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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58화 (258/306)

< 258화. 혁명은 선동으로부터. (2) >

소하가 언급한 리그컵 축소와 교체 카드의 증가는 수년 전부터 이야기가 불거졌던 논제였다.

-프리미어 리그는 경기 수가 너무나 많다. 이건 팀에게는 물론, 선수들에게도 굉장히 좋지 않다.

-국제대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멍청한 짓.

-교체 카드의 증가는 몰라도 리그컵은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옳다.

-리그컵을 배제하더라도, 교체 선수 증가와 후보 명단의 숫자는 늘려야 한다.

-구단과 서포터들의 가장 큰 자산은 협회가 아닌 선수다. 과한 일정 때문에 부상을 달고 다니는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상당한 숫자의 축구계 인사들이 강력하게 주장했었고, 실제로도 훗날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4년이란 길고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지만.

4년.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소하가 포츠머스의 지휘봉을 잡은 지 5년 5개월쯤 됐으니, 대충 체감이 될 거다.

그래서 소하는 4년이란 시간을 당기기로 작정했다.

“과격한 미래 변화는 지양하려고 했지만, 곧 큰 사건이 몰려오니까···. 총대를 매줘야겠지.”

충격적인 기자회견 후, 본머스와의 경기에서 2-0 완승한 소하는 턱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소하가 언급한 큰 사건이란, 개인적인 사건 따위가 아닌 범지구적인 대재앙이었다.

2022년의 마지막까지, 그리고 2023년이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재앙!

바로,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전염성이 매우 강한 코로나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서 6억 명이 넘는 확진자를 발생시켰으며, 60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 만들어낸 재앙이다.

이 엄청난 인재(人災)는 목숨뿐만 아니라 인간이 쌓아 올린 경제기반과 생활양식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리고 스포츠 사업 또한 이 재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자조해도 부정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흔들렸다.

오죽했으면, 세계 최고의 구단이던 바르셀로나가 주저앉을 뻔했을 정도였고, 리오넬 메시라는 위대한 선수마저 팀을 나가버렸다.

“스포츠란 자고로 관중이 존재해야 존재의 의의가 있는 법. 코로나 때문에 텅텅 비어버린 경기장에서 1년이나 구단을 운영하면 결딴나기 딱 좋지.”

비록 중계방송으로 보는 인원이 많다지만, 관중들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2년 후의 미래가 답을 내려줬으니까.

게다가 소하의 포츠머스는 자생을 위해 매우 건실한 수입원을 만들어둔 상태다.

그리고 건실하다는 뜻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컨대, 코로나 같은 재난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쫄딱 망하기 좋다는 이야기였다.

유니폼 수입은 나락을 갈 것이며,

불티나게 팔리는 상품도 악성 재고로 돌변할 터.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덤으로 우리의 새로운 경기장 사업까지 개같이 멸망할 가능성이 매우 크지. 아니, 확실하지.”

소하는 아직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새로운 경기장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코로나 때문에 공사가 아예 중단될 테고 엄청난 손해를 입을 거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도대체 경기 숫자, 교체 카드와 코로나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는 거다.

물론, 이것도 매우 간단한 원리였다.

“선수는 재산이니까. 선수단 운영에 숨통이 트이면 선수단에 사용할 천문학적인 금액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지.”

부상이 없다면 대체 선수를 구하지 않아도 돼서 이적료가 경감되고,

교체 선수가 늘어나면 어린 선수들에게 더욱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며 성장에 박차를 가할 거다.

어린 선수들이 제대로 성장한다면 이 또한 훌륭한 선수나 혹은 로테이션 자원을 영입해야 할 상황 자체가 매우 적어진다는 뜻!

이래저래 축구 구단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부분은 ‘선수’였다.

급료와 이적료.

아마 이 두 가지가 구단 지출의 90%는 차지할 거다.

여기서 급료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이적료 부분을 대폭 삭감하면 1년에서 2년 정도는 버틸 거라는 계산이었다.

소하로서는 코로나라는 대규모 재앙을 대비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까고 말해서 소하가 코로나를 막기 위해 우한 시를 날려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어차피 재난은 찾아올 테고 최대한 방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다시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거다.

한참 대업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즌에 굳이 다른 일을 벌이는 모습은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늦어. 코로나는 2년 뒤, 아니, 이제 1년 남았으니까···.”

바로 다음 시즌부터 슬슬 코로나 열풍이 찾아올 거다. 그러면, 진작에 시작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전에는 영향력이 부족했으니까···. 갓 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온 팀의 감독이 짖어봤자 FA는 콧방귀도 뀌지 않을 테지.”

지지난 시즌은 물론, 지난 시즌도 FA의 무겁고 질펀한 엉덩이를 움직일 만큼의 영향력은 없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18-19시즌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포츠머스는 모든 대회의 우승을 노리며 ‘패배를 잊은 팀’으로 변했고,

아쉬운 월드컵의 성적 때문에 협회나, 잉글랜드의 국민은 소하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원래도 인기가 많은 소하였지만, 지금만큼 전 국민이 사랑하고 갈구하는 수준은 아니었단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소하는 전 국민을 움직이게 할 힘이 있었고 FA가 움직이지 않고선 배기지 못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는 소하의 또 한 가지 수작이 숨어있었다.

“제법 힘들었어. 아슬아슬하게 패배를 모면하기 위한 전략은 말이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는 제법 잘했는데, 맨체스터 형제들에게는 까닥하면 질 뻔했지.”

그간 좋지 않았던 경기의 내용조차 영향력만으로 혁명을 일으키기엔 부족하단 소하의 판단으로 만들어진 연출이었다.

잘나가는 팀이 갑자기 흔들린다면 더욱 큰 쟁점이 될 거라는 판단!

알다시피, 천운이 닿아 상당히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길 경기는 이겨서 다음 라운드에 올라갔고, 원래 맨체스터 형제들은 전력을 다해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팀이잖아? 운이 좋았지. 다만 로코모티프 경기는 의도와는 다르게 져버려서 무패가 깨졌지만 말이야.”

졌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미 조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였으니까.

하여튼, 축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엄청난 능력이었다.

전술과 선발명단을 조율해서 원하는 경기의 결과를 가져오다니!

동서고금을 통틀어도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춘 감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해 원한다면 언제라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하는 능력에 대한 과신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난 ‘회귀자’라는 사기적인 능력 덕분에 선수단 이해도가 차원이 다르니깐. 덤으로 상대편 선수단에 대한 이해도도 마찬가지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최소한 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소하의 마술을 설명하기엔 최고의 격언이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반응을 확인해 볼까? 과연···. 내가 그린 그림대로 움직여 줄지 궁금하군.”

소하는 따스한 차를 한잔 입에 머금으며 자기가 불낸 집을 구경하는 방화광 같은 미소와 함께 눈빛을 반짝였다.

***

소하가 폭탄을 떨어뜨린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쪽은 물론, FA는 아니었다.

그 엉덩이 무거운 윗분들이 감독 하나가 내지른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감독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것도 강팀이라고 불리는 인기 구단들의 감독들이라면 말이다.

“성소하 감독의 의견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는데,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성소하 감독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세계적인 명장이자, 소하와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이 제일 먼저 소하의 혁명에 동참했다.

위르겐 클롭이라면 이미 소하 이전에도 주야장천 혁신을 외쳤던 인물이었기에 예견된 결과였다.

“저 또한 성소하 감독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몇몇 과격한 부분이 있지만, 일정 부분을 부드럽게 바꾼다면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명장이자 바르셀로나의 전설적 인물이며, 전술의 천재인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 또한 대열에 합류했다.

그 또한 독일의 분데스리가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프리미어 리그의 지나친 경기 숫자에는 질색했기 때문이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우리는 구단과 선수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도 동참했고,

“이런 경기 숫자는 우아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커피 한잔과 담배 한 개비 태울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리볼’이라 불리는 독특하고 공격적인 전술과 애연가로 유명한 첼시의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 또한 소하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아스널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까지 적극적으로 지지를 이어나갔다.

“맞습니다. 우리 팀의 주전 공격수, 해리 케인은 지난 시즌에만 48경기를 뛰었습니다. 덕분에 잔 부상이 많아졌죠.”

“구디브닌. 성소하 감독의 이견에 매우 동의합니다. 너무 과한 일정은 리그의 경쟁력을 약화할 겁니다.”

소위 빅6와 포츠머스까지 합친 잉글랜드의 최고팀들이 하나로 뭉쳤다.

그야말로 보기 매우 드문 장면!

경쟁 때문에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이들이 힘을 합치니, 그 기세가 참으로 심상치 않다.

“음···. 여기까진 옆집 철수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온데···. 슬슬 중위권 팀들도 합류를 해줘야지. 겁쟁이처럼 왜 이래? 그냥 들고 일어나라고!”

소하는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렸다.

빅6라 묶이는 저 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외쳐왔던 의제라 당연히 합류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 말 없이 사태를 일관하는 중위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이 문제는 투표로 향할 테고, 반수 이상의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지지가 있어야지만 현실화할 문제였다.

“과거의 미래에서는 10팀이나 5인 교체에 반대했었는데···.”

그 10팀은 바로,

애스턴 빌라.

번리.

크리스털 팰리스.

풀럼.

레스터 시티.

리즈 유나이티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울버햄튼.

중하위권을 맴도는 팀들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선수단이 약하니 교체 카드 5장은 상위권 팀들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소하에게는 세상에 다시 없을 개소리로 들렸을 뿐이었다.

“뭐래. 중계권은 1위랑 20위랑 거의 똑같이 비슷하게 배분되는데, 밥값 좀 하자. 그리고 말이야, 선수단이 약해서 주전 선수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팀으로서는 체력을 계속해서 유지해줄 교체 카드 5장이 더 이득 아닌가?”

소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눈썹을 한곳으로 긁어모았다.

솔직히 도둑놈 심보였다.

상위 팀들 덕분에 큰돈 좀 만졌으면 조금 손해를 봐도 양보해줄 수도 있는 일이지 않은가.

심지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소하의 생각으로서는 말이다.

하여튼, 지금 상황은 과거와 비슷했다. 이대로라면 과거의 미래와 같이 발족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과거의 미래와 현재의 미래는 다른 영향력이 존재했다.

바로 잉글랜드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번 소하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잉글랜드의 보물로 불리는 소하가 시작을 끊었기에, 상황은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다.

-야, 우리 구단은 왜 아가리 봉인하고 가만히 있냐?

-뭐하냐? 빨리 합류하자.

-쥐새끼처럼 눈치만 보지 말고 합류해서 혁신을 이루자고.

-언제까지 이기적으로 굴 거야?

-제발 이러지 말자. 부끄러우니깐.

사태를 관망하던 팀들의 서포터들이 들고 일어났다.

암만, 국가대표보다 연고 팀을 우선시한다는 잉글랜드의 서포터들이었지만, 소하라는 매개체로 똘똘 뭉쳐버렸다.

그러자 서포터들의 성화에 이기지 못한 중위권 구단들이 속속히 소하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음···. 저희도 동의합니다.”

“일리 있는 의견이죠. 합류하겠습니다.”

“길게 본다면 이 길이 맞겠지요.”

“이미 다른 유럽에서는 다음 시즌부터 시행하는 규정 아닙니까? 우리가 굳이 늦게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UEFA도 이 문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니 문젯거리가 될 건 없다고 봅니다.”

에버튼, 브라이튼, 뉴캐슬, 웨스트햄, 울버햄튼이 은근슬쩍 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소하는 매우 기뻐했다.

“과거의 미래에서 반대했던 팀들이 다수 합류했군. 이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 거나 다름없어.”

이미 찬성에만 12팀이었고, 과반수를 벌써 넘겨버렸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다만, 과거에는 찬성했던 사우스햄튼이 반대를 표명했다는 점은 소하의 심기를 조금이나마 건드렸다.

“새끼들. 우리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태클을 걸려고 하는구만. 쯧쯧. 그러니까 너희들이 우리한테 매일 지는 거야.”

멈추지 않는 소하의 사우스햄튼 증오!

고깝긴 했지만, 어차피 대세는 정해졌기에 걸림돌은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FA가 움직일 시간이 됐는데?”

큰 그림이 거의 다 완성되자 소하는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이제 마지막 눈만 그리면 끝이었고, 마침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협회!

세계에서 가장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꼰대들의 집합소!

다른 국가의 축구협회와는 달리 축구 종주국이란 자부심으로 그냥 ‘축구협회’라 부르는 그 단체!

“음···. 이제는 그냥 무시하긴 어렵겠군요. 슬슬 움직여야겠습니다.”

드디어, The FA가 그 거대한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일어섰다.

< 258화. 혁명은 선동으로부터.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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