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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73화 (273/306)

< 273화. 세 개. (9) >

리그컵 결승전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늦은 저녁.

소하에게 정말 중요한 경기의 선발로 나서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존 말로리는 자택에서 압박감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리그컵 결승전 선발?’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소하는 친절하게, 혹은 잔인하게 세 번이나 연달아 말해줬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툭툭.

존 말로리는 아직도 생생했다.

말을 마치며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던 소하의 손길이.

평상시였다면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소하의 믿음 어린 손길은 그저 존 말로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무게추였다.

‘난···. 자신이 없다···.’

그렇다. 존 말로리는 예전의 그 자신감 넘치던 존 말로리가 더는 아니었다.

수년의 후보 생활.

비록 본인이 원했고, 지금도 이 역할에 자부심마저 품고 있었지만, 그는 약해졌다.

나이도 어느덧 선수 생활의 황혼기인 32세였고 조연으로도 만족하던 존 말로리였기 이번 선발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렸다.

모두가 존 말로리에게 골을 바랄 거다.

포츠머스의 원톱이란 이제는 그런 자리였다.

조쉬 킹이 원톱이었을 적엔 하부리그를 박살 내놨으며,

에링 홀란드가 원톱인 현재는 세계를 박살 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존 말로리는 골을 넣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작년이었나?

1년이 넘었나?

몇백일이지?

적어도 이번 시즌은 아닌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이젠 언제 관중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심으로 곰곰이 생각해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인상을 찌푸리고 머리를 쥐어짜 봐도 생각이 나지가 않는다.

‘언제였지···?’

존 말로리는 갑작스럽게 두통이 찾아왔다. 분명, 수년 전에는 프래튼 파크를 가득 메운 서포터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거늘.

이제는 그 과거가 너무나도 먼 옛날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환상같이 느껴졌다.

너무 멀리 왔나 보다.

화려했던 순간이 너무나도 멀리 느껴진다면 즉, 끝이 다가왔다는 이야기.

그의 형처럼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한 존 말로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시원하지 않았다.

-꾸우욱.

가슴을 짓누르는 무언가의 불쾌함.

이것은 끝이 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했지만, 존 말로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일의 선발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

‘지금은 다른 일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야. 난, 난 내일 결승전에서 해내야 해. 집중하자.’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보자고만 잘 될 리가 있겠나.

압박감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에 점점 짓눌린 마음은 어느새 공포라는 감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참을 마음을 다스리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악순환에 빠져버린 존 말로리.

검은 구덩이 속에 몸이 완전히 삼켜지기 일보 직전. 다행스럽게도 그를 구원해주는 불쾌한 소음이 그의 집에 울려 퍼졌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누군가가 그의 자택에 방문했다며 자신을 강하게 어필했다.

심지어 6번이나!

더군다나 지금은 밤 11시였고, 내일은 중요한 경기가 잡혀있었다.

절대다수의 정상적인 선수들이라면 경기 전날에는 외부인의 방문을 꺼렸고 이는 존 말로리도 마찬가지.

당연히 인상이 찌푸려지며 가슴속에 분노가 차올랐다.

“어떤 새끼야?”

험한 말이 절로 나왔다.

잔뜩 짜증이 난 존 말로리는 터벅터벅 현관으로 향했고, 사납게 인터폰의 화면을 노려봤다.

“뭐야, 대가리밖에 안 보이네. 진짜 누군진 모르지만, 인연 끊는다.”

잔뜩 독이 오른 존 말로리.

그는 거칠게 인터폰의 수화기를 집어 들며 소리쳤다.

“뭐 하는 새낀데 이 시간에 처 오고 지랄이야?!”

가뜩이나 선발에 포함돼 신경이 날카로웠는데, 아주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온갖 욕설을 다 퍼붓고 인연을 끊을 작심을 제대로 마친 존 말로리.

하지만, 방문자와의 인연은 쉽사리 끊어내기 힘들었다.

“나다···.”

불유쾌한 방문자의 중저음이 돋보이는 목소리는 수십 년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음색이었으니까.

“···형?”

그렇다. 그의 형이자, 포츠머스의 전설적인 선수이며, 이번 시즌에 은퇴해서 백수가 된 찰스 말로리였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야밤에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는 혈연을 끊을 순 없는 노릇.

존 말로리는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인사보다는 의문을 표했다.

“···형?”

좀 전과는 다른 의미의 형이었다.

전자는 방문자가 형이라는 사실에 놀랐었고, 후자는 형이 맞는지 의심이 섞인 놀라움이었다.

분명 목소리와 윤곽은 그가 알던 형이 맞는데, 내용물이 달라졌다.

뭐랄까.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달까.

분가한 형제들이 으레 그렇듯, 약 반년 만에 만난 찰스 말로리는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살이 불어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존 말로리는 두 눈을 의심했다.

평생을 그 엄격한 몸 관리를 해오던 사람이 저런 이족보행 돼지가 되다니.

‘판타지 영화의 엑스트라라도 하려고 그러나? 분장은 필요 없겠네. 아니지. 형이 맞나? 돼지가 진화한 거 아닐까? 학계에 보고해야 할 거 같은데.’

존 말로리는 매우 무례한 생각을 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자 동생의 마음을 눈치챈 찰스 말로리가 재차 본인임을 상기시켜줬다.

“나···. 맞다···.”

왠지 모르게 가쁜 숨을 헐떡이는 찰스 말로리. 동생의 의심 섞인 눈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자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툴툴거렸다.

“오랜만에 형이 왔는데 계속 밖에 세워둘 거냐? 날이 춥다.”

“···어. 일단 들어와.”

진지하게 신원조회를 해봐야 하나 고민하던 존 말로리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길을 비켜주었다.

-꿀렁꿀렁.

두둑한 뱃살을 출렁이며 찰스 말로리는 거침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커다란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러고선 당당하게 집주인에게 요구했다.

“손님이 왔으면 차를 내와야지. 동생아, 예절은 어디에다가 버려뒀냐?”

“···.”

존 말로리는 목구멍까지 ‘네 예절은 처먹어서 살로 변했냐.’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꾹 참았다.

“차로 괜찮겠어? 밖에 나가서 콜라라도 사 올까?”

“차면 된다. 소화 잘되게 페퍼민트로 부탁한다.”

“···그래.”

이제는 누가 집주인인지 구분이 어려워진 존 말로리였지만 순순히 차를 대접했다.

-벌컥. 벌컥.

분명 찻잔을 준비했건만. 찻주전자를 집어 들고 한 번에 마시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존 말로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단정 지었다.

“잘 지내는구나?”

“그래. 이 형은 잘 지낸다.”

너무 잘 지내서 문제인 찰스 말로리는 눈을 감으며, 아니, 눈을 가늘게 뜨며 존 말로리의 상태를 정확히 짚었다.

“넌 별로 잘 지내지 못하는구나?”

“···.”

정확한 지적에 존 말로리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아, 형은 원래 예리한 사람이었지.’

몸은 퉁퉁하게 불었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관록에는 이상이 없나 보다.

“뭐···. 그렇긴 한데, 이것 때문에 이 야밤에 난데없이 온 거야?”

찰스 말로리는 사람 보는 눈은 있어도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

동생이 힘들어 보인다고 직접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야밤에 집을 방문해서 조언해줄 사람은 아니었다.

“뭐, 우리 감독이 전화했더라고. 너한테 한번 가보라고. 그래서 겸사겸사 운동도 할 겸 와봤다.”

하지만, 은퇴하면서 둥글둥글해진 몸처럼 성격도 많이 둥글어졌나 보다.

그나저나 우리 감독이라니. 말로리 형제에게 ‘우리 감독’이란 소하밖에 없었거늘. 역시나 소하가 선수의 상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은퇴했으면서도 우리 감독이라고 부르는 찰스 말로리의 말에서 그가 소하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잠시 소하를 떠올린 찰스 말로리는 동생에게 거침없는 말을 내뱉었다.

“쫄리냐?”

“···어.”

존 말로리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하와 형을 속일 수도 없었거니와 어떻게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찰시 말로리는 출렁이는 배를 벅벅 긁으며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왜?”

“응?”

“뭐.”

“응?!”

“선수라면 당연히 결승전이 다가오면 긴장하기 마련 아니냐? 정말 그딴 게 문제야?”

“···.”

할 말이 없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이 밀려오는 생리현상은.

정작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존 말로리는 모처럼 형제에게 진심을 토로했다.

“난···. 내 끝이 다가온 거 같아. 나도 형처럼 이제 은퇴를 해야 하나? 사람들의 환호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래서 두려워.”

시작이 있으면 끝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사실을 알았음에도 존 말로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말 끝이라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무언가 자꾸 자신의 마음속에서 서로 상충하며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말을 마친 존 말로리는 정말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에, 찰스 말로리는 케이크를 본 돼지처럼, 아니,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모습으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넌 나랑 달라.”

형제였지만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선수로서도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로 아예 달랐다.

심지어 찰스 말로리는 포츠머스의 전설로 남아 소하의 동상 옆에 동상이 세워졌지만, 존 말로리는 동상은커녕 현역인 지금도 거의 잊힌 선수다.

“그러니까 나랑 똑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

“난 포츠머스에서 모든 걸 불태웠다. 남은 재조차 없이 말끔하게 털어냈어. 후회 따윈 없다.”

찰스 말로리는 포츠머스에서 뛰게 된 걸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열정적인 시간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하지만, 넌 달라. 넌 완전히 태우지 못할 거다. 적어도 포츠머스에 있는 이상은 말이지.”

“···!”

“넌, 빌어먹게 말을 듣지 않는 동생이지만, 그래도 잘해왔다. 넌 포츠머스란 구단을 위해 모든 걸 다해줬어. 가진 능력 이상이었지.”

“···.”

“조쉬 킹을 봐라. 그 천둥벌거숭이는 네가 반쯤은 키웠어. 그걸로 된 거야. 그걸로 너의 역할은 다 한 거야. 재능도 뒤떨어지는 너로서는 정말 잘해온 거다.”

축구선수로서의 조쉬 킹은 소하가 아빠 역할을, 존 말로리가 엄마 역할을 맡으며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하가 조쉬 킹의 과외선생님도 아니고 그만 돌볼 순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빈 시간에는 존 말로리가 그를 맡았고 덕분에 조쉬 킹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했다.

소하와 조쉬 킹 본인은 물론, 구단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존 말로리가 없었다면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차세대 축구선수, 조쉬 킹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 됐다. 넌 정말 이대로 너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흩날리는 꿈의 파편 속에서 사라지고 싶냐?”

“나, 나는···.”

흔들리는 목소리 속에서 존 말로리는 드디어 깨달았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경기의 압박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다 태우지 못하고 끝을 맞이할까 봐 무서웠다.

다시 한번 관중들이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다시 한번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포츠머스에서는 불가능했다.

포츠머스는 존 말로리라는 그릇이 주인공을 맡기엔 너무나도 커졌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야 길이 보이나 보군. 아직은 망설임이 남았지만 말이야.”

찰스 말로리는 동생의 안색이 변하자 글자 그대로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선택은 동생의 몫으로 남겨두고 유유히 떠나려는 걸까?

“야, 집에 먹을 것 좀 있냐? 배고파서 힘이 나지 않는다.”

“···그냥 형네 집으로 꺼지지, 그래?”

“도망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는 법. 오늘 하루만 신세 지자.”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개소리를 내뱉는 찰스 말로리는 모처럼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왜···. 도망쳤는데? 형수랑은 사이좋았잖아.”

“···그것도 옛말이다. 백수 신세 되고 풍채 좀 좋아졌다고 얼마나 갈구는지. 나도 너처럼 결혼하지 말 걸 그랬어.”

“···살 좀 빼라 돼지야.”

“너도 은퇴하면 이렇게 될 거라 장담하지. 난 요즘 가장 행복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

“···.”

몽롱한 눈빛으로 행복을 음미하는 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존 말로리.

그의 얼굴은 전과는 달리, 매우 밝아져 있었다.

***

-슈욱.

마이클 반즈의 기습적인 패스는 존 말로리를 향해 날아갔다.

여기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몇 가지 실수, 혹은, 방심을 저지르고 말았다.

먼저, 첫 번째 패스가 존 말로리라는 보잘것없는 선수에게 향할 거라고 정말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설마 존 말로리겠어?’

‘보잘것없는 선수야.’

‘숫자 채우기용 선수.’

늘 그렇듯 이런 방심은 치명적인 비수로 변해서 돌변했다.

존 말로리에 대한 경계심을 아예 가지지 않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기습적인 패스에 대해서 면역이 사라졌다.

분명,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거늘.

방심했기에 존 말로리가 생각보다 쉽게 공을 잡을 수 있는 공간을 얻어냈다.

이어서 두 번째 방심이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냈다.

‘저 선수는 저런 빠른 패스를 쉽게 잡아낼 기술이 없다.’

‘분명 공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흘리겠지.’

‘리바운드를 노려야 한다.’

존 말로리는 마이클 반즈의 수준 높은 패스를 완벽하게 잡아낼 리 없다고 판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이건 큰 실수였다.

포츠머스에서 6년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선수라면 기본기 자체는 완숙의 경지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존 말로리는 공을 완벽히 자기 소유로 만들고 나서 몸을 돌릴 시간까지 벌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골대를 등진 것과 골대를 바라보는 자세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수많은 선수가 공을 받고 몸을 돌리지 못해 공을 뒤로 돌리지 않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쉽게 등을 돌릴 수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공의 방향을 뒤에서 앞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툭.

골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존 말로리는 가볍게 짧은 패스를 내주었다.

목표는 오른쪽에서 중앙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잭 해리슨!

공을 받은 잭 해리슨은 오른발을 크게 쳐들었다.

‘난 크로스 할 거다.’라는 무언의 시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루크 쇼가 반응을 안 하기 힘든 명백한 선언이었다.

“이익···.”

루크 쇼는 몸을 내던지며 크로스를 방해하려고 시도했다.

시도는 좋았다. 크로스를 했다면 분명 막혔을 거다.

하지만, 이것은 잭 해리슨의 눈속임이었다.

잭 해리슨은 대놓고 들어 올린 오른발을 한번 꺾었고 크로스 대신 한 번 더 짧게 드리블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왼발 아웃프런트 크로스!

제대로 휘감겨 들어가는 높은 레벨의 크로스는 곧장 조쉬 킹의 머리로 향했다. 사실상 투톱과 같은 위치에 자리하던 조쉬 킹의 눈빛이 변했다.

‘위험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아만 헤더가 서투른 조쉬 킹 일지라도 이런 기회에서 놓치진 않을 터.

어떻게든 방해해야만 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크리스 스몰링이 펄쩍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것 또한 속임수였다.

격렬한 공중볼 싸움을 하려던 조쉬 킹은 대충 뛰어올랐고, 공은 그대로 머리 위를 스쳐 왼쪽 측면으로 떨어졌다.

“좋아.”

그리고 왼쪽 측면에는 어느새 최후방에서 최전방까지 오버랩한 앤디 로버트슨이 대기하고 있었다.

-슉!

바로 낮고 빠른 크로스를 날리는 앤디 로버트슨!

그의 크로스는 골키퍼와 수비수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유유자적하게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여기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마지막 방심이 나왔다.

이 난잡함 속에서 그 누구도 존 말로리를 붙들고 있지 않았다는 것!

이 때문에 존 말로리는 완전히 자유였고, 앤디 로버트슨의 크로스를 낚아챈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 부근의 델리 알리는 싱긋 웃었다.

“존 선배, 못 넣는 건 아니겠죠?”

6년 전 처음으로 함께한 개막전에서,

6년 전 처음으로 함께한 기습공격에서,

6년 전 처음으로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한 그 날처럼.

존 말로리는 델리 알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툭.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지만, 매우 정확한 존 말로리의 인프런트 슛.

공은 아슬아슬하게 사이드 포스트바를 스쳐 지나가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썩!

전반 12초 만에 나온 멋진 골!

웸블리 스타디움은 들썩이기 시작했고,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모두가 한목소리가 되어 한 남자의 이름을 외쳤다.

“존 말로리! 존 말로리! 존 말로리!”

5만여 명에 가까운 우레와 같은 함성은 존 말로리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의 선택은 정해졌다.

‘난, 포츠머스를 떠날 거다.’

비록 더 작은 함성이 될지라도,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태울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 273화. 세 개. (9)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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