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42화 (242/306)

< 242화. 월드컵. >

SBC와 계약을 체결한 소하의 월드컵 해설은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았다.

-미친. 무조건 SBC로만 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 해설을 맡아준다니. 다른 곳은 볼 필요가 없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줄까. 너무 기대된다.

-어떤 스타일로 해설을 할까.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말도 잘하던데.

-심지어 유머 감각도 있어. 최고의 월드컵이 될 것만 같아.

이미 압도적인 시청률 1위를 확보한 SBC! 보통, 월드컵의 시청률은 비슷하게 나눠 가졌지만, 이번만큼은 크게 요동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승윤은 승리로 향하는 길을 아는 현명한 남자답게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경기는 나눠서 출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총 3경기이지 않습니까. SBC, MBS, TBM 이렇게 각각 한 경기씩 말이죠.”

“뭐···. 어차피 하기로 한 거라 전 아무 상관도 없어요. 근데 왜요?”

소하의 물음은 당연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경기, 그것도 완전히 독점한다면 시청률 50% 이상은 나올 거다.

시청률 50%라니.

광고 단가가 백두산을 훨씬 넘어 성층권까지 올라갈 거다.

그야말로 모처럼 엄청난 떼돈을 벌 기회란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황금이 흐르는 대한민국의 경기를 다른 방송사와 나눠 가지겠다는 주승윤의 제안은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기 마련이죠. 우리는 경쟁을 하는 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생하는 사이이기도 하니까요.”

“호오···. 역시 제법 치시는 분이네요.”

“하하. 과찬입니다.”

“이참에 국장일 때려치우시고 우리 쪽으로 오실래요? 잘하실 거 같은데.”

소하는 눈빛을 빛내며 진심으로 주승윤을 떠봤다.

포츠머스는 앞으로 점점 더 커질 테고, 주승윤같이 현명한 관리자는 억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돈도 많이 드릴 텐데. 우리 CTO가 얼마를 받더라···.”

방송국의 스포츠국장도 제법 연봉이 높겠지만, 프리미어 리그의 거대구단을 이끄는 사람들은 이를 상회할 거다.

심지어 어떻게든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사는 시대에, 영국으로 이주할 기회란 참으로 먹음직스럽다.

하지만, 주승윤은 정중하게 거절의 말을 건넸다.

“하하.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전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요. 듣는 건 잘하는데 말하는 걸 못 해요.”

“그것참 아쉽네요.”

“제안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평생 술자리에서 자랑거리가 생긴 겁니다. 감사합니다.”

무척이나 정중한 자세의 주승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놀랐다.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눈앞의 이 젊은 감독이 구단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짜였군···.’

놀라운 일이었다.

일개 감독이 구단 프런트의 인사권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것도 최상위 경영자의 인사권까지!

정말 엄청난 권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권력도 놀라웠지만, 이 권력을 가지게 된 소하의 능력은 더더욱 놀라웠다.

‘그냥 권력을 손아귀에 쥔 것이 아니야. 30억짜리 구단을 6,000억짜리 구단으로 키운 덕분에 가진 권력이지. 5년 만에 200배로 회사를 키웠으니까. 정말 무서울 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권력을 손아귀에 쥐려면 압도적인 능력이나 압도적인 운이 필요했다.

혹은, 둘 다 필요하거나.

‘능력도 출중한데, 운마저도 뛰어나다. 절대 눈밖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야. 어떻게든 친분을 유지해야만 한다.’

다시 한번 소하와 인연을 틀 수 있게 되어 감사함을 느끼는 주승윤 이었다.

하여튼, 소하의 해설 섭외는 순조롭게 끝이 났다.

SBC 측은 쉬고 싶어 하는 소하의 바람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대한민국의 경기와 잉글랜드의 경기, 그리고 4강과 결승전만 얼굴을 내비치도록 일정을 조정했다.

10경기 안팎의 짧은 일정.

소하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고 SBC도 만족했으며, 팬들도 환영하는 최고의 결과였다.

그리고 기뻐하는 건 이들뿐이 아니었다.

얼떨결에 소하와 호흡을 맞추게 된 국내의 해설과 아나운서들도 가슴이 쿵쾅거려 밤잠을 설쳤다.

-무, 무슨 질문을 할까. 오늘부터 이것저것 적어놔야지.

-와. 만나기 정말 힘든 분이신데. 기대된다. 한 명의 해설이기 전에 나 또한 축구팬. 최고의 선물이야.

-돈 받고 일해도 되는 건가?

-무료봉사해도 괜찮다.

월드컵이 2주가량 남았지만 벌써 소하와 이야기할 준비를 하는 그들이었다.

그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스타였거늘.

소하라는 거물 앞에서는 모두가 일반인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

시간은 흐르고 흘러 2018년 월드컵이 종료되었다.

우승팀은 실제 역사와 똑같이, 프랑스였고 준우승은 크로아티아였다.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조별 탈락.

잉글랜드도 실제 역사에서는 4강까지 갔지만, 이번 세계에서는 16강에서 철퇴를 맞고 빠르게 귀향길에 올랐다.

대한민국 대표팀과 잉글랜드 대표팀의 인기가 높았던 대한민국에서는 굉장히 아쉬운 결과!

하지만, 실상은 그냥 축제였다.

좋지 않은 성적에 활활 타오를 법도 했지만 소하가 나서서 화재를 빠르게 진압했다.

딱히 소하가 나서서 국가대표팀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럴 오지랖을 떠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맡은 일을 그 누구보다 즐겁고 열심히 하며 수많은 재미를 선사해줬기 때문이다.

“아! 주호야! 내가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잖아! 제대로 좀 해봐!”

“봉산아, 넌 돌아오면 지옥의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지 말아라.”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해설은 하나하나가 전설이었다.

특히나, 자신의 제자들에게 마구 잔소리를 퍼붓는 모습은 백미 중의 백미였다.

“음. 나쁘지 않았어요. 좋은 침투입니다. 종이 한 장 차이였어요.”

“훌륭한 기술입니다. 저 정도면 제 영입명단에 이름을 적어도 되겠네요.”

“아, 역시 국내리그의 황태자가 맞네요. 좋은 선수예요. 조금만 더 실력을 키우면 제가 연락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웃긴 건, 제자가 아닌 선수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해설다운 해설을 선보였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객관적이며 나쁜 말을 하지 않는, 해설의 모범!

제자들에게는 폭언을 쏟아붓는 모습과 비교되어 시청자들에게 더욱더 큰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임에도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국가대표팀 감독의 전술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았다.

“이건 측면을 노리겠다는 겁니다.”

“기세가 좋지 않습니다. 이걸 바꿔주기 위한 교체로 보입니다.”

“중앙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먼저 눈치채고 움직인 전술적 변화입니다.”

지극히 냉정하며 객관적인 상황설명은 미리 알고 해설하나 싶을 만큼 모조리 들어맞았다.

-와, 진짜 최상급 감독이긴 하구나.

-아니, 전생에 해설했었나? 왜 이렇게 잘해?

-선을 정확하게 지키는 솜씨가 장난 아니야. 진짜 미친 천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소하를 칭송하는 말이 초마다 수십 개씩 올라올 정도였다.

이렇듯,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해설을 굉장히 잘 치른 소하.

하지만 잉글랜드의 해설은 조금 매운 맛으로 진행했다.

사심 가득하며 선 따위는 없는!

잉글랜드, 본토의 스타일에 맞춘 해설을 진행했다.

“아이고야. 킹이가 원래 저래요. 제가 채찍을 휘두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니까요.”

“라이스 저 친구가 훈련장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합니다.”

“필립스야! 갑자기 웬 똥볼을 날리니! 너 이래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할 수 있겠어?”

“사실 저 머리가 큰 수비수는요, 요즘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지만 조금 거품이에요. 제가 보기엔.”

“보세요. 제가 영입하지 않은 이유가 나오죠?”

등등. 연일 명대사를 날리며 타국의 경기라 자못 재미없었을 뻔한 잉글랜드의 경기를 맛있게 풀어냈다.

특히나, 자기 선수들을 맨날 빼가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에게는 신호등 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에헤이. 저 선수들 가지고 이렇게 재미없는 축구를 하다니요.”

“세트피스 준비는 잘했지만, 축구는 필드골이 진국이거든요.”

“아아. 저 친구를 저렇게 쓰다니. 재능 낭비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요? 전 저렇게 기용하지 않았어요.”

“지금 제가 타임머신을 탔나요? 20년 전에 보던 잉글랜드의 롱볼축구를 실시간으로 보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네요.”

“실리 축구를 추구하나 싶은데, 영 실리적이지 않네요.”

자칫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만큼 강력한 비판! 하지만 잉글랜드가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소하의 명성은 더더욱 올랐다.

소하가 말한 모든 것들이 원인이 되어 ‘축구 종가’의 얼굴에 다시 한번 똥칠하게 되었으니까.

하여튼, 그야말로 해설이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대활약이었다.

덕분에 좋지 않은 대표팀의 성적에 대한 비난보다는 소하의 어록을 다시 감상하며 웃고 즐기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변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쉬운 건 그저, 잉글랜드와 대한민국이 너무 빨리 탈락해서 소하를 더 볼 수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번 월드컵의 MVP는 성소하 감독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릴 정도의 활약이었고 어느덧 지구촌 대축제는 막을 내렸다.

비록 소하는 해설이 끝나자마자 종적을 감췄지만, 열심히 방송활동을 할 때보다 더욱 큰 명성을 얻으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인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

월드컵이 끝난 직후.

밖에서는 아직도 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서늘한 회의실에서 냉담한 표정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또 얼굴에 똥칠했어요.”

“가레스 사우스 게이트 감독으로는 명예 회복을 할 수 없습니다.”

“대안이 필요해요.”

“후보는 있습니까? 우리는 외국인 감독이 아니라 자국에서 배출한 감독이 필요해요.”

이들은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축구협회, The FA의 최상위 임원들이었다.

치욕스러운 월드컵 성적은 이들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이참에 외국인 감독으로 선회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 다른 축구 강국들도 어지간해서는 자국 감독을 기용합니다. 그런데 축구 종가인 우리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다니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무조건 잉글랜드 국적을 가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야 합니다.”

외국인 감독 선임에 대해서는 절대다수가 거칠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하긴,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자, 진정들 하십시오. 외국인 감독이 안 된다면, 다른 자국인 감독을 선임하면 되는 일입니다.”

“쓸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나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가장 나은 편이에요. 다른 인물은 없습니다. 그냥 믿고 기회를 한 번 더 줍시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한 중년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한 사람의 이름을 내뱉는다.

“성소하.”

이에, 떠들썩하던 회의장은 이슬비라도 내린 듯 조용해졌다.

“···포츠머스의 성소하 말입니까?”

“큼···. 크으흠. 그 친구는 좀···.”

“으으음! 좀 품위가 없는 사람이라.”

“그 친구가 자국인이었나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임원들.

성소하라면, 실력은 뛰어나지만 품행이 그들 기준으로는 망나니였다.

보수적인, 나쁘게 말해서는 ‘꼰대’들인 그들로서는 어디로 튈지 모를 소하라는 망나니가 탐탁지 않았다.

“일단, 성소하 감독의 실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엔 모두 동의하시지요?”

소하의 이름을 꺼낸 남자가 동의를 구하자, 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품행이 어떻든, 언행이 어떻든. 실력으로 소하를 비판할 사람은 세상천지에 없었으니까.

그 포츠머스를 FA 컵과 유로파 리그의 우승까지 이끌 사람이 세상천지에 몇이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축구 역사를 뒤져봐도 몇 나오지 않았다.

영연방만 따지자면,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맷 버스비, 알렉스 퍼거슨, 보비 롭슨’ 정도?

전부 다 전설적인 감독들이었고 이들만 한 업적을 달성한 현시대 영연방 감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소하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그리고 국민의 인기도 대단합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를 경질하고 성소하 감독을 신임한다면 활활 타오르는 비난도 순식간에 사그라들 테지요.”

“···큼큼. 그건 그렇죠.”

“그 친구가 인기는 많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사실이었기에 반론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품행이 문제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젊은 감독의 혈기 왕성한 모습으로 보자면 그리 나쁜 것도 아닙니다.”

“···.”

“우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젊은 팀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감독인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선임했고요. 그런 의미에서도 보자면 성소하 감독은 사령탑을 맡기기엔 부족한 점이 없는 감독입니다.”

소하가 종종 FA와 마찰을 일으키긴 했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긴 했다.

그가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할지 말지는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다가올 2020 유로피언 풋볼 챔피언십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위해서라도 성소하 감독을 사령탑에 앉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수락할까요?”

자연스럽게 소하의 선임에 동의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나왔다.

이에, 소하를 가장 먼저 거론한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수락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겠지요. 그럼 다들 동의하신 거로 알고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를 사령탑에 앉히기 위해 물밑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허허. 대한민국 같은 작은 나라에 유능한 감독을 빼앗길 순 없지요.”

“맞습니다. 서둘러 작업을 시작합시다. 언론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먼저 노리는 나라가 있다는 말에 급격하게 태세를 바꾼 FA의 임원들.

이것이 바로 ‘성소하 쟁탈전’의 시작이었다.

매우 불행하게도 소하는 은밀한 뒷공작에 대해 어떠한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아함. 오늘은 무슨 치킨 먹을까요. 파닭이나 먹어볼까요? 에밀리아 씨, 파닭이라고 아세요? 이게 또 별미거든요.”

한없이 태평하게 침대에 누워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뒤적거리는 소하였다.

< 242화. 월드컵.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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