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그 끝에 서서. (6) >
전반전을 1-0으로 마친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후반전에 들어 제대로 정신을 차렸다.
오히려 경기를 시작하기 전보다 독기가 잔뜩 오른 모습이었다.
‘흥, 풋내기 같은 자식들.’
중간 휴식 시간, 그간의 사정을 드디어 알아낸 조쉬 킹의 비웃음.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승부욕의 연료였다.
인종도 다르고 얼굴의 생김새도 확연히 차이가 났건만.
잔뜩 이죽거리는 모습은 스승을 빼닮아서 다른 선수들을 미치게 했다.
덕분에, 후반전을 맞이한 포츠머스는 약해진 빗줄기를 마구 헤집으며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포츠머스, 경기를 굳히기 위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습니다. 보통 팀이었다면 속도를 늦췄겠지만, 이게 바로 포츠머스의 스타일이죠!]
[더 때려서 완전히 때려눕힌다! 이게 바로 성소하 감독식 상남자 축구 아니겠습니까? 우린 기다리지 않는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대를 내려다보겠다! 바로 이거죠!]
보통 팀들이었다면 이러한 파상공세에 이미 혼절했을 거다.
하지만, 크리스털 팰리스는 프리미어 리그 잔류라는 생존게임을 진행하는 팀.
저 멀리 날아갈 것만 같은 의식의 끈을 부여잡고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기합이군!”
보기보다 로망, 열혈, 근성, 낭만 같은 사나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들을 좋아하는 소하는 상대를 인정했다.
“이러다가 기습적인 골을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겠는데….”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포츠머스 또한 저런 자세로 4부리그부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승리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팀은 언제라도 큰일을 해내는 법.
분명, 한방 터뜨릴 거다.
“슬슬 교체 카드를 준비해야 하나…?”
소하는 슬슬 교체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그리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먼저 고려할 사항은 후반전이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남은 시간이 35분이라는 말이다.
35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긴 시간이다.
수비적으로 돌아섰다가 혹시라도 한 대 얻어맞는다면? 경기가 어지러워질 게 뻔했다.
게다가 크리스털 팰리스의 수비가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포츠머스의 공격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한 골을 더 추가한다면 크리스털 팰리스가 보여주는 불굴의 투지도 끝이다.
‘어렵군…. 어려워.’
경기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웠기에 그 소하마저도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이렇게, 5분쯤 지났을 때.
또다시 경기장에 이변이 벌어졌다.
“우와아아아아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들썩이는 프래튼 파크!
이와 동시에 다른 구단의 상황을 주시하던 밀러가 다가와 외쳤다.
“울버햄프턴이 동점 골을 넣었답니다! 이제 승점 차이는 3점이에요! 감독님 우승이 보입니다!”
“오….”
어려운 상황에서의 굉장한 희소식이었지만 소하는 싱숭생숭했다.
본인도 순간 울버햄프턴의 동점 골 소식에 마음이 놓였으니 선수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뻔했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묵묵하게 꾹 참으며 일발 역전을 노리는 크리스털 팰리스.
바짝 조이다가 한순간 마음이 풀려버리는 포츠머스.
이 차이는 분명 큰 차이다.
“아저씨, 교체 준비 부탁드릴게요.”
“누구를 교체하실 겁니까?”
“하키미요. 다이스로 교체해서 측면수비를 강화하죠.”
“알겠습니다.”
하키미는 너무나 공격적이다.
언제든지 ‘선생’ 상태로 바뀔지 모르는 윌프리드 자하에게 약점을 노출할 가능성이 컸다.
이에 반해 매튜 다이스는 수비력이 준수했고, 윌프리드 자하와의 대전 경험이 풍부하다.
기민한 판단이었고, 승리로 향하는 길임이 분명하다.
이제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고, 교체를 진행하면 위험 요소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사고가 일어났다.
-휘청!
후벵 디아스가 건넨 단순한 횡패스를 받으려던 아슈라프 하키미가 미끄러졌다.
이제는 보슬비로 바뀌었지만,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내렸던 비가 문제였다.
“헙!”
몸의 균형을 완전히 잃은 아슈라프 하키미. 입술을 깨물며 어떻게든 신형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지만,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사람인 이상.
-털썩.
기어코 넘어졌다.
치명적인 실수였고 아슈라프 하키미를 압박하던 윌프리드 자하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자! 이건 뭔가요!]
[끊어내고 올라갑니다! 윌프리드 자하!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골키퍼와 1대1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자하! 골키퍼와 1대1 기회! 자하! 고오오오올!]
우승 경쟁 중인 리버풀의 저주일까.
리버풀을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옥 같은 해설이 프래튼 파크에 울려 퍼졌다.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13-14시즌, 리버풀의 역사적인 우승 도전에 찬물을 끼얹었던 일이 포츠머스에 일어나다니.
뭔가 불안하다.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정말 개 같은 우연이구만.”
소하의 입에서는 절로 쌍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은 괜찮다. 리버풀도 비기고 있었으므로 1위는 유지 중이다.
“하지만, 안 필드에서, 그것도 잔뜩 독이 오른 리버풀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지….”
포츠머스도 리버풀의 소식에 실시간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그렇다면, 리버풀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포츠머스가 동점 골을 허용했다는 소식은 리버풀 선수들에게 좋은 연료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하. 좋아, 재밌는데?”
소하는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분명 수백KM, 서울에서 부산만큼 떨어져 있음에도 얼굴을 마주 보고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니.
과거와 현재를 합쳐서 십 년이 넘는 감독을 생활을 해왔음에도 처음 겪어보는 경기 양상이었다.
“뭔, 고스트 축구왕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고!”
신이 잔뜩 난 소하는 팀이 동정 골을 헌납했음에도 파안대소를 흘렸다.
거의 광인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지켜보는 밀러는 오히려 안심되었다.
‘역시. 감독님은 어려움을 피하시지 않는군. 오히려 즐겨버리셔.’
고난이 닥쳐와도 웃는다.
그렇기에 밀러는 두렵지 않았다.
***
[속보입니다! 리버풀이 다시금 달아나는 추가 골을 넣었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다시, 리그 1위는 리버풀!]
후반, 25분. 소하의 예측대로 리버풀은 다시금 골을 넣었다.
이로써 순위가 다시 역전되었지만, 포츠머스는 흔들리지 않고 공격의 고삐를 당겼다.
이제는 아예 가드를 완전히 내리고 전원공격을 하는 엄청난 파상공세였다.
그리고 곧,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뻥!
이번에는 델리 알리가 엄청난 중거리 포를 날려주었다.
23m 거리에서 뿜어진 빨랫줄 강슛!
그대로 웨인 헤네시 골키퍼가 지키고 있던 크리스털 팰리스의 골망을 뒤흔들었다.
“내가 너한텐 질 순 없지!”
엄청난 원더골을 뽑아낸 델리 알리는 순식간에 조쉬 킹에게 달려가 우쭐거렸다.
“….”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조쉬 킹!
이제는 한 골씩 나눠 가지며 동률이 된 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튼, 다시금 1위 자리를 쟁취했고 포츠머스는 더더욱 기세를 올렸다.
조금 더 안전하게 해도 될 텐데.
그런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포츠머스였다.
물론, 크리스털 팰리스는 가만히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경기의 종료가 가까워지면서 완전히 벼랑 끝에 몰렸고, 이젠 이판사판이었다.
“우리도 공격해! 이제 밑져야 본전이다. 앞으로 패스를 때려 넣어!”
크리스털 팰리스의 감독, 로이 호지슨 감독은 기어코 방패를 내던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15분.
다른 경기장의 상황 덕분에 이대로 지면 강등이었다.
요컨대, 이젠 모 아니면 도였다.
-뻐엉!
크리스털 팰리스는 세밀한 공격축구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팀.
당연히 일단 전방으로 공을 길게 보내고 보는 킥&러시 전술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런 비가 오는 날씨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슈와왁!
실수 때문에 조금 정신이 나간 하키미를 농락한 윌프리드 자하가 긴 패스를 받아내고 크로스를 올렸다.
목표는 크리스티안 벤테케.
벨기에 출신인 이 선수는 신체조건과 공중볼에 대단한 강점을 가진 공격수다.
비록 부상 때문에 잠재성을 모두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위협적인 선수임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텅!
후벵 디아스를 힘으로 이겨내며 헤더에 성공한 크리스티안 벤테케!
아쉽게도 골대를 강타했지만, 아직 플레이가 끝난 건 아니었다.
-투확!
페널티박스 밖까지 리바운드된 공을 안드레스 타운젠트가 그대로 중거리 슛으로 연결했다.
발등에 제대로 얹힌 공은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골망에 꼽혔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동점 골!
안드레스 타운젠트의 슈퍼 골!
다시금 포츠머스가 2위로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희소식이 울렸다.
[울버햄프턴도 동점 골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 1위로 올라섰어요!]
[엄청난 마지막 라운드에요. 계속해서 1위와 2위의 순위표가 바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친 경기였다.
순위가 계속해서 바뀌며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심장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시간은 이제 10분도 남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우승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이젠 끝이겠지, 라는 생각도 든다. 이 심장 떨리는 순위변경이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리버풀은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후반 40분. 리버풀의 사디오 마네가 기어코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오! 맙소사! 리버풀이 다시 달아나는 골을 넣었다고 합니다!]
[사디오 마네의 해트트릭! 이 선수가 얼마나 우승을 원하는지 알 수 있겠군요!]
이로써 또다시 순위표가 뒤바뀌었다.
1위, 리버풀.
2위, 포츠머스.
지옥행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이제는 남은 시간도 겨우 5분이라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게다가, 마침 크리스털 팰리스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강등권 경쟁을 하던 팀이 실점하며 무승부가 되었고, 이대로 비기기만 해도 잔류가 된다는 소식이었다.
“수비해라! 수비! 전원!”
로이 호지슨 감독의 태세 전환은 신속하고 기민하며 재빨랐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그는 서둘러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하며 수비를 강화했고 거북이 태세를 취했다.
“이야, 소환사의 협곡 좀 해보셨나 봐? 전환 속도가 무슨. 좋아, 우리도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 하하하!”
소하는 광소를 흩날리며 곧바로 대응했다. 도봉산을 제외하고 한방을 가진 마리오 발로텔리를, 칼빈 필립스를 제외하고 전진성 좋은 니콜로 바렐라를 투입했다.
즉, 이젠 죽거나 죽이거나였다.
심지어 리버풀이 또 한 골 넣었다는 소식이 프래튼 파크에 전해졌다.
[4-2! 리버풀의 승리가 확실합니다!]
[이제 포츠머스는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3분, 과연 포츠머스가 해낼 수 있을까요?!]
최악의 상황에서 더 최악의 길로 빠져버렸다. 이제 울버햄프턴에 기댈 순 없다. 오로지 포츠머스의 힘으로 승리해서 우승을 쟁취해야 한다.
-꿀꺽.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다.
머릿속에선 역사상 가장 아쉬운 준우승과 기적의 끝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린이들의 동화는 항상 행복한 결말이었지만, 어른들은 동화는 때때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던가.
-째깍째깍.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아무리 간절한 마음이라도 흐르는 시간은 막을 수 없었다.
이대로 끝인 걸까?
정녕 이대로 거품처럼 사라지는 걸까?
이렇게 끝나기엔 그간에 해왔던 노력이 너무나 아깝다.
그렇다고 변명거리도 없었다.
비가 왔든, 운이 없었다는 등의 변명은 아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실력으로 승리했으면 끝났을 테니까. 그저 우승할 실력이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 정규 경기 시간이 끝에 다다랐다.
추가시간은 대략 2분 정도로 예상되는바. 아직까진 기회가 남아있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추가시간 따위에 기대지 않았다.
후반 44분 45초.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모처럼 경기장에 등장한 마리오 발로텔리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쾅!
발등이 아닌, 약간 바깥쪽에 제대로 걸린 엄청난 슛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지며 경기장을 갈랐다.
엄청난 궤적!
이었지만, 크리스털 팰리스의 골키퍼, 웨인 헤네시는 반응을 해내고 말았다.
그 또한 포츠머스 선수들의 우승 욕망만큼이나 팀의 잔류를 원했으니까.
여기까지 와서 강등의 아픔을 겪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집중력을 한계까지 끓어올랐고 간신히 손끝으로 건드릴 수 있었다.
-터어어엉!
골대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가벼운 공이 아니라 묵직한 철구에게 얻어맞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아…!”
프래튼 파크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분명 골인 줄 알았는데.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거침없이 골망을 흔들 줄만 알았는데.
이걸 막아낼 줄은 정말로 몰랐다.
이 정도 슛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보니 정말 운이 다한 듯싶었다.
그러나 아직 공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절망을 품기엔 시기상조였다.
모두가 고개를 떨굴 때.
포츠머스의 선수 중 그 누구도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이것은 6년 전, 소하가 이날을 위해 저 멀리 노르웨이까지 날아가 친분을 다진 한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으아아!”
괴성을 지르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에링 홀란드!
그는 남들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은 더 뛰어올라 튕겨 나온 공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퉁!
이 상황에서도 반대쪽 골대를 향해 내지른 무섭도록 침착한 헤더였다.
-텅, 철썩.
귀신같이 놀라웠던 마리오 발로텔리의 슛마저 막아낸 웨인 헤네시 골키퍼였거늘.
완전히 역동작에 걸리며 공이 골네트를 간지럽히는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즉, 포츠머스의 골이었다.
골이 들어간 시간은 후반 44분 47초.
단 2초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골입니다! 해냈어요! 그가 해냈습니다! 에링 홀란드! 다시 앞서나가는 골을 기어코 뽑아냈습니다!]
[추가시간에 돌입하기 전에 드디어 포츠머스가 선두자리를 다시 탈환했습니다! 에링 홀란드가 울부짖습니다!]
“우호오오오오오!”
격정에 가득 차 온몸을 비트는 에링 홀란드!
동료들도 반쯤 정신이 나가 그를 덮쳐 안았고, 이를 지켜보던 포츠머스의 서포터들도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열광했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난 게 아니다.
열광적인 셀레브레이션이 끝나고 추가시간에 돌입했다.
시간은 예상보다 긴 3분.
소하는 다시금 경기가 재개되자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전원 내려가라! 버텨라!”
굳이 할 필요 없는 명령이기도 했다.
이미 포츠머스의 선수들 전원이 결사 항쟁의 뜻을 품고 내려가 있었다.
포츠머스는 전원 수비에 익숙한 팀은 아니다.
그러나 전원이 합심해서 3분 정도 하면 그 어떠한 팀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팀이었다.
“공격해! 공격!”
벼랑 끝에 몰리다 못해 자유낙하 중인 로이 호지슨 감독이 버럭 소리쳤다.
이젠, 웨인 헤네시 골키퍼마저도 중앙선을 넘어 빌드업에 관여했다.
하지만, 지켜내겠다는 포츠머스의 의지를 뚫은 순 없었다.
무의미한 크로스만 나왔을 뿐.
어떠한 유효타도, 어떠한 위협적인 장면도 연출하지 못하고 3분이 지났다.
“….”
모두의 시선이 주심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주심의 손으로 향했다.
이제 시간은 끝났다.
그러니 빨리 익숙하면서도 간절한 그 소리를 프래튼 파크에 선물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삑! 삑! 삑!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츠머스가 역사적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달성했음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소하를 비롯한 포츠머스에 속한 모든 이들이 울부짖었다.
[아!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 경기장으로 뛰쳐나옵니다!]
[선수들도 서포터들과 부둥켜안으며 같이 열광하는군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정말…. 와….]
중립을 지켜야 하는 해설과 아나운서였건만.
위대한 역사 앞에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감동했다.
이렇듯 영원히 열광적일 것만 같던 프래튼 파크는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다.
경기장 내 스크린에 한 사람의 모습이 잡혔기 때문이다.
“….”
묵묵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소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를 바라본 관계자들과 선수들, 그리고 서포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목소리를 모았다.
“성소하. 성소하. 성소하.”
처음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작된 합창은 메마른 벌판에 불이 붙듯 퍼져나갔다.
“성소하! 성소하! 성소하!”
프래튼 파크를 찾은 3만에 가까운 관중들은 발을 구르고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소하의 이름을 연호했다.
아니, 프래튼 파크 뿐만이 아니었다.
비가 내려도 거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응원을 하던 십 수만 명의 포츠머스 시민 전체가 소하의 이름을 외쳤다.
“성소하! 성소하! 성소하!”
위대한 감독에 받치는 최고의 경의!
이들의 연호는 어느덧 맑게 갠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 290화. 그 끝에 서서. (6)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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