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슈퍼컵. (2) >
요즘 가장 인기 많은 구단을 이야기할 때, 포츠머스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매우 섭섭하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
토트넘.
첼시.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파리 생제르맹.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구단이 이 정도라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AC밀란.
인터 밀란.
유벤투스.
도르트문트.
정도가 그 뒤를 이을 거다.
이런 별 무리 속에서 포츠머스는 전자와 후자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굉장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기적적인 대성장!
이름도 없고 인기도 없던 촌구석 구단이 포츠머스였거늘.
그런 구단이 별처럼 많은 구단 중에서 상위 20위 안에 드는 인기 구단이라는 점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덧붙여 일반적으로 구단이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면 그 구단에 속한 선수들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는 포츠머스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구단의 인기보다 개인의 인기가 더욱 많은 선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조쉬 킹!
조쉬 킹의 인기는 다른 선수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포츠머스에서만 머문, 선수 생활 내내 포츠머스에서만 경기를 뛴 ‘성골’.
시원시원한 플레이.
4부리그에서 최정상까지 성장한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성.
엄청난 명성에도 불구하고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성품.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극한의 노력파.
인기를 끌래야 끌 수밖에 없었다.
상업적으로 봐도, 조쉬 킹의 유니폼은 백만 장이 넘게 팔릴 정도!
재무 이사 니엘 비숍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다운 판매량이었다.
“뭐, 내 인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물론, ‘선수’ 중에서 1위였을 뿐.
소하의 인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긴 했다. 등 번호 0번으로 만든 소하의 가짜 유니폼은 천만 장 가까이 팔렸으니까.
하여튼, 일단 선수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선수는 조쉬 킹이다.
그렇다면 2위는 누구일까?
에링 홀란드?
요즘 엄청난 기세로 인기도를 높이는 축구 괴물이었지만, 아직은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다.
모하메드 살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선수지만, 이집트인의 비율이 너무 높고 2위도 아니다.
도봉산?
모하메드 살라와 마찬가지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선수지만, 한국인 비율이 너무 높고 2위도 아니다.
케빈 도슨?
유부남인 사실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이상하게 여성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지만, 수비수라는 포지션은 보편적으로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다.
앤디 로버트슨?
슬프게도 중앙 수비수도 아닌, 풀백은 가장 인기가 없는 포지션이다. 심지어 골키퍼보다도!
칼빈 필립스나 데클란 라이스?
탄탄한 콘크리트 층의 지지가 있긴 하지만, 미드필더, 그것도 수비 쪽에 치우쳐진 선수들은 언제나 최고의 인기남이 될 순 없었다.
이제 나올 선수는 다 나왔다.
물론, 이들 모두 조쉬 킹과는 상당히 격차가 큰 인기를 가졌을 뿐.
진정한 대권 주자는 아니다.
하지만, 포츠머스의 자랑스러운 10번, 델리 알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조쉬 킹에게 근소하게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언제라도 1위를 노릴만한 진정한 강호였고, 특히나 잉글랜드 사람들이 굉장히 사랑하는 선수였다.
-델리 알리는 잉글랜드의 미래다.
-프랭크 람파드와 스티븐 제라드의 진정한 후계자가 등장했다.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드필더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약간 설레발이 섞인 평가가 줄을 지어 나올 정도로 사랑을 듬뿍 받는 델리 알리.
그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물론, 뛰어난 실력이 기본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감’이었다.
-델리 알리는 그 특유의 오만한 표정이 멋있어. 그래서 팬이지.
-인터뷰도 항상 자신감이 넘쳐.
-엄마 친구 아들 같은 느낌?
-끝판왕 느낌이야.
-오만해 보일 정도의 자신감이 소극적인 나에게는 너무 이상적으로 보여.
‘사이다’ 물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랄까. 뛰어난 실력과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기엔 매우 충분했다.
이는 포츠머스에서 뛰는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재수 없긴 한데, 그래도 흔들릴 때마다 녀석을 보면 다시 힘을 낼 수밖에 없어요. 자신감을 나눠 받는 느낌?
-평소에는 도슨 주장이 우리의 기둥이긴 하죠. 하지만 어려울 때, 특히나 강팀하고 경기할 땐 알리가 기둥이 되죠.
-수비진의 리더는 주장이지만, 공격진의 주장은 알리에요. 뭐랄까. 녀석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이 생겨서 더욱 힘이 나요.
-그 언제나 띠껍고 오만한 얼굴을 보면 오기가 생긴다고!
-델리 알리는 팀의 저점을 끌어올리는 선수입니다.
극도의 자신감으로 팀의 수준을 자기도 모르게 한 단계 끌려 올려준 선수가 델리 알리라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선제골을 헌납하며 위기에 처한 레알 마드리드와의 슈퍼컵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
자신감의 화신이라 불러도 될 델리 알리. 겉보기에는 무엇 하나 두려울 게 없는 그였지만 사실은 두려운 존재들이 있긴 했다.
‘크카모.’
크카모.
세 선수의 이름을 따온 줄임말이다.
독일의 토니 ‘크’로스.
브라질의 ‘카’세미루.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
하나같이 월드 클래스임을 부정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선수들이었고, 세계최강의 미드필더 라인으로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조합이다.
이름값만으로도 상대의 기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대단한 선수들!
물론, 델리 알리가 이름값만으로 그들에게 공포를 느낄 성격은 아니긴 하다.
그저 수년 전, ICC에서 그들의 뛰어난 실력을 온몸으로 체험해 봤기 때문에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강했다. 정말로.’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수년이 지나며 실력이 월등히 향상됐어도 두려움은 가시질 않았다.
‘···분명 내 실력은 향상됐어. 하지만 그들을 상대로 통할지는 모르겠다.’
델리 알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그 당시의 크카모를 상대해보았다. 그것도 수도 없이.
그리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때마다 돌아온 결과물은 패배였다.
‘재능의 한계일까?’
천재, 라고 불리는 델리 알리였건만.
자신의 재능을 의심케 할 만큼 세계 최고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아니야. 난 꿀리지 않아.’
그래도 델리 알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오만해 보일 정도로 높은 자신감은 주저앉으려는 델리 알리의 다리를 지탱해주었다.
이것은 소하와 포츠머스에게는 물론이고 델리 알리에게도 호재였다.
엄청난 재능이 대단한 호승심으로 최고의 노력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으니까.
사실 소하가 미래를 바꾸며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수가 바로, 델리 알리다.
미래의 델리 알리는 잠깐 빛이 났다가 그대로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작 4년 뒤에는 프리미어 리그도 아니고 유럽의 4대 리그도 아닌, 변방의 터키로 쫓겨갈 정도로 추락했거늘.
다른 인연과 선택으로 바닥없는 추락 대신에 끝없는 상승을 손아귀에 쥔 델리 알리였다.
자신감은 물론이고, 실력까지 절정에 오른 델리 알리에게 슈퍼컵이란 의미가 남달랐다.
‘레알 마드리드라니···. 운이 좋네.’
솔직히 처음에는 기뻤다.
드디어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마치, 신이 실력을 시험해보라고 배려를 해준 것만 같았다.
‘온전한 컨디션이 아닐 때 붙는 게 아쉽긴 하지만, 프로란 그런 거지.’
이미 승리했다는 작은 자만심까지 꿈틀거렸다.
다들 월드컵 때문에 지쳐있었고, 특히나 루카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를 결승전까지 보내며 엄청난 체력소모를 한 상태!
가뜩이나 노장인데, 체력까지 쭉 빠진 상황이다? 너무나도 싱거운 싸움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건 문자 그대로, 오만이었다.
“···?!”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크카모를 상대한 델리 알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분명 어디든 통하던 기술이, 유럽의 정상급 팀들마저도 막지 못했던 패스와 움직임이, 너무나도 쉽게 막혔다.
마치 3년 전처럼.
‘내가 성장을 하지 못한 건가?!’
분명 상대는 나이도 더 먹었고 체력적으로 훨씬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막아내자 델리 알리는 충격과 공포, 혼란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난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는 건가···?’
머릿속을 헤집는 잔인한 현실.
혹은, 혼자만의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
뭐가 됐든, 이것은 델리 알리의 몸을 짓눌러 발을 무겁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포츠머스의 공격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포츠머스의 공격과 미드필더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델리 알리였으니까.
톱니바퀴의 이빨이 빠졌는데 기계가 제대로 작동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10번 담게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가 바로 델리 알리였다.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물론, 팀이 망하든 말든 델리 알리의 눈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상심한 델리 알리는 거의 맛이 가버린 수준까지 정신적으로 매우 몰렸다.
오죽했으면, 1:0으로 끝난 전반전 이후, 라커룸에서의 열정적인 소하의 피드백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반쯤 멘탈이 결딴난 상태로 후반전에 들어간 델리 알리.
여전히 답답한 경기력은 이어졌고,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만 갔다.
5분.
10분.
20분.
25분.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후반 70분을 넘어갔고 슬슬 변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까지 왔다.
‘내가 빠지겠지. 아니, 빨리 내가 나가야 한다. 문제는 나야.’
델리 알리는 자신감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고 경기장에서 떠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때. 망연자실했던 델리 알리는 순간, 작은 의구심이 들었다.
‘왜 아직도 1:0이지?’
이상했다. 이성을 조금이나마 찾았더니 정말 이상했다.
분명, 자신은 완전히 패배했다.
아니,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즉, 3:3 미드필더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다는 이야기였고, 당연히 주도권을 내주고 속절없이 밀려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포츠머스는 골은 넣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도권을 잡은 채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
델리 알리는 고개를 들어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델리 알리는 고개를 들어 어금니를 악물고 포기하지 않은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아···.”
순간, 델리 알리의 죽은 생선 같던 눈에 작은 활기가 돌았다.
세계최강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그것도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누구보다 소중한 그의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포기하지 않은 저 불타는 눈빛들을 보라!
그 불타오르는 눈빛은 델리 알리에게 대형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만큼의 충격이었다.
‘내···. 부진을 동료들이 막아준 건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점점 시야가 밝아졌고, 혼탁하던 머릿속도 맑아졌다.
그러자 또다시 의구심이 들었다.
‘나 때문에 수적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 투지만으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정신론이란 실력과 대등한 상황이 뒷받침될 때의 이야기였을 뿐.
한 명이 없는 것과 다름없을 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한 손으로 두 손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델리 알리는 고개를 틀어 테크니컬 에어리어 쪽을 바라봤다.
델리 알리는 고개를 틀어 쉬지 않고 팔을 휘저으며 선수들에게 열정을 나눠주는 소하를 바라봤다.
“아···!!”
그제야 델리 알리는 크게 깨우쳤다.
소하가 어떤 인간이던가.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멘탈이 날아가 팀에 해악을 끼치는 선수를 70분이 넘도록 잡아둘 만큼 자비로운 인간이 아니었다.
멘탈 관리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해도 충분한 일. 정말로, 델리 알리가 엉망이었다면 이미 옛 저녁에 교체당해 벤치에서 라면이나 끓였을 거다.
“그랬어···!”
깨달음을 얻은 델리 알리의 한쪽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평소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였다.
그렇다. 델리 알리가 느꼈던 벽은 그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었을 뿐.
공포에 질려 발이 느려졌음에도 델리 알리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훌륭히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말이다.
상대가 델리 알리의 플레이를 잘 막아냈던 건, 그냥 그들이 세계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제 제대로 해보자. 델리 알리가 어떤 선수인지 확실하게 보여줄게.”
오만한 눈빛으로 목을 뚜두둑 거리며 남은 시간을 확인하는 델리 알리!
남은 경기 시간 15분.
그에겐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 248화. 슈퍼컵.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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