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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79화 (279/306)

< 279화. 가시밭길. (5) >

포츠머스가 바르셀로나에게 3-0으로 패배하자, 잉글랜드 축구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와···. 우린 아직도 스페인의 밑이었구나···. 그 포츠머스마저도 그냥 털려버리네.

-호날두가 사라져서 이제 우리가 세계 최고 리그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아직 메시까지 보내야 하는구나···.

-어나더 클래스. 포츠머스가 해트트릭을 허용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며?

-심지어 무득점으로 세 골 차 패배를 당한 것도 6년 동안 처음이래.

-게임은 끝났다. 곱게 리그 우승이랑 FA 컵 우승이나 대비하자.

각 리그의 1위이자 우승 유력후보들 간의 맞대결이었다.

즉, 리그를 대표하는 팀들의 대결이었다는 뜻이다.

또한 묘한 경쟁심을 가진 두 리그였기에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그래서 포츠머스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한 골이나 두 골까지는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건만.

세 골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는 일말의 희망마저 짓밟고 쓴웃음을 짓게 했다.

물론, 모두가 실망을 한 건 아니다.

잉글랜드에서 몇 없는 깨끗한 서포터,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린 할 수 있다. 아직 지지 않았어.”

“이 팀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팀이야. 난 믿음을 버리지 않아.”

“실망? 이미 우리 팀이 8강까지 진출했다는 것만으로 난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러니까 계속 응원할 거다.”

훌륭한 서포터들이었다.

보통 아무리 잘해도 조금만 못하면 바로 지적하고 헐뜯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었거늘.

그것도 냄비 기질이 유독 심하다는 축구 애호가들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내가 괜히 이 팀을 사랑하는 게 아니지···.”

서포터들의 무한에 가까운 사랑에 소하마저도 감동했다.

그 청아한 하늘을 뽐내던 그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처음 방문했던 프래튼 파크의 분위기는 한눈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도 똑같은 한결같은 사랑은 힘이 풀려 주저앉기 직전에도 서서 버틸 힘을 주었다.

“그러니까···. 나도 그 사랑에 보답해야겠지.”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받은 사랑에 대한 선물을 준비하는 소하. 그 선물의 정체가 승리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3-0으로 패배한 포츠머스의 다음 상대는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에서 맞붙는 첼시 FC였다.

2위 리버풀보다 겨우 승점 3점 앞서는 포츠머스였기에 어떻게든 승점이 더욱 간절한 상황. 그 중요한 상황에서 첼시 FC는 상당한 강적이었다.

그리고 리그 우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수문장이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34라운드, 첼시 FC.

35라운드, 웨스트햄유나이티드 FC.

36라운드,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37라운드, 카디프 시티 FC.

38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 FC.

첼시라는 구부능선만 넘으면 남은 상대는 모조리 할만한 팀이었다.

즉, 이번 첼시와의 경기는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경기!

그리고 첼시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다.

18-19시즌, 프리미어 리그는 포츠머스,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가 이미 1, 2, 3위를 예약한 상황이다.

이 말은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팀이 이제 한 팀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4위를 두고 싸우는 치열한 경쟁.

그 속에서 토트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같은 강호들을 이겨내기 위해선 포츠머스를 어떻게든 잡아내야만 했다.

[양 팀 모두 시즌 중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호사가들의 발언처럼, 34라운드에서 최고로 중요한 경기였고, 승부 예측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포츠머스가 첼시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줬긴 했지만, 최근 경기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3-0으로 탈탈 털린 팀의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지 않던가.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포츠머스의 약세가 예상되는 바였다.

[포츠머스는 선택해야 한다. 이미 끝난 챔피언스 리그를 위해 힘을 아낄 것인지, 현실을 봐야 할 것인지.]

[상식적으로는 이제 챔피언스 리그는 포기하고 리그에 집중해야만 한다.]

[괜히 힘을 아끼다가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칠 것.]

어려운 선택이었다.

바르셀로나-첼시-바르셀로나, 라는 4일 간격으로 치러지는 일정은 선택을 강요했다.

물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이미 탈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챔피언스 리그를 포기하는 게 맞다.

하지만, 소하는 여기서 승부수를 던졌고, 세간의 의문을 자아냈다.

[포츠머스가 대부분 비주전 선수들로 첼시를 맞이합니다!]

[GK: 페트르 체르.

LB: 로빈 고젠스.

CB: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CB: 아담 웹스터.

RB: 매듀 다이스.

DMC: 유리 틸레만스.

MC: 니콜로 바렐라.

MC: 델리 알리.

LM: 알랑 생막시맹.

ST: 존 말로리.

RM: 잭 해리슨.]

델리 알리, 한 명만을 제외하고선 모두 후보 선수들로 구성된 선발명단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선택이었다.

적당히 타협한 것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몰방했다고 선언하는 꼴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니, 이럴 거면 델리 알리도 후보로 돌리고 도봉산을 선발로 내놨어야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거의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꼴인데.

-이러다가 첼시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리그 우승도 날아간다고.

이래저래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모든 것을 다 받쳤다고 하기엔 델리 알리가 선발로 나온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델리 알리라면 이번 시즌 포츠머스의 핵심 선수이자 월드 클래스 선수가 아니던가.

그 선수를 이번 경기에 내보낸다는 뜻은 다음 경기에는 쓰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최소 3골 이상 넣어야 하는 경기에서, 공격력이 돋보이는 육각형 중앙 미드필더를 쓰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또 이상했다.

그렇다면 답은 결국 하나다.

-성소하 감독이 뭔가 꾸미고 있다···!

분명 무슨 꿍꿍이를 준비해놨다는 신호에 다시금 사람들이 미치게 만들었다.

이미 다 타버려서 재로 변한 경기라고 생각했거늘. 재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와의 일전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 포츠머스는 곧바로 첼시와 맞붙었고 나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포츠머스가 첼시와 2-2 무승부를 거둡니다! 정말 흥미진진한 경기였습니다!]

[첼시는 일단, 4위권을 지켜냈으며, 포츠머스 또한 승점 1점 차이로 선두를 유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포츠머스와 첼시, 양쪽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이래저래 시즌 마지막에 만나기엔 껄끄러운 상대였기에 전복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자세히 뜯어보면 포츠머스가 약간 더 이득을 챙긴 결과다.

선발의 대부분을 후보로 내보낸 경기에서 승점을 챙겨갔으니까.

만약 패배하기라도 했으면 정말 엄청난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이미 거의 끝난 챔피언스 리그 때문에 프리미어 리그의 우승을 놓치는 불상사!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뭐, 승점을 따냈으니까, 상관없지. 앞으로 남은 4경기를 모두 이기면 우승이다. 변한 건 없어.”

소하는 승점 1점 차이에 대해서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리버풀과의 승점 6점짜리 경기에서 졌을 때부터 우승으로 가는 길은 가시밭길로 변한 지 오래였다.

결국 승점 3점 차든, 1점 차든 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호기 넘치는 계획이었다.

“자···. 그럼, 기적을 보여줄 시간이다.”

일단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그렇다면 이제 계획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

“오오오! 리오넬 메시야!”

“부스케츠도 있어!”

“피케다! 오랜만에 피케가 잉글랜드도 돌아왔다!”

“쿠티뉴도 있다고.”

드디어 잉글랜드에 바르셀로나가 도착했다. 런던 공항을 통해 잉글랜드에 입국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들이 은은하게 입에 머금고 있는 미소는 ‘이미 4강전 진출은 우리의 것’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자, 보이냐?”

아침 훈련 시간에 커다란 텔레비전을 훈련장에 가져와 바르셀로나의 입국 장면을 틀어준 소하는 입술을 씰룩이며 으르렁거렸다.

“리오넬 메시라는 최고급 버스에 무임승차한 저 녀석들의 미소가 보이냐고!”

“···.”

소하가 버럭 소리쳤다.

단단히 뿔이 난 모습이었고, 이는 때아닌 입국 장면을 시청하던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 속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여름휴가를 나온 관광객이었다면,

이를 지켜보는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패배하면 사형당하는 검투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그저, 3-0으로 패배했을 때부터, 모두가 끝났다고 했을 때부터, 그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각오만 좋다고 좋은 결과까지 당연하게 오는 건 아니다.”

“···그렇죠.”

선수들은 소하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부분은 실력이 뒷받침될 때 도움이 될 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자의 대책 없는 각오만큼 가소로운 것이 없었다.

그래도 따로 투지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걸 파악한 소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우리가 3-0으로 뒤진 경기를 역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꽤 어려운 문제다.

보통 점수 차이도 아닌 세 골 차이.

이건 어지간한 방법으로 따라잡기엔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것도 상대가 바르셀로나라면 더더욱.

“일단 점수를 잊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자, 주장인 케빈 도슨이 총대를 멨다.

그리고 꽤 옳은 말이었다.

포츠머스가 하던 대로 한다면 세 골 차이는 쉽게 내는 편이었으니까.

“그래. 하던 대로 하면 이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세 골 차이를 뒤집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그건···.”

케빈 도슨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분명 하던 대로, 포츠머스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보여주던 대로 한다면 경기에서 이길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세 골 이상 넣으며, 그것도 무실점으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렇게 케빈 도슨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 때, 조쉬 킹이 손을 번쩍 들었다.

“오. 킹아. 네가 종종 훌륭한 대답을 내놓던데, 어디 한번 말해봐라.”

소하가 칭찬하자 조쉬 킹은 잔뜩 으쓱거리며 발랄하게 외쳤다.

“엣헴. 다들 공부는 하지 않고 공만 차는 사람들이라 수학에 약하네요.”

“응···?”

이건 또 뭔 개소리란 말인가.

드디어 조쉬 킹의 입에서 수학이란 미지의 단어가 나왔다.

곱하기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서포터들 사이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간이 수학을 입에 담다니.

이것이야말로 어이없음의 정점일지도 몰랐다.

“하 참. 답답한 인간들.”

동료들이 허탈한 웃음을 보내자 조쉬 킹은 눈썹을 팔자로 꺾으며 분개했다.

“3골을 먹혔으면! 4골을 넣으면 되죠! 이것도 몰라?! 멍청이들아!”

“···.”

“···으휴. 븅신.”

“말을 말자···.”

조쉬 킹이 당당하게 외치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고선.

“바로 그거다!”

소하는 손뼉을 치며 크게 기뻐했고,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

“응?!”

“뭐라고 하셨어?”

“오늘 아침이 상했나?”

“허···. 허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제정신인지가 의심되었을 뿐.

물론, 소하는 그러든지 말든지 조쉬 킹을 격하게 칭찬하기 바빴다.

“넌 천재야. 킹아.”

“하하하!”

“내가 보기엔 넌 잉글랜드의 피타고라스야. 아니지, 피타고라스가 그리스의 조쉬 킹일지도.”

“오! 누군진 몰라도 좋은 거죠?”

“···다, 당연하지.”

피타고라스를 모르는 조쉬 킹의 지식에 조금 말을 더듬은 소하는 애써 눈을 돌리며 선수들에게 선언했다.

“하여튼! 우리의 전략은 하나다. 닥공! 그러니까 닥치고, 공격이다!”

“···.”

모두가 마음속에서 작은 불안감의 씨앗이 움텄지만, 애써 무시하는 포츠머스의 일동들이었다.

***

드디어 포츠머스와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의 시작이 몇십 분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포츠머스가 어떤 기적을 보여줄지에 대해서 작은 기대감이 퍼진 지금, 또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이 터졌다.

[GK: 아론 람스데일.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후벵 디아스.

RB: 아슈라프 하키미.

LM: 도봉산.

MC: 데클란 라이스.

MC: 칼빈 필립스.

RM: 모하메드 살라.

ST: 조쉬 킹.

ST: 에링 홀란드.]

모두가 어떤 전술을 들고 올지에 대해서 논했지만, 4-4-2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포츠머스의 4-4-2라니.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정말 알 수가 없는 선택이다.

현대축구의 4-4-2라면, 공격보다는 두 줄 수비에 집중하면서 역습을 노리는 전략이 아니던가.

역습을 노린다라.

분명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한 바르셀로나는 공격을 지양할 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를 정도의 전술이었다.

[성소하 감독이 무슨 생각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표기상으로는 4-4-2지만, 실제 경기장에서의 모습은 다를지도 몰라요.]

그 누구도 쉽사리 분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경기가 시작되자 소하가 어떤 생각인지 드디어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이, 이건 4-4-2가 아닙니다!]

[도, 도봉산의 위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것은 오른쪽의 모하메드 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드필더가 아닌 포워드란 이야기에요!]

[그, 그렇다면 4-2-4 대형입니다! 카, 칼을 뽑았어요! 포츠머스가 칼을 뽑았습니다!]

[이건···. 이건···. 어떨지 모르겠네요.]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가 경악했다.

4-2-4라니.

아주 먼 옛날, 2006년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사용했던 전술이다.

호나우두-아드리아누-카카-호나우지뉴.

이 네 명의 초 공격적인 초일류 선수들을 모조리 선발로 놓는 미친 전술이었다.

당연히 중원의 균형이 저 우주로 사라질 것이 뻔할 뻔 자인 전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술이었으며 세상을 놀라게 하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과연, 포츠머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기대되는 경기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한껏 흥분한 목소리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 279화. 가시밭길.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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