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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52화 (252/306)

< 252화. 시작. (2) >

오늘도 여지없이 모두가 퇴근하고 나서도 감독 사무실을 지키며 야근 중인 소하는 문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군.”

챔피언스 리그의 조 추첨에 대한 소하의 짤막한 평가였다.

포츠머스의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의 조는 D조. 3포트로 들어가 어찌 보면 상당히 우호적인 추첨을 받았다.

[1. FC 포르투.

2. FC 샬케 04

3. 포츠머스 FC.

4.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포르투칼, 독일, 러시아를 순회공연 하는 조였고 ‘나쁘지 않다.’라는 평이 매우 적절한 조 편성이었다.

포르투가 제법 친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5대 리그에 속하지 못한 포르투갈 리그의 강호였을 뿐.

만취 상태로 생각해보아도 포츠머스의 전력이 한참은 위였다.

그렇다고 샬케 04가 포츠머스의 대적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명문 구단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명문이 꼭 강팀이란 법은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의 일초지적조차 되지 않는 구단이지.”

자신만만한 소하!

오만해 보였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독일에서 포츠머스를 이길만한 팀은 오로지 하나, 바이에른 뮌헨뿐이다.

그것도 그 바이에른 뮌헨이 감히 이긴다고 호언장담하기 힘든 팀이 포츠머스였다.

비록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의 조별리그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홈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고전케 한 포츠머스의 저력은 아직도 이야기에 오르내리는 중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한 독일의 팀 중에선 그나마 도르트문트가 자웅을 겨룰 만했지만, 만나지도 않았고 나머지 팀들은 말 그대로 별거 아니었다.

“그리고···.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도대체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 팀이야? 모스크바가 붙었으니 모스크바인가?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러시아니까 나쁘지 않지.”

러시아 원정은 굉장히 어려웠기에 소하의 평가가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포츠머스는 지난 시즌에 수많은 경험을 쌓은 팀.

길고 긴 이동 거리도 지난 시즌, 저 멀리 카자흐스탄까지 찍어봤기에 무리도 없었고 러시아의 혹독한 기후도 지난 시즌에 적응을 완료했다.

이래저래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를 병행하느라 개고생했던 경험이 포츠머스의 큰 힘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다만 걱정스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

제법 할만한, 아니, 굉장히 좋은 조 추첨 결과였으면서도 소하는 근심을 지우지 못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운은 파도와 같다’라는 격언 때문이었다.

약한 팀이 한 조에 우르르 몰려있다면, 다른 조에는 강팀이 몰려있다는 뜻 아니던가.

조별리그를 통과해도, 혹은 1위로 통과해도 토너먼트부터 강팀을 만날 확률이 부쩍 올랐다는 이야기다.

“흠···.”

소하는 턱을 매만지며 머릿속으로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해서 계산을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의 일정.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의 결과.

그 후의 토너먼트 대진.

FA 컵 일정.

수십, 수백 가지의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좋지 않고 험난한 길을 찾아냈다.

“리그에서 기다릴 지옥의 4연전과 16강 토너먼트, FA 컵의 상대가 좋지 않았을 때가 최악이군. 덤으로 리그컵 결승전까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일단 머릿속에 집어넣어 둔긴 하자.”

최악의 2019년 2월을 상상하며 일단은 대비해두기로 하는 소하.

마음속으로 무난하게 지나가길 바라고 또 바라며 슬슬 퇴근하기 위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9월이 찾아왔다.

본격적으로 유럽의 리그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했으며, 유럽의 이적시장이 끝났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 대형 이적이라면 몇몇 선수들을 꼽을 수 있었다.

먼저, 리야드 마레즈.

은골로 캉테, 제이미 바디와 함께 레스터 시티를 이끌며 준우승이란 기적을 만든 알제리 국적의 윙포워드.

이번 시즌 한화로 870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레스터 시티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적을 옮겼다.

다만, 가격만큼 활약하지 못한다는 평이 시즌 초반에 계속 따라다녔다.

-커뮤니티 실드에서 포츠머스의 아슈라프 하키미에게 압도당하며 굴욕을 당했다.

-6,000만 파운드짜리 선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초반 행보.

-팀에 녹아들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썩 좋지 않은 전문가들의 평가들.

소하와 포츠머스에게 호되게 혼난 터라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중요해진 리야드 마레즈였다.

하여튼, 큰 손, 맨체스터 시티가 리야드 마레즈 한 명으로 다소 조용하게 보냈다면, ‘원조’ 큰손 첼시는 굉장히 바쁜 이적시장을 보냈다.

티보 쿠르투아를 레알 마드리드로 어쩔 수 없이 넘긴 첼시가 선택한 골키퍼는 ‘케파 아리사발라가’.

훗날 감독의 명령을 거부하며 엄청난 비판을 받는 이 선수의 이적료는 무려 한화로 ‘1,040억’이었다.

역대 골키퍼 이적료 1위를 갱신했으며, 근 10년 이상은 골키퍼 부분 1위를 유지할 대형 이적이었다.

덤으로 나폴리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인 ‘조르지뉴’까지 한화로 800억 원에 영입하며 2,000억 원에 가까운 이적료를 사용했다.

두 명의 선수가 1,840억이라니.

첼시가 돈이 많은 구단이긴 했지만, 프리미어 리그의 자금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이적이다.

마지막으로, 포츠머스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여준 ‘스티븐 데커’까지 저렴한 가격에 영입에 성공하며 2,000억이란 엄청난 이적료를 지출했다.

게다가 놀랍게도 첼시의 행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우리치오 사리’라는 훌륭한 감독까지 영입하며 이적시장을 상당히 바쁘게 보내며 우승컵을 노리는 첼시였다.

이어서 첼시만큼 바쁘게 이적시장을 보낸 팀은 리버풀이었다.

명장, 위르겐 클롭의 지휘 아래 부활의 서막을 알린 붉은 제국.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이후로 아쉬웠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파비뉴’를 빠르게 영입했다.

이어서 마찬가지로 아쉬웠던 골키퍼 자리에 월드 클래스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를 데려오는 데 성공.

착실하게 전력을 강화했다.

여기에 더해서 ‘나비 케이타’, ‘조르단 샤키리’라는 자원이 합세하며 대권을 차지할 능력이 충분했다.

괜히 우승 배당률이 두 번째로 낮은 것이 아니란 이야기!

과연, 붉은 제국의 부활을 성공할 수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리버풀에게 쏟아졌다.

이렇듯 막대한 돈이 오간 프리미어 리그의 우승컵은 어느 팀이 들어 올릴지는 오직 축구의 신만이 알고 있었다.

***

9월 1일.

A매치 휴식기에 앞서 치러질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의 상대는 풀럼이었다.

풀럼, 자주 강등당하긴 하지만 이 뜻은 자주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오는 저력을 가진 팀이란 증명이기도 했다.

심지어 팀 전체를 갈아엎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의 대규모 이적시장을 보냈고, 잔류를 위한 기세가 아주 등등하다.

물론, 그 기세 따위는 소하와 포츠머스에게 작은 콧바람만도 못했다.

[경기가 터졌습니다! 전반전 만에 조쉬 킹이 시즌 두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아예 부숴버렸어요!]

[망가뜨렸어요. 너무나도 잔인한 경기에요! 아, 포츠머스의 성소하 감독!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핵심 선수 둘을 교체해주며 체력안배를 하네요.]

프래튼 파크에서 치러진 풀럼과의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는 너무나도 쉬웠다.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달성한 조쉬 킹은 이로써 4경기 10골을 달성하며 미친 득점 페이스를 보여줬다.

[조쉬 킹, 지난 시즌보다 훨씬 더 성장했네요. 또 성장했어요!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뿐더러 발재간도 제법 늘었네요.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할까요?]

[무지막지한 선수입니다. 원래, 중앙에 서던 선수인데, 이제는 왼쪽이 더 어울립니다!]

[경기 종료! 포츠머스가 풀럼을 상대로 6-0 대승을 거둡니다!]

[엄청난 팀입니다. 정말 엄청납니다!]

결과는 6-0 대승.

4경기 3승 1무, 15득점 3실점이라는 포츠머스의 엄청난 모습에는 성장한 조쉬 킹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조쉬 킹.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에서 눈물을 흘렸던 과거를 가진 남자.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맹세했고 그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훨씬 더 엄청난 노력을 했다.

덕분에 크로스만 가능했던 불완전한 왼발은 이제 오른발과 차이가 없었으며,

완전한 양발로 진화하면서 다소 단순했던 드리블 패턴이 매우 복잡해졌다.

압도적인 힘과 속도, 그리고 체력.

타고난 공격 위치선정.

대포알 같은 강력한 슛.

완벽한 양발.

준수한 드리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승부욕.

이 모든 것이 월드컵이란 큰 무대를 겪으며 온전히 융합했고, 한 차원 더 높은 선수로 변해버렸다.

성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자신이 세계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고 자타공인하던 에링 홀란드 마저 경쟁심을 느꼈을 정도다.

‘···내가 좀 달리는 거 같은데? 안 되지, 안 돼. 난 최고의 미남이자 최고의 선수라고. 이 자리를 뺏길 순 없어.’

조쉬 킹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에링 홀란드의 성장마저 폭발했다.

다소 자아도취의 늪에 빠져 성장 곡선의 경사가 낮아지던 선수였거늘.

이래저래 포츠머스의 큰 복이었다.

물론, 조쉬 킹의 시즌 초반 대단한 활약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

[조쉬 킹의 공간이 매우 넓습니다. 그렇다고 조쉬 킹만 막으면 더욱 위험하니, 정말 상대하는 팀으로서는 까다로워요.]

[중앙에는 에링 홀란드가 버티고 있고, 반대편 측면에는 모하메드 살라가 날뛰고 있습니다. 이 팀을 도대체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포츠머스를 상대하는 처지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왼쪽의 조쉬 킹을 막자니, 중앙과 오른쪽이 날뛰고, 안 막자니 혼자서 게임을 부숴버린다.

요컨대, 조쉬 킹의 대단한 활약에는 팀 동료들의 눈부신 활약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풀럼을 박살 내고 A매치 휴식기에 앞선 소하의 바람은 오직 한가지였다.

“얘들아. 국가대표 경기 나가는 건 좋은데, 다치지만 말아라. 월드컵도 끝났으니까, 설렁설렁 뛰란 말이야. 알겠냐?”

“네.”

“목소리가 작다. 알겠냐?!”

“넵!”

이게 베트남전쟁 당시의 신병 훈련소인지, 휴식기를 앞에 둔 축구팀의 훈련장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래도 소하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선수들은 부상 없이 복귀했고,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에 무리 없이 등장했다.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의 상대, 에버튼.

머지사이드의 푸른 팀이자 세계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 ‘구디슨 파크’의 주인이다.

팀의 수준은 중간 정도.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중위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팀이다.

이 때문에 경기에 앞서 승부를 예측하기란 매우 쉬웠다.

-포츠머스가 이기겠지.

-5골 이상만 먹히지 마라.

-에버튼 홈이긴 한데, 무승부만 거두어도 큰 성공이지.

균형의 저울이 너무나도 한쪽으로 치우쳐졌다.

하지만, 경기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음. 챔피언스 리그 조별 1차전을 앞두고 포츠머스가 상당히 힘을 뺐습니다.]

[풀 전력이었던 풀럼전과 비교하자면, 8명의 선수가 바뀌었어요. 대규모의 변화는 팀의 레벨을 떨어뜨리는 법이죠.]

8명이나 바꾼 선발 명단!

당연히 3일 뒤에 치러질 챔피언스 리그 조별 1차전, 포르투와의 경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뭐, 구디슨 파크에서, 그것도 1.5군으로 지지 않았으면 성공이지. 만족이다.”

소하는 긍정적으로 경기를 평가했다.

원정경기였고, 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에버튼은 무조건 승점을 따내야 할 만큼 약팀도 아니다.

부정적으로 볼 이유조차 별로 없었다.

물론, 리그 경기를 다소 포기하고 임한 포르투와의 조별 경기에서 패한다면 무척 손해긴 하다.

그러나, 소하는 그렇게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는 얼간이가 아니었다.

[충격입니다! 포츠머스가 홈에서 포르투를 찢어버렸습니다! 3-0! 유효슈팅을 단 한 개도 허용하지 않고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수많은 전문가의 예측처럼, 포츠머스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조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거 같군요. 이게 정녕 3포트에 속한 팀입니까?!]

홈 경기라곤 해도 너무나 압도적인 모습으로 포르투를 꺾어버렸다.

나름 챔피언스 리그의 단골이자 자국 리그의 절대 강호라고 자부하는 팀이었거늘.

포츠머스란 거대한 파도에 맞서기에는 포르투갈 리그가 너무나도 좁은 우물이었나보다.

“자, 이제 6라운드를 치르러 가볼까.”

이제 다음 경기는 프리미어 리그 6라운드, 아스널과의 일전이다.

아스널.

정통의 강호이자 무패우승을 자랑하는 난적!

멈출 줄 모르던 포츠머스 앞에 드디어 강력한 적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 252화. 시작.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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