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선수의 가치. (2) >
1억 2,000만 파운드.
1억 7,000만 파운드.
한화로 환산하자면, 각각 약 1,800억과 2,500억이라는 눈이 돌아가는 엄청난 금액이다.
최고의 성장을 보여준 포츠머스의 현 구단 가치가 6,000억이 조금 넘는 정도다.
그러니까, 두 선수의 이적료만 합쳐도 4,300억, 포츠머스의 구단 가치에 60%가 넘는 지분을 차지한단 이야기다.
감히 짐작조차 어려운 어마어마한 돈다발! 이 정도 금액이면 그 어떤 구단도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포츠머스는 긴급히 ‘이적위원회’를 소집했다.
이적위원회.
사실대로 말하자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썩 좋아하지 않는 단체다.
감독이 원해도 이적위원회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영입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하는 이번 시즌에 들어서 독이 될지도 모르는 이적위원회를 친히 창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하, 자신이 영원히 포츠머스에 머물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영원하고 유능한 독재자는 없는 법.
소하가 떠난 자리를 어떤 인물이 차지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존재한다.
바로, 소하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감독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에야 소하가 압도적인 능력으로 독재를 통해 포츠머스를 부활시켰다곤 하나, 후임마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를 들면, 정치체계에는 영원한 논제가 하나 있다.
[세종대왕급 독재자의 지배.]
[평범한 지배자를 뽑아내는 민주주의.]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뛰어난 정치체계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는, 일본의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시대의 소설에서도 큰 주제였는데, 답은 개인의 판단이었다.
“천재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인성도 좋아, 혼자서 나라를 먹여 살리는데 나쁠 게 없지 않나?”
“무슨 소리. 민주주의는 사회제도의 최종 종착점. 민중의 손으로 지배자를 뽑는다면, 나라가 망해도 같이 책임을 질 수 있다. 한 명의 지배가 아닌 모두의 지배가 옳다.”
일장일단이 존재하는 화두였다.
전자는 단기적이었고, 후자는 장기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역사는 답을 내려줬다.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뛰어난 독재자는 없었으며, 결국 왕이나 황제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고,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해서, 소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기적으로도 포츠머스가 부흥하길 바라는 소하로서는 ‘이적위원회’는 훗날의 기둥이 될 소중한 새싹이었다.
물론, 지금은 위원장이 소하 본인인, 요상한 기구였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적위원회에 참가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았다.
구단주 대리, 라일라 맥닐.
CEO, 마크 브라이언.
기술 이사, 알버트 위버.
재무 이사, 니엘 비숍.
홍보 이사, 벤스 모건.
홍보 부장, 에밀리아 존슨.
기술 팀장, 모건 스펜서.
재무 팀장, 스티븐 우드.
미래전략실장, 아서 휴먼.
수석코치, 잭 밀러.
하나같이 포츠머스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인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모였다.
아, 물론, 몇몇 인물들은 제외하고선 말이다.
CEO 마크 브라이언이라든지, 홍보 이사 벤스 모건이라든지.
뭐, 지금까지 포츠머스에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갖췄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벤스 모건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아 아직 소하에게 숙청을 당하지 않고 승진까지 했다.
그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란, 유능한 부하 직원, 에밀리아 존슨에게 전권을 위임한 일.
요컨대, 에밀리아 존슨의 길을 닦아주는 청소부 역할이었다.
에밀리아 존슨에게 관록이 붙을 때까지 잠시 자리를 맡아두는 격이었지만, 벤스 모건은 그저 마냥 만족했다.
과연, 눈치 하나만큼은 포츠머스란 거대 구단의 이사가 되기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자 그럼 긴급 이적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근 몇 년간 상당히 초췌해진 포츠머스의 대머리, 브라이언이 서두를 열었다.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인물은 구단주 대리로 참석한 라우라 맥닐이었다.
“잠깐만요. 성소하 감독은 어디 있죠?”
건강상의 이유로 리처드 맥닐을 대신해 참가한 라우라 맥닐은 그 특유의 냉랭한 목소리로 소하의 부재를 꼬집었다.
“큼큼. 감독님께서는 지금 다음 경기 준비 때문에 바쁘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참가했습니다···.”
라우라 맥닐의 서릿발 같은 눈길에 주눅이 잔뜩 든 밀러는 옹알거렸다.
그 공포의 대상 소하에게도 농을 자주 던지는 그였지만, 구단주란 즉, 사장님이 아니던가.
월급을 주는 사장한테 개길 쓸모없는 배짱 따윈 없었다. 그것도 매우 성격이 더러워 보이는 사장한테는 더욱더!
아무튼, 밀러의 변명을 들은 라우라 맥닐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 이 사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나저나 저도 불러서 참가하긴 했지만,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그게 무슨···?”
“어차피 우리가 무엇을 정하든 성소하 감독의 마음대로 결과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의미하죠.”
수박 겉핥기식 위원회에 대한 존재의의를 꼭 집은 라우라 맥닐이었다.
덕분에 분위기는 상당히 경직되었지만 마침, 브라이언이 부드럽게 웃으며 나섰다.
“그래도 우리의 의견이 성소하 감독님께서 결정을 내리실 듯 많은 영향을 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끄덕끄덕.
장내의 사람들은, 라우라 맥닐을 제외하고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하가 독불장군 기질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조건 옳다고 여길 때였을 뿐.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서는 언제나 귀를 활짝 열고 경청했기에 신임이 두터운 것이었다.
“흥. 제발 그러길 바라죠. 그럼 시작하도록 하세요.”
좀 전보다는 상당히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며 한 발 빠지는 라우라 맥닐.
여전히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쓸모가 없다.’라는 생각은 아예 지운 모습이다.
이래저래 브라이언이 어째서 아직도 CEO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정치력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도대체 어째서 스페인의 초거대 구단이 이런 엄청난 금액을 제시한 겁니까? 그것도 겨울 이적시장에 말이죠.”
시작은 어째서였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원인을 알면 대처를 하기 훨씬 쉬운 법이었으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브라이언의 질문에 상당히 젊어 보이는 한 남자가 종이 뭉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이름은 모건 스펜서.
40살도 되지 않은 젊은 직원이었지만 벌써 기술팀장까지 올라온 능력남이었다.
축구계 유망주라면 선수, 스텝, 프런트 가리지 않고 수집한 소하의 작품이기도 했다.
그는 천천히 헛기침한 뒤 침착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상황을 풀어냈다.
“먼저 레알 마드리드의 상황을 말하겠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이하 레알은 챔피언스 리그 3연패라는 위업을 썼지만 상당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라면 저도 들어봤어요. 엄청난 구단이라던데 위기라뇨?”
축구계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라우라 맥닐이 묻자 모건 스펜서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자, 팀의 전설이며 핵심이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벤투스로 이적을 했습니다. 따라서 생긴 공백과 새로운 감독, 로페테기 감독의 무능력함이 팀을 망치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들이 겹겹이 일어나면 공들여 지은 탑도 무너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 위기 상황과 이번의 천문학적인 이적료는 무슨 상관이죠?”
그 라우라 맥닐의 입에서 ‘천문학적’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현금이라면 영국에서 가장 많이 가졌다는 맥닐가문의 그녀로서도 1억 파운드가 넘는 금액은 상당하게 느껴지나 보다.
하기야, 그녀의 눈으로 보자면 기껏 공놀이하는 선수인데, 몸값이 1억 파운드가 넘어 간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일지도 몰랐다.
“네, 일단 호날두라는 선수가 이적하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상당한 금액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적료와 더불어 그의 주급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죠.”
“호오···.”
“그리고 레알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한가지 핵심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요?”
“‘가장 비싼 선수가 가장 저렴한 선수다.’라는 철학입니다. 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페레스 회장은 수십 년 동안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비싸지만 저렴하다.
둘이 상반되는 개념이었지만 의외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적료는 8,000만 파운드였다.
한화로 약 1,100억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1,100억 따위는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많은 부를 레알 마드리드에 선물했다.
덤으로 가레스 베일이란 레알 마드리드의 산증인도 존재했다.
비록, 골프 태업과 부상으로 호날두에게 미치진 못하지만, 과연 그가 없었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할 수 있었을까? 그를 싫어하는 서포터들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거다.
우승컵, 마케팅 효과, 부수적인 상업 수익, 등등 모든 것이 스타들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만든 요소였다.
“흐음.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라우라 맥닐은 대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 또한 한 거대 기업의 수장 자리를 예약한 여걸. 축구는 모르지만, 어차피 돈이란 본질은 같았기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무협지나 불교의 사상으로 치자면 만류귀종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하여튼 흔들리는 레알 마드리드는 또다시 슈퍼스타를 영입해서 팀을 재정비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그 슈퍼스타가 조쉬 킹이라는 선수고요?”
“네.”
“그 선수가 그만한 가치가 있나요?”
모건 스펜서는 라우라 맥닐의 물음에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네.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순히 포츠머스의 직원이라 하는 말이 아니다.
일단 조쉬 킹의 나이는 무척 어리다.
이제 만 23세.
곧 24세가 되긴 하지만 아직 성장이 무궁무진한 선수다.
그렇다고 아직 유망주냐? 라고 할 수도 없는 레벨이다. 이미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07-08시즌에 보여줬던 미친 퍼포먼스를 뛰어넘는 활약을 선보이는 중이다.
심지어, 12-13시즌의 가레스 베일이나, 13-14시즌의 루이스 수아레스의, 리그를 잘게 잘게 씹어먹는 퍼포먼스, 그 이상을 보여주는 중!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레벨이었으며 특유의 천진난만한 행동과 압도적인 힘에 비해 제법 귀여운 얼굴 덕분에 인기가 어마어마한 선수였다.
여기에 더해서 특유의 시원시원한 플레이 스타일은 인기가 더더욱 많아지는 큰 요소! 심지어 축구밖에 모르는 노력파이자 외골수인지라 잡음이 생길 리도 없다.
요컨대, 실력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슈퍼스타라는 이야기였다.
그저, 본인만이 그런 자각이 없었을 뿐이다.
“이는 델리 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성기에서 많이 내려온 바르셀로나는 부활을 노리고 있고, 지난 시즌 네이마르를 판매한 금액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1억 2,000만 파운드는 바르셀로나라고 해도 제법 무리가 따르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금액도 아닙니다.”
“델리 알리 또한 조쉬 킹과 같은 슈퍼스타겠죠?”
“네. 무결점 미드필더입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상위권 수준이었지만, 이번 시즌에는 부정할 여지가 없는 세계 최고입니다.”
델리 알리 또한 만만치 않은 슈퍼스타였다. 특유의 멋이 나는 외모에 더불어 일취월장한 실력 덕분에 나날이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심지어 나이는 이제 겨우 만22세.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22세의 어린 선수가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경우는 매우 희귀했다.
현 바르셀로나는 큰돈 주고 영입한 필리페 쿠티뉴가 폭삭 망해버렸기에 더더욱 볼을 앞으로 운반해줄 미드필더가 절실한 상황이었고, 델리 알리만큼 완벽한 선수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강인하며 기술적이고, 지능적이다. 게다가 수준급 골 결정력과 헤더 능력도 갖추고 있었기에 ‘세 얼간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미드필더 라인의 새로운 얼굴이 되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좋습니다. 일단 왜인지는 알았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브라이언은 어디까지나 진행자로서 한 발 뺀 상태로 회의의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건지 모를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
곧바로 상당히 뜨거운 찬반 의견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전 반대 합니다. 조쉬 킹과 델리 알리는 팀의 얼굴입니다. 핵심 선수이기도 하고요. 그들을 잃는다면, 앞으로 벌어들일 수천억의 이득을 포기하는 겁니다.”
“아무리 큰 액수라도 넘기는 순간, 우리 구단은 셀링 클럽이 되는 겁니다. 최고를 노리는 팀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서포터들이 들고 일어날 거예요. 이건 생각 이상으로 팀을 뒤흔들 테지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 팀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포츠머스란 브랜드의 값어치가 폭락할 거예요.”
알버트 위버, 모건 스펜서, 에밀리아 존슨은 극구 반대했다.
“흠. 여러분들의 의견은 이해가 가지만 우리는 재정적으로 상당히 팍팍한 상황입니다. 이번 이적만 성공하면, 새로운 경기장 건설이 수년은 앞당겨 질 겁니다.”
“솔직히, 성소하 감독님이라면 이번 이적료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대체 선수를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구단 가치의 절반이 넘는 엄청난 거래입니다. 단 두 명의 선수로만요. 26명의 선수 중에서 고작 두 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니엘 비숍, 스티븐 우드, 아서 휴먼은 강경하진 않지만, 찬성을 주장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논의를 진행했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자 라우라 맥닐이 나섰다.
“결국, 양쪽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군요. 모두 구단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기본 전제라 합의점을 찾기 어렵겠어요.”
“···.”
핵심을 짚은 라우라 맥닐의 목소리에 장내는 조용해졌다.
모두가 포츠머스가 잘되길 바란다는 같은 뜻을 공유했기에 더더욱 답이 나오지 않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답은 하나에요. 모든 의견을 취합하고 성소하 감독에게 전달하는 거죠. 하지만, 일단은 사태를 조용히 지켜보는 게 좋겠군요. 아직 결정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옳은 말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더더욱 자세히 검토해봐야 한다. 일단은 비밀에 부친 채 천천히 추이를 지켜보기로 하는 이적위원회였다.
하지만, 이적을 원하는 스페인의 거대 구단은 성질이 급했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특유의 이적 방식을 고치지 못했는지 바로 행동에 나섰다.
[바르셀로나, 델리 알리에게 1억 2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시.]
[바르셀로나, ‘델리 알리는 바르셀로나의 DNA를 가진 선수’.]
[바르셀로나의 전설 사비 에르난데스, ‘델리 알리는 나의 후계자.’]
1차 이적위원회가 파한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 어느 오후였다.
< 262화. 선수의 가치.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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