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61화 (261/306)

< 261화. 선수의 가치. (1) >

FA에서 새로운 규칙을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소하가 포르투를 1-0으로 이긴 다음 날이었다.

“저희 FA는 지난 수년 동안 고심해왔지만, 아직 이르다고 판단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국민 여러분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리그컵 축소와 더불어 교체 카드와 교체 명단의 수를 늘리기로 했습니다.”

격렬히 반대했던 FA의 사무총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혁신을 발표했다.

그나저나, 참으로 교묘한 발언이다.

감독들의 강력한 요청과 압박 때문이 아닌, 자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못을 박는 화법!

결정에는 오롯이 자신들의 의지와 국민의 지지만이 고려됐음을 은연중에 어필했다.

소하와 그를 따르던 감독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쉽게도 모두 ‘협의’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FA의 체면이었고, 그 체면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물론, FA는 그저 관리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중대한 사항은 잉글랜드 축구계를 이끌어 나가는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민주적인 의견 통합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해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이번 사항을 투표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가결된다면, 다음 시즌부터 바로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발표를 마친 사무총장은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퇴장했고, 혁신은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적어도 갑자기 여론이 뒤집혀 투표가 부결될 리는 없었으니까.

-삑.

소하는 포르투갈에서 돌아오자마자 틀었던 TV를 꺼버렸다.

그 후, 입술을 삐죽이고선 차를 한잔 타며 툴툴거렸다.

“쯧. 저 양반 표정 환해진 거 보소···. 하긴 대중들의 성원이 우리에게서 전부다, FA로 넘어갔으니, 좋아할 만하겠지.”

이번 혁신으로 FA는 그간의 여러 문제 때문에 좋지 않았던 이미지를 한꺼번에 바꾼지라 절로 신이 날만 했다.

하지만 소하로서는 원하는 바를 얻고서도 왠지 모르게 재주를 부리는 곰 같은 처지가 된 것만 같아 조금 불만스러웠다.

“뭐, 어쩔 수 없지. 원래 정치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줘야 하는 법이니까.”

정치 메커니즘을 축구 감독 주제에 굉장히 잘 아는 소하답게 아쉬움을 훌훌 털어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하나를 주고 여러 개를 받는 협상이었다.

혁신도 혁신이지만, ‘왠지 수상했던’ 사건의 시작을 암묵적으로 파헤치지 않기로 무언의 약속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사실 제대로 파낸다면 VPN을 써서 IP를 바꾸든, 가짜 이메일로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든, 어떻게든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냥 쉽게, 소하와 작당한 친한 기자를 붙잡아 심문하면 술술 나올 이야기였다.

하지만 윌리엄 왕자는 그냥 자신의 소설로 마무리 지었고 소하도 이 배려에 대한 감사 인사를 표했을 뿐이다.

“제법 괜찮은 왕자야. 여러 의미로 말이지. 역시 군필은 뭔가 다르달까. 하여튼, 이번 일 덕분에 국민의 지지도 오르고 FA 내에서의 영향력도 강해졌으니 어찌 보면 진정한 승리자일지도 모르겠네.”

후루룩,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번 사건을 총평하는 소하. 이제 미래를 위한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다시금 자신의 꿈을, 모두의 꿈을 위해 현실과 제대로 맞붙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

여러 외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12월의 절반을 보낸 포츠머스는 상당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 본머스, 원정경기, 2-0 승리부터 시작해서,

프리미어 리그 첼시, 홈경기 2-1,

프리미어 리그 웨스트햄 원정경기 3-1,

깔끔한 3연승을 기록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긴 하다.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사건이 터졌고, 그 후 바로 3연승을 거두다니.

굉장히 공교롭다 못해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겼지만 워낙에 난리 통이라 아무도 딴지를 걸지 못했다.

사실 경기를 원하는 데로 조작했다는 사실조차 쉽사리 추측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하여튼 리그에서 다시금 3연승을 거둔 포츠머스는 포르투갈로 향해 포르투를 1-0으로 제압했고, 놀라운 4연승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포츠머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정이었는데, 일단 성공적이라고 봐야겠군요.]

[잠시 주춤거리긴 했지만, 성소하 감독의 로테이션 솜씨는 정말 예술이군요. 선수들의 컨디션이 숫자로 보이나 봅니다!]

최악의 일정 속에서 거둔 4연승이라 그런지 전문가들과 서포터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부었다.

총 9경기 중에서 4연승을 거두다니. 솔직히 일정이 너무 심하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팀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덕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성소하의 큰 그림’라는 음모론이 슬쩍 퍼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뭔 개소리야? 감독님이 신이냐?

-어디다 대고 성소하라고 하는 거야? 성소하 ‘님’이나 감독 ‘님’이라고 해라.

-찐따의 뇌내 망상.

-넌 웹소설 작가는 하지 말아야겠다.

-밥은 먹고 다니냐?

등등, 강력한 비판을 받고 계정을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지지자들의 철퇴!

소하에게는 무척 좋은 일이었다.

“휴우. 새끼, 셜록 홈스의 환생인가? 추리력 보소···. 집에 배 긁으면서 인터넷만 만지작거리기엔 재능이 아까운 녀석이었다.”

상상 속의 인물과 마찬가지로, 배를 긁적이며 인터넷을 보던 소하는 작은 위기를 헤쳐나가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방해물 따윈 없다는 소리! 소하와 포츠머스는 기세를 이어나가 프리미어 리그 17라운드, 울버햄튼 원정을 떠났다.

포르투갈 원정 이후로 3일 만에 치러지는 경기인지라 대부분 원정경기에 뛰지 않은 선수들로 찾은 울버햄튼의 홈구장, 몰리뉴 스타디움.

세간에서는 이번에도 연승을 이어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하의 생각은 달랐다.

“울버햄튼은 제법 저력을 가진 팀이지. 비기기만 해도 이득이다.”

비기기만 해도 본전이라고 생각한 울버햄튼 원정경기.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후반 80분까지 2-1로 뒤처지며 경기를 어렵게 가져갔다.

[아, 드디어 포츠머스의 무패행진이 여기서 끝나는 건가요?]

[맨체스터 유나이트와의 경기 이후로 최고의 위기를 맞이한 포츠머스입니다!]

프리미어 리그 16경기 무패행진이 이대로 끝날 것만 같던 순간!

언제나 그랬듯 소하의 제자들은 위기에 강한 남자들이었다.

[아다마 트라오레! 모처럼 모하메드 살라대신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아다마 트라오레가 미친 듯이 오른쪽을 후벼팝니다!]

[정말 빠르네요. 심지어 강해요. 울버햄튼의 선수들이 유니폼을 잡아당기지만 힘으로 벗어나네요!]

그야말로 황소였다.

뭐가 됐든 앞으로 달려나가는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 중 하나였다.

“와···. 저런 애가 라마시아 출신인 게 난 아직도 믿기지 않아.”

소하마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다마 트라오레는 정말 돌연변이였다.

기술 축구를 가르치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기관, ‘라마시아’에서 오로지 육체적으로 승부를 보는 유망주가 나오다니.

이래저래 두 번 봐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고 덕분에 소하는 강력한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무자비하게 오른쪽 측면을 내달린 아다마 트라오레는 그가 예전의 근육 기계가 아님을 과시했다.

-탁!

앞으로 달릴 줄 알았거늘.

호날두의 성명 절기인 ‘백숏’을 선보이며 순식간에 진로의 방향의 90도로 꺾었다.

같은 근육 뇌이자 절친한 친구인 조쉬 킹이 가르쳐준 상당히 위협적인 개인기!

때문에, 앞으로만 돌진할 줄 알고 대비하던 울버햄튼 수비수들은 매우 크게 당황했다.

“엇?!”

“뭐, 뭐야?!”

스페인의 투우사처럼 날뛰는 황소를 교묘하게 측면으로 몰아세우려고 했지만, 계획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그렇다면 다음 상황은 뻔하다.

측면으로 황소를 몰기 위해서는 측면으로 포지션을 이동해놔야 하는 법!

즉, 중앙이 헐거워졌다는 이야기다.

-툭.

아마다 트레오레는, 정말 어울리지 않지만, 영리하게도 전방으로 짧은 패스를 건넸다.

물론, 침투하는 에링 홀란드의 앞으로 더 길게 보내는 패스도 좋은 선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고 훨씬 패스 능력이 좋은 알리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시즌의 델리 알리는 클래스가 다른 선수였다.

“받아라.”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의 마지막을 뛰지 못해 조금 뾰로통한 델리 알리는 무심하게 왼쪽 측면으로 로빙패스를 찔러넣었다.

매우 쉽고 성의 없어 보이는 패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엄청난 힘과 회전이 담겨있어 뚝 떨어지는 대단한 구질을 뽐냈다.

“YO!”

매우 자연스럽게, 포츠머스의 왼쪽 측면은 조쉬 킹의 영토다.

그러니까, 조쉬 킹이 쉽게 공을 잡았다는 소리다. 그것도 수비수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이 뜻은 앞으로 닥쳐올 미래가 너무나도 불 보듯 뻔했다는 거다.

-콰앙!

세계 축구계의 거포가 다시금 폭음을 토해냈고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철썩!

[골입니다! 골! 후반 88분, 조쉬 킹이 패배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냅니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19번째 골입니다! 득점왕은 이미 예약인걸요?!]

17경기 19골.

경기당 1골 이상을 때려 넣는 미친 활약!

더욱 놀라운 사실은, 어시스트까지 4개나 적립했다는 사실이다.

즉, 17경기 19골 4어시스트.

17경기 만에 23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괴물, 그 자체였다.

“너, 조쉬 킹 맞냐?”

“요즘 슛만 하면 골이네.”

“널 오늘부터 검은 티에리 앙리라고 부르겠다.”

“앙리는 원래 피부가 검지 않냐? 하여튼 요즘 제법 볼 좀 차는구나?”

“나이스!”

포츠머스의 선수들의 조쉬 킹의 골을 자신의 골처럼 축하해줬다.

물론, 단 한 사람만 빼고선 말이다.

“···나, 나도 골 넣을래!!”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노르웨이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에링 홀란드만이 동료이자 맞수의 고공행진에 승부욕을 불태웠을 뿐이었다.

***

조쉬 킹의,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에서도 손꼽힐만한 대단한 활약에 몸이 달아오른 에링 홀란드는 바로 다음 경기의 주인공이었다.

강등 1순위, 카디프 시티를 홈에서 맞이한 에링 홀란드는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내렸다.

[또 골이에요! 홀란드의 네 번째 골! 경기는 벌써 7-0입니다!]

[아직 10분이나 남았어요. 이러다가 한 골 더 먹히겠는데요? 카디프 시티, 너무나도 나약합니다···.]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마저도 숨도 쉬지 못하고 두들겨 맞는 카디프 시티를 동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4골이나 집어넣었음에도 에링 홀란드는 아직 배가 고팠다.

프리미어 리그 18경기 11골. 선발로 나오지 않은 경기도 조금 있었기에 대단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1위인 조쉬 킹은 19골이었고, 아직 8골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기에 멈추고 싶지 않았다.

“더! 더 줘! 패스를 더 해줘!”

‘그’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찡그리자, 담대했던 델리 알리나 니콜로 바렐라마저 자기도 모르게 에링 홀란드에게 패스를 몰아줬다.

‘음···. 내가 겁이 없지만 저건 규격 외니까···. 김용한 체력코치 이후로 절로 예절이 생겼어.’

‘사람은 몰라도 짐승은 피해야지.’

생존본능의 발현이었고, 에링 홀란드는 그 생존본능을 제대로 골로 만들어냈다.

[다섯 번째 골! 이러다가 더블-해트트릭을 할 수도 있겠군요.]

[대단한 골 결정력입니다. 뭔가, 악에 받친 듯한 느낌도 듭니다.]

탐내서 득점왕 경쟁이라니.

종종, 두 선수 간의 경쟁심이 악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최상의 선순환을 보여준 격이었다.

“···자기들끼리 불이 붙어서 날뛰네. 뭐···. 나야 좋긴 한데···.”

소하마저 너무나도 좋은 결과에 얼떨떨했을 뿐이었다.

하여튼, 두 천재의 불꽃 튀는 경쟁은 팀 내에도 굉장히 좋은 영향력을 뿌렸고 포츠머스는 정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팀으로 변해버렸다.

리그컵 8강전, 본머스도 다시 한번 2-0으로 크게 혼내줬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라면 전 세계적인 축제이자 소하가 발안한 혁신의 투표일!

소하는 파티도 거르고 투표에 참가했고 결과는 곧장 나왔다.

[찬성 13표. 무효표, 6표. 반대 1표.]

압도적인 승리!

미리 예견되었던 결과였지만 소하는 결과로 나오자 무척 기뻐했다.

“좋군. 좋아. 근데, 반대 1표는 뭐야. 뭐, 역시 그놈들이겠지.”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는 쉬이 짐작이 갔다. 덕분에 소하는 다음 ‘남해안 더비’에서 제대로 박살을 내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투표마저 승리한 소하와 포츠머스는 전반기의 마지막 경기,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홈경기를 1-0으로 이겼다.

다만 아쉽게도 후반기 첫 경기인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비겼지만 확고한 선두를 유지하며 1월을 맞이했다.

그야말로 아무런 문제 없이 순풍을 달고 나아가는 거대한 범선, 그 자체!

절대로 난파할 일이 없어 보였고, 포츠머스의 우승배당률은 극적으로 낮아졌으며 세간은 사상 첫 포츠머스의 우승을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나가는 존재라도 언제나 위기는 도래하는 법.

1월이 되자 겨울 이적시장이 열렸고 포츠머스는 제법 큰 혼란에 빠지게 됐다.

“감독님! 이, 이적 요청이 왔습니다!”

난데없이 소하의 사무실을 찾아온 기술팀의 한 직원. 어찌나 당황했는데 한겨울임에도 땀을 뻘뻘 흘린다.

“응? 뭔 이적 요청이요?”

물론, 소하의 태도는 정반대로 매우 여유만만했다. 어차피 이적 제안이야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찾아오는 불친절한 손님이거늘. 도대체 왜 이리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 델리 알리랑 조쉬 킹에게 이적 요청이 왔습니다.”

델리 알리와 조쉬 킹이라니. 소하는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그 선수들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차피 겨울 이적시장에는 푼돈만 오가는 이적시장 아니던가.

신경을 쓸 건덕지도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

“흥. 1억 5,000만 파운드 미만으론 사절이라고 전해주세요. 그럼 전 바빠···.”

눈길도 주지 않은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소하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 그게 1억 5,000만 파운드를 제시했습니다···!”

“네···?”

“레알 마드리드에서 조쉬 킹에게 1억 7,000만 파운드, 델리 알리를 바르셀로나에서 1억 2,000만 파운드로 제시를 했습니다!”

“···.”

두 선수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1억 파운드가 넘는다면 어떨까? 답은 아무도 몰랐다.

< 261화. 선수의 가치.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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