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혁명은 선동으로부터. (1) >
어느덧 찾아온 12월.
모두가 한 해의 마지막과 다가올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 마음이 조금은 흐트러질 만도 할 시간이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남쪽에 자리를 잡은 작은 해안 도시이자 관광도시인 포츠머스는 정도가 조금 과했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팀, 포츠머스 FC 덕분에 다소 뜨거운 도시이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뜨거웠다.
시작은 SSH1314라는 ID로 인터넷 속에서 명성을 날리는 한 인물의 칼럼이었고, 기름을 부은 건 포츠머스에서 알아주는 한 언론사의 기사였다.
[포츠머스 FC의 성소하 감독. 그의 로테이션 정책은 큰 문제가 있다.]
포츠머스의 살아있는 신, 소하를 제대로 겨냥한 비판적인 기사!
이것은 수면 아래에서 시끌벅적했던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즉, 공론화를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 언론사는 평소 소하와 포츠머스에 매우 우호적인 회사였기 때문에, 이 기사는 상상 이상으로 여파가 강했다.
원래 현실과 인터넷 세상은 달과 달그림자가 같은 관계가 아니던가.
그림자가 현실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현실은 그림자의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법이었다.
-맞아. 선발명단이 이상하긴 했어. 혹은 너무 과도하거나.
-지금까지 그냥 선수빨로 어찌어찌 이기긴 했지만, 드디어 밑천이 드러났지.
-성소하 감독의 신통력도 이제 끝이 난 건가? 이럴 때일수록 서포터들이 들고 일어나야 해.
-주변 사람들은 뭐 하는 거야?
-독재자는 결국 변절하기 마련이지.
-와, 저 언론사가 비판할 정도면 정말 큰 문제이긴 한데. 몇몇 큰 사건에서도 성소하 감독을 무조건 지지하던 쪽이잖아.
먼저, 현실의 그림자, 인터넷 세상은 난리가 났다.
공론화가 되기 전부터 시끄럽긴 했지만,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내놓았다.
당연하게도 국지 도발 정도로만 일어나던 옹호파와 반대파의 고지전은 제대로 전면전에 진입했다.
-해준 게 얼만데 뭔 지랄임?
-해준 게 뭔데? 리그 우승이라도 시켜줌? 빅이어라도 가져왔어?
-미친. 성소하 감독이 없었다면 포츠머스가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를 뛸 수 없었다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잘못하는 걸 잘못한다고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한번 실수한 걸로 사람 배때기에 칼찌 넣을 새끼네.
-네~ 다음 독재자의 따까리.
-은혜도 모르는 짐승 같은 자식.
-대가리 깨진 성소하 졸병들.
난리가 나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법 조용하게 투덜거리던 그림자는 이젠 대놓고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던 현실의 언론사와 전문가들도 슬쩍 입을 열며 동참했다.
예견된 순서이긴 하다.
멀쩡하게 잘 있는데 갑자기 그림자가 눈에 띄게 꿈틀거리며 발광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연히 발작하며 깜짝 놀라지 않겠는가. 바로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확실히, 성소하 감독의 로테이션 정책은 너무 빈번하고 과하죠.]
[일관성이란 강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성소하 감독은 팀의 성적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중요한 건 실수를 받아들이고 수정할 수 있냐, 없냐죠.]
[몇몇 이해할 수 없는 선발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샬케 04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입니다.]
[위기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경기가 많은데, 포츠머스가 외풍을 맞이했어요. 과연 내부는 어떨까요?]
고작,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엄청난 논란이 만들어졌다.
이쯤이 되자, 포츠머스라는 작은 도시에 끝날 일이 아니었고, 잉글랜드의 거대한 메이저 언론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론이란 자고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라면 일단 숟가락부터 집어넣고 보는 존재들이었으니까.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만 넘치던 포츠머스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흐르자 참을 수가 없었다.
-더선: 포츠머스에 일어난 이변.
-스카이 스포츠: 프리미어 리그의 왕좌를 노리던 포츠머스에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
-BBC: 젊은 천재 감독, 성소하 감독이 저지른 의문의 판단 실수.
-더 가디언: 아직 포츠머스에게 프리미어 우승컵이란 멀고도 먼 존재였는가?
-데일리 메일: 위기에 처한 포츠머스!
-데일리 미러: 왕좌는 리버풀에게?!
지구 반대편까지 널리 알려진 대형 언론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활활 타올랐다.
덕분에, 포츠머스의 프런트는 모처럼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 때문에 단 1분도 쉴 수 없을 만큼 분주한 시간을 맞이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니, 미디어 대응팀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졌는데, 왜 막지 않았느냐고!”
“소,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일단 최대한 대응해보자고!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뭐라고 하셔?”
“어···. 그, 글쎄요. 오히려 펴, 평소보다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시던데···.”
“그게 말이야, 똥이야? 비판의 대상이 되셨는데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니? 가서 제대로 의중을 확인하고 와!”
“네···. 네! 죄, 죄송합니다.”
폭탄이 떨어졌다. 그것도 지진 폭탄이!
눈을 깜박한 사이에 집이 활활 타오르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했고, 이는 홍보부의 부장으로 승진한 에밀리아 존슨도 마찬가지였다.
“아···. 감독님···. 어쩌지?”
에밀리아 존슨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걱정 가득한 한숨을 내뱉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팀을 위해 헌신한 감독이었거늘. 개인적으로 사모하는 감정을 배제하더라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위로라도 해드려야겠어···!”
작은 두 손을 앙증맞게 불끈 쥐며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다짐하는 에밀리아 존슨. 어떻게든 소하를 다독여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주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같은 시각, 감독 사무실에서 수십, 수백 개가 올라온 자신의 기사를 하나하나 꼼꼼히 정독하는 소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후후후. 잘 탄다. 잘 타. 고구마라도 구워 먹고 싶은데? 그나저나 참 아쉬워. 이런 불장난을 혼자 저지르다니. 같이 구경하면 더 재밌을 텐데. 실수였어.”
그저, 천하에 둘도 없는 악동과 같은 눈빛을 빛내며 즐거워했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초반부는 잘 진행된 거 같고, 슬슬 중반부로 넘어가 볼까?”
얼추 시기가 농익었다고 판단한, 포츠머스의 감독이자 사건과 비판의 주인공인 소하.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읊조리며 슬쩍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포츠머스의 살아있는 신이자, 잉글랜드가 차기 감독으로 점찍은 젊은 천재, 소하에 대한 대규모 비판은 어느 순간 방향을 바꾸었다.
이것은 물론, SSH1314와 처음 비판을 제기했던 언론사로부터가 시작이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성소하 감독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해준 감독입니다. 그런 그에게 도 넘은 비판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냐는 겁니다.
[성소하 감독의 지휘력에 의문을 가질 순 없다. 그는 포츠머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세계 최고의 감독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어째서’ 성소하 감독이 ‘과할 정도의 로테이션’ 정책을 무리하게 시도했는지를 봐야한다.]
사건을 주도한 두 존재가, 공교로울 정도로 비슷한 시기에 ‘왜’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사건을 주도한 만큼 영향력이 강한 그들의 주장은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심지어, 논지 자체가 상당히 일리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열렬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성소하 감독은 과격하다고 해도 항상 바른 판단을 내렸던 감독이야.
-하긴, 성소하 감독은 치매가 걸리기엔 아직 굉장히 젊은 나이잖아?
-뭔가 이상하긴 했어. 우리가 봐도 이상한 선발인데, 그 성소하 감독이 몰랐을까?
-좋지 않은 건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가 맞겠지.
-그럼 도대체 왜?
사건은 이제 소하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아닌 소하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좋아. 그럼 자, 드가자.”
방향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자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소하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소하가 드디어 사건에 대한 입을 연 장소는, 12월 첫 경기, 본머스와의 경기에 앞선 기자회견장이었다.
“감독님! 이번 사건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느 한 용기가 있는 기자의 질문.
제법 용감한 기자였다.
소하의 앞에서 헛물켜다가 기자회견장 출입을 금지당한 기자가 한 다스가 넘었거늘. 밥줄을 걸고 기자의 소명을 달성한 기자였다.
‘저게 기자지!’
소하는 용감한 기자에게 칭찬의 미소를 보내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큼큼. 저도 상당한 논란이 따르고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꿀꺽.
드디어 소하가 입을 열자 기자회견장의 기자들은 숨 쉬는것도 잊은채 소하의 입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저는 일단,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고견에 감탄은 금치 못했습니다. 결과보다는 원인에 초점을 맞춰주신 점, 다시 한번 깊게 감명받았음을 밝힙니다.”
이야기에 앞서 잉글랜드 축구계에 감사를 표하는 소하. 뭔가 꿍꿍이속을 품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실, 조금 일찍, 먼저 나서서 사건에 대해 해명을 하고 싶었지만, 일개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잉글랜드의 모든’ 분들이 이유를 궁금해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계속해서 본의가 아니라 대중의 성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의견을 표명한다고 주장하는 소하였다.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해서, 기자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뭐야, 저 성소하 감독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볼 정도의 이유야?’
‘뭔가 큰 게 온다.’
‘할 말, 하지 않을 말 가리지 않던 사람이 저렇게 조심스럽다고?’
‘왔다. 이건 특종 감이다.’
‘도대체 어떤 폭탄을 투하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기대된다.’
기자의 본능이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님을 거칠게 외쳤고, 곧 잘못된 외침이 아님을 소하가 증명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기 숫자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죠.”
소하는 미리 준비한 경기 일정표를 가져와 장내의 기자들에게 위풍당당하게 펼쳐 들었다.
“자 보세요.”
짐짓 어지럽다는 표정을 짓는 소하가 꺼내든 일정표는 입을 떡 벌리지 않고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빽빽했다.
[프리미어 리그 14라운드, 본머스.
프리미어 리그 15라운드, 첼시.
프리미어 리그 16라운드, 웨스트햄.
챔피언스 리그 조별 6차전, 포르투.
프리미어 리그 17라운드, 울버햄튼.
프리미어 리그 18라운드, 카디프.
리그컵 8강. 본머스.
프리미어 리그 19라운드, 팰리스.
프리미어 리그 20라운드, 뉴캐슬.]
12월 한 달 내내 9경기나 치르는 미친 일정! 3일에 한 번꼴로 경기를 계속 치러야 하는 무지막지한 일정이었다.
“보세요. 알다시피, 보이다시피, 산술적으로 3.3일에 한 번씩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일정입니다. 그것도 한 달 내내요!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일정입니다!”
쾅!
화난 얼굴로 탁상을 후려치는 소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과할 정도의 로테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선수들이 죽어 나갈 만큼 무지막지한 일정입니다. 하지만, 전 당당히 이유를 말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일개 감독이, 위대한 The FA가 지정한 일정을 부정할 순 없었으니까요!”
드디어 나왔다. The FA의 이름이.
세계에서 가장 고지식하고 가장 꼰대들이 많이 서식한다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
그렇다. 소하의 최종목표는 바로 이 꼰대들의 집합소였다.
“하지만, 수십, 수백만의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교묘한 화술이었다.
이것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축구팬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라는 뜻이 담겨있었으니까.
비판과 의문만을 가진 축구팬들은 졸지에 소하의 지지자로 돌변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의문을 품지도 못했다.
간단한 삼단논법이었기 때문이다.
성소하 감독의 로테이션 정책은 좋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 이유가 잘못됐다.
라는, 간단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논법이었기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고, 자신을 비판하던 모든 이들을 아군으로 만들어버리는 신의 한 수였다.
이렇게, 제대로 엄청난 수의 아군을 만든 소하는 회심에 찬 미소와 함께 결정타를 내렸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The FA에 요구하겠습니다. 리그컵 축소와 교체 카드를 기존의 3장에서 5장으로 늘려주시길 바랍니다!”
대형 폭탄을, 아니, 핵폭탄을 무자비하게 떨어뜨린 소하였다.
< 257화. 혁명은 선동으로부터.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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