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세 개. (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모처럼 리그컵 결승전 무대를 밟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대는 압도적인 상대 전적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농락하던 포츠머스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트에서 승전고가 울렸다.
오래간만에 얻은 리그컵 결승전의 무대.
침체기를 맞이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하지만, 상대가 압도적인 상대 전적을 자랑하는 포츠머스였고, 소하 또 한 나쁘지 않은 상대라고 평가했다.
“음. 어렵지 않은 상대군.”
시간을 내서 경기를 지켜본 소하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수년 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면 정말 무시무시한 상대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이번 시즌, 12월쯤에 주제 무리뉴 감독이 경질당하고 임시로 지휘봉을 잡은 구단의 전설이다.
선수로서는 무척 뛰어났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
축구는 감독놀음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강팀 중에서는 가장 만만한 상대였다.
“결승전까지는 앞으로 한 달. 그사이에 각성하진 못하겠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옛날의 모습을 되찾는다면 모르겠지만, 미래를 아는 소하로서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해서, 소하에게 더욱 중요한 건 이탈리아 원정 전에 자리를 잡은 4개의 경기였다.
프리미어 리그 24라운드 에버튼.
프리미어 리그 25라운드 아스널
프리미어 리그 26라운드 레스터
FA컵 16강 사우스햄튼.
이번 시즌만 놓고 볼 땐,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팀들이 이탈리아 원정으로 떠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소하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실력이 문제는 아니야···. 다만 팀 성향이 문제지···.”
한참 잘 가나는 팀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은 ‘부상’을 가장 걱정할 거다.
암만 잘 나가도 선수들이 부상으로 하나, 둘 자리를 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무너지는 게 기세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많은 토너먼트를 치르는 포츠머스가 아니던가. 부상만큼은 피해야 했지만 남은 상대들이 꽤 거칠었다.
“에버튼도 상당히 거친 팀이지. ‘머지사이드 더비’처럼 과격하게 하진 않지만 그래도 위협적이다···.”
머지사이드의 푸른 팀, 에버튼의 몇몇 선수들이 굉장히 거친 성향을 보였다.
까닥하다가 선수 한둘 누워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레스터 시티도 만만찮은 팀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그렇다 쳐도 윌프레드 은디디와 함자 차우두리는 거칠지.”
특히나 요상한 이름인 함자 차우두리는 주의할 인물이었다.
특유의 폭탄 머리 때문에 ‘작은 펠라이니’라는 별명이 붙은 레스터 시티의 유소년 출신!
작은 마루앙 펠라이니라는 별명답게 매우 터프한, 나쁘게 말해선 더럽게 플레이하는 선수였다.
이 선수의 플레이 때문에 몇몇 선수들이 상처를 입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FA컵 16강전에서 기다리고 있을 더러운 사탄들이지.”
소하는 무척이나 사나운 눈빛으로 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포츠머스의 가까운 북서쪽!
성자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소하에게만은 다시없을 사탄들의 집합소!
바로, 사우스햄튼이야말로 가장 큰 고비였다. 물론 사우스햄튼은 ‘거친’ 플레이와는 거리가 제법 있는 팀이긴 하다.
하지만, 요즘 나날이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는 중인 포츠머스와의 ‘남해안 더비’에서는 스토크 시티가 따로 없었다.
심지어, 이번 소하가 일으킨 프리미어 리그의 혁명 사건 때문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양 팀이었다.
-반대 1표는 누굴까?
-고추 떼라. 쪽팔리게 쯧.
-뭐 사우스햄튼 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너네는 반대했으니까 내년에도 교체 3명만 해라.
-경쟁자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메스꺼운 구단.
-버러지 팀.
다른 팀의 서포터들에게는 제법 젊잖기로 유명한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었건만.
사우스햄튼에게만은 예외였고 무차별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가족의 원수라고 해도 믿을만한 엄청난 증오!
심지어 이번 사건 때문에 ‘다른 팀’들의 서포터들에게도 조리돌림을 심하게 당하는 사우스햄튼이었다.
-이야···. 대의를 보지 못하고 그저 개인적인 감정만 앞세우네.
-프리미어 리그에서 퇴출해야 옳지 않을까? 추잡하다. 추잡해.
-저러면 저럴수록 더 쪽팔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정말,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죽을 맛이었다. 요즘은 지역 밖으로 나가서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라고 밝히기도 힘들었다.
“···씨발.”
이를 바득바득 가는 사우스햄튼!
그간 갑자기 성장한 포츠머스에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잔뜩 기가 죽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지 않던가. 이미 심하게 짓밟힌 사우스햄튼은 제대로 꿈틀거릴 준비를 마치었다.
-어차피 프리미어 리그의 악역으로 자리를 잡아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어.
-이참에 제대로 악당 역할을 해줘야 인지상정이겠지.
-이기기 힘들 거란 건 알아. 하지만 발목을 잡을 정도는 되겠지.
경기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사탄의 아들로 만든 포츠머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길 바랄 뿐!
해서,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며칠 전부터 응원 대신 선수들에게 포츠머스를 죽이라는 외침을 연거푸 반복 중이었다.
그리고 사람이란 원래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존재. 이 과격함의 불꽃이 사우스햄튼의 선수들에게 옮겨붙었음은 보지 않아도 훤했다.
“씁···. 제발 별일 없길.”
사나운 독사 같은 눈빛으로 북서쪽을 바라보는 소하의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
포츠머스는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를 위해 속도를 조금 줄여나갔다.
많은 전문가의 예상처럼 불상사를 피하기 위함이었고 안전하긴 했지만, 경기력 저하는 피할 수 없었다.
[1-1 무승부! 포츠머스와 에버튼의 경기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동점 골을 허용했으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했던 포츠머스였습니다. 사뭇 다른 모습이군요.]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무승부를 거두었다.
승점 1점밖에 따내지 못했지만, 별다른 사건이 터지지 않았기에 소하는 만족했다.
[우나이 에메리! 이러다가 다음 시즌에 경질당하겠어요!]
[아···. 아르센 벵거의 빈자리가 더욱더 크게 느껴집니다. 3-0으로 포츠머스에게 완패당하는군요.]
거친 플레이와 거리가 억만 광년 떨어진 아스널을 상대로는 다시금 기세를 올렸고, 사정없이 몰아쳐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포츠머스를 상대로 1무 3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파리 생제르맹과 아스널이란 강팀을 이끌고 상대적인 약팀인 포츠머스를 상대로 이런 성적표를 받다니.
실제 미래보다 훨씬 빠르게 경질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물론, 소하에게는 알 바는 아니었고 바로 다음 경기에 들어갔다.
주의할 인물이 몇 포진한 레스터 시티를 맞이해 다시금 기어를 내렸다.
[0-0 무승부. 포츠머스가 모처럼 또다시 무득점 경기를 기록하는군요.]
[득점왕 경쟁을 하는 조쉬 킹과 에링 홀란드는 아쉬운 경기였을 거예요.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체당했거든요.]
적당히 간만 보던 소하는 조금 경기가 거칠어지는 것 같아지자 후다닥 주전들을 빼버렸다.
감독 처지로서는 득점왕이야 배출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그만인지라 더 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미 거의 확정적이잖아? 둘 중 하나가 받는 건···.’
겨우 26라운드를 지났을 뿐인데 조쉬 킹은 벌써 26골을 달성한 상태다.
모든 대회를 통틀어 벌써 35골을 넣었고, 엄청난 득점 행진 중이다.
덤으로 득점 순위 2위인 에링 홀란드는 19골. 3위인 앙투안 그리즈만이 16골이었으니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그럼···. 이제 사탄이 들린 놈들을 무찔러 볼까.”
소하와 포츠머스는 곧바로 사탄이 들린 원수인 사우스햄튼과의 일전에 들어갔다.
솔직히 매우 짜증이 나는 상대와 무대였다. 만약, FA컵이 아닌 리그 경기였다면 그냥 몸을 사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어떻게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해야만 하는 FA컵이었기에 몸을 사리기엔 무리가 따랐다.
잔뜩 독이 오른 지렁이를 피하다가 도랑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해서, 소하는 경기 전부터 미리미리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치열한 더비경기이긴 하지만, 언제나 ‘동업자 정신’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격렬한 경기는 좋습니다만, 누군가가 다치는 더러운 경기는 지양해야 리그가 발전할 겁니다.”
“사이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을 지키는 경쟁 관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사우스햄튼을 그대로 쓰레기 구단으로 낙인찍히게 할 수작이었다.
보통 다른 구단이었다면 슬쩍 몸을 사릴 만도 할 정도의 은은한 협박!
그러나 사우스햄튼의 분노는 보통을 이미 옛 저녁에 초월한 지옥의 불꽃이었다.
-응, 뭐래.
-이미 우리는 쓰레기 구단이야.
-쓰레기한테 한번 당해봐라.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경기가 치러지는 사우스햄튼의 홈구장, 세인트 메리스 스타디움의 분위기로 증명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다리를 분질러!”
“발 말고 주먹을 써라!”
“오늘은 축구 3이다!”
“팔꿈치를 효율적으로 쓰라고!”
“레드카드는 옐로카드 두 장이 필요하니까 두 명을 죽이고 퇴장하면 된다.”
이게 21세기의 축구 경기장인지, 기원전 로마에서 검투사들이 사투를 벌이던 콜로세움인지 구분이 어렵다.
덕분에 소하는 모처럼 어이없어했다.
“지랄이다. 지랄. 사탄이 들어도 제대로 들었구나···. 마귀 같은 놈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이들을 이렇게 변하게 만들 정도로 박박 긁은 건 본인이었음을 제대로 망각한 소하였다.
하여튼, 이래저래 경기는 시작되었다.
사우스햄튼의 감독은 제법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을 소하에게 전했지만 소하는 영 탐탁지 않았다.
‘하지 말랬다고 하지 않으면 이 세계에는 범죄 따윈 없겠지···.’
물론, 이 세상은 온갖 범죄가 흘러넘치는 세계. 경기는 곧장 이를 증명했다.
-촤아아악!
잔디를 스쳐 지나가는 사우스햄튼 수비수의 강력한 태클!
제법 깔끔한 효과음이었기에 좋은 태클이라는 착각도 유발했지만, 방향이 문제였다.
[이런! 뒤에서 태클했습니다! 너무나도 비신사적인 태클인데요!]
[아, 이런! 흡사 가위 치기 같은 태클이었어요. 틸레만스 선수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군요.]
유리 틸레만스가 쓰러졌다.
훌륭한 발기술로 완전히 상대를 벗겨냈지만, 뒤에서 날아오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하!
다행스럽게도 금방 일어났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전주곡과 다름없었다.
-빠각!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듣기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사우스햄튼 선수가 휘두른 팔꿈치에 코를 가격당한 마리오 발로텔리의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맙소사! 마리오 발로텔리 선수의 코에서 피가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퇴, 퇴장입니다. 하지만, 포츠머스 선수들이 제대로 분노했어요!]
당연히 퇴장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노골적인 비열한 행위는 젊은 포츠머스 선수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야이 새끼야 지금 뭐 하는 거냐?!”
“개새끼들이!”
“비켜, 말리지 마!”
소하의 지엄한 원칙 때문에 경기장에서는 깔끔하기로 소문난 포츠머스의 선수들이 사우스햄튼의 선수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오른 사우스햄튼의 선수들이 ‘미안’하고 뒤로 물러설 리는 없는 법.
요컨대, 난투가 일어났다.
[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전반 종료 직전,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 선수들이 제대로 붙었습니다.]
[심판을 사이에 두고 거침없이 달라붙어 욕설을 주고받네요! 아, 옐로카드가 계속 나옵니다.]
이 거친 경기를 맡은 주심은 쉴 새 없이 옐로카드를 꺼냈지만,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이럴 때야말로 감독들의 진통제가 필요했지만, 오히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진통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씨벌, 뭐? 걱정하지 말라고? 저게 왜 레드카드냐고? 감독이 아니라 야바위꾼이었구만?!”
“뭐라고?! 지금 당신 뭐라고 했어?! 말이면 단 줄 알아?!”
“가, 감독님 참으십시오!”
“마, 말려!”
이쪽도 전쟁터였다.
그야말로 난장판!
이래저래 이번 시즌, 축구 외적으로 가장 화제가 된 경기였고, 1-0으로 간신히 승리한 포츠머스에게는 상처만 남았다.
선발로 출장한 데클란 라이스 3주 부상.
교체로 출장한 칼빈 필립스 2주 부상.
마리오 발로텔리 코뼈 골절.
유리 틸레만스 3주 부상.
아담 웹스터, 경고 누적 퇴장.
다섯 명의 선수를 잃었으며,
[포츠머스 징계. 상당한 벌금을 지급할 예정.]
벌금마저 부과되었다.
물론, 원흉인 사우스햄튼은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중징계를 받았지만, 이미 포츠머스는 초가삼간이 다 타버렸다.
“···.”
드잡이질하다가 얼굴에 자잘한 상처를 남긴 소하는 놀랍도록 암울한 결과에 모처럼 썩은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3일 뒤에는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 267화. 세 개.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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