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세 개. (2) >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의 첫 상대를 이탈리아의 최강팀과 맞붙게 된 포츠머스. 상당한 난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발걸음만은 멈추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 22라운드, 브라이턴과의 홈경기에서 5-2로 승리한 포츠머스는 확고한 선두를 유지했다.
[1위, 포츠머스, 14승 8무 승점 50점.]
22경기 동안 한 번도 패배하지 않으며 승점 50점을 기록,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심지어 단순히 경기에서 이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기 내용도 무시무시했다.
[22경기, 60골 18실점.]
경기당 3골 가까이 넣을 정도로 엄청나게 공격적인 팀임에도 경기당 실점이 1점 미만인, 완전무결한 경기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평균 점유율 또한 59%에 근접한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부리그에서 빌빌거리던 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
게다가 놀랄 이유는 몇 가지 더 있었다.
-무한 로테이션을 가동했음에도 이런 성적이라는 거지···.
-모든 대회의 우승을 도전하면서도 리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역대급 팀 아닌가?
-유망주란 유망주는 모조리 잠재력을 발휘했고, 다른 팀에 가면 붙박이 주전일 선수들이 무한경쟁하고 있어.
-선수단의 평균 나이가 25살도 되지 않는 어린 팀이야. 미쳤어.
사실, 모든 전력을 리그에만 쏟아붓는다면 몇몇 강팀들은 이 정도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FA 컵, 리그컵,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조리 상위 라운드에 진출함과 동시에 리그를 씹어먹는 모습은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심지어 선수단의 평균 연령도 대단히 어리지 않던가. 베테랑의 도움이 없이 빡빡한 일정을 헤쳐나갈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 팀을 이끄는 감독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일화였다.
경험이란,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으니까.
바꿔 말하자면 경험이란 큰 무기를 감독의 역량으로 채웠다는 이야기였기에 소하에 대한 칭송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전관 우승을 노린다고 선언한 포츠머스의 성소하 감독. 절대 농담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이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전관 우승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만약에, 그가 해낸다면 왕실에서 ‘작위’ 수여를 진행할 거란 소문이 돈다.]
잉글랜드인들은 벌써 오지랖을 떨기 시작했다.
작위라니. 축구계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서 알렉스 퍼거슨’이었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적인 트레블 이후, ‘Knight Bachelor’에 서훈되었던 전설적인 감독!
과연, 소하가 그를 뛰어넘는 영국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 될 수 있을지는 오직, 시간만이 답을 알고 있었다.
***
프리미어 리그, 22라운드에서 브라이턴을 때려잡은 포츠머스의 다음 상대는 풀럼이었다.
포츠머스와 그리 멀리 않은 런던에 자리 잡은,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구단!
물론,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지닌 구단이 지천으로 널린 잉글랜드였기에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고, 성적도 고만고만했다.
단 한 번도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본 적이 없는 평범한 팀이 기세와 독이 잔뜩 오른 포츠머스를 상대로 버릴 리가 없었다.
[아···! 경기가 끝납니다. 8-2, 포츠머스의 대승입니다!]
[전반기에도 6-0으로 대패했던 풀럼이었는데, 이번에도 6골 차이로 와장창 깨져버렸어요!]
풀럼의 홈구장, 수용인원 3만 명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는 단말마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전반전에만 5골을 실점한 뒤로는 이미 비명을 지를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젖 먹던 힘을 최대한 쥐어 짜내서 후반전에 두 골을 따라잡긴 했다.
물론, 포츠머스가 완전히 ‘체력 보존’ 상태로 바꾼 덕분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기대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포츠머스에는 안일한 플레이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 성난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야이 새끼들아! 풀럼 따위한테 두 골이나 처 먹혀?! 리산마랑 웹스터, 이제 이번 시즌에는 선발로 뛰기 싫은가 보지?”
제법 준수한 수비 조합으로 이번 시즌 상당한 공로를 세운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와 아담 웹스터가 크게 혼났다.
덤으로 공격진들에게도 철퇴가 같이 떨어졌다.
“전반기엔 6골 차였으니까, 후반기에도 6골 차로 이기라고! 약해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거냐?! 주전자리 차지하겠다는 건 말뿐이었어?”
전반기엔 6골 차로 이겼다.
그러니까 그 이하의 점수 차로 이기면 팀이 약해졌다는 요상한 논리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원정경기 아니던가!
홈경기보다 훨씬 어려운 경기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기에 궤변이었지만, 소하의 전사에게는 약효가 좋았다.
“···약해?!”
“···졌다?!”
“맞는 말이긴 해···.”
“질 수 없지.”
“다음 시즌 선발은 나라고!”
제2의 조쉬 킹이라는 타이틀을 노리는 알랑 생막시맹을 비롯한 준주전 선수들의 승부욕에 불이 붙었다.
그리하여, 3골을 더 넣었고 기어코 6골 차 승리를 다시금 장식한 포츠머스였다.
[확실히 포츠머스의 준주전 선수들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주전 선수들과 비교해서 그리 떨어지지 않아요.]
[그나저나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스타일은 분명히 다른 선수들이거든요. 그런데, 전체적인 경기력은 비슷해요.]
분명 다른 스타일의 선수들이다.
일단 수비진으로 보자면, 왼쪽 수비수인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와 케빈 도슨은 상당히 다른 선수였다.
같은 왼발잡이에 패스가 좋다는 장점을 공유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매우 달랐다.
케빈 도슨은 잉글랜드 국적 수비수답게 강력한 육체 능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뛰어난 수비 위치선정으로 사전에 유리한 공간을 점유하는 수비수다.
이에 반해 리산드로 마르티네스는 상대적으로 열세인 육체적 능력을 뛰어난 민첩성과 속도로 만회하는 스타일의 수비수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다른 스타일의 선수가 나온다면 팀의 대형이 달라진다.
느린 선수에게 뒷공간을 많이 내어줄 순 없었고, 힘이 약한 선수에게 경합을 자주 하라고 지시할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포츠머스는 똑같았다.
변화 없이, 늘 하던 대로 왼쪽 수비수는 포츠머스의 왼쪽 수비수가 해야 할 임무를 이행했다.
그야말로 좀처럼 믿기지 않는 기이함!
이러한 특이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하의 적절한 파트너 배분이었다.
[파트너인 아담 웹스터가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의 약점을 잘 메꿔주고 있습니다.]
[아담 웹스터의 전투적인 스타일이 이제 막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한 어린 수비수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있어요.]
아담 웹스터.
케빈 도슨과 후벵 디아스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포츠머스의 성골 유스.
다른 팀으로 이적할 만도 했지만, 그는 꿋꿋이 포츠머스에서의 경쟁을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만개했다.
이는 다른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끊임없는 노력 끝에 드디어 같은 꿈을 꾸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포츠머스가 강한 이유였다.
하여튼, 풀럼을 쉽사리 요리한 포츠머스는 곧바로 FA 컵 4라운드, 셰필드 웬즈데이를 만났다.
다음 경기가 리그컵 4강전, 2차전이었기 때문에 포츠머스는 풀럼 경기와 거의 비슷한 선발명단으로 경기에 임했다.
리그컵 결승전으로 향하는 중요한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주전들에게 휴식을 준거다.
이 때문에, 고작 4일 만에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체력에 대한 큰 우려가 따라왔다.
-음···. 2차전이 중요하긴 한데.
-그래도 셰필드 정도야.
-혹시 몰라. 더군다나 원정경기니까.
FA 컵은 역사가 굉장히 깊은 대회인 만큼 이변이 자주 나왔다.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이 따랐지만, 포츠머스는 ‘젊은’ 팀이었다.
젊다는 말은 다르게 말해서 체력이 왕성하다는 뜻.
주전 선수들에 비해선 경기 수가 적은 혈기 왕성한 선수들에게 4일 정도의 시간은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고도 남을 시간이란 이야기다.
[포츠머스의 2-0 승! 쉽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합니다.]
[무난하게 16강까지 진출에 성공하는 포츠머스였습니다. 막을 수 없어요!]
쉬운 승리였고 덕분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리그컵 4강, 2차전, 첼시와의 경기를 맞이했다.
1차전의 결과는 2-1 포츠머스의 승리.
심지어 첼시의 홈구장이었기에, 원정경기에서 승리한 포츠머스가 매우 우위를 차지한 상황이다.
홈구장의 기운을 받아 비기기 작전으로만 나가도 결승전 무대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하지만, 경기전에 소하는 선수들에게 비기기 따위는 개나 주라고 연설했다.
“자식들아! 우리가 왜! 전관 우승을 노리는 팀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와라! 겁쟁이같이 팬티 레슬링 해서 결승전 갈래? 아님. 상남자답게 머리통 쪼개고 결승전 갈래?”
팬티 레슬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으르렁거리는 소하의 의도는 선수들에게 똑똑히 전해졌다.
“4년 전···. 리그컵 결승전의 복수를 드디어 제대로 할 수 있겠군요.”
“지난 시즌 FA 컵 결승전에서 이긴 건 다소 맛이 떨어졌죠. 우리가 진 건 리그컵이었으니까···.”
고참 선수들은 잊지 않았다.
현 대회인 리그컵에서, 그것도 결승전에서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에게 아쉽게 패배했던 그 날의 추억을.
모처럼 다시금 리그컵에서 만났고 제대로 복수할 시간이 도래한 그들에게 소하의 주문은 바라던 바였다.
모두가 조심스러운 경기를 하리라 예상할 때 공격적으로 나서는 팀.
그것이 바로 포츠머스지 않던가.
그러나 이 패턴은 그간 상당히 자주 반복되었던 패턴!
즉, 상대 팀인 첼시의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이 수를 읽기 어렵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음···. 포츠머스는, 성소하 감독은 분명 공격적으로 경기에 나올 거야.”
어렵지 않은 예상이었다.
감독이란 전술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법.
뛰어난 감독인 사리 감독에게 이 정도 통찰력은 기본 중에서 기본이었다.
“확실하다. 성소하 감독은 홈에서 위풍당당하게 결승전에 진출하고 싶어 할 거다. 어찌 보면 실리 따윈 버려둔, 어리석은 선택이지만 그것이 그들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은 포츠머스와 소하를 아주 제대로 파악했다.
하기야, 그간 두들겨 맞은 맷값이 얼만데. 이쯤이 되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쉽다. 아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어차피 하나였을 뿐이다.”
지고 있다.
그러니까 선택지는 공격밖에 없었다.
포츠머스의 공격에 맞서 역습을 노려볼 수도 있었지만, 포츠머스는 이러한 형태에 매우 강한 팀이다.
항상 만나는 팀 대부분이 역습을 노렸으니까.
“우리의 시험대가 될 거다.”
애연가답게 즐겨 태우는 담배를 꼬나물며 투지를 불사르는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
이번에야말로 포츠머스를 꺾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쳤다.
***
소하와 포츠머스의 수를 읽고 그에 맞춘 포진을 제대로 짠 첼시!
경기전 상황만 보자면 첼시가 할만해 보였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모하메드 살라! 여러 골을 기록하며 첼시를 침몰시킵니다!]
[2-0. 끝났어요. 끝났습니다!]
조쉬 킹과 에링 홀란드는 잠잠했다.
그러나 ‘젬’ 라인에는 모하메드 살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섭섭했다.
이번 시즌 미친 득점 경쟁을 보여주는 조쉬 킹과 에링 홀란드에 가려져 조명받진 못했지만, 모하메드 살라는 언제나 모하메드 살라였다.
“···강하다···.”
남은 시간이 거의 없음을 확인한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경기 자체는 대등했지만, 결국 포츠머스에는 무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에덴 아자르는 훌륭한 명검이다. 하지만···. 포츠머스에는 그와 동급의 선수가 셋이나 있었다.”
한 손이 세 손을 이길 순 없는 노릇.
모 유명 만화에서처럼 일도류의 검사가 삼도류의 검사를 이길 수 없는 이치와 같았다.
솔직히 첼시는 잘 싸웠다.
포츠머스에 에덴 아자르는 막혔지만, 대신 조쉬 킹과 에링 홀란드를 묵었으니까.
2:1 교환.
나쁘지 않은 가성비다.
사실 굉장히 좋은 결과였다.
그러나 3:1 교환까지 가져가기에는 포츠머스는 너무나도 강했다.
“좋아. 이제 당분간 리그컵 걱정은 없겠군. 그럼 이제···.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해 볼까?”
기어코 첫 번째 결승전에 팀을 올린 소하의 시선은 쉴 틈도 없이 중부유럽의 반도, 이탈리아로 향했다.
< 266화. 세 개. (2)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