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선수의 가치. (3) >
스페인과 전 세계 최고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겨울 이적 시장에 나선 이유는 또 한 가지 있었다.
포츠머스의 이적위원회도 예상치 못한 또 한 가지 이유란, 바로, 소하가 일으킨 프리미어 리그의 ‘혁신’ 때문이었다.
“지금도 자금력만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위협하는 프리미어 리그는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큰 적이다.”
“이번 혁신으로 선수단의 질을 한층 더 향상할 수 있는 프리미어 리그 팀들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선수들을 쓸어 갈 거다.”
“그간 자본력보다 국제무대의 성적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실력이 달린다는 문제도 있었겠지만, 체력문제도 빼놓을 순 없다.”
“체력문제가 해결된다면, 프리미어 리그의 독주체계가 완성될 것.”
돈과 성적마저 모조리 석권한다면 바로 그 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다.
세계 최고란 타이틀은 그 자체만으로도 브랜드였으며 이를 뺏기는 일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서 매우 달갑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 혹자는 이럴지도 모른다.
‘어차피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영원히 최고의 팀’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 따위는 없다.
이는 역사가 증명했다
만약, 10여 년 이상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이 챔피언스 리그를 연이어 제패한다면?
만약, 지금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의 선수들이 프리미어 리그의 독주를 보고 자란다면?
지금이야,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드림 클럽’이라고 여기는 선수들이 많겠지만, 10년, 20년 뒤에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었다.
다음 세대의 축구선수들이라 하면,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이 별을 수놓는 장면을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선수들일 테니까.
예를 들면 바르셀로나 같은 느낌이다.
바르셀로나는 예전부터 명문이긴 했지만, 2010년대처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꿈의 구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바르셀로나의 황금기는, 리오넬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이니에스타, 부스케츠를 위시한 2000년대 중후반부터이다.
그리고 그 당시 그들이 써 내려가던 위대한 업적을 TV로 지켜보던 수많은 유망주가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는 꿈을 키웠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단 말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잉글랜드의 팀 중에서 레알 마드리드 급의 팀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10년, 아니, 더 길게 20~30년, 후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급의 팀이 탄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프리미어 리그에 쏠리는 돈과 인기는 이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게다가 이번 소하의 혁신이 프리미어 리그의 왕위계승을 수년, 십수 년, 앞당겼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까, 선봉을 끊어놔야 한다.”
“우위에 서 있을 때 격의 차이를 벌어놔야지 안심이다.”
서로 지독한 앙숙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결정은 내렸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동시에 주목한 팀은 포츠머스였다.
잉글랜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잉글랜드의 축구를 주도했으며,
잉글랜드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직 이제 갓 뿌리를 내리는 신생구단인지라 거대 구단의 외풍을 견딜 힘이 너무나도 약했다.
이 모든 조건을 모조리 갖춘 팀은 포츠머스가 유일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심지어 포츠머스에서 논의한 것처럼, 조쉬 킹과 델리 알리는 그야말로 필요한 선수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 선수들이었다.
먼저, 레알 마드리드는 최우선 목표였던 첼시의 ‘에덴 아자르’ 대신 포츠머스의 ‘조쉬 킹’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이번 시즌만 보자면 실력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득점력은 조쉬 킹이 우위다. 호날두 대신 골을 넣어줘야 하는 선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욱 좋다. 게다가 잉글랜드의 차세대 스타를 우리가 보유했단 사실만으로도 프리미어 리그를 제압했다는 상징적인 증거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떠났어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기회를 만들어줄 선수는 차고 넘쳤다.
에덴 아자르는 골을 넣는 재능보다는 수비진을 파괴해주며 기회를 만드는 작업에 더욱 재능을 가진 선수.
여러모로 레알 마드리드의 입맛에는 그보단 조쉬 킹이 더욱 알맞았다.
“물론, 선수의 가치를 후려칠 생각은 없다. 만족할만한 가격에 이적 시기는 시즌 종료 후로 잡아줄 거다.”
만약 당장 이적을 원한다고 하면 절대 들어주지 않으리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우승할 적기에다가 챔피언스 리그의 본선 토너먼트가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시즌 후에 사기에는 부담스럽다. 만약 포츠머스가 대단한 성적을 거둔다면 가격이 더더욱 오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 혹시 모른다. 우승 후에 충성심이 더욱 깊어져, 선수 차원에서 이적 제의를 거절할지도 몰랐다.
이 때문에 겨울 이적 시장에서, 그것도 시즌 종료 후 이적이라면, 게다가 상당한 금액이라면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델리 알리는 완벽하다. 하지만, 필리페 쿠티뉴가 실패했다는 선례가 있으니 가격을 후려쳐야겠지.”
그들이 가격을 후려치는 방법은 십수 년 동안 매우 유구한 전통으로 잡았는지 오래다.
바로, 선수 뒤흔들기.
모두가 입단하고 싶어 하는 ‘꿈의 구단’이란 지위를 이용해서 선수들의 불만을 유도, 이적료를 내리는 술수를 자주 선보이는 팀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우, 아주, 훌륭한 성과를 낸 전술이기도 했다.
해서, 그들의 수작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다시금 상승가도를 달리던 포츠머스를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
당분간 비밀을 엄수하며 조용하게 사태를 정리하기로 했지만, 갑작스럽게 터진 속보는 엄청난 혼란을 만들어냈다.
-뭐? 1억 2,000만 파운드?! 유로가 아닌 파운드라고?!
-어···. 뭐야? 갑자기···?!
-미친! 델리 알리는 안 돼!
-그래도, 1억 2,000만 파운드면 고민해봐도 되지 않을까?
-그 돈 받고 대체자를 구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더욱 저렴한 가격에.
-당장 가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은 충분하고 그 시간 동안 성소하 감독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겠지.
-개소리하지 마라. 절대 안 된다.
델리 알리, 본인에게도 비밀에 부쳤건만. 선수 본인보다 세간이 먼저 알게 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인터넷은 물론, 현실의 축구계 또한 이 대사건에 엄청난 화염이 폭발했다.
서로 이적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펼치며 고지전 따위가 아닌, 본격적인 전격전을 펼치었다.
말 그대로 대규모 산불이었다.
물론, 소하의 분노에 비해서는 성냥불보다 미약한 불꽃이긴 했다.
“이런 개씨발 새끼들이! 상도덕 개미 오줌만큼도 없는 후레자식들이네?! 가정교육을 못 받았나?!”
와장창!
소하는 그간 애지중지하던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상 중 하나를 집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다.
상당히 단단한 상이었기에 큰 파손은 없었지만, 분노어린 투척물에 가격당한 감독 사무실의 가구들은 제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렇듯, 감독 사무실을 초토화하는 소하였지만 분노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뭐?! 뭔 개똥 같은 DNA가 있어?! 야이, 씨발! 태어나서 스페인에 가본 적도 없는 애야. 유소년은 MK돈스에서 보냈고, 프로 생활은 우리 팀에서만 한 애라고!”
솔직히 말해서, DNA가 있다고 친다면 포츠머스의 DNA가 흐른다고 해야 정상적이다.
델리 알리는, 그야말로 소하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전혀 다른 선수 인생을 맞이한 선수였으니까.
그런데 난데없이 자기들끼리 DNA니 뭐니, 개소리를 지껄이니 혈압이 오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은 델리 알리의 사진에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합성해 인터넷에 뿌리고 다니는 실정이었다.
아마, 공자나 부처가 환생한다고 하더라도 던질 수 있는 물건은 일단 던지고 볼, 천인공노할 일이다.
“후우···. 후···. 옆에서 저 지랄 하는 거 볼 때는 저런 놈들도 있나 싶긴 했지만, 이렇게 열이 뻗치는 일일 줄 정말 몰랐다.”
거친 숨을 들어 내쉬며 침착함을 애써 찾으려는 소하.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느샌가 조쉬 킹의 이적설까지 흘러나와버렸다.
[조쉬 킹! 레알 마드리드에서 역대 이적료 2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이적료를 제의했다.]
[킬리앙 음바페를 뛰어넘는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할지도 모르는 조쉬 킹.]
[잉글랜드 국적 선수들의 최고 이적료 기록이 갈아치워지는 순간.]
바르셀로나의 깽판에 힘입어서인지, 분명 비밀을 엄수하자고 구단 간 합의했던 협상이 밖으로 새어 나갔다.
그야말로 울화가 골수까지 스며드는 상황!
당연히 침착함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소하의 발작 버튼을 시원하게 다시 한번 누르는 격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이런 썅! 뚝배기를 부숴버릴 씹새끼들이이이이!”
참고로, 뚝배기는 머리였다.
하여튼 무수히 많은 경기 일정 때문에 생각을 차마 정리하지 못한 소하로서는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마침, 조쉬 킹과 델리 알리도 그들의 에이전트와 함께 감독 사무실을 방문했다.
아니, 방문하려고 했었다.
“···오, 오늘은 일단 그냥 돌아가죠.”
“그, 그게 좋겠다야. 주, 중요한 일이니까, 감독님께서 아직 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소하의 분노어린 고함과 사무실의 물건이 박살 나는 소리에 조쉬 킹과 델리 알리는 사색이 되어 돌아갔다.
심지어, 소하의 개인 비서에게 알리지도 않고 도망가듯이 말이다.
이래저래 포츠머스는 모처럼 정말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 셈이었다.
***
후루룩.
난장판이 된 소하의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게 따스한 차를 넘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도의 침입을 받았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사무실에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인물은 물론, 사무실의 주인 소하였다.
“음. 역시 생각을 정리할 땐 홍차만 한 게 없지. 과연 어떤 천재가 풀떼기를 물에 우려서 마실 생각을 처음 했을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지옥의 악귀 나찰이 따로 없었거늘.
지금은 제법 침착함을 찾았는지 봄바람 같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차를 마시며 차를 처음 개발한 사람에 대해 의미 없는 추측을 할 때쯤.
드디어 소하는 생각이 정리됐는지 눈빛을 번뜩였다.
“팔아도 좋고 팔지 않아도 좋다.”
그간 소하가 내세운 이적 시장 기조에 비교해보자면, 정말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여태껏 소하와 포츠머스는 핵심 선수를 절대 팔지 않다는 태도를 늘 고수해왔거늘.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솔직히, 두 구단의 태도는 엿 같지만, 가격만은 정말 마음에 든다.”
두 선수는 소하의 제자이자, 가족과 다름없는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몇천억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은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 여겨도 충분했다.
“까고 말해서, 그 돈이면 대체 선수를 영입해도 코로나를 완벽히 대처할 수가 있지.”
코로나라는, 지금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대재앙을 소하는 알고 있었기에 내린 판단이다.
그리고 이미, 소하의 머릿속에는 그들의 대체 선수까지 짱짱히 그려놓은 상태!
“일단 델리 알리의 대안은 ‘주드 벨리엄’이 제격이겠지. 키우는 데 제법 시간은 걸리겠지만, 잠재성만은 델리 알리의 이상이다.”
주드 벨링엄.
훗날 도르트문트에서 만개하며 전 세계 명문구단들의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초특급 선수였다.
재능만으로는 델리 알리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고 소하는 모두가 알다시피 유망주 키우는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다다른 인물이 아니던가. 성공은 확실했기에 완벽한 대체자였다.
“심지어 지금은 버밍엄에 있어서 헐값에 데려올 수 있지. 당분간의 공백은 이미 바렐라나 틸레만스같은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부족함은 있겠지만, 대처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주드 벨링엄은 그야말로 거의 공짜로 데려올 수 있다. 그렇다면, 델리 알리의 이적료는 온전히 포츠머스의 순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거래란 말인가!
괜히 소하가 이적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쉬 킹의 대안도 없진 않아.”
소하가 머릿속에 그리는 조쉬 킹의 대안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였다.
훗날 ‘비닐신’이라면서 잠재성을 폭발시키는 그는 조쉬 킹의 빈자리를 메꾸기엔 충분한 인재였다.
물론, 이미 레알 마드리드로 적을 옮긴지라 쉽게 영입할 순 없겠지만, 조쉬 킹의 이적료를 삭감하며 트레이드 형식으로 데려오면 그만이다.
“게다가 이미 우리 팀에는 최고의 득점원이 있어. 오히려 비니시우스 같은 드리블러가 팀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테지.”
최고의 득점원이란 당연하게도 ‘에링 홀란드’였다.
지금이야 포츠머스의 공격을 양분했지만, 그는 기회를 몰아받으면 받을수록 골을 더욱 넣어줄 괴물이었다.
아마, ‘빠른 네이마르’라고 불리는 비니시우스가 합류한다면 조쉬 킹이 그립지 않을 거다.
즉, 이번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포츠머스는 대체자를 구했음에도 이적료 대부분을 순이익으로 거둘 대박을 거두는 셈이었다. 그것도 초초초대박을!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선수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소하는 모처럼 보기 드문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잔 더 내렸다.
그렇다. 소하로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유혹 앞에서 선수들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분명, 소하와 그들은 같은 꿈을 꾸긴 한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그 꿈을 더욱 쉽게 이루어줄 훨씬 강한 팀이었다.
비록 다른 장소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엄청난 부.
엄청난 명성.
엄청난 숫자의 우승컵.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작은 포츠머스에 머무르라고 강요하기엔, 소하에게 조쉬 킹과 델리 알리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이미 그들은 장기 말로 쓰는 그런 가벼운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정말로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소하였고 때문에 무조건 잡아둘 순 없었다.
아니, 잡아두기 싫었다.
정말, 정이란 뭔지. 참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데도 더욱 무서운 감정은, 어떤 강압적인 술수를 쓰더라고 그들을 붙잡고 싶다는 집착이었다.
소하는 이제 혼자만이 아닌, 그간 함께 해왔던 모두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모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소하였다.
“후우. 결국 답은 하나군.”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린 소하.
늘 그랬듯 답은 하나였다.
“조쉬 킹과 델리 알리의 선택에 맡겨야겠어.”
선택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아끼는 이들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골랐을 뿐인 소하였다.
“조쉬 킹과 델리 알리를 부르세요. 에이전트는 제외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 소하는 이윽고 조쉬 킹과 델리 알리를 불렀다.
참으로 어려운 새해의 시작이었다.
< 263화. 선수의 가치.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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