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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81화 (281/306)

< 281화. 가시밭길. (7) >

전반전 이른 시간에 포츠머스가 한 골 따라잡자, 바르셀로나의 발베르데 감독은 크게 성화를 냈다.

“이런 빌어먹을 광대 자식!”

거칠게 콧김을 내뿜는 발베르데 감독은 드디어 깨닫고 말았다.

포츠머스의 4-2-4 대형이 사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방에 4명의 공격수를 배치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공격수가 존재하지 않는 가짜공격수 전술이었다.

이건, 그래, 기만이자 사기였다.

세상천지를 뒤져봐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공격수 두 명과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윙포워드 한 명에게 가짜공격수 역할을 부여하는 감독은 없었다.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됐다.

적당한 패스만 찔러 넣어줘도 골을 양산하는 선수들을 두고 뭣 하러 가짜공격수 역할을 맡기겠는가?

또한, 그 세 명을 미끼로 던져두고 요즘엔 중앙에서 뛰는 도봉산에게 특공을 맡길 줄이야.

속임수 속의 속임수가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발베르데 감독을 포함한 그 누구도 가짜공격수 전술이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속을 수밖에 없었다.

조쉬 킹, 에링 홀란드, 모하메드 살라의 이름을 빌린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덕분에 발베르데 감독은 별생각 없던 소하에 대한 분노가 크게 치밀어올랐다.

“사람들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군! 저건 감독도 뭣도 아니야! 그냥 양아치로 살아온 야바위꾼이지!”

사나운 눈길로 고개를 틀어 소하의 옆모습을 노려보는 발베르데 감독!

당연히 소하가 자신의 험담과 멸시 어린 눈길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히죽.

굳이 반응해서 마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냥 하회탈 같은 눈웃음과 장난의 신, 로키같이 말려 올라간 입꼬리만 만들면 그만이었다.

“저, 저···!!”

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옆모습에 발베르데 감독의 혈압이 치솟아 올랐다.

아주 그냥, 피가 거꾸로 솟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저 얄미운 얼굴에 철권을 때려 박고만 싶었다.

“후우···. 후우···.”

발베르데 감독은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래, 일단 품위 없는 야바위에 사기를 당했지만, 아직은 유리한 상황이지 않던가. 그것도 아주 많이.

이 분노는 이 경기를 승리로 이끌면 자연스럽게 승자의 우월감으로 바뀔 터.

침착함을 되찾고 선수들을 다독이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기도 모르게 그가 자랑하는 선수들에게 심어진 공포라는 씨앗이 슬슬 발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

도봉산의 전반전 초반, 이른 선제골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당장 절망에 빠져 완전히 사기가 날아갈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작은 걱정이었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작은 흔들림이었다.

그러나 방심하는 마음 하나 없던 철통같은 마음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해서,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다급해졌다.

자신들이 아직 2골 차이로 앞서나가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급해졌다.

게다가, ‘혹시?!’라는 생각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만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프래튼 파크를 찾은 열렬한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에게도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전자가 부정적인 감정이었다면 후자는 긍정적인 감정!

이미 이상한 공간을 만들어냈던 서포터들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졌다.

“가즈아! 포츠머스!”

“이건 된다! 할 수 있다!”

이쯤 되자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더더욱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었고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었다.

[포츠머스가 거침없이 바르셀로나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후반 30분, 단 한 개의 슛도 시도하지 못한 바르셀로나지만, 포츠머스는 벌써 9개째에요!]

압도적인 경기력!

압도적인 격차!

포츠머스는 말 그대로 바르셀로나의 영토를 마구 유린하고 있었다.

정신적인 우위를 제대로 이용하는 포츠머스의 훌륭한 모습이었다.

물론, 단순히 정신론만으로 이 정도의 격차를 벌린 것만은 아니었다.

오늘 깜짝쇼의 주인공은 전방에 포진된 4명의 선수이었지만, 살림꾼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였다.

칼빈 필립스.

데클렌 라이스.

이 둘은 중앙 공격수의 도움이 있다 하더라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훌륭한 호흡입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완벽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어요.]

[칼빈 필립스가 올라가면 데클란 라이스는 내려가고, 데클란 라이스가 측면으로 빠지면 칼빈 필립스가 어느새 그 공간을 메꿔줍니다.]

엄청난 활동량으로 중원을 꽉 틀어잡았다. 비달과 쿠티뉴라는 대단한 선수들을 완전히 제압하며 포츠머스의 전방에 힘을 더해줬다.

이렇게 중원에서 완전히 밀리자, 리오넬 메시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중앙으로 가야 하나?’

바르셀로나의 패턴 중 하나였다.

우측면의 리오넬 메시가 중앙에 자리를 잡으며 경기를 만들어가는 필살의 패턴.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앤디 로버트슨의 존재였다.

‘이 녀석···. 뭔가···. 이상해···.’

이 스코틀랜드의 촌뜨기같이 생긴 선수는, 분명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장소는 자신이 아닌 저 앞의 전방이었다.

“···.”

리오넬 메시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묘한 방치플레이였다.

보통 자신을 상대하는 선수들은 한 한순간도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았거늘.

굉장히 이상했기에 두려웠다.

‘이건 공갈·협박이다···.’

판단력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인 리오넬 메시는 앤디 로버트슨이 외치는 무언의 협박을 바로 이해했다.

‘내가 중앙으로 이동한다면 자신은 그냥 앞으로 내달릴 거라는 협박···!’

만약, 앤디 로버트슨이 전방을 향해 달려간다면 정말 큰 일이었다.

이미 홀로 도봉산을 막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모두 하는 중인 세르지 로베르토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1:1도 지는 상황에서 2:1이 된다?

앞날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서 리오넬 메시는 측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세르지 로베르토가 흠씬 두들겨 맞는 꼴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고, 중앙이 완전히 점령당한 꼴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팀은 비상식적이야···.’

십 년이 넘는 축구 선수 생활 동안 이렇게 이상한 팀은 처음이었다.

세상 그 어느 팀도 자신을 방치하고 공격할 거라고 협박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포츠머스란 팀은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갑질을 하며 배 째라 식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게 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리오넬 메시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정말 우리가 지는 건가?’

드디어 그 리오넬 메시의 마음속에도 불안감이 생겼다.

이에, 포츠머스는 곧바로 단순한 불안함이 아닌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조쉬 킹!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압박을 힘으로 떨쳐냈습니다!]

[페널티박스 밖이지만 슛을 하기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생겼어요! 여기서 가만히 있을 조쉬 킹이 아니죠!]

한껏 들뜬 잉글랜드 해설과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귀를 거칠게 긁었다.

‘안 돼···!’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프래튼 파크를 찢어발기는 폭음이 먼저 울려 퍼졌다.

-쾅!

조쉬 킹의 성명 절기!

맞고 죽어라 슛!

엄청난 힘 덕분에 회전조차 걸리지 않은 조쉬 킹은 슛은 빨랫줄처럼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틱!

방향이 제법 정면이라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켄 골키퍼 손으로 쳐내긴 했다.

하지만 회전조차 걸리지 않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공은 인간의 손목만으로 막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철써어억!

골키퍼의 손을 통과한 조쉬 킹의 슛은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 골! 골! 포츠머스의 조쉬 킹! 왜 자신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지 제대로 증명합니다!]

[해냈어요! 전반 종료 직전, 조쉬 킹이 한 골 더 따라잡는 골을 때려 넣었습니다! 이제 한 골 차이예요! 기적이 코앞까지 다가왔어요!]

“우랴아아아아압!”

조쉬 킹 특유의 기합은 이제 ‘혹시?’가 아님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

2-0으로 전반전을 마친 포츠머스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뿜으며 후반전에 돌입했다.

후반전 또한 경기의 양상은 비슷했다.

아니, 전반전보다 더욱더 포츠머스가 바르셀로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 너무 밀리는데요? 지금 이대로 휩쓸리면 안 돼요!]

[아직도 굉장히 유리한 상황입니다. 한 골만 넣어도 포츠머스는 세 골이나 넣어야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들도 알고 있었고 발베르데 감독도 아는 사실이었다.

“수세에 몰리지 말고 공격하라! 한 골만 넣으면 다 촌극이다!”

당연히 전반전 종료 후의 휴식 시간에서 공격을 강력히 주문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마음은 꺾여버렸다.

완벽하게 유리했던 경기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과 공포에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몇몇 선수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자책할 정도였다.

소하가 심어놓은 공포라는 씨앗이 제대로 장성해 거대한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린 격이었다.

바르셀로나로서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하지만 포츠머스로서는 길몽 그 자체였다. 꿈에서 조상님이 등장해 로또 번호를 알려준 느낌이었다.

“자, 이제 끝내자.”

이 모든 사실을 조장하고, 누구보다 잘 꿰뚫어 본 소하는 진득하게 썩은 미소를 지었다.

광대가 저 하늘의 태양에 닿을 만큼 치켜 올라갔다.

어찌 이리도 잔망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가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이렇듯 비상식적으로 치켜 올라간 광대였지만 한 번 더 치켜 올라갔다.

소하의 광대를 밀어 올려준 선수는 바로, 금발 괴물, 에링 홀란드였다.

-쉬리리리릭.

이젠 완전히 세르지 로베르토를 장난감 취급하는 도봉산!

그가 또다시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을 가지고 놀았고 멋진 크로스를 올렸다.

“우라!”

에링 홀란드가 뛰어올랐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랑글렛과 피케를 공중에서 제압하는 저 모습을 보라!

“디카프리오보다 잘생겼어!”

소하에게는 그 어떤 전설적인 미남보다 잘생겨 보였고, 마무리는 더욱 잘생겼다.

-텅!

남들보다 한 뼘 이상은 높은 위치를 점한 에링 홀란드는 그대로 헤더를 골로 연결했다.

3-0!

드디어 동점이었다.

후반 25분경 기어코 따라잡았다.

[해냈습니다! 맙소사! 오 신이여! 포츠머스가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어요!]

[이건 말도 안 돼요! 이건 정말 말도 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를 유린하고 겁박하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으하하하핫!”

광소를 터뜨리며 양팔을 쭉 뻗고 십자가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이는 에링 홀란드!

시조새가 부활한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왔지만 소하에게는 아니었다.

“이게 타이타닉이고! 이게 명작영화고!”

전설적인 명작,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떠올리는 소하!

드디어 미쳐버렸나 싶었지만, 지금, 이 프래튼 파크에서는 모두가 같은 장면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

이 경기가 종합 스코어 3-3까지 간 순간, 이미 경기는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가뜩이나 무너져내리던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완전히 사기가 꺾였고, 포츠머스의 기적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역사에 영원히 남을 비상식이 일으킨 기적의 마무리를 장식한 선수는 모하메드 살라였다.

-뻥!

마음이 완전히 꺾인 조르디 알바를 잔인하게 짓밟은 모하메드 살라!

이어서 피케까지 녹여버리며 낮고 빠른 땅볼 슛을 내질렀다.

-철썩.

슈테켄 골키퍼가 몸을 던져봤지만, 미약한 발버둥이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이건, 이건 꿈입니다! 이건 전설입니다! 이건! 한편의 판타지 소설입니다!]

[포츠머스가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후반 40분, 기어코 경기를 뒤집어냈어요! 역사에 남을 명경기를 써 내립니다!]

기적.

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였다.

혹은, 마법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으아아아!”

고개를 떨군 리오넬 메시의 앞에서 ‘이집트 메시’ 모하메드 살라가 울부짖었다.

격정에 가득 차 상의를 벗어 던진 모하메드 살라!

주저함이 없이 뜨거운 용광로 같은 관중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오오오오!”

“살라! 살라! 살라!”

“넌 최고야! 너희 최고야!”

관중석에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얼굴이 시뻘게진,

눈물을 펑펑 흘리는,

미친 듯이 악을 지르는,

모든 관중이 몰려들어 포효하는 살라와 포츠머스의 선수들과 부둥켜안고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포츠머스란 구단이 사라질 때까지.

아니, 축구라는 스포츠가 영원히 사라질지라도 끊임없이 회자할 경기의 끝이었다.

***

기록적인 승리를 거둔 포츠머스의 기자회견은 역사에 남을 만큼 뜨거웠다.

잔뜩 흥분한 잉글랜드의 기자들은 잔뜩 상기한 얼굴로 연이어 소하에게 질문을 퍼부어댔고 소하 또한 아낌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감독님, 마지막으로 4강에 임하는 각오를 듣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된 기자회견장에서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아직 포츠머스의 4강 상대는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포르투와 바이에른 뮌헨의 1차전 결과는 1-0,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

홈에서 간신히 승리한 결과였기에 누가 올라올지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하는 단상에서 벌떡 일어나 시건방진 표정으로 들어오라고 손을 까닥였다.

“바이에른 뮌헨, 나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

비상식적으로 시작된 경기를 마무리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비상식적인 퍼포먼스였다.

물론, 다시금 기자회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281화. 가시밭길. (7)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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