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87화 (287/306)

< 287화. 그 끝에 서서. (3) >

리그 우승을 노리는 포츠머스의 프리미어 리그 37라운드 상대는 카디프 시티였다.

예전, 한국 선수가 잠시나마 뛰면서 대한민국 내에서는 제법 인지도 높은 팀이다.

그러나 강팀이라 하기는 어렵다.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십 리그를 쉴 새 없이 오가는 강등 후보였다.

게다가 전반기에 프래튼 파크에서 펼쳐진 경기에서는 포츠머스가 8-0으로 부숴버린 좋은 추억을 가지기도 했다.

[아무리 원정경기라도 포츠머스는 카디프 시티에게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을 것.]

[카디프 시티는 벌써 강등을 확정 지은 팀이다. 그들에게 저항할 힘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유종의 미? 카디프 시티가 그런 유의미한 가치를 원하는 팀이었다면 벌써 강등을 확정 짓진 않았다.]

모든 언론은 카디프 시티의 패배를 당당하게 예견했다.

아니, 이제는 몇 대 몇으로 포츠머스가 승리할지를 주제로 토론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번 경기에서 조쉬 킹이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신기록을 세웠으면 좋겠어.

-해트트릭 한 번이면 34골 아닌가? 지금 31골이잖아.

-미쳤다. 포츠머스에서 프리미어 리그 득점 기록을 세우는 선수가 나올 줄이야.

-깔끔하게 5-0 승리로 가자.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과의 1차전에서 체력을 많이 뺐다고. 그간 성소하 감독을 봤을 때, 로테이션으로 나올 거 같은데?

자신감은 있었으나 얼만 전 치렀던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가 문제였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도 엄청나게 지켰지만, 포츠머스 또한 마찬가지.

놀라운 체력을 자랑하던 포츠머스의 선수들도 경기가 끝나고 나서 다 드러누울 정도였다.

이러한 엄청난 체력부담은 인터뷰할 때도 드러났는데, 다들 말을 잘하지도 못했다.

“허억. 허억. 그, 이, 이겨서…. 후우. 조, 좋았어요. 우리는, 채, 챔피언스 리그의 겨, 결승전으로 갈 거예요….”

“모, 모 살라의 빈자리를…. 잘 매 꿀 수가 있어서 뿌듯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천진난만하게 떠벌리는 조쉬 킹도 시든 콩나물이었고,

항상 무표정으로 인터뷰를 일관하던 잭 해리슨마저도 배터리가 다 된 로봇으로 변해버렸다.

요컨대, 살을 주고 뼈를 취한 격!

상대를 많이 움직이게 하려는 쪽은 원래 더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포츠머스 정도라면 후보들로 구성해도 카디프 시티는 별거 아닌 바.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소하는 이번에도 변주를 보여줬다.

[아! 뭔가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와 똑같은 선발명단을 공개했습니다!]

[4일 만에 치러지는 경기인데요, 다음 경기가 바이에른 뮌헨과의 2차전인 상황에서 무슨 의미일지 모르겠군요.]

세간은 의문을 표했다.

이 뜻은 즉, 바이에른 뮌헨과의 2차전에서 후보를 내보내겠다는 선포였으니까.

암만 5골 차이라도 그 바이에른 뮌헨의 심기를 건드리다니. 바르셀로나를 기적적으로 잡아낸 팀이 기적을 당하려고 작정한 듯싶었다.

“뭐래. 이미 끝났다니까.”

물론, 소하에겐 어떠한 영향도 없었고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 37라운드가 시작됐다.

카디프 시티의 홈에서 펼쳐진 리그 우승을 향한 마지막 스퍼트.

결과는 쉬웠다.

5-0 대승.

이미 사기가 떨어질 만큼 떨어진 카디프 시티의 선수들은 포츠머스 선수들의 장난감조차 되지 못했다.

[이로써! 포츠머스가 단 1승만 거두면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거의 다 왔어요. 하지만 리버풀 또한 승리하면서 우승의 향방은 38라운드, 마지막에 결정되겠군요.]

2위 리버풀과는 아직도 승점 1점 차이.

집요할 정도로 따라붙었고, 기어코 마지막 경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은 예상외로 싱거웠다.

경기전부터 후보를 내보낼 거라고 선포한 소하는 말 그대로 후보선수를 대거 투입했다.

그에 반해 바이에른 뮌헨은 리그 경기에서 주전을 모두 쉬게 하며 완벽한 태세로 경기를 맞이했다.

더군다나 장소는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너무나도 오만한 포츠머스의 태도였고, 바이에른 뮌헨은 분기탱천했다.

“저 건방진 새끼들! 5골 차이? 우리가 6골 때려 박는 모습을 보여주마!”

“성소하 이 자식이?!”

“우릴 아주 물로 보는구먼?”

“공격! 공격! 공격! 공격해서 저 녀석들 코뼈를 분질러 버려!”

“게르만의 힘을 보여주자!”

알리안츠 아레나는 폭동 직전까지 갔다.

이 얼마나 오만한 선발인가!

포츠머스가 당했더라도 피가 거꾸로 솟을만한 일이었다.

이렇듯 서포터들의 엄청난 응원을 받는 바이에른 뮌헨은 초반부터 기어를 올렸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그리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암만 후보라고 할지라도 말이 후보지, 거의 제2의 선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수들 이름만 봐도,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알랑 생막시맹.

니콜로 바렐라.

유리 틸레만스.

마리오 발로텔리.

로빈 고젠스.

등등, 수년 뒤에는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리며 펄펄 날아다니는 선수들이다.

심지어 소하의 가르침을 받아 가진 그릇마저 넓어진 뛰어난 인재들이다.

즉, 주전들처럼 약해진 바이에른 뮌헨을 압도할 수는 없더라도 발목을 잡고 질질 끄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해서, 이번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소하에게 제대로 지시받았다.

“우리는 인생에서 뒤를 볼 줄도 알아야 해. 앞만 보고, 위만 보고 달리면 목이 부러지거든.”

팀의 속도를 두 단계 정도 낮추었다.

항상 앞으로 달리기보다는 여유롭게 뒤를 한번 거쳐주는 여유를 보여줬다.

이렇게 되자, 바이에른 뮌헨은 애가 타며 안절부절못했다.

손뼉도 손이 맞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

굉장히 얄밉게 엉덩이만 흔들 뿐.

정작 들이받아 주지 않자 점점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져만 갔다.

차라리 수비적으로 나왔으면 마음 편히 공격했을 텐데.

호시탐탐 알랑 생막시맹과 아마다 트레오레가 뒤를 노려서 그것도 불가능했다.

여기서 실수로 한 골이라도 더 먹히면 7골이나 넣어야 했으니까.

소하의 말처럼 애초에 끝난 경기였다.

방심하면 모를까, 후보로 나선 포츠머스의 선수들이 방심할 처지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주전 자리를 따내는데, 이기고 있다고 방심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챔피언스 리그의 준결승전에서?

결국 전반전은 득점 없이 종료되었고 바이에른 뮌헨의 마음도 꺾였다.

‘우린 후보한테도 안 되는구나.’

라는 좌절감과,

‘45분 동안…. 6골…. 불가능하다.’

승부욕의 불길을 지워버리는 현실의 벽이 느껴지자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삑! 삑! 삑!

후반전 또한 득점 없이 경기가 무승부로 종료되었고 활화산 같던 알리안츠 아레나는 북극이 되었다.

다만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와아아아아-

고막을 먹먹하게 울릴 정도의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포츠머스가 드디어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역사적입니다! 이건 신화에요! 6년 전! 4부리그에서 머물던 포츠머스가 2019년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올라갔습니다!]

이미 전설이었고 신화였다.

프로 리그의 맨 밑바닥에서 해체의 위기와 싸우던 포츠머스의 작은 구단.

그 구단이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챔피언에 도전하는 자리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소설이자 영화였다.

“…후우.”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소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상시와 같이 미친놈처럼 날뛰면서 셀레브레이션을 하기는커녕,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다.

소하의 머릿속에서는 순간, 6년간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경질당한 뒤 술독에 빠져 살았을 때.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었을 때.

구단주와의 첫 만남 때.

감독 데뷔 전을 가질 때.

처음으로 승격했을 때.

팀이 점점 성장했을 때.

모두가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순간순간이 소하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고 싶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인자한 웃음을 보여줬다.

“아버지….”

누구보다 다정했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으며,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자 소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그 누구도 불가능하리란 자리까지 팀을 이끌었다.

그렇기에 소하의 아버지도 수고했다며 웃어주시는 것일 터.

그간에 헤쳐왔던 고생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자 보상이었다.

‘하지만, 아직 웃진 마세요.’

소하는 머리를 털어냈다.

마치, 인자하고 다정한 아버지의 미소를 머릿속에서 지우려는 것처럼.

‘이제 시작이니까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미소를 아직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모처럼 소하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전, 나중에 아빠보다 훨씬 더 유명한 선수가 되어서 포츠머스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들 거예요.’

‘정말? 그럼, 아빠랑 약속하자.’

‘그래요!’

‘자, 여기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응!’

아직도 새끼손가락에 남아있는 그 날의 온기는 아직 멈출 시간이 아니라고 외쳤다.

이제, 수십 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단 3개의 경기만 남은 어느 봄날이었다.

***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 안착한 포츠머스가 자리 잡은 포츠머스시는 축제 분위기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점점 다가오는 프리미어 리그의 마지막 경기!

프리미어 리그의 우승이 걸린 대단히 중요한 경기가 다가오자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가 없었다.

“후우. 오줌 마렵다.”

“난 요즘 밥도 잘 안 넘어가더라.”

“괜히 손에 식은땀이 고이더라고.”

“그냥 타임머신 타고 경기 끝난 날로 날아가고 싶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숨이 턱턱 막히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포츠머스를 응원하면서 수많은 기적을 봐왔음에도, 이번에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그 포츠머스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라니.

분명 코앞까지 다가온 현실인데도 마치 꿈속을 거니는듯한 부유감마저 들었다.

이는 철벽의 정신력을 자랑하던 포츠머스의 클럽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우승 행진 준비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

“난 요즘 잠이 안 와서 일부러 야근하고 있어.”

“미치겠다. 아니,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해본 적이 없어서 자료가 없어!”

“일단 다른 구단이 어떻게 진행했는지 보고는 있는데…. 어렵다, 어려워.”

“선수들 상태는 어때?”

물론, 선수들도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다.

암만 소하가 있더라도 사람인 이상 맨정신을 유지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후우! 후우! 후우!”

조쉬 킹은 잡념을 떨치려는 듯, 체력코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온몸에 핏줄이 벌떡 튀어나왔음에도 모자랐는지 유산소 운동까지 병행했다.

겁이 없는 조쉬 킹이 이 정도였으니, 다른 선수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몇몇 선수들은 벌써 부담과 긴장을 이겨냈다.

“감독님과 동료들이 함께라면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주장인 케빈 도슨은 이미 정신력을 예리하게 갈아놨고,

“음…. 역시 난 최고야. 이런 플레이를 보여주는 내가 쫄 순 없지.”

자신의 스페셜 영상을 4시간 정도 연속으로 시청한 델리 알리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팀의 정식적 지주 역할을 하는 두 선수가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소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좋군.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 역시 도슨이랑 알리야.’

다른 선수들이었다면 몰라도, 케빈 도슨과 델리 알리라면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평상시에도 팀의 정신적인 부분을 지탱해주던 선수들!

이들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팀의 상태는 금방 원래대로 회복할 것임이 분명했다.

‘문제는 상대란 말이지.’

부담감은 걱정이 없으나 상대가 문제다.

38라운드 상대는 크리스털 팰리스.

다른 때에 만났다면 신경을 이유도 없는 팀이지만, 문제는 이 팀이 처한 상황 때문이었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순위는 17위…. 그러니까 강등권이다.’

축구계에는 ‘강등로이드’라는 단어가 있다. 쉽게 말해, 강등에 처한 팀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초월하는 실력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크리스털 팰리스는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야지만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하는 상태다.

지더라도 경우의 수 덕분에 잔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우의 수라는 확률에 잔류를 기대하는 팀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휴우.”

소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어려운 경기가 될 거다.

그래도,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에 비하면 비단길이었기에, 금방 걱정을 떨쳐내는 소하였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포츠머스! 포츠머스! 포츠머스!”

“우승 가즈아아아아아!”

어느덧 프래튼 파크에 그날이 도래했다.

프리미어 리그 마지막 라운드.

포츠머스와 크리스털 팰리스가 우승과 잔류를 두고 펼치는 최후의 대결!

수십억 축구인들의 모든 시선이 포츠머스로 쏠리기 시작했다.

< 287화. 그 끝에 서서.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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