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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50화 (250/306)

< 250화. 슈퍼컵. (4) >

동점 골을 허용한 로페테기 감독은 상당히 당황했다.

‘이게 뭐야?’

스페인의 수많은 유망주를 직접 키웠건만. 저 나이에 저런 선수들을 상대로 저런 플레이를 보여주는 22살짜리는 본적이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겨우 8분을 남기고 동점 골을 헌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훌륭히 수비해냈고 완벽에 가까운 경기 운영이었다.

‘···공격적으로 나가는 건 무리다.’

본디 로페테기 감독의 전술은 스페인 특유의 점유율 축구다.

즉, 현재의 수비적인 전술을 그저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다.

점유율 축구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못한 거다.

점유율 축구란 패스와 움직임이 계속 유기적으로 필요한 전술!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전술이었고 월드컵 때문에 지친 레알 마드리드가 시즌 초반부터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운 전술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동점 골을 헌납한 로페테기 감독에게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미 경기의 끝자락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들겠지···.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연장전에 돌입한다.’

슈퍼컵은 연장전이 존재하는 경기.

이대로 계속 수비를 굳힌다면 연장전을 바라봐야 했는데,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추가 골을 넣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계속 버티고 버텨서 승부차기까지 가야 하나?’

갈팡질팡.

큰 무대에서 큰 팀의 감독을 맡아본 경험이 적은 로페테기 감독은 쉽사리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괜히 스페인 국가대표를 말아먹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반년 만에 목이 날아가는 감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하는 달랐다.

과거의 10년.

현재의 5년.

종합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갈고 닦은 경험 덕분에 결정에 대해서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교체는 없이 이대로 간다.”

쉬운 선택이었다.

굳이 바꿔주지 않아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고, 만약 역전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연장전에 교체해서 변화를 주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이미 소하는 연장전을 비롯한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한 상태!

감독으로서의 역량 차이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했고, 이는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였다.

아직도 머뭇거리는 로페테기.

이미 결정을 끝내고 지시를 하는 소하.

그 찰나의 차이와 순간은 델리 알리가 또다시 마법을 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델리 알리의 마법 같은 플레이에 세게 얻어맞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냥 페널티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서 벽을 치자.’

그냥 쉽게, 골대 앞에 버스를 세우기로 작심했다.

대형을 좁히면서 측면이 헐거워지겠지만 어차피 포츠머스에는 헤더가 뛰어난 선수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크로스를 허용할지라도 골만은 막아내겠다는 의지의 발현!

감독이 머뭇거리는 동안 선수들로서는 최고의 선택을 내렸다.

이 때문에 측면에서 자유를 얻은 포츠머스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포츠머스의 공세가 더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측면에서 크로스를 쉬지 않고 올리고 있습니다!]

[라파엘 바란과 세르히오 라모스가 쉴 새 없이 뛰어오르면서 공을 걷어냅니다.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닐까요?]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 듀오, 라파엘 바란과 세르히오 라모스가 엄청난 투지를 보여줬다.

특히나, 공중볼을 따내는 능력으로는 올 타임 넘버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세르히오 라모스의 활약은 포츠머스에 크나큰 문제였다.

“흠···. 정말 대단한 선수야···.”

탄식을 금치 못하는 소하!

엄청난 운동량과 남들보다 한 뼘은 높게 뜨는 저 다릿심은 차원이 달랐다.

과연 자타공인 월드 클래스!

침착하게 계획을 세운 소하마저도 다른 생각을 품게 할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

“그렇다고 방법을 바꾸기도 힘든데···.”

포츠머스는 헤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방법으로 공격할 순 없었다.

중앙의 벽이 너무나도 튼튼해 다른 방식으로 공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한가지뿐.

‘중거리 슛···.’

스티븐 데커가 있었다면.

그가 아직 팀에 남아있었다면.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수비진을 앞으로 끌어당겨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미 떠나버린 기차였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케빈 도슨을 더 올려?’

소하는 팀 내에서 그나마 중거리 슛이 훌륭한 수비수, 케빈 도슨을 올려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림 벤제마와 가레스 베일이라는 위험을 두고 케빈 도슨을 더 올릴 순 없어. 철퇴를 얻어맞을 거야.’

비좁은 틈을 파고들어 언제라도 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들은 너무나도 큰 위험이었다.

‘마리오 발로텔리를 빼고 홀붕이를 넣을까?’

마리오 발로텔리는 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중볼에 약점을 보이는 선수다.

뛰어나진 않지만 그나마 공중에서 싸우는 법을 아는 에링 홀란드의 투입이 살길 같기도 했다.

‘홀붕이가···. 저 라모스를 이겨내고 헤더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교체를 준비하던 소하는 문뜩 의문이 들었다.

포츠머스는 물론, 전 세계 모든 공격수를 살펴보아도 저 라모스를 상대로 공중볼을 제압할 수는 없을 터.

마리오 발로텔리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공중볼 실력을 갖춘 에링 홀란드에게 기대기엔 너무 막연했다.

상대의 강점에 정정당당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방식을 고려하는 게 더욱 좋아 보였다.

‘일단···. 연장전을 보자.’

결정을 조금 미루려는 소하.

하지만, 그는 굳이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

델리 알리라는 초신성이 소하의 결정을 대신 내려줬으니까. 아니, 결정의 방향 자체를 바꿔버렸다.

-팡!

세르히오 라모스가 머리로 걷어낸 공을 그대로 중거리 슛을 연결한 델리 알리!

스티븐 데커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강력한 중거리 슛은 아니었지만, 부드럽게 감겨 들어가 골대 안으로 매섭게 빨려 들어가는 훌륭한 중거리 슛이었다.

-텅!

정말 아슬아슬하게 위쪽 골대를 맞추고 튕겨 나갔다.

포츠머스로서는 정말 아쉬운 결과!

하지만, 비록 골은 아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경기의 양상을 바꾸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했다.

‘···마, 막아야 한다.’

‘아니, 저 선수가 중거리 슛까지 잘했었나? 그냥 내버려 두면 실점한다.’

‘분명 중거리 슛은 없는 선수라고 알고 있었는데···!’

질기고 진긴 수비를 보여주던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이야 운이 좋아서 골대가 목숨을 살려줬지만, 운이란 계속 따라다니는 존재가 아니지 않던가.

어떻게든 델리 알리의 중거리 슛을 막아야만 했고,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던 두 줄 버스가 앞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크로스 말고도 다른 공격을 시도할 공간이 생겼다는 이야기!

그리고 델리 알리는 이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새와 같은 시야를 자랑했으니까.

-툭.

또다시 뿜어진 델리 알리의 절묘한 패스는 예리하게 파고들며 레알 마드리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활로를 찾았습니다. 델리 알리 선수! 오늘 패스 솜씨가 장난 아니에요! 미쳐 날뜁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추가시간 3분뿐! 과연 경기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연장전일까요?!]

3분.

3분만 버티면 연장전이다.

레알 마드리드에는 3분이라도 너무나 길었지만 그래도 거의 다 왔다.

“흥. 연장전은 무슨. 난 이제 쉴 거야.”

물론, 다시금 공을 잡은 델리 알리의 머릿속에는 연장전 따위는 없었다.

[자 이번에는 슛일까요? 패스일까요?]

[기껏 공간을 열어놨으니 패스가 알맞아 보입니다.]

델리 알리의 선택을 예측해보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처럼,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잠깐 고민에 빠졌다.

‘슛이냐?’

‘패스인가?’

찰나의 고민.

찰나의 결정.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패스다.’

아무리 봐도 중거리 슛은 패스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려는 포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델리 알리의 포석이었다.

‘수비라인의 위치가 어정쩡하다. 슛하기 딱 좋아.’

수비진을,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을 자기가 슛하기 좋은 상태로 원격 조정한 델리 알리!

-팟!

오른발을 채찍같이 휘둘러 만들어낸 슛은 아슬아슬하게 수비수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슈우욱!

쭉 뻗은 티보 쿠르트아의 손가락 끝을 살짝 건드린 뒤에,

-철썩!

오른쪽 ‘야신존’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멋진 역전 골!

[골입니다! 경기 종료 직전! 델리 알리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중거리 슛을 꽂아 넣었습니다!]

[월드 클래스에요! 그는 벌써 월드 클래스입니다! 델리 알리가! 레알 마드리드라는 거대한 배를 침몰시킵니다!]

“흥!”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꺾어 오만한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이는 델리 알리!

지금의 그는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처럼 월드 클래스임이 분명했다.

-삑! 삑! 삑!

델리 알리의 셀레브레이션과 동시에 울리는 경기 종료의 호루라기 소리!

이번 시즌 두 번째 우승컵이자, 소하의 포츠머스가 만들어낸 다섯 번째 우승컵이었다.

***

슈퍼컵을 우승한 포츠머스!

아직 프리미어 리그의 개막도 며칠이나 남았는데 벌써 두 개의 우승컵, 그것도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우승컵을 얻어내자 서포터들은 발광하기 직전까지 갔다.

-으아아아아아! 미쳤다! 미쳤어! 우리 포츠머스가 미쳤다고.

-나, 제3의 다리가 가라앉질 않아···. 비뇨기과 가야 하냐? 이제 아픈데···.

-잠이 오지 않는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와!

-벌써 2관이라고! 이번 시즌 따낼 수 있는 우승이 6갠데, 벌써 두 개를 차지했어!

-도대체 이번 시즌은 뭘 하려고 이렇게 달리는 걸까. 이젠 두려워···.

몇몇 서포터들은 팀이 너무 잘나가자 겁을 집어먹기에 이르렀다.

물론, 너무 좋아서 겁을 집어먹은 포츠머스의 서포터와 반대로 정말로 무서워서 겁을 먹은 사람들도 있었다.

-···포츠머스, 저걸 어떻게 막냐?

-무슨 괴물이 태어났어···.

-다른 팀도 아니고 그 레알 마드리드를 시종일관 두들겨 패서 우승해버리네.

-며칠 전에는 맨체스터 시티도 갈기갈기 찢어버리지 않았나?

-우리 팀은 만나면 순살 당할 듯···.

-답이 없다. 그냥 미쳤다.

바로, 프리미어 리그의 다른 팀들을 응원하는 서포터들이었다.

챔피언스 리그를 3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를 흠씬 두들겨 팬 팀이 포츠머스다.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보다 약한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들로서는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도 저렇게 패버리는데 자기 팀이라고 아량을 베풀 리는 없지 않은가. 더 때렸으면 때렸지.

리그에서 무조건 두 번이나 만나야 하는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은 자기도 모르게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공포에 질린 건 프리미어 리그뿐만이 아니었다.

곧 추첨이 시작될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음···. 우리 팀하고 같은 조만 아니면 좋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포츠머스가 이번에 3포트던가? 또 지옥의 조가 나오겠구만···.

-이참에 1포트로 올려주면 안 되나? 저런 팀이 무슨 3포트에 처박혀 있어.

-다 됐고 뽑기나 잘하자.

-설마, 만나겠어? 하하. 하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같은 조에 속하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어야 했을 뿐.

이렇듯 전 세계가 포츠머스의 공포에 벌벌 떨 때, 가장 난감한 쪽은 다름 아닌 뉴캐슬 유나이티드였다.

딱히 포츠머스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팀이었지만 문제는 프리미어 리그의 개막전 상대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거친 파도를 정면에서 얻어맞아야 하는 방파제 같은 느낌이란 말이다.

“···하. 씹···. 기세가 잔뜩 오른 포츠머스를 1라운드부터 만나야 한다고?”

“1라운드부터 두들겨 맞으면 시즌 전체가 엉망이 될 텐데···.”

“우리 홈이긴 한데···. 비길 수 있나?”

이미 승리는 포기한 지 오래다.

그저 무승부라도 기적적으로 거두기 바랄 뿐인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이었다.

이래저래 포츠머스의 위상은 최고조로 올랐고 이제 대망의 프리미어 리그의 시작이 코앞까지 다가온 여름이었다.

< 250화. 슈퍼컵.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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