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가시밭길. (1) >
가뿐하게 리그컵 우승컵을 또다시 진열대 안으로 들여놓은 포츠머스는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갔다.
프리미어 리그 28라운드 상대는 왓포드 FC.
약팀이란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번 시즌 중위권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중인 팀이다.
이 말인즉슨, 쉽게 볼 상대라는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슬슬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며 약해졌던 전력이 제자리로 돌아온 포츠머스의 앞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4-1, 포츠머스, 승.]
훌륭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3골 차이로 시원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포츠머스는 28라운드까지 17승. 11무라는 무패행진을 이어나갔다.
리그가 10경기 남은 상황에서 승점 62점으로 1위를 달리는 포츠머스.
솔직히 엄청 높은 승점은 아니다.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어도 승점은 겨우 92점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2위, 리버풀보다 승점 6점을 앞서나가며 ‘무패 우승’이란 위대한 업적을 이룰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현 18-19시즌, 프리미어 리그의 순위 테이블은 다음과 같았다.
[1위, 포츠머스, 17승 11무, 62점.
2위, 리버풀, 17승, 5무, 6패, 56점.
3위, 맨시티, 16승, 7무, 5패, 55점.
4위, 첼시, 15승, 8무 5패, 52점.
5위, 맨유, 14승, 10무 4패, 52점.
6위, 토트넘, 16승 3무 9패, 51점.]
1위부터 6위까지 승점 11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격전의 현장이다.
특히나 2위부터 6위까지 승점 차이가 단 5점밖에 나지 않는, 언제든 순위가 바뀔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몇몇 무승부를 승리로 마무리 지었어야 했는데···.”
소하는 격전의 현장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11개의 무승부라니.
비겨도 너무 많이 비겼다.
3~4경기만 승리로 바꾸었어도 이미 리그 우승을 예약하고 다음 일정을 쉽게 맞이 했을 텐데. 굉장히 아쉬웠다.
“그래도 뭐, 전관 우승을 노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남은 경기를 다 이기면 그만이고.”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로테이션을 그렇게 굴렸는데도 후반기에 들어서자 부상 선수가 줄줄이 속출하지 않던가.
만약 계속 주전을 돌렸다면 몇몇 경기는 이겼겠지만, 이미 선수단은 결딴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더 부상이 있었다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유벤투스에 졌을 테고, 다른 대회에서도 탈락했을지도 몰랐다.
“사실, 딱 한 경기만 이기면 아무리 무승부가 많아도 상관없다.”
소하가 언급한 딱 한 경기.
그것은 바로, 바로 다음 주에 맞붙게 되는 리버풀과의 일전이었다.
승점 6점 차이인 양 팀의 대결은 리그 우승을 두고서 승점 6점짜리 경기다.
여기에서만 이긴다면, 우승은 반쯤 손아귀에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중요한 경기였다.
그리고 소하 개인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경기이기도 했다.
“이번에야말로 이긴다···.”
투지를 불사르는 소하.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했던 위르겐 클롭 감독의 리버풀에게 패배를 안겨주기 위해 눈에 독기를 잔뜩 품은 그였다.
***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오는 3월이 시작되었다.
슬슬 훈훈한 날씨가 돌아온다고 증명하듯이 3월이 되자마자 잉글랜드 축구계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포츠머스 대 리버풀.
리버풀 대 포츠머스.
봄의 시작과 동시에 열리는 큰 경기였고, 몸을 휘감던 추위를 저 멀리 날려 보내기엔 충분할 정도의 뜨거운 경기였다.
정말 많은 것이 단 한 번의 경기에 걸렸다.
포츠머스의 첫 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무패 우승.
리버풀의 20년 만의 리그 우승.
정말 양쪽 모두가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가를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또 중요했다.
하지만 의외로 잉글랜드의 축구 전문가들은 승부 예측에 앞서서 모두가 리버풀의 손을 들어줬다.
[정말 어렵다. 부상 선수가 대부분 돌아온 포츠머스는 정말 강하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다른 장소도 아닌 리버풀의 ‘안 필드’에서 펼쳐진다. 모두가 알다시피 안 필드에서 상대를 맞이하는 리버풀은 전혀 다른 팀이다.]
[이미 전반기에 홈에서 비겼던 포츠머스다. 원정경기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성소하 감독은 정말 유능한 감독이지만, 위르겐 클롭이란 벽 앞에서는 항상 작은 갓난아기로 변한다.]
그렇다.
소하는 위르겐 클롭 감독에게 1승 2무 3패라는 최악의 상대 전적을 자랑하는 감독이었다.
암만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고 추앙받는 소하였지만 이상하게 리버풀만 만나면 맨날 죽을 쒔다.
1승 2무 3패라니.
6번 싸워서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승점 18점 중에서 5점밖에 따내지 못한 처참한 성적이었다.
괜히 ‘위르겐 클롭 감독의 갓난아기’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고, 이는 소하를 미치게 했다.
“응애-! 나 아기 성소하.”
“···.”
덜덜덜덜.
오전 훈련, 선수들은 때아닌 광기에 마주하자 몸을 덜덜 떨었다.
공갈젖꼭지를 입에 물고 등장한 포츠머스의 보스, 소하의 모습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이 땅에 강림한 것만 같았다.
‘시, 신고해야 하나?’
‘어, 어, 어디에?’
‘경찰? 국방부?’
‘MI-5! 혹은 MI-6!’
선수들은 공포에 질려 머리가 굳어버렸지만 소하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응애-! 나 언제 어른으로 만들어줄 거야? 나 어른 되고 싶다···. 정말로 어른이 되고 싶어···!”
“히, 히익···.”
지옥이었다. 현세의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야말로 지옥이리라.
이것은 광기이자 무언의 엄청난 압박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리버풀을 꺾고 오라는 광기의 압박!
어지간한 공갈·협박은 애들 자장가 따위로 취급할 만큼 무서운 모습이었고, 효과는 좋았다.
‘이긴다···.’
‘내, 안구와 귀의 생존을 위해서···.’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해···!’
벼랑 끝에 내몰린 포츠머스의 선수단은 필승의 각오를 다졌다.
덕분에 경기 당일, 안필드를 방문한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엄청난 홈 관중의 응원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겁먹지 않았다.
‘감독님 응애 소리보다야.’
‘이 정도는 이제 무섭지도 않다.’
‘천상의 노랫소리가 따로 없군.’
정신적으로는 완벽한 무장이었다.
이는 경기장에서도 곧바로 드러났고 원정경기임에도 포츠머스는 리버풀을 초반부터 압박하기 시작했다.
[포츠머스가 엄청나게 리버풀을 몰아붙입니다!]
[뭐랄까요. 선수들의 눈에 묘한 독기가 어려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무패 우승에 도전하는 팀의 승부욕일 겁니다!]
인생은 원래 멀리서 보면 한편의 희극일 뿐.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외부인들은 그저 포츠머스의 놀라운 승부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여튼, 엄청난 포츠머스의 파상공세였고 리버풀은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하지만 안 필드의 리버풀은 강했다.
쉴 새 없이 두들겨 맞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의 서포터즈, ‘더 콥’은 단 1초도 응원을 쉬지 않았고 이는 리버풀이 무너지지 않는 원동력이었다.
끝까지 끈질기게 버티며 0-0 무승부를 후반 89분까지 끌고 갔고, 기어코 기적을 일구어냈다.
-뻥, 철썩!
1년에 한 번 나온다는 주장, 조던 헨더슨의 중거리 슛!
왼쪽 하프 스페이스에서부터 휘감겨 들어간 멋진 중거리 슛은 그대로 람스데일 골키퍼의 손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며 골네트를 출렁였다.
[골입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리버풀이 앞서나가는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안필드가 떨립니다! 지진이라도 난 것만 같아요! 리버풀, 이 경기만 잡으면 포츠머스와의 승점 차이가 고작 3점입니다!]
포츠머스로서는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슈팅을 21개나 때렸건만.
리버풀의 알리송 골키퍼가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모조리 막아내었고 기어코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삑! 삑! 삑!
결국, 경기는 1-0, 리버풀의 승리.
어째서 리버풀의 홈 경기가 지옥 같은지 보여주는 경기였다.
“···.”
소하는 믿을 수 없는 경기 결과에 선 채로 기절했다.
무패 우승도 날아갔고, 안전한 리그 우승도 날아갔으며, 상대 전적에 1패를 추가해, 1승 2무 4패가 되었다.
이래저래 소하에게는 최악의 결과였고 최악의 봄이었다.
***
리버풀에게 불시의 일격을 얻어맞은 포츠머스는 곧바로 철천지원수, 사우스햄튼과의 프리미어 리그 30라운드에 들어섰다.
“···이기겠지?”
집에서 인형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느라 혈압이 터진 소하.
링거를 팔에 꽂고 등장한 그는 굉장히 얌전해진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승리를 갈구했다.
길길이 날뛰는 모습보다 더욱 두려운 모습에 선수들은 그야말로 필승이 아닌 필사의 각오를 다졌고 미친 듯이 경기장을 누볐다.
해서, 결과는 4-0.
지난번 대 충돌을 겪은 팀이라 유혈사태가 걱정되긴 했지만, 깔끔한 경기였다.
아마도 FA에서 내린 중징계가 사우스햄튼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리라.
혹은 강등권 근처까지 떨어진 팀의 사정이 선수단의 사기를 최악으로 만들어놨을지도 몰랐다.
하여튼, 철천지원수를 흠씬 두들겨 패는 모습에 건강을 회복한 소하는 다시금 기운차게 외쳤다.
“좋다! 이제 계속 이기면 되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리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었다.
애초에 무패 우승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타이틀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전관 우승이었고, 패배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선수단의 모습은 보약과도 다름없었다.
이렇듯 시즌 첫 패배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은 포츠머스는 곧바로 FA 컵 8강전에 들어갔다.
상대는 이번 시즌 굉장히 좋지 않은 모습을 선보이는 중인 아스널.
하루에도 12번이 넘게 경질설에 시달리는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이끄는 팀이었고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스널 서포터를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고맙게 받아주길 바라.”
아르센 벵거 감독을 존경하는 소하는 전력으로 경기에 임했고 아스널을 엉망진창으로 혼내줬다.
결과는 5-0, 대승.
그 아르센 벵거가 이끌던 아스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약했고, 곧바로 소하의 선물이 도착했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 경질!]
[아스널의 보드진이 드디어 칼을 휘둘렀다.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우나이 에메리의 아스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스널을 응원하던 서포터들에게는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팀을 망치고 있던 감독이 잘렸다는 발표는 죽상이던 아스널 서포터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었다.
-고마워, 포츠머스!
애매하게 지거나 혹시라도 이겼으면 경질 따윈 없었을 텐데.
제대로 밟아주며 경질까지 이끌어준 포츠머스에게 무한대로 감사를 표하는 아스널 서포터들이었다.
“역시 근본 있는 팀의 팬들이군. 고마움을 알아.”
소하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음은 당연했다. 이렇듯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직업을 강탈한 소하와 포츠머스는 기세등등하게 다음 경기로 달려나갔다.
다음 경기의 상대는 유벤투스.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2차전이었으며 홈 경기였다.
이미 원정경기에서 3-3으로 무승부를 거둔 포츠머스가 매우 유리한 경기였고, 전과는 다르게 부상 선수도 없었다.
홈 경기.
풀 전력.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만큼 쉬웠다.
유벤투스는 어떻게든 원정 골을 따내기 위해 몸에도 맞지 않는 공격 전술을 펼쳤고, 포츠머스는 이 사실은 이미 옛 저녁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승부의 세계에서 자신의 패가 이미 다 까발려졌다면, 이미 패배가 확정적인 법!
소하와 포츠머스는 알몸으로 프래튼 파크를 방문한 유벤투스를 가지고 놀며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했다.
-철썩!
후반 6분경, 조쉬 킹이 멋진 강슛으로 유벤투스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호우!”
선제골을 넣자 소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셀레브레이션을 몸소 선보이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였다.
[아! 성소하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입니다! 고개를 떨군 호날두의 상징인데요.]
[제법 잘하는군요. 평소에 연습이라도 했나 봅니다! 완전히 유벤투스를 농락하는군요!]
유벤투스와 호날두에게는 치욕이었고 프래튼 파크에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비록 갓끈 쓴 선비들에게 ‘예의가 없다.’라며 쓴소리를 듣긴 하겠지만 뭐가 대수겠는가.
“누가 칼 들고 협박함? 우리한테 지라고? 아니꼬우면 이기던가.”
승부의 세계에서는 승리자가 유일한 법도였을 뿐이었다.
하여튼, 소하에게 정신 공격을 당한 유벤투스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에링 홀란드에게 한 골 더 내어주며 종합 스코어 5-3으로 16강에서 빠르게 탈락했다.
상당한 이변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설을 써 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모습을 감추다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으며 포츠머스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결과이기도 했다.
“자, 이제 8강이랑 4강 대진을 봐볼까.”
챔피언스 리그 16강 경기가 모두 끝나자 이제 8강과 4강의 조 추첨이 시작되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조 추첨을 관람하기 시작한 소하였지만, 조 추첨이 끝나자 울상으로 변해버렸다.
챔피언스 리그 8강전,
[포츠머스 vs 바르셀로나.]
“···씨발.”
욕이 나오지 않기 힘들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집으로 보냈더니 이제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등장했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챔피언스 리그 4강전,
[포츠머스&바르셀로나. VS 바이에른 뮌헨&포르투.]
바르셀로나를 꺾고 4강전에 진출해도 그 바이에른 뮌헨을 만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쉽게는 안 된다 이거지···?”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하의 앞길에는 정말로 거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 275화. 가시밭길.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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