 무너질지도 몰랐다.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한 케빈 도슨도 자신이 무너지는 상상을 할 때마다 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저들의 미소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는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요즘 진짜 냇이랑 사이가 별로야?”

제법 묵직한 분위기를 잡았건만.

소하는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분위기를 깨버렸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큼큼.”

“날 우습게 보지 말라고. 아까 흔들리는 눈빛을 그냥 지나칠 거라고 생각했어?”

“차, 착각이십니다.”

“왜, 요즘 아침 텐트가 잘 안쳐져? 하긴 너도 이제 30대니까.”

“아, 아닙니다…!”

“쯧쯧. 걱정하지 마라. 이 몸이 누구냐. 정력에 환장하는 대한민국의 건아 아니겠냐? 인삼주라도 하나 챙겨올게. 이게 죽일 거….”

청산유수처럼 떠벌리던 소하의 주둥이가 멈추어 섰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등 뒤를 사정없이 찌르는 굉장한 살기는 절로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꿀꺽, 마른침을 내 삼킨 소하가 간신히 등 뒤를 바라보자,

“호호호호. 연락이 끊겨서 찾아봤는데,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나탈리 도슨, 케빈 도슨의 부인이자 소하의 친구가 살기 어린 미소로 반겨주었다.

“여, 여긴 어떻게….”

“SNS에 실시간으로 감독님과 못난 남편의 위치가 나오더라고요. 호호.”

“….”

“….”

케빈 도슨은 눈을 질끈 감았고 소하는 어떻게 하면 도망칠지 미친 듯이 사고를 가속했다.

하지만 이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나탈리 도슨은 웃음을 터뜨리며 화를 풀었다.

“뭘 그렇게 굳어있어요? 온종일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을 텐데, 오늘은 제가 저녁을 대접할게요.”

“그럼 고맙고….”

“당신도 빨리 오시죠? 그리고 스마트폰은…. 연락이 오면 대답하라고 존재하는 기계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말해드릴게요.”

“…알겠어.”

그 당당하던 포츠머스의 주장은 사라진 채, 결혼 10년 차의 유부남만 남았다.

그렇게, 나름대로 원만하게 사건이 해결됐다고 생각했을 찰나.

나탈리 도슨이 소하를 따로 붙잡았다.

조금 전의 무례한 발언에 대해선 추궁을 하려는 걸까?

“왜…. 왜요….”

하지만, 지레 겁먹어 안절부절못하는 소하에게 그녀는 감사가 담긴 포옹을 선물했다.

“고마워요. 친구로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정말로 여기까지 왔군요.”

부드러운 그녀의 포옹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새어 나왔다.

“뭐, 뭘. 당연한걸. 가지고….”

괜히 멋쩍어진 소하.

다만, 훈훈한 장면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그 인삼주? 그거 잊지 않고 있을게요. 한 달 내로. 알죠?”

“…그럼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소하는, 내일 스페인으로 날아오실 어머니에게 서둘러 인삼주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 295화. 동화의 끝은 신화로. (1) > 끝

ⓒ 블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