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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72화 (272/306)

< 272화. 세 개. (8) >

포츠머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컵 결승전을 앞에 두고 수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갈렸다.

[포츠머스의 승리가 예상된다. 솔샤르 임시감독 체재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직 포츠머스를 뛰어넘기엔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포츠머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패배한 적이 없다. 즉, 실력이 항상 우위였다는 뜻이다.]

[포츠머스가 부상이 많다고는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약해진 포츠머스도 이길 역량이 없다.]

포츠머스의 승리를 예견하는 쪽은 최근 성적을 기반으로 한 사실에 근거하여 주장을 펼쳤다.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옹호하는 쪽도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증거를 꺼내왔다.

[포츠머스가 최근에 잘나가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조금만 더 과거로 간다면 포츠머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구한 역사에 비교조차 하지 못한다.]

[소위 ‘근본’의 문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많은 리그 우승컵을 거둬들인 팀. 우승도 해본 쪽이 잘하는 법이다.]

[얼마 전까지의 포츠머스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려웠다. 하지만, 포츠머스의 선수단은 지금 너덜너덜하다. 멀쩡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근소 우위를 점한 상황이다.]

이것 또한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었기에 리그컵 우승컵을 손아귀에 쥘 팀을 예측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웠다.

해서, 승부 예측 또한 49:51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근소하게 앞섰을 뿐.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 양 팀의 전력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이상, ‘누가 더 간절하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컸다.

실력이 없는 정신론은 개미 뒷다리만큼도 쓸모가 없었지만, 실력이 뒤받쳐주는 정신론은 때때로 기적을 낳았으니까.

하지만 포츠머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간절함마저도 비슷했다.

[포츠머스는 창단 이후 두 번째 리그컵 우승을 간절히 원할 거다. 2연속 리그컵 우승이란 타이틀은 그들이 진정으로 강팀의 반열에 올라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전관 우승을 노리는 포츠머스는 그 누구보다 우승컵을 원한다.]

[잉글랜드 역사를 새로이 쓸 기회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많은 것이 걸려있는 결승전이었다.

비록 다음 시즌에는 축소될 작은 대회였지만 말이다.

사실 우승할 생각이 없었다면 애당초 빠르게 대회에서 탈락하는 게 이득이다.

만약 리그컵을 버렸다면, 5경기나 덜 치렀을 터.

선수단이 부상 때문에 구멍이 숭숭 나지도 않았을 거다.

이래저래 본전을 건지려면 우승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물론,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우승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고, 명문 재건을 위한 큰 짐이 어깨 위에 달려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간절하기는 매한가지다. 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이후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엉망진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간 들어 올린 우승컵이라고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따낸 유로파 리그 우승컵 하나뿐이다. 부활을 위해선 우승컵이 더욱 필요하다.]

[이대로 포츠머스에 또 패배한다면, ‘영광의 시절’을 다시는 맞이하지 못할 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위대한 감독,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팀을 떠나자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해버렸다.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던가. 보통 부자도 아닌 엄청난 부자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5년을 넘게 버티는 중이긴 하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투자함에도 우승컵은 점점 더 멀어졌고, 이젠 신흥강호 포츠머스마저 비상하자 정말 큰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프리미어 리그가 가진 파이의 크기는 똑같은데, 먹을 입이, 그것도 매우 식탐이 강한 경쟁자가 튀어나온다면 먹을 것이 없어지지 않겠냐는 거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입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성적이 좋지 않은 과거의 명문이 그 역할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래저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수많은 것들이 걸려있는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전력, 동기부여, 모두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결전이다. 결국 승부의 방향은 까봐야만 알 수 있다.]

한 전문가의 정리는 모두의 공감을 얻어냈고, 그 어느 때보다 관심도가 높아진 리그컵 결승전이 곧 시작되었다.

***

웸블리 스타디움.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이자 특별한 팀들만이 누빌 수 있는 전설적인 경기장!

평생을 밥만 먹고 축구만 해도 선수로서 방문하지 못하는 선수가 부지기수인 이 경기장은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가득 찼다.

“포츠머스! 포츠머스! 포츠머스!”

한 명도 빠짐없이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목이 터지라고 응원하는 쪽은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다.

단언컨대, 요즘 프리미어 리그를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신이 난 단체!

포츠머스의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소하의 지휘 아래 그 이름을 높인 포츠머스. 이제는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팀의 서포터들답게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정말 대단한 포츠머스의 응원입니다. 경기 시작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벌써 이런 열기라니요!]

[아시겠지만, 웸블리 스타디움 입장표는 비싸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엄청난 숫자가 응원하기 위해 찾았습니다.]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는 혀를 내둘렀다. 보통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경기는 결승전이었기 때문에 푯값이 제법 비쌌거늘. 9만석 중에서 절반 이상을 가득 채운 푸른 물결은 숨이 떡 막힐 만했다.

[참, 이렇게 보니 신이 날 만도 합니다.]

[네? 어떤 말씀이시죠?]

아나운서의 물음에 해설은 과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5년 전, 공교롭게도 제가 포츠머스의 리그컵 결승전의 해설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 포츠머스가 리그1에 있을 때 말씀이시죠? 그땐 포츠머스가 정말 아쉽게 패배했었습니다.]

[네, 3부리그 팀이 첼시를 몰아붙이는 장면은 정말 놀라웠죠. 하지만 그때는 지금만큼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 경기장을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인기가 많은 팀이 아니었기 때문 아닙니까?]

타당한 반문에 해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포츠머스시의 포츠머스 지지도는 항상 최상입니다. 다만, 비싸서 웸블리 스타디움을 방문하지 못한 거지요.]

[하긴, 비싸긴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찾아와 주셨군요?]

[바로 그겁니다. 비싸디비싼 표를 구매하는 사람이 많을 늘었다는 건, 그만큼 재정적으로 여유로워졌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자고로 두둑한 돈주머니만큼 신이 나는 일은 없어요.]

[아! 이제야 말씀하시는 바를 알겠군요. 포츠머스란 구단이 한 지역의 경제까지 살렸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겁니다.]

해설의 말은 사실이었다.

포츠머스는 조선업과 관광으로 제법 유명하긴 했지만, ‘부자’ 동네하고는 거리가 좀 떨어진 도시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 시간 거리에 자리를 잡은 런던을 가지, 굳이 포츠머스를 많이 찾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하가 포츠머스를 맡으며 적극적인 세계화를 진행한 덕분에 런던 다음으로 아시아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관광명소로 떠올랐다는 뜻은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는 뜻!

특히나,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한국과 일본의 마음을 훔친 건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괜히 소하가 뭣 좀 사러 중심가에 얼굴을 내비치면 난리가 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야말로 소하는 포츠머스라는 도시 자체를 살려낸 위인이었다.

이에 반해, 상대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고지 맨체스터는 원래 부자였다.

덕분에 웸블리 스타디움의 남은 절반의 좌석은 붉은 물결이 빼곡히 채웠다.

“레드 데블스! 레드 데블스!”

모처럼 국내 컵대회의 결승전에 오른지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 또한 열정적으로 응원을 시작했다.

이번 우승컵만 따낸다면.

구단의 전설적인 선수가 감독으로 팀을 이끌며 옛 영광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경기 시작 전부터 응원을 시작한 양 팀의 서포터들에게 드디어 선발명단이 알려졌다.

먼저 포츠머스는,

[GK: 아론 람스데일.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아담 웹스터.

RB: 매튜 다이스.

DM: 마이클 반즈.

MC: 커너 러셀.

MC: 델리 알리.

LW: 조쉬 킹.

ST: 존 말로리.

RW: 잭 해리슨.]

파격적인 선발명단을 공개했다.

선발명단만 보자면, 4~5년 전의 명단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원년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믿기지 않은 명단이었다.

“뭐야? 내가 지금 타임머신이라도 탄 건가? 5년 전 리그컵 결승전이랑 명단이 비슷한 거 같은데···.”

“잠깐, 도봉산은 어디 갔어? 당연히 미드필더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응? 골키퍼 빼고는 전부 다 초기 선수들인데? 뭐지?”

“그나저나 6년 전 선수들이 아직 많이도 남아있구나···.”

“존 말로리는 아직도 팀에 있었어?”

열심히 경기 전부터 응원하던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공황에 빠졌다.

암만 부상선수가 많다고 할지라도 이런 명단을 구상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존 말로리는 도대체 뭔데? 킹을 중앙에 넣고 도봉산을 윙으로 돌리든가 했어야지.”

한 포츠머스의 서포터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선수는 다 이해가 가긴 했다.

마이클 반즈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벤투스를 무너뜨린 1등 공신이었고, 이를 가장 잘 보좌해줄 선수는 커너 러셀이다.

잭 해리슨도 살라 때문에 주전은 아니었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제법 쳐주는 윙어다.

그런데, 존 말로리는 이번 시즌에 선발 출장으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선수였다.

심지어 교체로 10경기도 뛰지 않았다.

당연히 공격포인트는 0골 0도움.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포츠머스에서 골키퍼와 함께 유일하게 공격포인트가 없는 선수였다.

그것도 공격수가!

[어···. 의도를 알 수 없는 성소하 감독의 선발명단인데요. 해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도봉산 선수가 무조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컨디션 이슈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일단은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도 쉽사리 소하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했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이런 도박 수를 사용하는 감독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선발명단!

이에 반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매우 건실한 선발명단을 선보였다.

[GK: 다비드 데 헤아.

LB: 루크 쇼.

CB: 빅토르 린델뢰프.

CB: 크리스 스몰링.

RB: 애슐리 영.

DM: 네마냐 마티치.

MC: 폴 포그바.

MC: 안드레 에레라.

LW: 제시 린가드.

ST: 로멜루 루카쿠.

RW: 마커스 래시포드.]

포츠머스와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고생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지만 제법 준수한 선수단을 선보였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포츠머스보다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명단이다.

포츠머스가 주의해야 할 선수는 ‘피리를 부는 사나이’, 제시 린가드.

솔샤르 감독 체재로 들어오며 공격진의 엔진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탐내 핵심 선수로 부상한 선수다.

소하 또한 이번 시즌과 겨울의 제시 린가드는 다른 선수임을 인지하고선 선수들에게 단단히 경고했다.

“제시 린가드를 조심해라. 저 녀석한테 골을 따이면 세상에서 가장 꼴 받는 셀레브레이션을 직관해야 할 테니까.”

“···.”

“질 수도 있어. 근데 쟤한테 골을 먹히는 것만은 안 돼. 명심하도록.”

“···.”

조금 방향이 달랐을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주의할 인물이라고 선수들에게 단단히 각인시킨 소하였다.

하여튼, 어느덧 시간은 경기 시작에 가까워졌고 포츠머스의 세 번째 리그컵 결승전이자 이번 시즌 세 번째 우승컵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삑!

선공은 포츠머스.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서 제일 먼저 공을 잡은 선수는 마이클 반즈였고, 항상 태평한 그와는 다르게 시작부터 날카로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뻥!

중앙선 부근에서 뻗어나가는 마이클 반즈의 송곳 같은 전진패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이었고 아직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

그리고 그 패스의 끝에는 이번 시즌 첫 선발 출장한 존 말로리가 있었다.

< 272화. 세 개. (8)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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