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그 끝에 서서. (7) >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한 포츠머스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포츠머스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라니!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우승이 아닐까?
-기적 그 자체야.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 팀이 한 시즌 반짝하고 사라질 팀이 아니라는 거야. 그야말로 메마른 황야에서 제국을 세운 거라고.
축구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동화 같은 우승이 제법 많았다.
블랙번과 레스터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라던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구도에서 10년 만에 우승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던지,
창단 첫 우승을 달성한 독일의 볼프스부르크 같은 일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이들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처럼 기초 기반이 단단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여타 다른 팀들처럼 한번 우승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포츠머스는 모든 대회를 섭렵하면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은 팀 자체가 한 시즌 타올랐다가 꺼질 수준이 아니라는 증거다.”
한 전문가의 말처럼, 행운의 우승 따위가 아니었다. 포츠머스는 그냥 순전히 체급으로 우승했다.
단 6년 만에 소위 빅6라고 불리는 거대한 왕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위대한 업적이었고, 괜히 축구계가 놀라 자지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모두가 기절초풍한 프리미어 리그의 18-19시즌은 포츠머스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25승 12무 1패, 승점, 87점.]
승점 90점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매우 훌륭한 시즌 성적이었다.
우승팀에 걸맞은 성적임에는 분명하다.
비록 리버풀에게 패배하며 ‘무패 우승’까진 달성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단순히 성적표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득점과 실점도 상당히 뛰어났다.
총 득점, 109골.
총 실점, 34실점.
경기당 2.86골을 넣으면서도 경기당 실점은 0.89골을 달성했다.
실점이 조금 많기는 했으나, 포츠머스의 상식을 뛰어넘는 공격적인 모습을 고려한다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무실점 경기가 절반에 가까운 17경기였으니, 나머지 21경기에서 난타전을 펼쳤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프리미어 리그 한 시즌 최다 무실점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4경기 무실점이다.
요컨대, 수비적으로도 대단한 실력을 뽐냈던 시즌이었다.
수비도 잘하고 공격도 화끈하게 하는 포츠머스의 스타일은 여러모로 호평을 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포츠머스의 축구는 재밌어. 온종일 주먹질을 하니까.
-괜히 응원하는 팀이 아닌데도 경기를 시청하는 팀, 1위에 뽑힌 게 아니지.
-포츠머스의 급성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경기는 빼놓을 수 없지.
소하의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응원하는 팀이 아님에도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재미있는 축구라니.
이것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정수가 아닐까?
항상 관객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하는 소하의 정신이 드러나는 평가였다.
더불어 미친 듯이 늘어나는 구단의 수입은 헛고생이 아님을 증명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결국 광대는 재미가 있어야지 돈을 번다니까?”
괜히 포츠머스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게 아닌 소하였다.
이래저래 구단으로서 최고의 시즌이었고 따라서 선수들 또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먼저, 득점왕이란 왕좌에 조쉬 킹이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35경기 출장, 35골.
프리미어 리그의 한 시즌 최다 득점을 갱신했다.
전설적인 공격수, 앨런 시어러와 앤디 콜이 달성한 마의 34골을 돌파했다.
놀라운 기록이었다.
앨런 시어러와 앤디 콜이 34골을 달성했을 때의 프리미어 리그는 22개 팀, 42경기였기 때문이다.
즉, 4경기나 적은 상황에서 기록을 깨버린 거다.
심지어 당시 앨런 시어러와 앤디 콜은 각각 42경기와 40경기를 뛰었다.
이에 반해 조쉬 킹은 고작 35경기를 뛰었고 이 중에서 교체는 3경기나 되었다.
32경기밖에 선발로 뛰지 않았음에도 35골을 때려 넣다니.
상당히 오랫동안 깨지질 않을 위대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업을 달성한 조쉬 킹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응? 득점왕 소감이요? 제가 몇 골 넣었죠? 아, 35골이요? 뭐야, 겨우 그 정도로 득점왕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음화화홧. 프리미어 리그는 별거 아니네요.”
“….”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단도.
이를 바라보던 모든 축구팬들도.
전부 어이가 없어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쉬 킹은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전 말이죠! 리오넬 메시 선수가 달성했던 한 시즌, 리그 50골을 달성하고야 말 거예요. 35골 따위. 15골이나 뒤처지잖아요? 축하받기엔 부끄럽죠. 축하는 50골을 달성했을 때 해주세요.”
“오…!”
모두가 만족할만한 완벽한 대답이었다.
기자들은 먼저,
[조쉬 킹은 목표는 리오넬 메시.]
[리오넬 메시에게 도전장을 건넨 잉글랜드의 스타, 조쉬 킹!]
[조쉬 킹, ‘난 리오넬 메시 급’]
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쓸 훌륭한 소재를 얻어서 기뻐했다.
그리고 조쉬 킹의 팬들은,
-역시 조쉬 킹. 야망 봐라.
-내가 이 맛에 조쉬 킹을 빤다.
-하…. 미치겠다. 얜 겨우 24살에 불과하다고!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할까?
좋아하는 선수가 리오넬 메시를 목표로 하자 단체로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리오넬 메시라면 펠레와 마라도나에 버금가는 역대급 선수가 아니던가!
이러한 선수들과 조쉬 킹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래를 생각하자 가슴이 절로 끓어올랐다.
물론, 잉글랜드 축구계도 매우 반겼다.
그간 잉글랜드 축구계는 마이클 오언 이후로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축구종가’로서 체면이 와락 구겨지는 일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배출하지 못하는 축구 종가? 마치 원조임에도 맛없는 음식점과 다를 바 없다.
때문에, 모처럼 세계 최고를 노리는 실력과 야망을 품은 조쉬 킹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조쉬 킹은 이번 시즌 엄청난 활약을 했고 모든 수상을 휩쓸었다.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선수.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최우수 선수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한 방에 받아냈다.
티에리 앙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루이스 수아레스.
단 이 4명만이 달성했던 엄청난 기록이었거늘. 그 돌대가리 조쉬 킹이 해낼 줄은 그의 부모님도 몰랐을 거다.
그리고 포츠머스의 수상 릴레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도움왕에는 매우 당연하게도 델리 알리가 뽑혔다.
팀이 109골이나 넣었는데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배출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긴 했다.
“음…. 글쎄요. 어시스트를 많이 기록해서 좋긴 하지만, 골이 좀 아쉽네요. 전 득점왕이 되고 싶거든요. 다음 시즌에는 더욱 골을 많이 넣어 볼게요.”
11골 24어시스트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한 델리 알리.
세계 최고에 꼽힐만한 활약이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조쉬 킹, 이 자식보다 공격포인트 숫자가 적잖아…? 굴욕이다….’
조쉬 킹의 공격포인트는 어시스트까지 합쳐서 총 40개.
5개나 밀려버렸기에 완패였다.
덕분에 기쁨보다는 다음 시즌에는 어떻게든 승리해서 최고가 되겠다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델리 알리였다.
하지만, 꽤 힘든 일이었다.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포츠머스에는 조쉬 킹뿐만 아니라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선수는 델리 알리만큼이나 재능이 넘쳤고 델리 알리보다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선수였다.
“이런 상을 받아서 좋긴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동료인 조쉬 킹처럼 모든 상을 받아내고야 말겠습니다. ”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빛만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르웨이의 괴물, 에링 홀란드.
겨우 19세의 나이로 33경기 23골을 달성했지만,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승부욕이야말로,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그를 괴물로 만들어낸 원동력임이 분명했다.
이래저래 최고의 선수들만 받을 수 있는 상을 받은 선수들치고는 다들 평범한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골든 글러브를 받은 아론 람스데일, 포츠머스의 골키퍼는 달랐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팬들이 원하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무척 기쁩니다. 수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골든 글러브를 받다니. 꿈만 같습니다. 물론, 이 상은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저를 지도해주신 감독님과 코치님들. 그리고 제 앞에서 최고의 수비를 보여준 우리 팀의 수비진들에게 이 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17개의 무실점을 기록한 아론 람스데일의 수상은 당연한 절차였다.
무실점이 가장 많은 골키퍼가 받는 상이었으니까.
비록, 공격진보다 조명을 받지 못하는 자리였지만, 아론 람스데일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의 뛰어난 선방과 빌드업 능력이 없었다면 포츠머스의 ‘닥치고 공격’은 감히 꿈에도 꾸지 못했다.
단언컨대 다른 어수룩한 골키퍼였다면 포츠머스가 우승을 달성할 순 없었을 거다.
이렇듯 개인 수상을 모조리 석권한 포츠머스는 또다시 당연하게도 PFA 올해의 팀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GK: 아론 람스데일.
DF: 앤디 로버트슨.
DF: 케빈 도슨.
DF: 버질 반 다이크.
DF: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
MF: 데클란 라이스.
MF: 베르나르두 실바.
MF: 델리 알리.
FW: 조쉬 킹.
FW: 사디오 마네.
FW: 에링 홀란드.]
총 7명의 포츠머스 선수가 올해의 팀으로 뽑혔다.
개인 수상을 독차지한 4명에 더해서 앤디 로버트슨, 케빈 도슨, 데클란 라이스가 올해의 팀에 합류했다.
당연히 이견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포츠머스와 왼쪽과 리버풀의 오른쪽이 합쳐진 수비진을 역대급이라고 평했다.
-포츠머스랑 리버풀의 파티구만.
-하지만 인정이지.
-오히려 간신히 4위를 달성한 맨체스터 시티의 베르나르두 실바가 대단한 거야.
-그는 올해 미친 활약이었어.
-이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수비진은 진짜 완전무결하네.
각 포지션에서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었고, 정말 막강한 팀이었다. 게임에서 이렇게 팀을 짜면 금방 질려 삭제할 게 뻔했다.
하여튼 이렇게 프리미어 리그의 개인 수상이 모조리 마무리되었다.
말 그대로 포츠머스의 세상이었고 새로운 왕조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간의 관심은 포츠머스의 ‘도메스틱 트레블’에 쏠리기 시작했다.
***
“흥흥~”
소하는 또다시 받아낸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쓰다듬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어찌나 소중하게 쓰다듬던지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던 골룸이 떠오를 정도다.
또한, 며칠 뒤에 FA컵 결승전을 치르는 감독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태평한 태도다.
더해서, 또 다른 위대한 업적, 도메스틱 트레블을 앞둔 감독이라고 보기에도 상당한 어폐가 있었다.
“흥흥~ 도메스틱 트레블 따위. 별로 의미 없다고.”
도메스틱 트레블.
국내 리그, FA 컵, 리그컵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 달성한 구단은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뿐이었다.
원래의 세계였다면 18-19시즌, 그러니까 현 시즌에 맨체스터 시티도 달성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포츠머스가 잉글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도메스틱 트레블에 도전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하는 너무나 태평했다.
밤을 새워가면서 승리 공식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몇 시간째 감독상에 광만 내고 있었다.
물론, 이미 계획은 다 세워놨다.
게다가 자신감도 넘쳤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토트넘 정도야 별거 아니지.”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하기야, 소하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자신감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남자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성소하 감독!]
[어려울 때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위대한 인물.]
등등, 낯뜨거운 기사가 줄줄이 쏟아진 덕분이었다.
소하는 그저 경기가 진짜 재밌어서 웃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나저나 참 세월이 무쌍하구만….”
소하는 감독상에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코흘리개 약골, 포츠머스가 고기를 먹어본 놈으로 변한 상황이 그저 재미있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본인임에도 어이가 없을 만한 상황이긴 하다.
들어 올린 메이저 트로피만 해도,
17-18시즌, 리그컵 우승.
17-18시즌, FA컵 우승.
17-18시즌, 유로파 리그 우승.
18-19시즌, 커뮤니티 실드 우승.
18-19시즌, 슈퍼컵 우승.
18-19시즌, 리그컵 우승.
18-19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7개나 되었으니까.
할 수 있다고 굳건히 믿었음에도 막상 해낸 걸 돌아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이래저래 토트넘은 어느새 우승컵 개수로 포츠머스에 비벼보지도 못할 팀으로 전락해버렸다.
“단지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해.”
소하는 이젠 빛이 번쩍번쩍 나는 감독상을 소중히 진열함에 넣어두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북쪽을 바라봤고 그곳에는 웸블리 스타디움이 있었다.
“웸블리 스타디움. 잉글랜드 축구계의 성지이자, 이번 시즌 토트넘의 홈구장. 이게 문제지.”
그렇다. 비록 중립경기장이었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토트넘의 홈구장이기도 했다.
신축경기장 건설이 늦어지며 발생한 매우 독특한 상황!
덕분에 소하와 포츠머스는 적의 홈구장에서 FA 컵 우승컵을 놓고 겨룰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어려운 결승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소하가 이렇듯 집중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리버풀.”
기어코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까지 올라온 리버풀을 떠올리면 토트넘이 너무 약해 보였다.
결국 최고의 숙적을 직접 거꾸러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한 소하였다.
< 291화. 그 끝에 서서.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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