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55화 (255/306)

< 255화. 지는 방법을 잊은 팀. (1) >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는 10월의 마지막. 요즘 들어 잉글랜드 남부 해안가에서 가장 잘나간다고 자타공인하는 포츠머스에서 겨울의 방문을 잊게 할 열기가 솟아올라 왔다.

“포츠머스! 포츠머스! 포츠머스!”

“이번엔 이기자! 이번엔 이기자!”

“무패 우승 한번 해보자!”

“리버풀만 넘으면 탄탄대로다!”

“성소하! 조쉬 킹! 홀란드! 모살라!”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경기장을 찾은 포츠머스의 서포터들.

어찌나 열정적으로 응원을 했던지, 땀을 줄줄 흘리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과연,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팀에 어울리는 열정적인 서포터들의 모습이랄까.

포츠머스의 급성장에는 이러한 서포터들의 전폭적인 지지의 공이 매우 컸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냥 순수한 마음으로 팀을 응원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팀도 아닌 리버풀이었기에, 평소보다 더욱 승리를 원하는 그들이었다.

리버풀 FC.

악성 서포터, 훌리건들의 패악질로 사고도 많이 친 축구 구단이지만,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팀.

잉글랜드의 북서부에 자리를 잡은 덕에 남부의 포츠머스와는 딱히 접점이 없는 팀이다.

물론, 물리적인 거리가 있음에도 리그 내의 다양한 상황 때문에 접점이 생기는 때도 있다.

그러나 포츠머스와 리버풀은 무슨 관계가 생길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컸다.

하지만 2년 전, 포츠머스가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며 묘한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자면 선의의 경쟁이랄까.

서로 나쁜 감정은 하나 없이, ‘부활’이란 키워드를 공유하며 생긴 묘한 라이벌리!

흡사 원래 세계의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의 경쟁 관계처럼 말이다.

그리고 포츠머스에게는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이 새로운 경쟁의 승자는 대부분 리버풀이었다.

“한 번이라도 이기자!”

“제발···. 언제 이겨봤더라···?”

“우리 팀은 리버풀만 만나면 PTSD에 시달리며 약해지지···.”

포츠머스의 대 리버풀 전적은 매우 처참했다. 무수한 유럽의 강호들을 차례차례 혼내준 소하였지만 리버풀은 예외였다.

1승 1무 3패.

총 다섯 번 만나서 한번 이기고, 한번 비기고 세 번이나 졌다.

맨체스터 시티,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리 생제르맹을 모조리 때려잡는 실력을 보여준 포츠머스였거늘.

리버풀에게만은 역으로 만날 때마다 흠씬 두들겨 맞고 패배를 꾸준히 기록했다. 홈이든 원정이든 가리지 않고!

특히나, 지난 시즌 ‘더블’을 당한 기억은 포츠머스에게는 악몽과 다름없었다.

‘더블’이라면 한 시즌 동안 리그에서 홈, 원정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즉, 1년 내내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 포츠머스가 일 년 내내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다니. 암만 첫 챔피언스 리그 때문에 리그를 버렸다고 해도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덤으로 더 슬픈 사실은 포츠머스가 리버풀을 이겨본 지 2년 6개월 이상이나 지났다는 사실!

괜히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 리버풀을 꺾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위대하면서도 허황한 ‘무패 우승’이란 타이틀에 도전하는 팀은 포츠머스만이 아니었다.

리버풀 또한 아직 시즌 초반임에도 ‘무패’를 유지하고 있었다.

[1위. 포츠머스, 7승 2무, 23점.

2위. 리버풀, 6승 3무, 21점.

3위. 맨시티, 5승 3무 1패, 18점.

4위. 토트넘, 4승 3무 2패, 15점.

5위. 첼시, 3승 4무 2패. 13점.

6위. 아스널, 3승 3무 3패. 12점.

7위. 맨유, 3승 3무 3패. 12점.]

현 18-19시즌, 프리미어 리그, 상위 일곱 개 팀의 순위다.

포츠머스가 상당한 질주를 보여주며 3위 맨체스터 시티와 승점 5점 차이를 내며 달아나는 형국이다.

상당한 주파였지만, 2위인 리버풀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2점 차이로 끈덕지게 따라오는 모양새였다.

포츠머스로서는 세상 무서울 게 없이 질주함에도 자꾸만 뒤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비데를 사용하지 않은 느낌이다.

이래저래,

리그 우승을 위해서라도,

무패 우승을 위해서라도,

지난날의 설욕을 위해서라도,

리버풀을 꺾어야만 했다.

그리고, 후반 75분을 넘긴 지금.

드디어 지난날의 설욕을 갚고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나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 포츠머스였다.

[포츠머스가 2-1로 앞선 가운데, 양 팀의 경기는 계속해서 치열하게 이어집니다.]

[프래튼 파크에서의 승률이 80%가 넘는 포츠머스입니다. 아무리 리버풀에게 약한 포츠머스지만 이번만큼은 다를지도 몰라요!]

경기 시작 직후, 전반 2분.

골과는 거리가 먼 수비형 미드필더, 데클렌 라이스의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앞서나간 포츠머스였다.

이어서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44분.

오늘따라 미드필더의 득점력이 올라왔는지, 니콜로 바렐라가 멋진 반 박자 느린 침투를 보여주며 추가 골을 넣었고, 2-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샬케 04와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주전을 아끼며 날을 갈아왔던 소하의 전략이 제대로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순간처럼 보였다.

쉽게 승리를 거둘 것만 같던 전반전이었거늘. 리버풀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후반 15분, 로베르토 피르미누의 멋진 원터치 연계로 포츠머스의 수비진은 흔들렸고, 사디오 마네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비록 ‘마누라’ 라인은 소하의 계책으로 결성하지 못했지만, 모하메드 살라 대신 그리즈만이 합류한 ‘마누그’라인은 그에 못지않았다.

하여튼, 경기를 거의 잡았던 포츠머스는 다시 위기에 처했고 리버풀은 동점 골을 위해 기세를 바짝 올리는 후반 75분이었다.

“감독님, 이참에 아예 내려앉는 것이 어떻습니까?”

잭 밀러, 포츠머스의 수석코치이자 소하의 오른팔은 심각한 표정으로 조언을 건넸다.

이제 남은 시간은 시간이 조금 더 흘러 10여 분 정도.

남은 10분 동안 골대 앞에 버스 두 대를 세워 한 골 차 리드를 지키자는 뜻이다.

“···.”

상당히 실리적인 조언이었지만 소하는 그리 달갑잖은 모습이다.

이에, 밀러는 다시 한번 간곡하게 자신의 제안을 주장한다.

“솔직히 지난 시즌 죽을 쑤긴 했지만, 덕분에 선수들은 내려앉는 전술에 제법 익숙합니다. 지금 리버풀의 기세는 그냥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지난 시즌, 아니, 그동안 쌓아왔던 수많은 업은 포츠머스를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밀러의 제안처럼 포츠머스는 여러 가지 전술을 유기적으로 바꾼 팀으로 진화했다.

10분 정도야, 최고는 아니더라도 수준급의 수비 능력을 보여줄 능력이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감독이 진행하는 법. 소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툴툴거렸다.

“지금···. 저보고 클롭 감독 앞에서 꼬랑지를 말고 도망가라는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경기에서 이기고 보자는 거죠. 결국 이기는 놈이 강한 놈입니다!”

밀러의 외침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다.

그것도 궤변술사로 정평이 난 소하로서도 감히 논파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정론!

때문에 소하는 잠시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법 말솜씨가 늘었군요···.”

“길게 보자는 거죠. 여기서 이긴다면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완벽한 승리에요!”

“하지만···. 저와 클롭 감독 사이에는 암묵의 규칙이 있다고요.”

“네?”

이건 또 뭔 개소리란 말인가.

딱히 사석에서 만난 적도 없고, 대화도 몇 번 해보지 않은 사이끼리 암묵적인 규칙이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개소리에 밀러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난청이 온 건 아니겠죠?”

“···제대로 들으셨네요.”

“그게 뭔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는 소리입니까?”

“···근 몇 년 안으로 오르지 않을까요? 하여튼, 그런 게 있어요. 플랜A로만 맞붙자는 그런 규칙.”

찰스 왕세자가 정확히 4년 뒤에 왕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아는 소하였지만 대충 얼버무리고 본심을 터놨다.

플랜A로만 맞붙자.

즉, 가장 잘하는 축구로 정정당당하게 붙자는 요상한 규칙이었다.

암만 소하가 괴짜라고는 하지만 조금은 선을 넘은 느낌의 규칙.

하지만 의외로 지난 5번의 싸움에서 이 규칙은 꼬박꼬박 지켜졌다.

리버풀도 수비로 내려앉는 게 유리함에도 경기 속도를 늦출지언정 전술을 아예 뒤집진 않았었다.

뭐랄까. 정상을 노리는 두 감독의 순수한 호승심이랄까.

팀의 성적의 최우선으로 두는 그들이었지만 둘만의 대결에는 팀보다는 자신들을 앞으로 뒀다.

천재들이 가지는 괴벽이라고 봐도 좋았다.

“흐으음.”

상당히 이상한 소하의 말에 밀러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단순히 소하의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밀러라면, 그간 소하의 곁에서 가장 오랜 시간 보필해온 인물.

정확히 말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렴풋이 소하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뭐, 감독님께서 원하시면 어쩔 수 없죠. 사실, 수비적으로 바꾼다고 해도 한 골 차 리드를 확실히 지킬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호오···.”

“게다가, 리버풀이라면 리그컵이든, FA 컵이든, 챔피언스 리그든, 아무튼 어디에서든 중요한 길목에서 한번 만날 거 같지 않습니까? 그때 제대로 꺾기 위해선 제대로 붙어서 이겨야겠죠.”

“오오···!!!”

어깨를 으쓱거리며 툴툴거리는 밀러의 모습에 소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바로 저거였다.

리버풀은 어떻게든 중요한 무대에서 제대로 붙을 확률이 높은 강적!

실제로도 리버풀은 18-19시즌에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 오른다.

포츠머스가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까지 올라간다면 만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결국 계속해서 만나야 할 상대야. 지금은 앞서고 있지만, 온전한 실력으로 보기에는 어렵지. 라이스의 중거리 슛은 솔직히 운빨이니까.’

운을 배제한다면 포츠머스가 리버풀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을까?

소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중요한 무대에서 운을 바라는 건 너무나도 염치없는 일.

결국 계속해서 담금질해야 한다.

언젠가 어느 결승전에서 만날 리버풀을 확실히 꺾기 위해선!

“이거, 아저씨가 슬슬 감독에 대해서 눈을 뜨시는 거 같은데요?”

“벼, 별거 아닙니다. 감독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려운 길이 곧 살아남는 길이다’라는 거요.”

칭찬에 살짝 얼굴을 붉힌 밀러의 말은 소하의 인생관 그 자체였고 소하가 너무나도 기뻐할 대답이었다.

“와! 저 은퇴해도 되겠어요. 포츠머스의 다음 감독은 아저씨입니다···!”

“으, 은퇴라니요. 그런 말씀 좀 하지 마십시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이신 분이 뭐가 아쉬워서 벌써 은퇴하시려고 합니까? 도대체 왜!”

며칠 전부터 소하의 은퇴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밀러로서는 펄쩍 뛰고도 남을 소하의 발언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하여튼···.”

너무 빠른 은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소하.

하지만, 난데없이 이변이 일어난 경기 때문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로베르토 피르미누! 오늘 경기 내내 포츠머스의 진땀을 빼더니 드디어 한 골 넣습니다!]

[동점 골!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리버풀은 전혀 만만치 않은 팀이죠!]

로베르토 피르미누의 동점 골이 터졌고 소하와 밀러는 차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

“···또 이기지 못했네···.”

“···뭔가 있어···.”

“상성이 좋지 않을 걸까?”

2-2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선수들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징크스 같은 불길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소하가 경기 전부터 이기자고 들들 볶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하의 분노가 두려웠기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소하는 굉장히 겸허한 자세로 선수들을 맞이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잘했어. 다만 후반 집중력을 조금 더 키우자.”

대단히 차분한, 분노라고는 티끌만큼 보이지 않는 친절하고 정석적인 피드백에 선수들은 얼떨떨했지만 크게 환영했다.

“죄송합니다! 다음엔 진짜 이길게요!”

“하. 반성하고 또 반성하겠습니다.”

“좋았어요. 진짜 복수하고 만다!”

크게 혼날 줄 알았던 선수들의 사기는 미친 듯이 올라갔다.

소하의 이상한 태도에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으니까.

다음을 기약하며 자칫 떨어질지도 몰랐던 사기를 부여잡은 포츠머스였다.

***

경기 후, 늦은 밤.

포츠머스의 한 고급주택 단지.

고급 승용차가 흔하게 눈에 띈다는 점을 제외하고서 별 특별한 곳이 없는 장소지만 꽤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사는 주택단지이기 때문이었다.

성소하.

포츠머스의 전설이자 현시대의 축구계를 이끌어나가는 거성의 주거지로 굉장히 유명했다.

물론, 밤늦게까지 야근에 찌들어 사는 소하인지라 동네에서 얼굴 볼일은 극히 드물었고, 덕분에 매우 조용한 동네였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일 뿐.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또 못 이겼어! 이젠 아예 이기고 있다가 비겼다고! 이렇게 부끄러울 때가 있는가!”

흡사, 대한민국의 모 사극에서 나오는 왕의 한탄 같은 처참한 탄식과 함께,

-퍽퍽퍽퍽!

부드러운 무언가, 매우 높은 확률로 인형으로 추측되는 물체를 흠씬 두들겨 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 때아닌 괴성은 포츠머스시에 잠시 화제가 되는 ‘인형 폭행범’ 괴담의 시작이었다.

하여튼, 리버풀과 아쉽게 비긴 소하와 포츠머스는 이제 시즌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255화. 지는 방법을 잊은 팀.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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