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가시밭길. (8) >
소하의 발칙한 도발에 자극받은 바이에른 뮌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승! 바이에른 뮌헨이 4강전에서 포츠머스와 맞붙게 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포츠머스와 대결을 펼치네요. 그때는 조별리그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4강! 즉, 준결승전입니다! 무게가 달라졌어요.]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의 재대결은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상대 전적은 포츠머스의 열세다.
1무 1패.
하지만, 1년 전의 포츠머스와 현재의 포츠머스는 위상이 전혀 다른 팀이었다.
이제 막 대륙대회에 올라온 팀.
유로파 우승까지 하고 이번 시즌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팀들을 연속으로 분쇄한 팀.
와닿는 느낌이 180도 달랐다.
마지 페더급 아마추어에서 빌빌거리던 복서가 헤비급 챔피언을 노리는 거물로 급성장한 느낌이다.
덕분에 전 세계의 축구계는 벌써 포츠머스와 바이에른 뮌헨의 리턴매치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편, 반대쪽 4강전 또한 많은 사람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맨체스터 시티 VS 리버풀]
원래의 세계였다면, 결승전에서 토트넘과 리버풀이 만났겠지만, 세계선이 많이 꼬였다.
토트넘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패배하며 8강에서 탈락했고, 리버풀은 아약스를 만나 올라갔다.
대한민국의 이정재 선수를 응원하는 한국 팬들은 아쉬워했지만, 잉글랜드 축구계는 축제였다.
-4강에 잉글랜드 팀이 4개나 있어.
-이래저래 이번 시즌 유럽 챔피언은 잉글랜드에서 배출하겠구만···.
-세계 최고의 리그.
-모처럼 잉글랜드 팀끼리 결승전 가자.
-스페인팀 다 어디 갔지?
4개의 팀 중에서 3개의 팀이나 배출하자 매우 신이 났다.
하지만, 소하의 표정은 즐거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매우 험악했다.
“흠···. 리버···풀?”
세상천지에 무서운 거 하나 없는 소화였거늘. 리버풀이란 이름은 왠지 모르게 서늘함을 안겨주었다.
만날 때마다 이기지 못하는 통에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이란 감정이 생겼나 보다.
“차라리 맨시티가 좋을 거 같은데···. 난 오늘부터 시티를 응원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바이에른 뮌헨에게 나와서 다시 한번 붙자고 소리치던 패기가 싹 사라졌다.
물론, 상대 전적에서 훨씬 앞서는 맨체스터 시티가 상대하기 좋은 건 맞긴 했다.
그래도 소하가 제법 리버풀과 클롭 감독을 두려워서 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6년 내내 성공 가도만 달렸지만, 리버풀에게는 항상 실패했으니까.
1승 2무 4패란 상대 전적은 그냥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인간 상성!
최악의 상황에는 5패째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될지도 몰랐고,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하여튼, 이래저래 소하가 이끄는 포츠머스의 6년 차는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프래튼 파크에서 비상식의 기적을 일구어낸 포츠머스는 곧바로 리그로 돌아왔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4차전에 앞서 포츠머스가 꺾어야 하는 팀은 두 팀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35라운드, 웨스트햄.
프리미어 리그 36라운드, 울버햄튼.
두 경기 모두 홈경기였기에 상당히 유리했지만,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1위, 포츠머스, 21승 12무, 1패 75점.
2위, 리버풀, 23승, 5무, 6패, 74점.
3위, 맨시티, 21승, 7무, 6패, 70점.
4위, 첼시, 19승, 9무 6패, 66점.
5위, 맨유, 17승, 12무 5패, 63점.
6위, 토트넘, 19승 5무 10패, 62점.]
리버풀이 맹렬하게 따라왔기 때문이다.
포츠머스보다 승리를 더 많이 챙긴 리버풀은 승점 74점 차이로 턱밑까지 따라왔다.
남은 일정 또한 리버풀도 여유 있었기 때문에 ‘전승’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실수로 비기거나, 정말 최악인 상황을 가정해, 남은 경기에서 져 버린다면 진짜 끝이다.
요컨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서.
이를 모를 리 없는 소하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최고의 선발진을 내보냈다.
비록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때문에 상당히 지쳐있었음에도 말이다.
[성소하 감독이 리그 우승을 위해 드디어 마지막 달리기를 시작하는군요!]
[그간 같은 선발명단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똑같네요. 비록 대형은 달라졌지만요. 델리 알리 선수는 2경기 연속 벤치로 시작입니다.]
드디어 소하가 로테이션 정책을 포기하고 전력투구를 시작했다.
그간 부상을 피하고자 무한으로 가동했던 팀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렇다면, 결과는 쉬이 예상되었다.
암만 지쳐있다고 하더라도 3골 차이로 지는 상황을 뒤집어버린 선수들이다.
그것도 그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즉,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제법 훌륭한 팀이라고 할지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포츠머스에는 한 시즌 내내 선발로 뛰어도 지치지 않는 야생마가 푸르릉거렸다.
[조쉬 킹! 이번 시즌, 네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4-0! 포츠머스의 완승!]
[이젠 득점왕이 확정이에요. 에링 홀란드도 20골을 넣으며 날뛰었지만, 조쉬 킹은 이미 30골이에요!]
34라운드에 30골을 넣고 말았다.
이번 시즌 조쉬 킹의 프리미어 리그 출장은 교체 포함, 30경기.
경기당 1골이라는 미친 득점이다.
컵대회와 챔피언스 리그까지 합치면 이미 44골을 넣었다.
이미 포츠머스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하의 아버지를 이미 뛰어넘었다.
“···이번 시즌은 내 패배를 선언한다.”
엄청난 승부욕을 지닌 에링 홀란드마저도 백기를 들었다.
그도 모든 경기를 포함에 29골을 넣었건만. 십 대 선수로서는 믿기지 않는 활약이었음에도 전성기에 들어선 조쉬 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제 남은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3경기일 뿐. 조쉬 킹이 과연 프리미어 리그 최다 골 기록인, ‘앤디 콜’과 ‘앨런 시어러’의 34골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쯧. 많이 컸어.”
소하 또한 대단한 기록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천덕꾸러기가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인 앤디 콜과 앨런 시어러에 비견될 만큼 성장하다니.
이게 장성한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이번 대승으로 포츠머스는 리그 우승에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만약 경기가 꼬여 승점이 동률이 된다 해도 득실 차에서 엄청나게 앞서나갔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득점까지 비교해도 리버풀은 포츠머스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기분 좋은 승리였다.
이제 남은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단 3경기일 뿐. 포츠머스의 역사적인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코앞까지 다가온 3월의 마지막 주였다.
***
포츠머스의 3월 마지막 일정은 프리미어 리그 36라운드, 울버햄튼과의 일정이었다.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로 홈경기였고, 어렵지 않은 포츠머스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포츠머스의 홈구장은 정말 원정팀의 지옥이었으니까.
그리고 포츠머스는 이런 세간의 기대에 열렬히 부응하며 리그 우승을 향해 한 발짝 더 내디뎠다.
[3-1, 깔끔한 승리입니다! 이제 두 경기 남았어요! 포츠머스의 위대한 역사가 단 두 경기 후에 완성됩니다!]
[강합니다! 강해요! 리버풀이 승점 1점 차이로 미친 듯이 쫓아오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2경기 연속으로 쉬고 온 델리 알리가 종횡무진,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상대만 보면 승리가 어렵지 않은 경기였다. 하지만, 포츠머스같이 경험 없는 팀이 맹렬한 추격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 대단했다.
보통 추격당하는 팀이면 자기도 모르게 조급해져서 실수를 연발하지 않던가.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를 뒤집어보면 이런 경우는 대단히 많았다.
그러나 포츠머스는 늘 하던 대로 약자 멸시를 제대로 보여줬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물론, 이와 같은 포츠머스의 비상식적인 행보에는 소하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였다.
“뒤지기 싫으면 알지?”
“···.”
그렇다. 이미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한 경기 한 경기를 매번 추격당하고 있었다.
감독이라고 부르고 사신이라고 쓰는 광인이 가시 달린 채찍을 들고 따라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리버풀이 암만 쫓아와도 무서울 리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공갈 젖꼭지를 물고 아침 인사를 하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포츠머스는 점점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컵에 더더욱 다가가고 있었고, 때맞춰 희소식이 들려왔다.
“헤이! 아임! 백!”
코뼈가 결딴났던 마리오 발로텔리가 부상 병동에서 벗어나 선수단에 다시 합류했다.
왠지 모르게 전보다 깔끔하고 높아진 콧대가 눈에 띄었지만, 모두가 애써 모른 척해줬다.
이것이야말로 동료애가 아닐까 싶다.
“잘 돌아왔다.”
물론 소하도 마리오 발로텔리의 부상복귀를 매우 반겼다. 비록 몇 경기 남지 않았지만 모두 큰 경기지 않던가.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마리오 발로텔리 같은 선수의 복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었다.
“헤이, 보스. 그나저나 한 가지 더 좋은 소식이 있다고.”
“···뭔데?”
소하는 마리오 발로텔리가 씨익 웃자 괜스레 불안해졌다.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졌다고!”
“응?”
“경기장에 뛸 수는 있지만, 안면 보호대는 착용하는 게 좋데. 그러니까 나도 가면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거지.”
“그거였냐···.”
절로 한숨이 나오고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코뼈가 작살이 나도, 팀이 역사적인 결과물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마리오 발로텔리는 마리오 발로텔리였다.
“뭐···. 축하는 할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은 소하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축하를 건넸다.
이래저래 사기는 드높아 보였으니까.
참으로 관리하기 어려우면서도 쉬운 선수였다.
아쉽게도 이렇게 희소식만 연이어 날아온 것은 아니었다.
복과 화는 같은 문으로 들어오는 법.
울버햄튼과의 경기가 끝나고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모하메드 살라가 3주 정도···. 결장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
팀의 핵심 자원인 모하메드 살라의 부상이었다. 부상 부위는 발목. 훈련 도중에 당한 부상이라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제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이 코앞인데, 모하메드 살라가 없다니. 이건 너무나도 큰 전력손실이다.
“다만···. 진통제 투여를 하면 4강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팀 주치의의 의견에 소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안 돼요. 진통제 빨면서 뛰면 선수 생활 종 치는 거 몰라요? 그리고 3주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뛸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다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문제였다.
“하여튼, 앞으로도 진통제는 절대 안 되니까 굳이 말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팀 주치의는 쉽게 물리쳤다.
그러나 선수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
-똑똑.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늦은 저녁.
대부분의 선수가 귀가한 늦은 시간에 모하메드 살라가 소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가 눈에 띄는 모하메드 살라의 굳게 다문 입술을 바라본 소하는 다짜고짜 거칠게 축객령을 내렸다.
“안 돼. 돌아가.”
단박에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봤다.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을 뛰기 위해 진통제 투여를 허락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감독님.”
어지간한 선수들이라면 단박에 꼬랑지를 말고 사라졌겠지만, 모하메드 살라는 그러지 않았다.
평소 감독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프로의식이 철철 넘치는 모하메드 살라가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농담하지 말라고 핀잔을 줬을 거다.
“전···. 경기에 뛰고 싶습니다.”
소하가 무섭게 노려봤지만 모하메드 살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탁했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안 돼. 그리고 모르는 거냐? 진통제 맞고 뛰면 전설적인 명의가 널 봐줘도 결승전은 못 뛰어.”
“압니다. 그래도···.”
대단한 결심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선수도 운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다.
그런데, 모하메드 살라는 결승전에 뛰지 못하더라도 팀을 위해 희생하고 싶다고 말한 거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팀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보통 선수였다면 얌전히 쥐 죽은 듯이 숨죽이다가 꿀만 취했을 텐데.
평소 별로 말이 없던 모하메드 살라도 명실상부한 포츠머스의 선수였나보다.
“···마음은 고맙다. 그러니 기다려라.”
“···.”
“우릴 믿어. 우린 네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무너질 정도로 약한 팀이 아니야.”
“···.”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너의 동료들을 떠올려봐라. 질 거 같냐?”
모하메드 살라는 눈을 질끈 감고서 그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조쉬 킹, 리그에서만 31골을 때려 박은 희대의 골잡이. 그의 재능을 볼 때마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에링 홀란드,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축구 괴물. 자신보다 8살이나 어림에도 이미 세계 최고의 문을 두들기는 역대급 공격수. 그를 볼 때마다 노력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동료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도봉산, 델리 알리, 칼빈 필립스, 데클란 라이스, 앤디 로버트슨, 니콜라 바렐라, 케빈 도슨, 후뱅 디아스 등등.
이외에도 후보로 분류되는 선수들 또한 재능과 실력이 차고 넘쳤다.
그리고 그들을 떠올리자 어느새 달아올랐던 마음이 차갑게 식었음을 느꼈다.
“어떠냐? 질 거 같냐?”
“아니요.”
모하메드 살라가 편안한 얼굴로 단호히 대답하자 소하는 씨익 웃었다.
“그럼 믿고 기다려라.”
“네.”
주저 없이 자리를 뜨는 모하메드 살라의 등을 바라보는 소하의 입가에는 어느덧 훈훈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 팀은 강했다.
이 팀은 소하가 바라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팀이었다.
서로가 자신보다 서로를 아끼며 희생을 주저 없이 결정하는 구단!
“결승전은 우리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없이 바라던 꿈이었기에, 질 자신이 없는 소하였다.
< 282화. 가시밭길. (8)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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