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슈퍼컵. (1) >
18-19시즌,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승한 포츠머스!
지난 시즌, 프리미어 리그의 왕좌를 차지했던 맨체스터 시티를 흠씬 두들겨 패준 그들의 여정은 시작부터 매우 바쁘고 험난했다.
4일 뒤, 8월 9일.
UEFA 슈퍼컵.
7일 뒤, 8월 12일.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
일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굉장히 중요한 경기를 세 경기나 치르는 미친 일정이었다.
일단 남은 두 경기 모두 중요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슈퍼컵’으로 쏠렸다.
UEFA 슈퍼컵.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팀과 UEFA 유로파 리그의 우팀이 맞붙는 대회!
요컨대, ‘유럽 최강의 팀’을 가리는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대회였다.
심지어 단판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승상금이 무려 300만 유로나 책정된, 제법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대회!
유럽 최강이라는 타이틀과 두둑한 돈주머니라니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챙길 대회를 소하가 그냥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
“이긴다···. 어떻게든···.”
욕심 그득한 눈빛으로 투지를 불태우는 소하! 하지만 상대가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팀은 다름 아닌, ‘레알 마드리드’.
전설적인,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달성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암만 요즘 포츠머스가 제법 기세를 피워올린다고 해도 이름값부터가 차원이 다를 정도다.
“목에 폭탄 목걸이 걸고 포츠머스의 승리냐,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냐를 정해야 한다면, 나도 레알 마드리드에 건다. 두 번도 건다.”
포츠머스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소하마저도 목숨을 걸라고 하면 레알 마드리드일 정도!
이만큼 레알 마드리드라는 초거대 구단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단이며 모든 축구계 종사자들의 ‘드림 클럽’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 놓고 보자면 압도적으로 밀리는 팀이라고 볼 순 없지.”
소하는 선발명단을 끄적이며 회심의 썩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는 레알 마드리드에 건다고 호언장담하던 인간이었거늘. 태세 전환의 속도가 어떤 협곡의 주술사와 맞먹을 정도였고, 짐짓 이상한 소리이기도 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유럽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제패한 팀이 레알 마드리드다.
쉽게 말해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축구 역사상 가장 강한 팀 중 하나라는 뜻!
그런데, 이런 팀이 두 달 만에 포츠머스가 상대해볼 만큼 약해졌다?
믿기 어려운 소리이기도 했고, 진짜 일어났다 해도 극히 낮은 확률이었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졌지.”
강한 팀이 약해지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선수단의 급격한 약체화.
감독 교체.
첫째는 부상이라든지, 이적이라든지, 노쇠화라든지, 동기부여가 떨어졌다든지,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은 앞으로도 수년은 더 해 먹는 지긋지긋한 선수단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바로, 감독 교체.
조금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챔피언스 리그를 3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한 감독이 사령탑에서 사라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구단으로서는 어떻게든 잡고 싶어 할 테고,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구단에서 계속 머물고 싶어 할 터.
서로 이별을 고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날 수도 없었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더는 선수단에 요구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지단 감독은 사임 후 기자회견장에서 ‘표면적인’ 이유를 언급하며 레알 마드리드와 작별을 고했다.
일단 겉으로만 보자면 3연패를 달성하며 동기부여가 떨어졌다는 뜻이었지만, 진정한 원인은 구단과 감독의 불화였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계의 회장이며, 세계 1위 건설사인 ‘ACS 그룹’의 최고 경영자인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과 지네딘 지단 감독의 알력이 문제였다.
지네딘 지단 감독은 ‘선수 영입 권한 및 기용’의 전권을 원했지만 페레즈 회장은 일언반구도 없이 거절했고 그대로 둘의 사이는 파탄이 나버렸다.
포츠머스로서는 절대 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했다.
권력의 최정점이 감독이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포츠머스의 권력 중심이 굉장히 이상한 편이었다.
퍼거슨 감독 시절, 혹은 그전의 시대에나 감독의 권력이 막강했을 뿐.
요즘에는 전문 경영인들이 대부분의 권한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점점 다양해지는 축구계의 업무에 대응하기 위한 철저한 분업화!
이래저래 시대를 역행하는 소하와 포츠머스였지만, 구시대적인 구조였기에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하여튼, 떠나버린 지네딘 지단 감독을 대신해 새롭게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에 앉은 인물은 썩 미덥지 않은 사람이었다.
‘줄렌 로페테기.’
이때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는 별로 이름이 높진 않았지만, 스페인 자국 내에서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던 감독이다.
딱히 무언가 크게 이루어낸 업적은 없고 감독으로서 우승컵을 가져온 적도 없다.
하지만, 스페인의 국가대표 감독직에도 앉았고, 기묘하게도 스페인의 일류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은 독특한 감독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나 보지···.”
소하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던, 아니면 운이 매우 좋던,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밑이다.”
무한한 소하의 자신감!
상당히 오만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보다도 명백한 사실도 또 없었다.
소하가 따낸 우승컵만 해도 4개인데, 로페테기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훗날 세비야를 이끌고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지만, 유로파 리그 우승 정도는 이미 달성한 소하다.
그야말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감독 간의 차이!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축구는 감독놀음이었다.
“약간 열세인 선수단의 차이를 감독의 실력으로 메꾼다. 그러면 해볼 만해지지. 암, 그렇고말고.”
포츠머스가 레알 마드리드보다 약한 건 맞다.
하지만, 감독의 실력 차이로 그 차이를 메꾼다면 분명 해볼 만한 경기였다.
***
슈퍼컵에 앞서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일단 아무래도 좋았다.
-이야, 우리가 슈퍼컵을 나가다니. 믿기지 않는다.
-별로 중요한 대회는 아니지만, 또 아무나 나갈 수 있는 대회도 아니지.
-역사상 첫 번째 슈퍼컵!
-기왕 하는 거 우승컵을 하나 더 추가했으면 좋겠지만, 그냥 좋다.
-난 슈퍼컵에서 우리 팀을 응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그냥 싱글벙글 웃음꽃 만발이었다.
서포터들의 말처럼 슈퍼컵은 대회의 무게에 비해서 정말 경험해보기 어려운 무대였기 때문이다.
슈퍼컵에 참가하려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나 혹은, 유로파 리그 우승을 해야 했고, 이건 정말 힘든 업적이었다.
수많은 스타가 슈퍼컵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은퇴했을 정도였으니, 할 말 다 했다.
“우린 일단 축제다!”
그야말로 승패를 떠난 대축제의 현장.
하지만 잉글랜드의 축구계는 조금 진지하게 경기를 분석했다.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자존심 싸움이다. 누가 더 강한지 판가름 날것.
-진정한 세계 최강을 가리는 대회. 잉글랜드가 세계를 제패할 기회다.
-스페인 리그의 디펜딩 챔피언과 잉글랜드의 디펜딩 챔피언을 때려잡은 이단아의 대결.
-무조건 이겨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가 최고의 리그라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
포츠머스의 서포터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승패에 굉장히 연연했다.
하기야, 그동안 ‘돈만 많은 2등 리그’라는 조롱을 받은 프리미어 리그로서는 확실한 반전의 기회였다.
더군다나 불과 두 달 전,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서 프리미어 리그의 리버풀이 레알 마드리드에 처참히 져버려서 더더욱 승리를 원했다.
“뭐···. 승패가 중요하긴 하다만···.”
치근덕거리는 잉글랜드 축구계의 태도가 조금 거슬리는 소하.
이적료 한 푼 보태준 적 없는 것들이 괜히 부담만 주는 것 같아 조금 짜증이 났지만, 승패가 중요하다는 점은 동의했다.
물론, 그들과 같은 이유는 아니다.
소하는 그저,
“세계 최강의 팀을 한번 꺾는다면 엄청난 자신감을 얻을 테니까. 덤으로 우승컵도 하나 더 추가하면 좋고···.”
두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 따위.
개나 주라지.
소하의 머릿속은 온통 팀의 성장만이 가득 차 있었을 뿐이었다.
“자, 얘들아.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우승컵을 가져오너라.”
선수들에게 강하게 승리를 요구한 소하가 내민 포츠머스의 선발명단은,
[GK: 페트르 체흐.
LB: 로빈 고젠스.
CB: 케빈 도슨.
CB: 후벵 디아스.
RB: 아슈라프 하키미.
DM: 칼빈 필립스.
CM: 니콜로 바렐라.
CM: 델리 알리.
LW: 조쉬 킹.
ST: 마리오 발로텔리.
RW: 모하메드 살라.]
커뮤니티 실드 때와는 조금 다른 구성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기 위해 대전략을 바꿨다기보다는, 체력 안배가 주요 목표였다.
이번 시즌, 포츠머스의 예상 경기 수는 60경기 이상.
엄청난 경기 숫자였고 이를 잘 돌파하려면 계획적인 체력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에 맞서는 레알 마드리드는 가용 가능한 최정예들로 선발명단을 꾸렸다.
[GK: 티보 쿠르투와.
LB: 마르셀루.
CB: 세르히오 라모스.
CB: 라파엘 바란.
RB: 다니엘 카르바할.
DM: 카세미루.
CM: 토니 크로스.
CM: 루카 모드리치.
LW: 이스코.
ST: 카림 벤제마.
RW: 가레스 베일.]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즐비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단히 큰 이름이 하나 사라졌다는 사실이 보일 거다.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적을 했을 뿐이었다.
18-19시즌, 전 세계를 들썩였던 이적 사가의 주인공은 결국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 떠나버렸다.
훗날 한국 팬들에게 모욕감을 선사하며 대한민국 내에서의 평가가 매우 떨어지는 호날두였지만, 그래도 명실상부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그런 호날두의 공백을 카림 벤제마와 가레스 베일이라는 월드클래스 선수로 메꾸려고 작심한 레알 마드리드였다.
그리고, 소하는 이 판단에 관한 결과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개소리였지. 완벽한 판단 실수였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선수지만 호날두는 대체할 수 없는 선수야. 적어도 더 나이가 들기 전까진 말이지.”
축구 역사상 다섯 손가락에 무조건 들어간다는 의견에 이견이 없는 선수를 쉽게 대체할 순 없는 법!
완벽한 판단 실수였고,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게 된 원흉이기도 했다.
“덤으로 새로운 감독인 로페테기까지. 충분히 해볼 만하다.”
호날두의 부재와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은 신임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에는 너무나도 큰 악재였다.
***
경기가 시작되었다.
선공은 포츠머스.
전반전 초반부터 밀어붙였던 커뮤니티 실드 때와는 다르게 천천히 운영을 시작했다.
[먼저, 점유율을 올리며 기회를 엿보는 포츠머스입니다. 평소 보여주던 폭발적인 모습보다는 조금 조심스러운 모습이군요.]
[성소하 감독의 승리전략일까요?]
평소 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주던 포츠머스 같지 않은 느린 발걸음이다.
이 때문에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성소하 감독의 승리전략인가?!’
일반적으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소하가 함정을 파뒀다는 뜻!
이 함정에 수많은 팀이 꼬꾸라졌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게 아닌데.”
경기를 바라보던 소하는 뒤통수를 멋쩍게 긁적였다.
소하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태풍처럼 몰아붙여 전반전에 후다닥 경기를 끝내고 싶었거늘.
선수들은 소하의 생각보다 굉장히 경직된 움직임을 보여주며 계획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쫄았구만···. 쯧.”
소하는 대번에 원인을 파악했다.
레알 마드리드라는 엄청난 이름값에 선수들이 짓눌린 기색이 역력했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예전, 그러니까 3년 전.
ICC에서 만난 뒤 벽을 느낀 선수들이 제법 많았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두려워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경기전에는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만나보니 뼛속에 깊이 박힌 벽이 튀어나왔나 보군. 경기하다 보면 정신을 차리겠지만,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군.”
경기가 진행되면 자기가 만든 허상의 벽을 알아서 치울 테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경기 시간은 90분밖에 없다.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라면 작은 틈을 놓칠 팀이 아니지 않던가.
빠른 응급조치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소하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불호령을 내릴 준비를 했다.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
[카림 벤제마! 신들린 팬텀 드리블로 후벵 디아스를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노장, 페트르 체흐가 튀어나오지만 카림 벤제마의 슛이 조금 더 빨랐어요!]
월드 클래스이자, 범죄자, 카림 벤제마의 기가 막힌 개인 능력이 빛을 발휘했고,
-철썩!
깔끔한 감아차기는 휘감겨 들어가며 부드러운 골을 만들어냈다.
“···.”
소하의 얼굴이 그 어느 때 보다 와락 구겨졌다.
< 247화. 슈퍼컵.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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