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시작. (4) >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신생 아스널을 2-0으로 제압한 포츠머스.
그들의 행진은 멈추는 법을 잊은 채 계속해서 이어졌다.
9월 26일, 리그컵 3라운드.
이제 막 리그2로 올라온 ‘매클즈필드 타운 FC’를 만났고 시원하게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경기 끝! 전원 후보로 경기를 시작한 포츠머스였지만, 매클즈필드 타운을 4-0으로 끝장내버리네요.]
[덩치 차이가 너무 나는 경기였어요. 모처럼 리그컵 3라운드에 진출한 매클즈필드 필드 타운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네요.]
리그2라면 즉, 4부리그다.
소하가 처음 포츠머스의 지휘봉을 잡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팀이었다.
“얘들아 보이냐? 저게 우리 팀이었어. 감회가 새롭지?”
“···.”
“요컨대, 동향 출신이란 말이지.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야, 선배 된 도리로서 사회의 험난함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주 훌륭한 정답이다. 리그2로 승격했다며 자만할 텐데, 제대로 교육을 하고 오도록.”
“넵!”
소하와 선수들은 같은 리그2 출신으로서 자비를 베풀었고 무척 잔인한 결과를 만들었다.
“음. 어차피 2020년에 50만 파운드란 세금을 내지 못하고 해체될 구단이었으니까. 골로 가는 길, 우리 같은 수준 높은 팀하고 경기해봤다는 멋진 추억 정도는 만들어줘야지.”
소하 나름대로 친절한 아량이었다.
실제로도 얼마 되지 않는 매클즈필드 타운의 서포터들은 상당히 즐거워했다.
“우와! 후반전에는 조쉬 킹이 나왔잖아? 저게 그, 해리 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잉글랜드 최강의 공격수구나.”
“와···. 잘한다. 벤치 봐봐. 케빈 도슨이야! 리그2부터 시작해서 국가대표의 붙박이 주전 수비수로 발돋움한 그 케빈 도슨!”
“이야. 아담 웹스터도 잘하네.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평범하던데, 리그2에서는 칸나바로가 따로 없네.”
“요즘 후보로 밀린 잭 해리슨인데, 진짜 미쳤다. 킥이 송곳니 같아. 저 선수도 선수 생활 절반은 하부리그에서 보낸 선수라던데. 우리 팀에도 저런 선수가 있으려나?”
“알랑 생막시맹. 이 선수는 분명 스타가 될 거야. 저 현란한 발놀림을 봐봐.”
“그거 아냐? 나 마이클 반즈랑 낚시해본 적 있다. 5년 전쯤인가. 난 그때까지만 해도 반즈가 저렇게 인기 있는 선수가 될 줄 정말 몰랐어.”
4-0으로 참패했음에도 매클즈필드 타운의 서포터들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어차피, 포츠머스를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승리는 포기했으니까.
그저 리그2부터 시작해 위대한 길을 걷는 포츠머스 선수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느라 바빴다.
‘우리 팀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승패를 떠난 축구 본연의 즐거움을 즐긴 그들이었다.
비록 그 끝에는 무엇보다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리그컵 3라운드에서도 엄청난 힘을 보여준 포츠머스는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왔다.
9월 29일, 프리미어 리그 7라운드.
9월의 마지막 상대는 레스터 시티였다.
14-15시즌을 이끌던 핵심 선수들이 대부분 떠나며 굉장히 약해진 레스터 시티!
오로지 제이미 바디만이 그날의 꿈을 짊어진 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포츠머스의 상대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제이미 바디가 주저앉습니다! 3-1, 포츠머스의 승! 제이미 바디가 동점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해볼 만 해 보였는데요.]
[정말 강합니다! 포츠머스! 동점 골을 허용하며 흔들릴 법도 했지만, 거대한 해일처럼 그대로 레스터 시티를 삼켜버렸습니다.]
중위권 팀에서는 제법 방귀깨나 뀐다는 레스터 시티마저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도 되지 않는 문장이 떠올랐지만, 다들 애써 무시하며 다가오는 10월을 맞이했다.
2018년 10월.
2018년이 끝나는 마지막 분기의 시작이었고 본격적인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의 경쟁이 시작되는 날이다.
포츠머스의 10월 첫 번째 일정은 장거리 여행이었다.
“자! 러시아로 가 볼까! 그거 아냐? 추운 날 먹는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는 거? 경기에서 이기면 내가 아이스크림 쏜다.”
“···.”
챔피언스 리그를 치르기 위해 가는 느낌보다는 여행 너튜버같은 호쾌함을 보여준 소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수들은 소하에게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지 못했다.
[경기 종료. 0-0 무승부로 양 팀이 승점 1점씩 나눠 가집니다.]
[러시아의 매서운 추위에 포츠머스의 칼끝이 무뎌졌습니다. 많은 기회를 잡았지만 하나도 골로 연결하지 못했어요.]
모처럼 무득점 경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소하는 0-0경기보다 5-5경기를 훨씬 좋은 경기로 취급하는 감독.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 포츠머스까지 걸어갈까?”
“···.”
“정신 상태가 살살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변했어. 이럴 땐 극기 훈련이 딱 맞는데. 우리 귀국하지 말고 러시아의 설산에서 지옥 훈련이나 하고 갈래? 아니, 하고 가자.”
“···죄, 죄송합니다.”
“잘해라.”
“넵.”
소하의 스산한 눈빛에 조금 해이해진 선수들의 정신이 다시 바짝 조여졌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러시아 원정에서 0-0 무승부는 썩 나쁜 결과가 아니었다.
심지어 포츠머스는 다음 경기를 위해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소하는 한 경기의 결과보다는 더욱 큰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계속 승리하며 자기도 모르게 생긴 작은 자만심!
자만심이란 독은 축구계에서 그 어떤 독보다 치명적이었기에 사전에 처리한 소하였다.
“대답만 잘하네. 어디 한번 다음 경기에서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거다.”
“···.”
소하라면, 단순한 협박도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선수들은 필사의 각오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포츠머스의 10월 첫 리그 상대이자, 다음 경기 상대는 상당한 팀이었다.
그 팀은 바로, 토트넘 홋스퍼.
이정재 선수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포츠머스 다음으로 치는 국민구단이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체제가 4년 차에 들어서며 드디어 ‘무관’을 탈출할 만큼 수준이 올라온 팀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선수로서는 해리 케인과 크리스티안 에릭센,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정재였다.
환상적인 공격진을 보유한 팀이었고, 이를 받쳐주는 중앙 수비수, 얀 베르통언과 토비 알데르베이럴트가 이를 받쳐주며 우승컵을 진지하게 노리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번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까지 올라가면서 역대 최고의 토트넘임을 증명했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진출!
비록 무사 시소코의 핸드볼로 어이없게 참패하긴 했지만, 결승전 진출만으로도 반박할 여지가 없는 강팀이란 뜻이었다.
그만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란 아무나 갈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흔들리는 아스널보다 훨씬 강팀이다. 모처럼 찾아온 고비야. 이걸 이겨내야만 한 발짝 더 앞으로 갈 수 있다.”
소하는 두 눈동자를 활활 태우며 경기를 기다렸다.
일단 양 팀의 패는 이미 전부 공개된 상태다.
소하는 엇비슷한 팀이라면 변칙보다는 플랜A를 밀고 나가는 성향이 짙었고, 이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지난 시즌, 포츠머스에 대승을 거둔 전적을 자랑하는 감독!
토트넘의 홈경기이기도 해서 굳이 꼬리를 말고 수비적으로 나올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포츠머스와 토트넘의 프리미어 리그 8라운드는 매우 빠르고 격렬한 경기로 진행되었다.
[포츠머스의 에링 홀란드! 절묘한 침투로 슛까지 연결했지만, 아쉽게 빗나가는군요!]
[해리 케인 반 박자 빠른 슛으로 포츠머스의 골망을 위협했지만, 골키퍼의 손에 걸렸습니다.]
[델리 알리, 요즘 중거리 슛에 눈을 뜬 델리 알리가 멋진 중거리 슛을 시도해봤지만 조금 뜹니다.]
[빨라요! 이정재의 돌파는 정말 빠릅니다! 그대로 중앙으로 꺽어들어 가며 슛! 아, 잘 감기긴 했지만, 살짝 빗겨나가네요.]
[데클란 라이스, 정말 십 대 선수가 맞나요? 토트넘의 중원을 숨도 쉬지 못하게 틀어막습니다.]
[에릭센, 역시 크리스티안 에릭센이에요.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이 절정에 오른 모습입니다!]
포츠머스와 토트넘.
토트넘과 포츠머스는 세기도 어려울 만큼 엄청난 숫자의 공수교대를 보여주며 뜨거운 경기를 보여줬다.
프리미어 리그가 자랑하는 빠른 템포의 재미있는 경기!
좀처럼 골이 나오지 않았지만, 워낙에 빠른 축구는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간과 혼을 순식간에 빼앗아버렸다.
-대박이다. 진짜 0-0인데 이렇게 재밌는 경기가 또 있었나?
-양 팀 모두 실력이 최고조로 올랐어. 누가 이길지 예측이 어렵다.
-아무리 봐도 무승부로는 끝날 거 같지 않아. 아마 먼저 골을 넣는 팀이 이기지 않을까?
경기의 성향상 0-0 무승부로 끝날 거 같지는 않았다.
워낙에 공격 일변도로 임하는지라 골이 나오지 않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런 경기일수록 선제골을 넣는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는 법.
소하와 포체티노 감독은 더더욱 선제골을 넣기 위해 팀을 공격적으로 운영했고, 드디어 후반 70분에 들어서야 그 결과가 나왔다.
이 치열한 경기에서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보내준 쪽은 바로,
[조쉬 킹!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12골을 달성한 조쉬 킹이 예리한 컷백을 내줍니다!]
[에링 홀란드가 공을 잡을까요? 아닙니다! 재치 있게 공을 흘리네요! 저도 속았어요! 그리고 그 뒤에서 침투하던 모하메드 살라가 공을 잡습니다! 슛! 골입니다!]
포츠머스였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18골을 합작한 JEM 라인이 또다시 골을 만들어낸 것!
조(J)쉬 킹.
에(E)링 홀란드.
모(M)하메드 살라.
속칭 ‘젬’라인이라고 불리는 포츠머스의 강력한 3톱이 다시 한번 제대로 가동되며 토트넘의 선봉을 꺾어버렸다.
한 팀에 한 명만 있어도 상대팀에게는 공포인 선수들이거늘.
세 명이 모조리 몰려있자 상대팀에게는 지옥의 업화와 다를 바 없었다.
골이 나오면서 팽팽하던 경기의 균형추는 무너졌다.
동점 골을 따내기 위해 다시금 불을 지핀 토트넘이었지만 제풀에 지쳐버렸고, 포츠머스는 잘 막아내며 1-0 승리를 챙겨갔다.
“후우. 어려운 경기였다. 괜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간 게 아니었네. 비긴 경기보다 어려웠어. 암튼 잘했다. 얘들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승리한 선수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퍼주는 소하.
그런 그에게 문득 한 선수의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휴우.”
소하는 넓지만, 패배 때문에 위축된 이정재 선수의 등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대한민국 최고의, 아니,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임이 분명했건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우승컵 하나 들지 못할 위대한 선수가 너무나도 아쉬웠다.
‘내가 조금만 더 과거에서 시작했다면. 혹은 이정재 선수가 조금만 더 늦게 토트넘에 입단했다면. 그도 우리 팀에서 뛰었을 텐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정재 선수가 우승컵을 위해 팀을 떠나려고 발악하는 부류도 아니었다.
그는 병역문제가 있음에도 재계약을 흔쾌히 해준 토트넘에게 의리를 잊지 않는 상남자였으니까.
‘뭐···. 우리 쪽 사업이 정상궤도에 들어가면 현금이 많아질 테니까. 그때 한번 영입을 생각해봐야겠지. 조금만 더 무관하고 싸워주길.’
훗날을 기약하는 소하.
한 사람의 대한민국 축구팬으로서 이정재에게 우승컵을 안겨주고 싶은 그였다.
***
포츠머스의 무패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10월 20일, 프리미어 리그 9라운드, 왓포드 전까지 3-0 승리를 거두었으며,
10월 24일, 챔피언스 리그 조별 3차전, 샬케 04와의 경기까지 2-0 완승하였다.
이번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15경기 12승 3무라는 미친 경기력!
이쯤 되자 서포터들이나 축구계 관련자들은 얼핏 떠올랐던 속마음을 말로써 표현하기 시작했다.
-설마 무패···우승?
-아스널만이 해냈다는 프리미어 리그 무패우승은 물론, 전 대회 무패우승도 가능할지도?
-너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경기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걸.
슬쩍 나온 이야기였지만, 모두가 어렴풋이 생각하던 이야기라 금방 화제가 되었다.
포츠머스의 무패우승! 이라니.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12승 3무라는 성적표와 함께,
40골 6실점이라는 경기내용은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경기당 2.6골, 0.4실점이란 성적은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하는 아직 무패우승을 입에 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시즌 초반일 뿐. 아직 무패는커녕 우승을 입에 담기도 어렵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가 싶더니 이내 소하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시작이지. 10라운드부터 이어지는 리버풀, 사우스햄튼, 맨체스터 형제들까지 꺾는다면 그때는 또 달라진다.”
당장 다음 상대로 절대 강자, 리버풀이 위르겐 클롭 감독의 지휘 아래 포츠머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254화. 시작.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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