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86화 (286/306)

< 286화. 그 끝에 서서. (2) >

수많은 축구 구단들은 몇십 년, 혹은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대지에 굳건히 뿌리를 박은 거목 같은 자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수십 년을 넘게 버텨왔다고 해도 항상 똑같은 생명력을 지닌 것만은 아니었다.

그 어떤 구단이라도 선수단의 생명 순환은 필연적이었다.

역대 최강이라 불리었던 전관 우승,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도.

다시 한번 붉은 제국을 세웠다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도.

영원한 프리미어 리그의 절대강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유도.

전 세계의 강팀들을 모조리 손쉽게 잡아내며 트레블을 했던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바이에른 뮌헨도.

결국 선수단의 사이클이 끝나면 침체기를 맞이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그 영광의 시대를 만들었던 주춧돌들은 아쉽게도 금방 늙어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간 포츠머스도 겪어야 할 필연적인 침체기!

아직 상당히 어린 포츠머스였기에 그래도 제법 먼 훗날의 이야기긴 하다.

그에 반해 바이에른 뮌헨은 아니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이미 쇠퇴기에 들었다. 잘라 말해 끝물이었다.

‘로베리’라고 불리던 전설적인 윙포워드 들은 이미 30대 중반이다.

중앙 수비진도 상당히 나이가 들었다.

팀의 전체적인 나이가 올랐기 때문에 에너지가 줄어들었다.

어찌 보면 니코 코바치 감독은 사이클의 끝에 서서 욕받이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물론, 어차피 강팀은 금방 살아났다.

마치 재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고 이제 막 순환 사이클의 최고점에 오른 포츠머스의 상대가 아니었다.

요컨대, 애당초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의 정면승부는 결과가 뻔했다.

[바이에른 뮌헨!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선수들의 체력이 너무나도 떨어졌어요!]

[니코 코바치 감독! 서둘러 교체를 시도합니다. 오늘 별다른 영향력이 없던 토마스 뮐러 대신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투입됩니다!]

선제골을 헌납한 니코 코바치 감독의 움직임은 빨랐다.

경기에 지더라도 원정 골을 넣겠다는 공격적인 교체였다.

“제법 곤조가 느껴지는 교체로군.”

소하는 싱긋 웃으며 니코 코바치 감독의 판단을 칭찬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낭만이 느껴지는 교체치고는 정답이 아니야.”

보기에는 좋았으나 답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겠다는 의지는 보기엔 좋았으나 지금은 ‘체력’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한방은 있지만, 선수단에 부담을 줄 정도로 활동량이 적은 선수.”

이런 선수가 등장하자 소하는 그리던 큰 그림이 완성됨을 느꼈다.

이미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른 상황!

여기서 더욱 체력적인 부담을 받게 된다면 정말 물거품처럼 무너질 거다.

그리고 만약, 또다시 실점한다면.

-뻥!

[와! 데클란 라이스의 벼락같은 기습적인 중거리 슛!]

[엄청난 슛입니다! 그대로 골망을 찢어 버렸어요! 이건 푸스카스상을 받아도 이견의 여지가 없는 골이에요!]

레일건 같은 데클란 라이스의 엄청난 중거리 포가 골망을 뒤흔들었다.

30M보다 조금 먼 위치에서 폭발한 환상적인 중거리 골!

데클란 라이스의 챔피언스 리그 첫 번째 골이 제대로 터졌다.

그것도 정말 필요한 순간에!

“야! 미쳤어?!”

“뭐야? 그 슛은?”

“언제 연습했어? 이 치사한 자식아!”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서포터들 앞에서 포효하는 데클란 라이스를 껴안았다.

이에, 데클란 라이스는 조급 수줍게 사실을 고백했다.

“어…. 사실, 패스 주려고 했는데 스텝이 꼬여서 그냥 때려봤어….”

“….”

본인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중거리 슛이 그대로 골망을 뒤흔든 격이었다.

그야말로 운수대통!

하지만 마냥 운만은 아니었다.

만약 바이에른 뮌헨의 체력이 정상이었다면 데클란 라이스가 실수를 슛으로 연결한 틈도 주지 않았을 터.

어찌 보면 필연적으로 다가온 행운일지도 몰랐다.

하여튼 이제 점수 차이는 2-0, 두 골 차이로 벌어졌고 바이에른 뮌헨에게는 치명타였다.

‘…아.’

‘끝인가…?’

‘피로가… 몰려온다….’

추가 실점을 당하자 체력적인 한계를 지탱해주던 정신력에 문제가 왔다.

그리고 잊었던 체력적인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 다시 회복하기엔 불가능했다.

손끝은 조금씩 떨렸으며,

입에서 단내가 풍겨 나왔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75분여간 평상시보다 훨씬 격렬한 경기를 치른 그들로서는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물론, 포츠머스도 체력적인 부담이 심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바이에른 뮌헨보다 훨씬 젊었고 심지어 이기고 있지 않은가!

경기가 끝나면 퍼지겠지만 아직은 갓 잡아 올린 활어처럼 생명력이 퍼덕였다.

이것이 바로 소하가 그리던 그림이었다.

일부러 경합하고 공을 오래 잡게 내버려 두어 체력을 소진 시키는 것!

이제 계획의 끝이 다다랐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분명 그냥 붙었어도 포츠머스가 승리할 경기를 왜 이렇게 끌고 갔을까?

“2차전은 쉽게 하려고.”

소하는 남은 경기를 모두 한 경기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중요한 경기가 마지막에 몰려있는 만큼 초반에 힘을 빼기 싫었다.

때문에 초반에 제대로 힘을 빼기로 결정한 거다.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쉽게 생각해보면 된다.

100%로 두 번 싸우느냐,

혹은, 120%로 한 번 싸우느냐.

전자는 200%라면 후자는 120%다.

즉, 80% 가까이 여유가 생긴다는 뜻!

4강전을 1차전에 아예 결딴 내버리겠다는 의지였다.

2차전 따위는 후보 선수들로 내놓아도 될 만큼 완벽하게.

참으로 교묘한 수작이었다.

포르투면 몰라도 그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이런 수작을 부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소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약체화를 그 누구보다 잘 알았고, 덕분에 준비한 비수를 그들의 휘황찬란한 이름 속에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눈을 그려 마무리하자.”

소하는 목을 꺾으며 계획한 일을 그대로 마무리하길 원했고 선수들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후반 80분경.

다시금 조쉬 킹에게 기회가 왔고 이번에도 패스는 정확했다.

요주아 키미히는 체력이 펄펄했을 때도 조쉬 킹을 따라잡지 못했고 지금은 그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다.

오른쪽에서 넓은 공간을 자기 땅으로 만든 조쉬 킹!

할 게 너무나도 많았고, 골을 넣고 싶었기에 중앙으로 치고 들어갔다.

누가 봐도 안쪽으로 파고들어 슈팅할 각도를 찾는 모습!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은 조쉬 킹에게 몰렸다.

“헤헤.”

조쉬 킹은 악동 같은 미소를 흘렸다.

그는 사칙연산도 잘하지 못하는 바보였지만, 경기장에서는 아니었다.

축구선수로서의 조쉬 킹은 최소한 미적분 정도는 척척 풀어낼 수준은 됐다.

-툭.

자신에게 모든 시선이 끌리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쪽으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바로 자신이 얼마 전까지 서 있었던 왼쪽 측면!

그 공간엔 어느새 앤디 로버트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매우 훌륭하다.”

엄지손가락을 척 드는 소하.

훌륭한 플레이였다.

기초 중에서 기초였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선수는 그리 흔치 않았다.

적어도 축구 지능이 좋지 않다고 평가받는 선수 중에서는 말이다.

“나이스.”

조쉬 킹에게 좋은 패스를 받은 앤디 로버트슨은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아무런 압박도 받지 않을 때 뻗어가는 월드 클래스 풀백의 크로스!

잘라 말해, 매우 날카로웠다.

게다가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진은 이미 거칠게 들어왔던 조쉬 킹 때문에 앞뒤가 벌어지며 틈이 생긴 상태.

그곳을 정확히 찌르는 크로스는 굉장히 예리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던 노르웨이의 금발미남 선수의 머리에 정확히 떨어졌다.

-텅!

사람의 두개골과 공이 충돌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가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팔까지는 뻗어봤지만 헛된 시도였다.

-철썩!

헤더가 만들어냈다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골네트의 파도였다.

“으아아아아!”

주먹을 불끈 쥐고 날아오르는 에링 홀란드!

천년만 빨리 태어났다면 크누트 대왕의 뒤를 이어 북해제국의 황제로 올라서도 충분할 만큼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점수는 3-0.

경기는 완전히 끝났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10분이나 남아있었고 소하의 목표는 아직 더 거대했다.

***

-삑! 삑! 삐-익!

경기가 종료되었다.

최종 점수는 5-0!

세 골 차까지 떨어져 나간 바이에른 뮌헨을 포츠머스는 계속해서 두들겨 팼다.

후반 84분, 모하메드 살라 대신 나와 대단한 활약을 선보이는 잭 해리슨, 그의 왼발이 다시금 빛이 났다.

안쪽으로 치고 들어와 최종 수비진의 균열을 베어버리는 멋진 결정적 패스!

컴퓨터로 미적분을 계산해서 뿌린 듯한 정확한 패스는 그대로 에링 홀란드의 오른발에 안착했다.

주발인 왼발이 아닌 오른발.

그러나 에링 홀란드는 주발이 아니라고 발을 바꿀 만큼 만만한 공격수가 아니었다.

-툭.

왼발처럼 힘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른발을 이용해 엇박자로 슛했다.

어째서 자신이 타고난 골잡이인지 전세계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기가 막힌 감각!

당연히 왼발을 조심하던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로서는 몸을 날리지도 못했다.

[이로써 에링 홀란드가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대단합니다! 십 대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해트트릭이라뇨!]

[심지어 이번 골로 챔피언스 리그 득점 선두를 차지했어요! 괴물입니다!]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왕은 포기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의 득점왕은 포기하지 않은 에링 홀란드였다.

이렇게, 4-0을 만든 포츠머스는 추가시간에 들어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았다.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 져진 위치에서 잡은 프리킥 기회!

힘이 다 빠진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의 수비실책이었다.

그리고 오늘 2어시스트를 달성하며 미친 활약을 선보인 잭 해리슨이 키커로 나섰다.

-툭.

허공을 아름답고 예리하게 가로지르는 멋진 프리킥은 아니었다.

오히려 땅바닥을 음습하게 기어 다니는 뱀같이 낮은 프리킥이었다.

수비진이 뛸 거라 예상하고 내지른 땅볼 프리킥!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절묘한 프리킥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즉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도 예상하지 못했단 이야기다.

[골입니다! 잭 해리슨, 이 선수 뭔가요? 모하메드 살라가 있었더라도 오늘만큼의 활약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대단한 프리킥입니다! 거기서 땅볼로 내리까는 판단도 놀랍지만, 그 좁은 틈을 정확히 쑤셔버린 킥의 정확도도 놀라울 정도예요!]

해트트릭한 에링 홀란드가 없었다면, 오늘 경기의 MOM으로 뽑혀도 이견의 여지가 없는 활약이었다.

결국 잭 해리슨은 1골 2어시스트를 달성했고 경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이 5-0 참패를 당하다니.

하루 전이었다면, 농담으로도 내뱉기 힘든 현실이었다.

“…죄송합니다.”

니코 코바치,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은 사과의 말만 남기고 서둘러 기자회견장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듯했다.

이에 반해 포츠머스는 축제 분위기가 따로 없었다.

“경기가 끝났다고 봐도 좋을까요?”

보통 같았으면 자만을 방지하기 위해 신중한 답변이 필요했지만, 소하는 아니었다.

“네. 끝났어요.”

소하의 단호한 선언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더욱 즐거워했고,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들은 더욱 좌절했다.

당연히 소하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을 더욱 괴롭히기 위해 이런 발언을 했다.

지금은 자만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예 기를 죽여놔서 재기에 대한 작은 희망마저 짓밟아놔야 할 때!

그만큼 5-0이란 점수 차이는 너무나도 컸으며 이런데도 바이에른 뮌헨이란 팀의 가능성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역사적인 포츠머스의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언론은 포츠머스의 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관해 연일 기사를 쏟아냈다.

[포츠머스! 그들의 비상은 어디까지?]

[역사상 최강의 팀이 될지도.]

[과연 포츠머스는 태양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이카루스가 될 것인가?]

[전관 우승이 코앞에 다가왔다.]

[잉글랜드 왕실, 성소하 감독에게 Knight Bachelor 서훈을 진지하게 검토 중.]

연일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물론, ‘전관 우승’이란 전설을 넘어 신화적인 업적을 달성한다면 현실로 변할 이야기였긴 했다.

하지만 소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제 프리미어 리그의 우승컵을 들어 올릴 차례다.”

남은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단 2경기.

이 2경기를 승리로 장식한다면.

프리미어 리그의 우승이었다.

< 286화. 그 끝에 서서.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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