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세 개. (1) >
소하와 포츠머스는 바로 다음 날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제는 당연히 이번 이적에 관해서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다소 불량한 모습으로 단상에 나타난 소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이적 제안은 아쉽게도, 저와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거절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소하의 모습에 기자회견장은 난리가 났다.
왜냐하면 포츠머스가 이적을 허용할 거라는 예측이 상당히 앞섰기 때문이다.
1억 2,000만 파운드.
1억 7,000만 파운드.
역대 이적료 5위안에 모조리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제안을 이제 막 어깨를 편 포츠머스가 거절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수라판으로 변한 기자회견장에는 질서가 사라지고 혼돈이 찾아왔다.
“감독님! 도대체 무슨 사정인가요?!”
“어떤 판단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선수들도 동의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엄청난 액수의 재계약으로 선수들을 붙잡으신 겁니까?”
“좀 더 자세한 연유를 설명해주시길 강력히 요청합니다!”
질문의 폭풍이었다.
하기야, 구단 차원에서 이적을 거절하는 건 이해가 어느 정도 가는 일이긴 하다.
선수를 팔지 않고 함께 우승컵을 쓸어 담는다면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라는 꿈의 구단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소하는 이러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싱긋, 미소를 날리며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제가 직접 말하기보다는 당사자들의 말이 더욱 와닿겠지요. 그러니, 직접 들어보시죠.”
극단의 사회자처럼 팔을 쭉 뻗자 기다리고 있었던 조쉬 킹과 델리 알리가 단상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오만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델리 알리였다.
“바르셀로나의 제의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에게 바르셀로나의 DNA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하를 힐끗 바라본 델리 알리는 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DNA를 밝혔다.
“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포츠머스의 푸른색 DNA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DNA가 불일치하군요. 그래서 합류하지 못하겠습니다.”
DNA 드립에 원한이 골수까지 치민 누군가가 써준 대본 같았지만, 그 효과는 무척 좋았다.
-바로 그거지! 어디서 DNA, 이 지랄 하고 있어. 구단 해체하고 병원이나 차리던가.
-돌팔이가 운영하는 병원일 듯.
-시원하다. 너희 DNA는 너희 유소년팀에서 찾으시고요.
-델카콜라. 인정한다.
-시-원하다.
인터넷의 반응은 뜨거웠고 기자회견에 참여한 포츠머스 쪽 기자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어서 조쉬 킹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결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전! 제2의 미스터 포츠머스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포츠머스를 떠날 리가 없잖아요?!”
호쾌하게 외치는 조쉬 킹의 모습에 기자회견장은 순간, 락 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장소로 변했다.
“조쉬 킹! 조쉬 킹! 조쉬 킹!”
“그거지! 잉글랜드에서 정점을 찍자고!”
“마이클 오웬 이후로 발롱도르에 근접한 최고의 잉글랜드 선수!”
“스타야! 저 선수는 자신만의 색으로 스타가 됐다고!”
“바로 이거지!”
기자회견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잉글랜드의 기자들은 어깨춤을 추며 열광했다.
사실 그들 또한 오랜만에 나온 잉글랜드 국적의 월드 클래스들을 다른 리그로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축구 종주국의 자부심이 걸린 일이었거늘. 조쉬 킹과 델리 알리의 발언은 그 자부심에 황금빛 꽃가루를 뿌려주는 격이었다.
“우오오오! 포츠머스여 영원하여라!”
그렇게 한참을 질문도 잊은 채 열광하는 기자회견장.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소하가 다시금 마이크를 잡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밝혔던 것처럼 우리는 이별 따위 없이 함께 정상을 노릴 거고, 이번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번 시즌에 곧바로 증명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소하의 선언에 즐거움에 취해있던 한 기자가 정신을 차리고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증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에, 소하는 검지를 하늘을 향해 치켜올리며 단언했다.
“축구계의 지배자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네. 우리는 이번 시즌에 전관 우승을 달성할 겁니다. 앞으로 4개 남았네요.”
가진 내용에 비해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와 태도였지만, 다시금 환호의 폭발을 일으켰음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
기자회견이 끝난 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깔끔하게 협상을 포기했다.
“하, 참. 선수가 우리 쪽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군.”
“우리의 필승전략이 이렇게 실패한 적이 있었나···? 하하···.”
그저, 허탈한 웃음만 지었을 뿐.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
선수 개인이 오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데, 뭘 할 수가 있겠는가. 납치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스페인 땅을 밟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후퇴분이었다.
이것은 의외로 다른 방향에서 포츠머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음···. 레알이나 바르샤도 이적에 실패하는데 우리는 턱도 없겠군···.’
‘포기하자.’
‘성소하 감독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선수들의 충성심을 저렇게 올려두다니···. 비법을 알고 싶다. 최면술이라도 사용하나?’
‘저 선수들보다 충성심이 강하다고 소문이 난 케빈 도슨은 어림도 없겠군.’
‘우리 팀의 서포터라는 데클란 라이스도 어렵겠는걸?’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조쉬 킹과 델리 알리가 아닌, 다른 선수들을 노리던 다른 구단들의 움직임을 원청 봉쇄해버렸다.
특히나, 케빈 도슨을 노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데클란 라이스를 노리던 첼시는 실제로도 팩스를 보내기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그냥 세단기로 제안서의 종착점을 바꿨다.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중국과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치자.
그렇다면 일본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싸움을 걸까? 절대 아니다.
미국과 중국보다도 전력이 약한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승산 따윈 없을 테니까.
이래저래 본의 아니게 다른 외적들의 침입을 방지하는 결과까지 챙긴 포츠머스였다.
그리고 외부에서의 공격에 대한 안전을 확보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포츠머스 내부의 결속력을 또 한 번 다지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다.
‘와···. 도대체 저 친구들은 어째서 이 구단에 저리도 애정을 가지는 걸까?’
‘좋은 구단이긴 한데···. 뭐랄까. 이 정도일 줄 몰랐어.’
‘전관 우승을 논하는 팀이라니. 나도 언젠간 저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팀을 이끄는 날이 오겠지?’
‘멋있다. 축구계에 낭만 따위 없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었는데. 아직 낭만이 살아있었어.’
‘뭔가···. 가슴이 뭉클해.’
주전 선수들은 물론이고, 후보로 재능을 키워나가던 비교적 입단 기간이 짧은 선수들의 사기가 대폭 올랐다.
“후훗.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오직 한 선수, 이번 시즌 13개의 공격포인트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는 중인 마리오 발로텔리만이 묘한 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포츠머스에 찾아온 경기는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가 아닌 컵대회였다.
FA 컵 3라운드, 블랙풀 FC 원정경기.
리그컵 4강 1차전, 첼시 원정경기.
모든 대회의 우승을 노리는 포츠머스로서는 무척 중요한 경기였다.
물론, FA 컵 3라운드의 상대 블랙풀은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포츠머스가 압도적으로 강한 팀!
모두가 포츠머스의 낙승을 예상했고 곧바로 증명해냈다.
[포츠머스의 불꽃 같은 경기력입니다! 대부분 후보 선수들로 출전했지만, 압도적으로 꺾어버리네요.]
[뭐랄까요. 팀 자체가 한 차원 진화한 느낌입니다. 솔직히 가면을 썼더라면 1군 정예 선수들이 출전했다고 믿어도 될법한 경기였어요.]
5-0 대승!
블랙풀 FC는 말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그렇다고 블랙풀의 홈구장은 그리 나쁜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이야! 잘한다. 포츠머스!”
“우리 팀이 엉망진창으로 당하는 꼴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상대가 포츠머스라 다행이야.”
“포츠머스에는 져도 불만 없다.”
국가보다 연고지 팀에 대한 애정이 강한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이번 경기는 포츠머스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범국민적으로 사랑받는 구단으로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이어서, 기분 좋은 대승을 거둔 포츠머스는 곧바로 첼시와의 리그컵 준결승전 1차전에 돌입했다.
리그컵 준결승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역사상 마지막 홈&어웨이 방식의 리그컵 준결승전이다.
포츠머스와 첼시의 상대전전은 포츠머스의 근소 우위!
요상하게 포츠머스는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항상 강했고 이번에도 여지없이 상성에서 우위에 있음을 증명했다.
[2-1로 포츠머스가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아자르가 선제골을 넣으며 좋은 시작을 했지만, 결국은 따라잡히는군요.]
첼시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에덴 아자르는 정말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불꽃을 터뜨린 조쉬 킹과 델리 알리를 위시한 포츠머스를 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좋았어! 계속 가즈아!”
계속되는 승리에 소하의 기쁨 게이지는 쭉쭉 차올랐고, 이에 비례해 포츠머스는 점점 더 대업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
국내 컵대회를 모조리 승리로 장식한 포츠머스에 이번에는 정말 중요한 이벤트가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추첨.
본디 12월 중순쯤에 추첨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한 달 늦게 시작된 이 추첨에 포츠머스는 물론,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됐다.
“쩝. 위험하네요.”
늘 그렇듯, 조 추첨을 관람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포츠머스의 인원 중에서 밀러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게요. 재수 없으면 난리 나겠어요.”
가운데 자리에서 늘어져 있던 소하 또한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흘겨봤다.
18-19시즌의 시드 팀과 비 시드 팀은 다음과 같다.
[시드 팀(조별리그 1위)
A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조, 바르셀로나.
C조, 파리 생제르맹.
D조, 포츠머스.
E조, 바이에른 뮌헨.
F조, 맨체스터 시티.
G조, 레알 마드리드.
H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비 시드 팀(조별리그 2위)
A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B조, 토트넘.
C조, 리버풀.
D조, 포르투.
E조, 아약스.
F조, 올랭피크 리옹.
G조, AS 로마.
H조, 유벤투스.]
1위임이나 2위임이나 별다른 격차가 없을 정도의 구성이다.
“16강 토너먼트 대진 규칙은···. 같은 국가, 같은 조는 제외죠.”
“맞아요.”
소하는 에밀리아 존슨의 설명을 들어주며 감자 칩을 우적거렸다.
그런 소하의 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감자칩 봉지를 하나 더 까서 소하의 품에 안겨준 에밀리아 존슨은 슬쩍 예측해보았다.
“그러면 일단, 토트넘 리버풀 포르투는 만날 리가 없고, 가장 할 만한 팀은 아약스와 리옹이겠네요?”
“AS 로마도 추가하는 게 어떻습니까? 작년에도 제법 이긴 팀이니까요.”
밀러도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 시즌, 지옥의 조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팀이었기에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우물우물. 음. 나쁘지 않은 분석이긴 하지만, 아약스랑 로마는 빼시는 게 좋아 보이네요.”
햄스터처럼 입안 가득 감자칩을 털어 넣은 소하는 눈빛을 빛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벤투스.
일단 이 두 팀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자체적인 전력도 강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 결승전의 패배를 잊지 않고 있을 터.
가장 피해야 하는 상대다.
그렇다면 남은 상대는 아약스, 리옹, 로마. 이 셋인데, 이 중에서 그나마 만만한 상대는 리옹뿐이라고 소하는 판단한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로마는 만만한 팀이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와 이미 두 번이나 붙어본 상대라서 우리에게 익숙하죠.”
포츠머스도 피차 마찬가지지만, 그건 지난 시즌에도 같았다.
즉, 당시에 포츠머스는 로마를 잘 알았지만 로마는 포츠머스를 잘 몰랐다는 이야기.
“결국 상대를 알고 있다는 우리만의 장점이 사라진 거예요. 아마 굉장히 힘든 상대가 될 겁니다.”
“흐음···. 과연, 그렇군요. 그럼 아약스는 어째서죠? 명문이긴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그리 위협적인 팀은 아니잖아요?”
“그거야···.”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미래를 알고 있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18-19시즌 당시, 아약스는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며 챔피언스 리그 4강전까지 달려나갔고 아쉽게 토트넘에 패해 결승전 무대를 밟지 못한 강팀이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를 토너먼트에서 모조리 집으로 돌려보내며 돌풍을 일으켰던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다.
“음. 그냥. 쌔서요. 이름값에 가려져서 그렇지 전력은 4강급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소하는 대충 얼버무렸고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소하가 그렇다면 그렇다는 사실을 수년 동안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자, 그럼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추첨이 시작되었고 포츠머스의 일동들은 마음속으로 ‘리옹’을 외쳤다.
물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유벤투스’만은 피하자고 바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놓쳤다.
소하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운은 파도와 같다.’라는 괴상한 격언을 말이다.
조별리그에서 운이 좋았으니, 토너먼트는 보지 않아도 훤한 법이었다.
[포츠머스! 유벤투스와 맞붙게 됩니다!]
“···.”
“···.”
“···.”
앉은 채로 기절해버린 소하를 위시한 포츠머스의 일동들.
그렇다. 포츠머스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상대는, 이탈리아 리그의 절대 강호 유벤투스 FC였다.
그리고 유벤투스에는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버티고 있었다.
< 265화. 세 개.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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