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지는 방법을 잊은 팀. (2) >
본격적으로 18-19시즌의 중반기로 접어든 포츠머스의 첫 상대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철천지원수였다.
“사우스햄튼에게 승리 대 챔피언스 리그 우승.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주저 없이 전자를 고를 거다.”
감독이기 전에 포츠머스의 골수 서포터인 소하는 입버릇처럼 사우스햄튼의 처단을 외쳤다.
“나에게 권총이 있고 아돌프 히틀러와 사우스햄튼의 창시자, 둘 중 하나를 쏴야 한다면, 난 후자에게 모든 총알을 박아넣을 거다. 그리고 총알이 떨어진 권총으로도 두들겨 팰 거야.”
“축구는 질 수도 있다. 한낱 공놀이잖아? 하지만 전쟁은 지면 죽어.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사우스햄튼에게는 이겨라. 이건 전쟁이니까.”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신께서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사우스햄튼의 소멸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면 나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사우스햄튼의 완전한 멸망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간 6년간, 소하는 선수들에게 쉬지 않고 잔소리, 혹은 세뇌를 진행했다.
덕분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사우스햄튼의 S자만 보아도 눈에 살기를 뿌려댔다.
“사우스햄튼 녀석들은 숨도 못 쉬게 괴롭혀줘야 밥이 잘 넘어가더라고···.”
“저런 허접한 팀이 어떻게 프리미어 리그에 서식하는 거지?”
“분수를 깨우치도록 흠씬 두들겨 패줘야지.”
“총 38경기 중에서 36패를 해도 사우스햄튼에게만 2승을 거두면 잘한 시즌이야.”
“아직 져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지는 날엔 감독님이 어떤 불호령을 내릴지 두려워···. 살기 위해 죽인다···.”
명문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우스햄튼이었거늘. 포츠머스 선수들에게는 분수도 모르고 재수가 좋아 살아남은 허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나 포츠머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조쉬 킹은 소하가 따로 세뇌하지 않아도 이미 증오가 넘쳤다.
“전 잊지 않고 있다고요. 10살쯤인가? 사우스햄튼의 유소년팀에 지원했는데 떨어졌거든요! 그날의 굴욕이란···.”
15년 가까이 묵은 원한!
너무나 오래되어서 썩어 없어질 법도 했건만, 스승을 닮아서인지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며 이를 가는 조쉬 킹이었다.
당시, 사우스햄튼의 유소년 관계자는 조쉬 킹의 잠재성에 대해 간략히 평가했었다.
[육체적 능력은 우월하지만, 평범 이하의 지능으로 인해 발전 가능성이 없음.]
유소년 레벨만은 잉글랜드에서 한 손으로 꼽힌다는 사우스햄튼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조쉬 킹은 전 세계가 탐을 내는 초특급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제법 머리가 여물었다고 봐도 괜찮은 10살짜리 애가,
‘1 더하기 1은 뭐니?’
‘수학이요!’
라고 천진난만하게 외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다.
사우스햄튼은 아쉽게도 몰랐다.
조쉬 킹이 가진 상상 이상의 육체적 잠재성과 이를 상회하는 노력의 재능을 말이다.
하여튼, 소하는 이러한 조쉬 킹의 원한을 교묘하게 부추겼다.
“쯧쯧. 너같이 훌륭한 선수를 몰라보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눈알 대신 사탕이 박혀있었나 보다.”
“역시! 감독님은 뭔갈 아시는 분이시군요! 저런 인재를 몰라보는 팀은 사라져야 마땅하겠죠.”
“녀석. 이참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도 되겠는걸?”
“헤헷! 아직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할 정도는 아니에요.”
“겸손하기까지! 더는 가르칠 게 없구나! 하산하거라!”
“아니에요! 감독님처럼 훌륭하신 분에게 평생 배우고 싶습니다!”
“하하핫!”
“헤헤헷!”
그놈이 그놈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질색을 하는 스승과 제자였지만,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의 전적은 너무나도 한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 물론, 포츠머스 쪽으로.]
[5전 5승. 포츠머스의 압승!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으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진행하는 중이다.]
그간 다섯 번 만났지만, 단 한 번도 승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그 선봉에는 복수의 화신, 조쉬 킹이 내달렸다.
[포츠머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답게, 사우스햄튼을 상대로는 펄펄 나는 조쉬 킹!]
[5경기 5선발, 12골, 2어시스트. 원래도 잘하는 선수지만 사우스햄튼을 상대로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5경기에 14개의 공격포인트라니.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의 ‘사우스 코스트 더비’가 다득점이 많이 나오는 경기라고 해도 엄청난 활약이었다.
마치, 아스널을 상대하는 첼시의 디디에 드로그바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조쉬 킹은 별명마저 얻었다.
성자 살해자(Saints Slayer).
사우스햄튼의 애칭 ‘Saints’에서 따온 제법 그럴싸한 별명이었다.
물론, 조쉬 킹이 이 별명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여튼,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하는 포츠머스는 위풍당당하게 6번째 ‘사우스 코스트 더비’를 맞이했고 결과는 모두가 예상했던 그것이었다.
[5-0! 또다시 포츠머스가 ‘남해안 더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군요!]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어요. 어떻게 6경기 6패를 당합니까!]
13-14시즌 이후, 대 포츠머스전 6연패를 기록한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우리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그냥 항상 져!”
“이번 경기도 우리가 못한 건 아니었는데···. 왜, 왜! 갑자기 5골이나 먹힌 거야? 도대체 왜!”
“아, 미치겠다. 우리만 만나면 평소보다 더 잘해!”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6연패라니. 아무리 포츠머스의 체급이 커졌다고 해도 단일팀 상대로 6연패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굴욕이었다.
최소한 비기기만 했어도 이 정도로 굴욕감은 느끼지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또다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상한 춤으로 셀레브레이션을 하는 조쉬 킹의 모습은 눈을 감아도 자꾸 떠오르며 정신을 괴롭혔다.
“이예에! 이 몸을 거부한 사우스햄튼에게 죽음을!”
-타타탓.
소하에게 배운 요상한 탭댄스로 사우스햄튼 서포터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은 조쉬 킹.
이번 시즌 3번째 해트트릭이자 리그 12번째 골이었다.
이로써 조쉬 킹은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 순위 단독 1위를 공고히 다졌다.
2위, 에링 홀란드의 7골보다 5골이나 많은 압도적인 차이!
이 기세면 득점왕은 받아놓은 당상과도 다를 바 없었지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었다.
이렇듯 팀의 성적과 개인의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포츠머스.
경쟁자를 꺾으며 더더욱 기세를 올릴 것만 같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
사우스햄튼을 시원하게 꺾어버린 포츠머스의 남은 11월 일정은 상당히 빡빡했다.
리그컵 16강, 노팅엄 포레스트.
챔피언스 리그 조별 4차전, 샬케 04.
리그 12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리그 13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챔피언스 리그 조별 5차전, 로코모티프.
이미 치른 사우스햄튼 경기와 합쳐 6경기나 치르는 미친 일정이었다.
어지간한 팀이라면 선수단 운영에 눈앞이 아찔해지는 상황.
하지만, 전문가들은 포츠머스에 대해서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상당한 일정이지만, 포츠머스의 주전과 후보는 그 실력의 간격이 매우 좁다. 적절한 로테이션으로 잘 헤쳐나갈 거라고 예상된다.
-이미 성소하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끊임없이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덕분에 부상도 없고 체력적으로도 여유롭다.
-포츠머스는 놀랍게도 이번 시즌 모두 다른 선발명단을 보여줬다. 아, 물론, 리그뿐만 아니라 모든 대회를 합쳐서 말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성소하 감독의 로테이션 실력이다. 로테이션이란 그냥 선수를 갈아 끼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의 컨디션, 전술적 역할 등등, 고려할 요소가 많음에도 작은 실수조차 없다. 그야말로 괴물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소하의 로테이션 정책은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단 한 번도 선발명단이 겹치지 않은 채 13승 4무라는 성적표는 세계 최고임을 부정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물론이요, 서포터들까지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노팅엄 포레스트를 상대로 간신히 승리한 포츠머스. 1-0, 모하메드 살라의 마수걸이 골로 살아남았다.]
전설적인 팀이지만 지금은 2부리그에서 서식하는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뭐, 만만치 않은 팀이니까.
-후보가 많이 투입됐지.
-이겼으면 장땡이야.
모처럼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였지만, 서포터들은 일단은 이겼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샬케 04를 상대로 상당히 고전한 포츠머스! 0-0으로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다른 팀의 경기 결과 덕분에 조 1위를 확정 지었습니다.]
[독일 원정은 그리 쉽진 않죠. 일단 조 1위를 확보했으니 앞으로는 조금 편해질 겁니다.]
2승 2무로 빠르게 조 1위를 확보했지만, 경기력은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결과는 챙겼기에 군말이 넘어갔다. 잉글랜드 팀의 독일 원정 성적은 썩 좋지 않았으니까.
[맨체스터 시티와 0-0 무승부를 거두며 리그 1위를 지켜낸 포츠머스였습니다!]
[포츠머스가 무득점 경기를 하는 날이 다 있네요. 맨체스터 시티는 주도권을 가져갔지만 승리하지 못해 아쉽겠어요.]
상대 전적에서 많이 앞서는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는 강팀이었고, 원정경기였기 때문에 아직 우려스럽지는 않았다.
[포츠머스, 정말, 구사일생입니다. 추가시간에 얻은 PK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는군요.]
[홈경기에서 이렇게 힘든 경기를 펼치는 포츠머스는 오랜만이네요.]
석연치 않은 판정이었지만, 어찌 됐든 PK를 얻어내 간신히 무패를 지켜냈다.
하지만, 경기력이 영 좋지 않았고 져도 이상할 이유가 없었기에 슬슬 서포터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선발명단을 너무 바꿔서 그런 거 아니야? 일관성이 떨어지잖아.
-개소리하지 마라. 로테이션 때문에 경기력이 나빠진 게 아니라, 로테이션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야.
이래저래 ‘패배’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서포터들의 불안감은 가중됐다.
일단, 3경기 연속으로 필드골이 없다는 점은 정말로 이상했기 때문이다.
다른 팀도 아니고 공격력 하나만큼은 최고였던 포츠머스가 3경기 동안 PK로 한 골밖에 넣지 못하다니.
심지어 리그 득점 1위와 2위, 그리고 4위를 동시에 보유한 팀이 포츠머스다.
4경기 1승 3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에도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도 로코모티프를 상대로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겠지.
-맞아. 이번에는 홈으로 불러들여서 경기하니까.
-시원하게 패버리고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서포터들은 이제 로코모티프 모스크바를 제물로 삼아 팀이 다시금 부활하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히려 더욱 감내하기 힘든 역풍으로 돌아왔다.
[이게 뭡니까! 로코모티프가 1-0으로 포츠머스를 침몰시킵니다!]
[대이변! 참패만 면해도 본전이었던 로코모티프가 역으로 승리를 따냅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5차전에서 기어코 무패행진이 끝나기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질 줄 알았다.
그러나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같은 약한 팀에게, 그것도 홈에서 또다시 골을 넣지 못하며 질 줄 꿈에서도 몰랐다.
포츠머스는 말 그대로 ‘지는 방법을 잊은 팀’이었거늘. 팀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흔들리는 포츠머스를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할 사건이 발생했다.
***
세계는 하나였지만, 21세기의 세계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과 가상현실.
근미래에 닥칠 SF소설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랜선과 랜선 밖의 이야기다.
현실과 인터넷 속 세상은 같으면서도 묘하게 달랐고,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별도의 세계로 봐도 좋을 만큼 인터넷 세계의 영향력은 커진 작금이다.
그리고 이는 축구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몇 이름 대신 ‘ID’를 내세운 자칭 ‘전문가’들은 종종 현실의 전문가보다 큰 영향력을 뿌렸다.
ID, SSH1314.
포츠머스에 관련된 일이라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터넷 속 인물이다.
이 인물의 댓글 하나, 짧은 칼럼 하나로 여론이 뒤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SSH1314는 소하와 포츠머스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소하의 편을 들어주며 여론을 주도하는 든든한 우방이랄까. 그동안 소하의 과격한 팀 운영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잡음이 적었던 이유였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일 뿐.
언제나 우방이었던 SSH1314였지만, 이번만큼은 적으로 돌아섰다.
-성소하 감독의 로테이션 정책은 팀의 일관성을 해칠 거고 곧이어 충격적인 패배의 원인이 될 거다.
소하의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 장문의 칼럼.
물론, 처음에는 머리에 총을 맞았냐면서 대단한 비판을 받았다.
이 글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포츠머스는 사우스햄튼을 무자비하게 해치운 뒤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로코모티프에 패배하자, 이 칼럼은 재조명을 받게 됐다.
-와, 아이디를 해킹당한 줄 알았는데 그냥 예견한 거였구나.
-6년 동안 머리가 깨져도 옹호만 하던 사람인데. 진짜 요즘 포츠머스에 문제가 있긴 하구나.
-이 사람 정체가 뭘까? 귀신같이 때려 맞췄네.
-그럼 진짜 성소하 감독의 로테이션이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잖아?!
인터넷 속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 세상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는 법.
슬슬 포츠머스를 먹이로 삼기 위해 기자라는 탈을 쓴 상어 떼들마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모처럼 찾아온 위기!
하지만, 소하는 묵묵부답으로 그저 인터넷을 슬쩍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이제는 상징으로 자리를 잡은 비릿한 썩은 미소와 함께.
“후후후.”
어두운 방 안에서 멋들어진 자세로 차를 마시는 소하. 유일한 광원은 모니터에서 나오는 작은 불빛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모니터의 화면에서 보이는 소하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아이디는 ‘SSH1314’였다.
분명,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256화. 지는 방법을 잊은 팀.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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