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화. 세 개. (7) >
유벤투스의 홈구장에서 3-3 무승부를 거두며 8강 진출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점한 포츠머스!
그들에게는 곧바로 중요한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 27라운드, 토트넘과의 홈경기.
리그컵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당히 어려운 2월의 마지막 경기들이었다.
유벤투스와 싸우느라 전력을 완전히 소비했는데, 바로 이어서 토트넘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니.
곱게 지나가기 힘들었기에 소하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리그컵 우승이 중요하니까, 리그 27라운드는 버리자!”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프리미어 리그는 리버풀이 승점 6점 차이로 매섭게 따라오고 있지만, 져도 그대로 1위다.
하지만 리그컵 결승전은 한번 지면 그대로 우승컵을 날려버리는 경기.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명확했다.
그에 반해 토트넘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토트넘의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할 확률은 30%에 불과하다.]
[위기의 토트넘. 6위를 공고히 유지하며 점점 숨이 막히고 있다.]
어려운 시간을 헤매고 있었다.
포츠머스가 비상하며 빅6 중에서 상대적으로 체급이 낮았던 토트넘이 본의 아니게 큰 피해를 본 격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빅7으로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빅7은 솔직히 너무 많았다.
최소한 유로파 리그는 나가야 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일 터.
7위까지 ‘빅’으로 묶는다면 한팀은 유로파도 나가지 못하면서 한데 묶인다.
이 때문에 빅6 퇴출이 가장 가까워진 토트넘이었고 굉장히 절박했다.
-이번엔 이겨야 한다.
-포츠머스를 잡으면 우리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겠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챔피언스 리그 경쟁을 위해서라도 우린 이겨야 해.
절박했으며,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포츠머스는 경기를 내줄 각오를 다졌고, 상황 자체도 썩 좋지 않았다.
아직 부상선수들도 제대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
암만 이번 시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포츠머스라고 할지라도 이번만큼 상당히 약해졌다.
마치 RPG 게임에서 주인공 파티에게 디버프를 잔뜩 얻어맞은 보스 같은 모습이랄까.
상당히 약해진 포츠머스가 상대라면 흔들리는 토트넘으로서도 해볼 만했다.
그렇게 포츠머스의 홈구장 프래튼 파크에서 시작된 프리미어 리그 27라운드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로 양 팀 모두 승점 1점씩 나누어 가졌다.
포츠머스로서는 좋은 결과였고 토트넘으로서는 아쉬운 결과였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포츠머스, 알랑 생막시맹까지 부상 병동에 실려 갔다.]
[교체 출전한 에링 홀란드, 가벼운 발목 염좌로 리그컵 결승전 불참!]
[모하메드 살라, 햄스트링 부상으로 3주간 아웃!]
세 명을 잃어버렸다.
토트넘이 사우스햄튼처럼 고의로 반칙을 범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기기 위해 선을 지키는 입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기에 임했을 뿐.
그저, 엄청난 경기 숫자 때문에 피로가 쌓인 포츠머스 선수들이 그 치열한 경기를 버티지 못했을 뿐이었다.
“흠···. 망했군.”
소하는 난감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가 생각보다 잘 풀려 승점을 가져가기 위해 조금 욕심을 부렸거늘.
그 욕심 때문에 에링 홀란드와 모하메드 살라를 뒤늦게 투입했지만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해서, 공격진이 완전히 붕괴한 포츠머스는 곧 리그컵 결승전을 위한 마지막 훈련에 들어섰다.
***
“흐음.”
리그컵 결승전이 이틀 앞까지 다가온 지금, 소하는 오전 훈련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 감독 사무실에 틀어박혀 깊은 고뇌에 빠져있었다.
소하가 이토록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기용할 공격수가 없다.”
날고 기는 포워드들이 그득한 포츠머스에 공격수가 없다니.
얼마나 힘든 일정이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라도 아웃, 홀붕이도 아웃, 알랑도 아웃, 발로텔리도 아웃. 남은 선수가 존이랑 킹, 잭 해리슨밖에 없네.”
돌고 돌아 6년 전 원년 선수로 돌아왔다.
아다마 트라오레가 있긴 하지만 그는 오른쪽에서만 뛸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잭 해리슨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차라리 잭 해리슨을 왼쪽으로 돌리고 아다마를 오른쪽으로 쓸까? 원톱은 킹이로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해볼 만한 시도이긴 하다. 애초에 조쉬 킹은 최전방 공격수 출신이었고, 잭 해리슨은 왼쪽 미드필더 출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바꿔버리면 전술적인 변화가 너무 크다.
역발 윙포워드가 모조리 정발 윙어가 되는 꼴인데, 이거면 같은 대형이라도 아예 다른 전술이었다.
“정발 윙어를 썼던 게 언제였더라···. 2~3년 전이었던 거 같은데···.”
소하는 콧잔등을 긁었다.
예전에는 곧잘 사용하던 전술이었지만 너무 옛날이다.
그 말은 즉, 전술을 선수들에게 다시금 주입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시간이 부족하다. 결승전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술을 갈아엎는 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존 말로리를 선발로 박아버려?”
존 말로리.
소하의 원대한 꿈을 선수 중에서 가장 먼저 알고 팀에 헌신을 다 받치는 충신이었다.
그는 선발 출장이 없으면서도 단 한 번도 불만을 품지 않았으며, 훈련도 누구보다 열심히 진행하는 훌륭한 선수였다.
하지만 문제는 실력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여러모로 매우 훌륭한 선수였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여러모로 수준이 낮았다.
육체적으로는 최하위였으며,
기술도 형편없었고,
골 결정력도 타고나지 못했다.
축구 지능이 높아 움직임이 매우 뛰어나긴 했지만, 가진 능력이 부족해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저래 ‘선발’선수로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선수였다.
상대의 체력이 빠져 그의 단점이 상쇄될 후반에나 교체로 들어와야만 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소하는 그를 무척 좋아하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의 선발로서는 믿지 못했다.
“으으으음. 어렵군, 어려워.”
그렇게 한참을 골머리를 앓는 소하.
그 좋아하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무조건 지키는 점심시간마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는 와중에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감독님, 마리오 발로텔리 선수가 감독님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비서의 전달에 소하는 눈썹을 팔자로 꺾으며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지? 코뼈가 부러진 덕분에 병동에서 신선놀음 중일 텐데. 그렇다고 벌써 뼈가 붙었을 리는 없고.’
의외의 인물이 방문하자 소하는 일단 경계심의 날이 바짝 섰다.
더군다나 보통 선수도 아니고 ‘그’ 마리오 발로텔리다.
지금이야 제법 순해졌다고 하더라도 세계가 알아주었던 악동 중의 악동!
혼자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 녀석이 난데없이 얼굴을 들이밀었는데, 경계하지 않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애써 찾아왔는데 그냥 가라고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소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방을 허락했다.
“네, 들어오라고 해요. 잘못 찾아온 거 아니냐고 한번 물어봐 주시고요.”
“네.”
물론, 잘못 찾아온 건 아니었고 이윽고 마리오 발로텔리가 소하의 눈앞에 등장했다.
“Yo!”
갱스터 래퍼처럼 건들건들하게 인사를 건넨 마리오 발로텔리는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게 의자에 털썩 앉았다.
“···.”
마치, 자기 집 안방에 들어온 듯한 자연스러움에 소하는 두통이 몰려와 할 말을 잃었다.
“헤이. 사람이 왔으면 차를 내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너무 속상할지도?”
“···너도 차 마시냐? 콜라나 마시지? 그냥 콜라는 몸에 안 좋으니까 제로칼로리 줄게.”
“그것도 좋지.”
“···그래.”
소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탁자 밑에 설치해둔 소형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 캔 건네주었다.
평상시 소하라면 절대 있을 수 없을 만큼 고분고분한 태도다.
마치,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약점이라도 잡혔다고 해도 믿을 정도!
물론, 소하가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약점을 잡힐 만큼 띄엄띄엄한 인물은 아니다.
그저 얼굴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코에 댄 부목이 안쓰러워 보여서였다.
코뼈가 완전히 결딴이 나서 상당히 아플 텐데도 웃음 짓는 그에게 소하는 차마 못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콜라 마셔도 되냐? 코에 탄산 올라오면 아픈 거 아니야?”
“Yo, 문제없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건 불행 중 다행이네. 그런데 왜 왔냐?”
소하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찾아왔다는 뜻은 둘 중 하나다.
매우 좋지 않은 일이거나,
매우 쓸모없는 일이거나.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잡담하러 찾아오는 녀석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소하도 재밌었기에 두런두런 과자나 까먹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경기계획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오우. 빠른 본론. 좋아. 아마도 보스는 지금 시간이 촉박하겠지?”
“···잘 아는 놈이 왜 이러실까.”
소하가 눈을 가늘게 뜨며 툴툴거리자 마리오 발로텔리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가리켰다.
“그 고민, 내가 해결해 주겠다는 거다!”
“음? 뭔 개소리야?”
전혀 상상치 못한 마리오 발로텔리의 제안에 소하는 그만 자제력을 잃고 험한 말을 내뱉었다.
코뼈가 부러진 놈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주겠다는 건지. 게다가 마리오 발로텔리는 지능적인 캐릭터하고는 거리가 매우 먼, 조쉬 킹과 비슷한 영역에 있는 인간이었다.
“헤이. 나 조금 마음에 상처 입을 뻔.”
“입지 그랬냐. 개소리할 거면 빨리 나가! 나 바쁘니까!”
드디어 소하가 성질을 내자 마리오 발로텔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본의를 밝혔다.
“···오우. 너무해. 알았어. 헤이, 보스. 그거 알아? 코뼈가 부러진 녀석도 경기장에 뛸 수 있다고.”
“···.”
“2002년도에 말이야, 너희 나라의 수비수가 멋진 가면을 쓰고 월드컵 4강까지 간 사실을 난 알아버렸다고!”
“···.”
“이뿐만 아니라, 존 테리나 페르난도 토레스 같은 선수들도 가면-히어로가 되어 투혼을 보여줬지! 즉! 나도 그렇게 하면 된다는 거야!”
마리오 발로텔리는 흥이 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사실, 꽤 좋은 제안이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중앙에서 버텨준다면 포츠머스는 평상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 터.
지금 소하가 골머리를 앓는 문제 따위는 한 방에 해결이었다.
게다가 그 마리오 발로텔리가 팀을 위해 부상을 달고 뛰겠다니. 엄청난 정신적인 성장이었고 대견할 만한 일이었다.
평상시의 소하였다면 책상을 뒤집어엎으며 크게 칭찬할 일!
하지만, 소하는 조쉬 킹이 앉았던 자리의 온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칼같이 거절했다.
“안 돼.”
“Why?!”
“이유는 두 가지야. 일단 첫 번째는 네 녀석의 사리사욕을 채워주기 싫다는 것이지.”
상당히 험한 말이었다.
부상을 달고도 뛰겠다는 선수에게 사리사욕이란 말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버럭 화를 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
그러나, 마리오 발로텔리는 화를 내기는커녕 바짝 얼어붙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다.
“어, 어떻게 알았냐···.”
“뻔하지. 너튜브에서 가면 쓰고 뛰는 선수들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을 거 아니야? 그리고 그걸 바라보던 너도 그렇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졌겠지. 에라, 발전 없는 자식아.”
“···히, 히어로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소하가 본심을 찌르자 잔뜩 풀이 죽은 마리오 발로텔리는 시든 꽃처럼 축져졌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론적인 무장을 하고 왔는지 작은 변론을 내세웠다.
“보스의 말은 맞다. 그래도 내가 경기에 뛰면 좋을 거다. 이건 부정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제법 일리가 있다.
이래저래 상당 기간 자리에서 떠날 예정이었던 마리오 발로텔리가 부활한다면 선수단 운영에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넌 가면을 쓰고 경기에 뛰기엔 너무 심한 부상이야. 이게 두 번째 이유다.”
“···What?!”
“너 의사 선생님 말씀 듣지 않지? 너는 위에 선수들하고 다르게 코뼈가 가루로 변했다고. 지금 인공 뼈 심어놨는데 가면 쓰고 볼을 찬다고? 그것도 동네 조기축구도 아니고 리그컵 결승전을? 괴사 일어나서 코 없이 살고 싶냐?”
그렇다. 부상의 정도가 달랐다.
부러지거나 금이 간 거는 어떻게든 무리해서 경기에 뛸 수는 있다.
하지만 코뼈가 없어서 보형물을 박아넣은 사람에게 세상에서 제일 격렬한 경기에 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잠자코 회복이나 기다려라. 이참에 코도 좀 높이고. 좋잖아? 무료 성형수술.”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래. 안 돼. 그럼 가.”
바쁜 소하는 빠르게 축객령을 내렸고 잔뜩 풀이 죽은 마리오 발로텔리는 말없이 일어났다.
그렇게 마리오 발로텔리가 굉장히 시무룩해져서 사무실을 나가려는 순간.
소하가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봄바람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고맙다.”
처음 들어보는 소하의 온화한 목소리에 마리오 발로텔리는 귀를 쫑긋거리며 부끄러워했다.
“큼, 큼. 벼, 별거 아니다.”
살짝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사라지는 마리오 발로텔리. 그의 뒷모습을 따스하게 바라보던 소하는 어느덧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해졌음을 느꼈다.
“후. 저 녀석도 힘을 내주는데, 나도 주저앉을 순 없지. 자, 힘내볼까.”
그 말썽꾸러기였던 녀석도 팀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꼭 이겨서 우승컵을 따낼 수밖에 없는 소하였다.
< 271화. 세 개. (7)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