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가시밭길. (9) >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 앞서, FA컵 결승전 상대가 정해졌다.
[토트넘 홋스퍼! 맨체스터 시티를 2-1로 꺾고 FA 컵 결승전에서 포츠머스와 만납니다!]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이정재.
그리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이 결승전에 올라왔다.
토트넘의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세대였고, ‘무관 귀신’이란 굴욕적인 멍에를 떼어내기 위해 바짝 독이 올라온 상태다.
원래 세계였다면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까지 갔던 전혀 만만치 않은 팀!
20개의 프리미어 리그 팀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팀이었다.
최상급 팀들과의 대결에서는 승리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가 승리를 가르는 척도였으니까.
포츠머스로서는 이래저래 정말 까다로운 상대를 만났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FA 컵 결승전은 아직 한 달이나 남은 먼 훗날의 이야기.
세간의 시선은 나중에 찾아올 축제보다 벌써 코앞까지 파고든 축제에 눈을 돌렸다.
[포츠머스. VS 바이에른 뮌헨.]
1년 전, 챔피언스 리그, 지옥의 조에서 엄청난 명경기를 만들어냈던 두 팀의 리턴 매치!
복수를 꿈꾸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포츠머스.
아직 결승전 무대는 이르다며 신입을 혼내줄 원래 최강자, 바이에른 뮌헨.
이 둘의 대결은 시작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사람들을 들뜨게 했다.
심지어 무대도 보통 무대가 아니다.
작년에는 고작 ‘조별리그’였다면 올해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달린 4강, 준결승전이다.
무게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느낌만 비교해보자면 로또 4등과 로또 1등의 차이 정도?
비교조차 성립이 어려웠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바이에른 뮌헨의 근소 승리로 모였다.
-큰 경기다. 큰 경기에는 예로부터 큰 팀이 저력을 발휘해 승리했다.
-모든 선수가 멀쩡하다면 50대50이겠지만, 포츠머스는 세 개의 날카로운 칼날 중 하나인 모하메드 살라를 잃었다.
-JEM 라인의 붕괴는 포츠머스의 균형을 앗아갈 것. 그 틈을 바이에른 뮌헨이 놓칠 리 없다.
-포츠머스는 챔피언스 리그의 토너먼트에서 처음으로 1차전을 홈에서 맞이한다. 이는 16강과 8강에서 보여줬던 운영을 많이 꼬아야만 하는 원인이 될 거다.
-바이에른 뮌헨도 리그 우승을 향한 다툼이 치열하지만, 포츠머스보다는 여유가 넘친다.
타당한 의견이었고 여러모로 포츠머스에 힘든 경기였다.
오죽했으면, 전 세계 축구 너튜버 중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나단 필립스도 우려를 표했다.
“어려운 경기 흐름이에요. 포츠머스는 모하메드 살라를 잃었고, 승부를 가를 2차전은 원정에서 치릅니다.”
5,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나단 필립스와 톰 힉스!
5,000만 명.
대한민국의 인구수 정도 된다.
정말 어마어마한 구독자 숫자에 벌어들이는 금액도 상상을 초월할 거다.
하지만, 톰 힉스는 여전히 영국의 펍에 틀어박혀 술만 마실 거 같은 뚱보였고 나단 필립스 또한 여전히 삐쩍 마르고 피부에 윤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해골바가지였다.
분명 한해에 수십, 수백억을 벌어들이건만.
암만 창업을 도와준 포츠머스 측에 수입 일부를 내더라도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다.
덕분에 인기는 더욱 많아졌지만, 작정하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린 건 아니다.
그냥 이들은 너무 소시민이었다.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한 것도 그냥 포츠머스가 좋고 축구가 좋아서 했을 뿐.
돈이 있어도 쓸 줄을 몰랐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입을 기부하는 그들이었고 아직도 눅눅해진 감자튀김에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고락을 털어내는 소시민이었다.
물론, 그래도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액수가 통장에 쌓여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 소시민적인 초대형 너튜버들은 인기만큼이나 예측이 정확하기로 소문났다.
아니, 정확히는 예측이 정확했기에 인기가 많아졌다.
이 때문에 특집방송으로 마련된 나단 필립스의 예측 쇼는 엄청난 인원이 몰려와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나단 필립스 씨는 포츠머스의 기적이 여기서 멈출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톰 힉스가 능글맞게 묻자 나단 필립스는 묵묵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거침없이 예측하던 저이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어렵습니다. 팬심으로 보자면 포츠머스가 이겼으면 좋겠지만요.”
“쉽게 말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치열할 거다? 이거란 말씀이십니까?”
“제 생각은 그래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단 필립스.
사실 이 정도도 포츠머스 쪽에 굉장히 크게 손을 들어준 편이다.
이미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객관적인 분석을 들고나와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으니까.
혹자는 ‘바이에른 뮌헨, 나와!’라고 외친 소하가 성급했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래저래 포츠머스의 서포터가 맞긴 한가 보군요. 나단 필립스 씨도 말입니다.”
“···음. 단순히 팬심 때문에 포츠머스의 손을 들어준 건 아니에요.”
“그럼 무언가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성소하 감독이라면 뭔가 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긴 합니다.”
톰 힉스는 소하의 이름을 언급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남자, 성소하!
사실 포츠머스의 승리를 예측할 때, 그냥 성소하라는 세글자만 내밀면 다른 근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단어.
하지만 나단 필립스는 마법 같은 단어 때문임을 부정했다.
“아니요. 아, 그렇다고 성소하 감독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성소하 감독이 뭘 쥐고 있냐가 제 결정의 원인이에요.”
“성소하 감독이 쥔 무언가? 그게 뭡니까? 허공에 삽질하는 소리 좀 그만하고 속 시원하게 말씀해보십시오.”
“···오늘 아침에 먹은 치즈버거가 부족했나요? 꽤 예민하시군요···. 큼큼. 일단 말하기에 앞서 성소하 감독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고 싶어요.”
“뭔가요? 전술의 천재?”
“아니에요.”
침착하게 손을 내저은 나단 필립스는 곧이어 폭탄선언을 했다.
“성소하 감독은 단언컨대 전술의 천재가 아닙니다.”
“···?!”
나단 필립스의 말이 떨어지자 톰 힉스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미친 듯이 채팅을 치며 폭주했다.
-노망났나?
-치매 아니야?
-성소하가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인데? 나단 필립스의 신통력도 끝났네.
-정신 놨나.
-????
수많은 사람의 당혹감과 분노, 그리고 의문이 들이닥쳤지만, 나단 필립스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펩 과르디올라나, 아리고 사키, 리누스 미헬스 같은 전술적인 천재가 아니란 말이에요.”
“···.?”
“그는 새로운 전술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니까요. 그저 기존에 존재하던 전술을 능수능란하게,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잘 사용했을 뿐이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성소하 감독은 ‘전략의 천재’임은 분명합니다.”
“뭔 개소리입니까? 전술의 천재는 아니지만, 전략의 천재라니요?”
자기도 모르게 톰 힉스는 거칠게 나단 필립스를 압박했고,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분위기에 웃음이 피어났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교통정리를 한 격!
과연, 5,000만 너튜버의 본능은 범인과는 달랐다.
이를 눈치챈 나단 필립스는, 톰 힉스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감사의 눈짓을 건넸다.
“큼큼. 일단 전략과 전술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쉽게 설명해서 등산에 비유하자면, 전략은 정상에 등반하기 위한 등산코스를 정하는 일이에요.”
“전술은요?”
“그 등산코스에 있을 난코스를 돌파하는 다양한 방법이에요.”
요컨대 이거다.
전략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 계획.
전술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개별적인 단계와 행동.
흔히 말하는 큰 그림이 이 전략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아···! 확실히 그럴싸합니다?”
이제야 깨우친 톰 힉스는 또다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간 소하의 모습을 보자면 전술보다는 전략의 천재가 맞았다.
지난번 리그 규정 제정 사건 때도 한몫 거들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 톰 힉스다.
소하가 신호를 주자마자 가장 먼저 나서며 너튜브를 이용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 사건의 전모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정황상 성소하 감독의 마술쇼였지.’
난데없고, 미약한 몇 줄의 비판적인 글부터 시작되어 잉글랜드의 왕자까지 움직인 대사건!
그 사건을 떠올려보자면 전략의 천재라는 말이 더욱 어울렸다.
소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소하가 가진 능력이라고는 ‘회귀’ 단 하나였을 뿐.
과거로 돌아왔다고 지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미래를 보는 눈’이라는 회귀자의 특권은 전략의 천재가 되기엔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었다.
이미 미래에 뭐가 일어날지 다 안다.
즉, 목표의 달성을 위한 계획수립에 압도적인 유리함을 가졌다는 뜻이다.
하여튼, 나단 필립스의 주장에 톰 힉스만이 공감한 건 아니었다.
깜짝 발언 때문에 분노한 시청자들 또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확실히.
-있던 전술을 마음껏 쓰는 능력도 전술의 천재가 아닌가?
-그렇다 해도 전술적으로 획기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팀을 성장시킨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지없는 천재야.
-그러니까 전략의 천재지.
여론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그런데도 기뻐하는 기색 없이 똑같은 표정을 유지하는 나단 필립스가 부연 설명에 들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성소하 감독이 칼을 가는 느낌이 들어요.”
“칼을 간다?”
“톰 힉스 씨. 성소하 감독이 굳이 어려운 싸움을 일부러 하는 허술한 인간이던가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사적으로도 상당한 친분을 가진 톰 힉스는 고민 없이 바로 응답했다.
톰 힉스가 아는 소하라는 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었다.
팀의 승리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게다가 그냥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집요하고 독한 인간이었다.
‘오, 500만 구독자 축하요. 그런 의미에서 밥 한 끼 쏘시죠?’
‘그럼요.’
‘오. 1,000만 대기업! 오늘은 고대 로마의 정취가 느껴지는 음식이 당기네요. 가자!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조, 좋습니다.’
‘2,000만! 와우! 프랑스로 가자!’
‘···.’
‘이야 3,000만이네요. 이럴 땐 그리스 음식이 입맛을 제대로 달궈주죠.’
‘···?’
‘5,000만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5,000만 국민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한식이나 먹으러 가죠.’
‘···?!’
톰 힉스는 과거를 떠올리며 몸을 조금 떨었다.
그동안 창업에 도움을 준 것에 보답하라면서 얼마나 많은 밥을 사줬던가!
처음에는 십만 명 단위로,
그 이후에는 백만 명 단위로 꼬박꼬박 개근 중인 인간이 소하다.
버는 수입만 해도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인 인간이었거늘.
도대체 왜 항상 돈이 없어서 얻어먹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한 인간임에는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
톰 힉스가 인상을 쓰자 나단 필립스도 과거가 떠올랐는지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하지만 곧 안색을 회복한 나단 필립스는 헛기침을 하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큼큼. 하여튼,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굳이 바이에른 뮌헨을 지목했어요.”
“이상합니다.”
“네, 이상해요. 정말 이상해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포르투가 훨씬 쉬운 상대 아닙니까? 그리고 성소하 감독은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다 계획이 있거든요.”
“맞습니다. 이번 ‘프래튼 파크의 기적’에서도 그런 면모가 보였습니다.”
프래튼 파크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의 내막은 모조리 밝혀진 상태다.
일부러 첼시와의 경기를 통해 분위기를 끌어올려 바르셀로나에 불편한 환경을 만들었던 놀라운 솜씨!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고 소하의 명성은 더더욱 드높아졌다.
“경기 결과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제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뭡니까?”
“성소하 감독은 바이에른 뮌헨을 잡을 계책이 있다는 거죠. 아마, 그는 이미 8강부터 4강까지의 4경기를 하나로 묶어서 내려다보고 있을 거예요.”
“정말 대단한 시야입니다.”
“그래서 그가 전략의 천재라는 거에요. 이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이 유리하지만,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거고요.”
나단 필립스는 여느 때처럼 조용하게 말을 끝냈다.
그로서도 소하의 필살기가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경기를 준비하면서 그들의 방송을 슬쩍 보던 소하는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저 빼빼 마른 아재는 날 너무 잘 알고 있어. 이래서 눈치 빠른 아저씨는 문제라니까···. 벌로 밥이나 한 끼 더 얻어먹어야겠어.”
그렇다. 소하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 또한 독한 인간이었다.
저 마른 사람에게 또 밥을 뜯으려고 하다니.
그날 밤, 나단 필립스의 잠자리가 뒤숭숭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283화. 가시밭길. (9)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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