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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44화 (244/306)

< 244화. 18-19시즌, 이적 시장. (2) >

“엉?”

소하는 갑작스럽게 찾아와 갑작스럽게 팀을 옮기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스티븐 데커에게 멍청하게 되물었다.

스티븐 데커.

포츠머스의 8번이자, 극복하기 불가능하다는 유리몸을 이겨내고 팀의 핵심으로 명성을 드높인 미드필더다.

전형적인 잉글랜드의 전천후 미드필더 스타일이며,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는 양발잡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현재 그의 나이는 32세.

발달한 스포츠과학과 수년 전부터 실행해온 철저한 식단관리 덕분에 전성기라고 불러도 무방한 나이다.

실력도 나날이 농익는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소하가 재계약을 하려고 준비하던 선수!

그런 그가 이적을 먼저 입에 담자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티, 팀을 옮기고 싶다고?”

다시 한번 멍청하게 묻는 소하.

아무리 봐도 팀을 떠날 이유가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럽다.

혹시나 잘못 들었나 하는 미약한 희망마저 품었지만 스티븐 데커는 거침없이 사형선고를 내린다.

“네. 팀을 옮기고 싶습니다.”

“···왜?”

아직 청력에 문제가 생길 나이가 아니었기에 현실이었고 소하는 서둘러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스티븐 데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덤덤하게 이유를 설명한다.

“전 이제 이 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

자신이 포츠머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스티븐 데커의 발언!

소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스티븐 데커가 팀에 어울리지 않는다니.

지난 시즌에도 선발과 교체를 합쳐서 40경기 이상 뛰며 실력을 과시했던 선수가 스티븐 데커다.

유망주들의 성장으로 예전과 같이 무조건 주전이라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주전급’ 선수라는 말이다.

이번 시즌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줘야 할 선수로 생각했던 소하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일단 좀 더 구체적인 이유나 듣자.”

표정을 와락 구긴 소하의 질문에 스티븐 데커는 주저함이 없이 부가 설명에 들어갔다.

“저는 이제 감독님, 그리고 동료들과 같은 꿈을 꿀 수 없습니다.”

“불면증이냐?”

“···아니요. 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그게 뭔데?”

퉁명스럽게 반문하는 소하.

갑자기 같은 꿈을 꿀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더더욱 모르겠다.

“‘돈’입니다.”

“···?!”

“전 분명, 돈보다 우리의 꿈을 위해 포츠머스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동료들도 돈보다는 꿈을 위해 이 구단에서 땀을 흘립니다. 하지만 전 이제 아닙니다. 전 돈이 꿈보다 중요합니다.”

“···.”

“감독님도 아시겠지만, 첼시에서 절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첼시에게선 주급 13만 파운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첼시로 가고 싶습니다.”

13만 파운드.

한화로 대략 2억 원.

현재 스티븐 데커가 받는 주급, 4만 5천 파운드의 세 배가량인 엄청난 금액이다.

그리고 포츠머스가 제시한 새로운 계약의 7만 파운드보다 두 배가량이기도 하다.

이렇게 큰 금액에는 1년밖에 남지 않은 스티븐 데커의 계약기간이 주요했다.

남은 계약기간이 짧을수록 이적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

단호한 스티븐 데커의 눈빛과 이에 맞서는 소하는 얼음장 같은 눈빛!

금세라도 ‘넌 이제 유소년에서 1년 썩게 될 거다!’라고 폭언이 나올 만큼 무거운 분위기다.

하지만, 소하는 겉보기와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머릿속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일단 비대해진 미드필더 진을 감축하려고는 했다. 하지만, 스티븐 데커는 그 살생부 명단에는 없던 선수야.’

소하가 방출하려고 했던 선수들은, 정말 냉정하고 잔혹하지만, 커너 러셀과 마이클 반즈였다.

커너 러셀과 마이클 반즈!

포츠머스의 개국 공신이자 후보임에도 어떠한 불만 없이 팀에 남아준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30대였고, 한 가지 부분에서만 특출난 반쪽짜리 선수들이다.

특히나 반쪽짜리 선수라는 장점이자 단점은 포츠머스에서 더는 머물지 못할 약점이었다.

반쪽짜리 선수는 그 부족한 부분을 팀으로서 채워줘야지만 빛을 보는 유형이었으니까.

요컨대, 포츠머스의 목표와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자리를 지키기 힘든 선수란 이야기였다.

포츠머스란, 모두가 여러 방면에서 잘해야 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부터는 정말 경기에 나오지 못할 거야. 미안하지만 나나, 우리나,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포츠머스는 이제 새로운 경기장 건설의 첫 삽까지 뜬 상황이다.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는 편이 좋았다.

또한, 커너 러셀이나 마이클 반즈도 얼마 남지 않는 선수 생활을 벤치에서만 보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어 벤치도 앉지 못하고 명단 제외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래저래 서로를 위해서 아름다운 이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단연코 스티븐 데커는 아니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데커가 가진 강력한 양발 중거리 슛은 우리에겐 꼭 필요한 무기다.’

스티븐 데커의 양발 중거리 슛!

이 강력한 무기는 내려앉은 팀들을 상대로는 그 어떤 무기보다 위력적이기 때문에 필수적이었다.

골을 넣지 못해도 위협적인 그의 중거리 슛은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수비진을 앞으로 끌어당겼으니까.

더군다나 포츠머스의 미드필더 진에는 중거리 슛에 능한 선수가 없었다.

즉, 데커가 떠나면 상대적으로 약한 팀들과의 경기에서 고전을 면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절대 보내면 안 된다.’

리그 우승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경기는 강팀들끼리의 경기가 아니다.

얼마나 상대적인 약팀을 잘 두들겨 패느냐가 우승을 결정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스티븐 데커를 첼시에 넘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스티븐 데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스티븐 데커의 나이는 32세.

선수 생활의 황혼기다.

짧은 선수 생활 동안 평생 사용할 돈을 벌어야 하는 축구선수로서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나이다.

만약, 첼시에서 13만 파운드로 3년 정도 보냈다고 치자.

‘그 3년 동안 받을 주급이 평생 모은 돈보다 많을 거야.’

스티븐 데커는 하부리그를 전전하다가 늦은 나이에 빛을 본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점은 소하로서는 더욱 괘씸한 일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첼시의 C자도 못 만져봤을 녀석이 내 뒤통수를 쳐? 이 은혜도 모르는 새끼가?!’

후욱, 분노어린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선수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지만, 소하가 아니었으면 확실하게 그저 그런 하부리그의 선수로 남았을 거다.

‘단단히 본보기를 보여야겠어. 은혜도 모르는 노랑머리 짐승은 철퇴가 가장 어울리지.’

단호하고 거칠게 스티븐 데커의 유소년 리그 형벌을 외치려는 소하!

“이 새···!!”

순간, 다른 생각이 들어 말문이 멈췄다.

난데없이 왜 꿈보다 돈이 중요해졌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사람이 갑자기 변할 리는 없지 않던가. 적어도, 소하가 알던 스티븐 데커는 돈 때문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쓰레기는 아니었다.

“···.”

소하는 속사정을 살펴보기 위해 사나운 눈초리로 스티븐 데커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쳐다보기만 해서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순 없는 법이다.

‘물어나 볼까···. 하지만···.’

그렇다고 묻는다고 말해줄 거 같지도 않다. 남자란 생물은 의외로 자신의 아픔을 떠벌리지 않는 생물이었으니까.

스티븐 데커의 굳게 다문 입술은 이에 대한 방증이었다.

‘따로 알아봐야겠군.’

소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일단 스티븐 데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기로 말이다.

그 또한 겉보기보다는 마음이 약한 남자였으니까. 수년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나눈,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언제나 쉽게 끊을 수 없는 법이었다.

***

행복이 넘치던 포츠머스시는 단 하나의 소식에 난리가 났다.

[스티븐 데커, 첼시행 급물살!]

[더 많은 주급을 원하는 스티븐 데커.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적 요청서를 제출한 스티븐 데커, 훈련은 정상적으로 참여.]

스티븐 데커의 이적 요청서!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파장은 엄청나게 컸다.

당연하게도 매우 좋지 못한 방향이었다.

-은혜도 모르는 새끼!

-돈독 올랐네. 어휴.

-삼류 찌꺼기 선수를 프리미어 리그 선수로 만들어줬는데 이렇게 배신을?

-그냥 꺼져라!

-유니폼 불태웠다. 인증 사진 간다.

이적 요청서를 제출한 스티븐 데커는 포츠머스시의 원수로 등극했다.

그것도 단 30분 만에.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와 비교해도 그다지 꿀리지 않는 엄청난 비난의 폭풍이었다.

게다가 포츠머스의 다른 선수들마저도 이번 사건에 대해 심정으로 동요가 생겼다.

“선배, 갑자기 왜 그래요? 돈 필요하면 제가 빌려줄게요.”

“뭐라고 말 좀 해봐. 너 그런 놈 아니잖아. 우리의 꿈은?”

“무슨 문제 있어요? 말해봐요.”

걱정하는 동료들부터,

“실망이네요. 돈에 영혼을 팔다니.”

“그렇게 안 보였는데. 오늘 요가는 저 혼자 갈게요. 괜히 시간 겹치지 않게 일정 조정해 주세요.”

“비겁자.”

배신감을 느낀 동료들까지.

서포터들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스티븐 데커를 따라서 돈을 갈구하는 선수가 없다는 정도였을 뿐.

구단 내외로 상당히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큰일 났네요. 중요한 시즌을 앞두고···.”

“감독님은 뭐 하세요? 평소랑 다르게 행동이 느리신 거 같은데.”

“불같이 화내실 줄 알았는데, 평소랑 별로 다를 게 없으시더라고요.”

최후의 보루였던 소하마저 가만히 있자 혼란은 더욱더 가중되었다.

평소의 소하였다면 불같이 화를 내며 서슴없이 카메라 앞에 서서 화재진압을 했을 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성소하 감독이라면 스티븐 데커를 잘 설득해서 이번 사건을 종결지을 거다.’

늘 그랬듯, 소하는 사건을 해결해왔었으니까. 걱정 따윈 없었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태풍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하지만 며칠 뒤, 충격적인 기사들이 또다시 포츠머스시를 강타했다.

[이적 협상 완료. 스티븐 데커, 1,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달성하며 첼시로 향했다.]

[결국 떠나는 스티븐 데커. 런던의 부자구단으로 갔다.]

[이 시대에 낭만 따위는 없다. 그저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돈에 미친 남자, 스티븐 데커. 평생 그 더러운 돈으로 잘 먹고 잘살길!]

[차라리 잘됐다. 돈에 미친 인간에게 8번이란 너무나도 과한 짐이었다.]

스티븐 데커의 첼시 이적.

포츠머스의 자랑스러웠던 8번의 추락이자, 한순간에 영웅에서 역적으로 변모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

스티븐 데커가 첼시로 향하기 하루 전.

그간 사정을 모두 파악한 소하는 스티븐 데커와 다시 한번 개인 면담을 진행했다.

“···집안에 문제가 많더라?”

안쓰러운 눈빛으로 스티븐 데커를 바라보던 소하는 묵묵히 말을 건넸다.

“···알아보셨군요.”

“그래. 알아봤다.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아들이 희소병에 걸렸으면 나한테 언질이라도 줬어야지.”

소하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보통 사이도 아니고 5년을 넘게 고생을 같이한 전우이자 스승에게 이런 사정을 말해주지 않는다니. 조금 괘씸했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스티븐 데커는 말할 수 없었다.

빛을 품고 달려가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스티븐 데커가 사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집안에 빚도 많다며. 도대체 그동안 받은 주급은 어디에다가 쓴 거냐?”

“···그것도 알아보셨군요.”

깊은 한숨을 내쉬는 스티븐 데커.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나 보다.

“뭐, 별거 있겠습니까? 사기를 당했습니다. 제가 유명해지자, 아버지와 아내에게 협잡꾼들이 몰려들었더군요.”

스티븐 데커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흔한 일이었다. 운동밖에 모르는 운동선수에게 접근하는 사기꾼들의 협잡질.

“평생 축구만을 위해, 우리의 꿈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제 가족들은 엉망이 되어있더군요.”

“···.”

“이젠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겠습니다.”

“···.”

가족들을 위해 돈을 더 벌겠다는 스티븐 데커의 자조에 소하는 어떠한 반론을 할 수 없었다.

물론, 포츠머스에서 주는 주급으로 작금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이 끝이었다.

모아둔 돈 한 푼도 없이 은퇴를 해야만 하는 나이가 될 게 뻔했다.

아쉽게도 행복의 전부가 돈은 아니었지만, 행복의 절대다수는 돈이었다.

“말을 하지 그랬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오롯이 제 실수였으니까요.”

“그건 네 실수가 아니라 가족의 실수잖냐. 넌 잘못 없어.”

“아니요. 가족의 실수가 곧 제 실수라는 겁니다.”

“···.”

확실히, 스티븐 데커는 어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 맞았다.

“차라리 우리 쪽에서 조금 더···.”

“안 됩니다. 주급이란 오롯이 실력으로 얻어내는 겁니다. 동정심 따위로 더 주겠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렇지. 그럼 속사정을 밝히기라도 하자. 넌 지금 포츠머스에서는 쓰레기로 낙인이 찍혔다고.”

마지막으로 권유하는 소하.

아끼는 선수의 명예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 꼴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스티븐 데커는 묵묵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어째서?”

“전 경고자로서 남아야 합니다.”

“···!!”

소하는 무슨 뜻인지 대번에 파악했다.

팀을 배신하고 돈을 따라간 선수에게 어떤 형벌이 내려지는지 산 증인이 되겠다는 말이었다.

이는 너무나도 잔혹한 역할이었다. 평생을 ‘돈에 미친 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 거다. 적어도 포츠머스에서는 말이다.

찬란했던 명성은 추잡한 악명으로 변할 거고 평생을 그를 괴롭힐 터.

가혹하고, 또 잔인했다.

“이것이···. 제가 감독님과 구단에 받은 은혜를 갚을 마지막이자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리는 스티븐 데커. 소하는 그런 그의 널찍한 등을 가만히 토닥여줄 수밖에 없었다.

< 244화. 18-19시즌, 이적 시장.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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