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4) >
찰스 말로리.
말콤 우드가 은퇴하며 포츠머스에서 페트르 체흐와 함께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다.
방년 36세.
한 달 뒤에는 생일이 지나며 37세를 찍을 예정이라 빼도 박도 하지 못할 노장이다.
굳이 쓸모도 없고 필요도 없는 한국식 나이로 변환하자면 38세!
곧 마흔에 가까운, 보통 사람으로 쳐도 제법 늙었고 축구선수로 치자면 환갑이 지난 노인급의 나이였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마주한 찰스 말로리.
덕분에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이제는 코치로서 한 직장에서 일하는 말콤 우드는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물었다.
“언제 은퇴하냐?”
“···.”
찰스 말로리는 친구의 딴지에 콧방귀도 뀌지 않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포츠머스시의 변두리에 자리 잡은 작고 낡아빠진 술집.
벌써 15년이나 찾아다니며 단골 중의 단골이 된 가게다.
제법 유명해졌음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15년이나 지났음에도 한 군데도 변하지 않은 가게의 후줄근한 실내장식.
15년이나 지났음에도 흰머리가 조금 늘어났을 뿐인, 늙지도 않은 주인장.
15년이나 변하지 않는 크랜베리 주스의 맛.
찰스 말로리는 곳곳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이 술집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듣는 척이라도 해라. 자식아.”
“···뭐라고 했냐?”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찰스 말로리는 절친한 친구의 얼굴을 흘겨봤다.
도대체 이 철부지는 언제쯤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할 것인지.
마흔이 가까워진 나이에도 불구하고 ‘멋쟁이 중년’ 행세를 하며 여자나 꼬시는 이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은퇴 언제냐고. 너 내일모레 40줄이야. 나이를 생각해야지.”
“우습군. 그럼 넌 언제 결혼할 거냐? 내일모레 40줄이야. 나이를 생각해야지.”
찰스 말로리는 말콤 우드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당연히도 결혼이란 단어는 말콤 우드의 역린.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
“자식아, 결혼은 자신의 자유를 내팽개치고 죄인으로 묶이는 삶을 선택하는 서약이야.”
“모처럼 들어보는 개소리군.”
“···개소리라니! 요즘 대세가 독신주의야. 오히려 20대 초반부터 자유를 포기한 네 녀석이 이상한 거라고!”
독하디독한 브랜디로 목을 축이며 발작하는 말콤 우드.
찰스 말로리는 그런 친구를 냉정히 무시하며 주인장에게 추가 주문을 한다.
“크랜베리 주스. 한 잔만 더 주십시오.”
술집에 찾아와 크랜베리 주스를 주문하다니. 정신이 나간 놈이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거다.
그것도 15년이나 계속해서 해왔다면 이미 범죄 수준일지도 몰랐다.
“···.”
하지만, 바텐더이자 술집의 주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에 응했을 뿐.
별다른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프로의식이 뛰어난 걸까,
아니면 15년이나 이어져서 포기한 걸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몰랐지만, 주인장은 능숙한 솜씨로 붉은빛 크랜베리 주스를 완성했다.
“···받게.”
“고맙습니다.”
주인장이 건넨 크랜베리 주스를 냉큼 받아 한 모금 마시는 찰스 말로리.
맛이 굉장히 흡족했는지, 늘 무뚝뚝하고 험상궂은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술집에서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는 놈은 처음 봤어.”
말콤 우드가 코웃음을 치며 딴죽을 걸었다. 술에 환장한 그로서는, 크랜베리 주스를 물을 마시듯 마시는 찰스 말로리가 외계인으로 보였다.
“크랜베리 주스는 몸에 좋다. 특히나 야맹증과 시력 개선에 효과가 좋지.”
“늙긴 늙었나 보고만.”
“당연하지. 네놈처럼 알코올 때문에 뇌세포가 사라져 나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얼치기가 아니다. 그리고 프로라면 항상 건강을 챙겨야 한다.”
외골수인 찰스 말로리다운 대답이었다.
평생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으며 프로로서의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한 그였기에 36의 나이임에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견디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수많은 유망주가 보고 배워야만 하는 훌륭한 프로의식!
하지만, 이미 은퇴한 말콤 우드에게는 억만 광년 멀리 떨어진 이야기였다.
“흥. 그러니까 은퇴하라고. 언제까지 수도사 같은 생활을 할 생각이냐?”
“은퇴라···. 넌 내가 은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할 때가 되면 해야지. 너 어차피 선발 출장도 많이 줄었잖아. 손뼉 칠 때 떠나는 것이 멋진 법이라고. 넌 할 만큼 했어!”
“···그렇군.”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찰스 말로리. 척 봐도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는 분위기다.
속마음 또한 겉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찰스 말로리는 아직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
물론, 이런 속마음을 절친한 친구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말콤 우드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며 묻는다.
“왜 은퇴가 싫은 거냐?”
“난···.”
짧은 질문이었지만 찰스 말로리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경기장에서 떠나는 것이 맞았다.
축구선수란, 그것도 프리미어 리그 같은 최상위 리그에서 뛰는 선수의 삶이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고,
자는 시간도 철저하게 지켜서 자야 했다.
일상이 일반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몸 관리의 연속! 삶이 삶 같지 않을 정도다.
속되게 말하면 좋은 고기를 위해 잘 먹고 잘사는 고기용 소 같은 삶이다.
적어도 외골수인 찰스 말로리의 인생은 그랬다.
그리고 이 생활을 벌써 20년이나 했다.
1년도, 2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20년이다.
다른 구단에서 5년, 22살부터 36살까지의 15년은 포츠머스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어엿한 성인으로 장성할 기나긴 시간.
이 정도면 말콤 우드의 말처럼 찰스 말로리는 할 만큼 했다.
“나도···. 너나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고 자유롭게 살아보고는 싶다.”
인간이라면 당연하게도 이 고단한 삶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
찰스 말로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해버려! 뭐가 무서운데?”
“아직 팀은 내가 필요하다.”
“···.”
찰스 말로리의 단호한 대답에 말콤 우드는 그 어떠한 변론도 펼칠 수 없었다.
“그렇지···. 우리 감독이 필요 없는 놈을 밥 먹여 줄 사람은 아니니까.”
“맞다. 그는 그렇게 물렁물렁한 남자가 아니야. 팀이 나를 원하는데, 내가 편해지기 위해 도망갈 순 없다.”
포츠머스는 어린 팀이다.
그렇기에 15년이나 팀에서 헌신한 찰스 말로리의 존재는 유형무형으로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말콤 우드는 문뜩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소하가 팀을 위해선 누구보다 냉정해지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냉혹한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혹시, 우리 감독은 네가 스스로 떠날 자리를 찾길 바라는 거 아닐까?”
“그럴지도.”
찰스 말로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다. 성소하라는 악우는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미친놈 같았지만, 사람 냄새도 풍기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당장, 난 떠날 수 없다. 우리의 꿈을 위해서라도.”
욕심이었다.
비록 경기에는 점점 나서지 못할지라도. 언젠간 이루어낼 꿈의 완성을 두 눈으로 꼭 목도하고 싶었다.
“···흥. 그저 무서운 거겠지. 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는 거야.”
“···모처럼 알코올 때문에 썩어버린 뇌를 가진 네 녀석의 입에서 쓸만한 말이 나왔군.”
말콤 우드에게 툴툴거리며 남은 크랜베리 주스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찰스 말로리.
강렬하게 입속에 퍼지는 새콤한 크랜베리의 향처럼 말콤 우드의 마지막 말은 자꾸만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
‘아, 안 돼.’
대실수를 저지른 찰스 말로리는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간단한 패스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이런 추태를 보여주다니.
그저, 세월이 야속했다.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그저 잠깐 떠오른 감정의 단편이었을 뿐.
찰스 말로리는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동원에 다리에 힘을 줘 전력으로 디에고 코스타의 뒤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이미 거리를 크게 벌린 디에고 코스타를 따라잡기에는 하염없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렇다면, 찰스 말로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막아달라!’
동료에게 기댈 수밖에.
팀의 수문장이자, 차기 잉글랜드의 수문장으로서 유력한 아론 람스데일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디에고 코스타,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입니다.]
[아론 람스데일 양팔을 쭉 벌리고서 앞으로 쇄도합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아론 람스데일은 체흐의 수제자답게 완벽한 차징을 시도했다.
교묘하게 슈팅 각도를 좁히며 몸을 크게 부풀려 디에고 코스타의 슛 타이밍을 한번 늦추는 데 성공했다.
1초의 반의반.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이 작은 차이로 슛의 질은 천차만별로 변하는 법!
-팡!
슛 타이밍을 조금 놓친 디에고 코스타는 조금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론 람스데일을 비껴가는 감아차기를 선보였다.
-슈루룩.
조금 못생긴 곡선을 그리는 디에고 코스타의 슛!
중계화면으로 볼 때는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가는 듯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오른쪽 골포스트를 비켜 지나갔다.
[이게 뭔가요! 디에고 코스타!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정말 완벽한 기회였는데요.]
[디에고 코스타 같은 뛰어난 공격수가 저런 실수를 하다니요. 아론 람스테일의 차징이 정말 좋았습니다.]
천운이었다.
정말 천운이었다.
디에고 코스타가 첼시에서 뛸 때처럼 폼이 절정이었다면 무조건 집어넣었을 기회였거늘.
전성기에서 조금 내려온 디에고 코스타의 폼이 포츠머스를 살렸다.
무지막지하게 밀리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서는 정말 아쉬운 기회!
하지만, 아쉬운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온 운은 완전히 꺾여버린 기세를 다시금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드디어 한숨을 돌리고 대등한 수준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합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이에요. 이제는 제대로 된 역습도 보여주네요.]
그야말로 강팀의 품격이었다.
작은 계기를 놓치지 않고 위험으로부터 회생하는 능력은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하여튼, 이래저래 포츠머스로서는 찰스 말로리의 큰 실수 때문에 다잡은 대어를 놓친 격이었다.
“크흡···.”
침음성을 내뱉는 찰스 말로리.
얼마나 분했는지 눈에서는 독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와 동료들마저도 다가가기 어렵다.
‘만회해야 한다.’
빠드득.
어금니가 부서지라 이를 앙다물며 투지를 활활 불태우는 찰스 말로리였다.
하지만, 몸은 그의 투지를 따라갈 여력이 안 되었다. 그렇게 관리를 했어도 마흔에 가까운 몸은 쉽사리 움직여주지 않았다.
‘오른쪽 수비수를 공략하자.’
‘케빈 도슨에 비하자면 말랑말랑하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은 역습할 때마다 흔들리는 찰스 말로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찰스 말로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군요. 과연, 찰스 말로리가 버틸 수 있을까요?]
[성소하 감독, 교체를 해줘야 합니다. 이미 찰스 말로리는 한계에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는 울부짖었다.
노골적으로 공략당하는 찰스 말로리의 모습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하는 찰스 말로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다른 카드를 꺼내었다.
[어?! 칼빈 필립스를 빼주고 데클란 라이스로 바꿔줍니다.]
[그리고 델리 알리와 니콜로 바렐라를 교체해 주는군요.]
후반 35분경.
소하는 힘들어 보이는 찰스 말로리 대신 조금 무뎌진 칼빈 필립스와 오늘만큼은 별로였던 델리 알리를 빼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장내 해설의 외침은 모든 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척 봐도 언제 뚫릴지 모를 선수를 그냥 계속 내버려 두다니. 좀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찰스 말로리 때문에 경기에서 질 수도 있다!’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불신이 내리깔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던 찰스 말로리는 계속해서 버티고 또 버티어냈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찰스 말로리.
땀은 비 오듯이 흘렀으며,
억지로 힘을 준 다리는 조금씩이지만 후들거린다.
몸이 무거웠다.
눈이 어두웠다.
시간이 흐르는 건지, 멈춘 건지 구분조차 어려울 만큼 지쳤다.
이대로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계에 다다랐다.
“헉. 헉.”
그런데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능한 공격수들이 그를 쉴 새 없이 노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상대의 발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도 머리를 들이밀며 공을 지켜냈다.
그야말로, 육체의 한계를 정신이 쥐어 잡은 꼴이었다.
투혼. 투혼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위대한 투지였다.
“···무겁다.”
모든 것이 너무 무거웠다.
전부 내려놓고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내가 쓰러지면 팀이 쓰러질 테니까.
내가 버텨야지만 팀이 꿈을 이룰 테니까.
외골수답게 그에게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다.
타협으로 도망칠 순 없었기에 그는 버티고 또 버티어내며 더더욱 거세지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격을 막아섰다.
그렇게 후반 40분에 다다랐을 때쯤.
문뜩 그의 머릿속에는 수년 전 소하와의 개인 면담이 떠올랐다.
때는 소하가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말로리. 넌 정말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냐?’
‘네.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겁니다.’
‘오늘부터 네 주장직을 박탈하마.’
당시 풋내기였던 소하에 대한 불신을 지우고 진심으로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는 주장직이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선수로서 오롯이 서게 되었다.
‘하···. 하하.’
찰스 말로리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유능한 보스는 이미 5년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가르쳐줬었거늘.
그걸 금방 잊어버리고서 수많은 사슬에 묶인 채 아직도 발버둥 치는 자신이 한심했다.
“···.”
그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앞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자신이 흔들림에도 태산같이 버티며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와 당당히 맞서 싸우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내려놓으면 되는 거다. 답은 이거였어. 이젠 내가 없어도 된다.’
찰스 말로리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다.
친구의 말처럼 그냥 무서웠을 뿐이다.
다른 이유는 전부 거짓이었다.
그저 인생, 그 자체였던 경기장에서 떠나기 무서웠을 뿐이었다.
그저 축구밖에 몰라서 축구를 그만두기가 두려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공포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포츠머스! 후반 47분경 코너킥 기회를 얻습니다.]
[연장전으로 돌입하기 직전에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포츠머스입니다.]
마침 코너킥 공격 기회를 잡은 포츠머스. 찰스 말로리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상대의 골문 앞까지 걸어갔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거칠게 찰스 말로리를 압박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팡!
매튜 다이스의 깔끔한 코너킥.
정확히 날아들어 오는 공을 바라보며 찰스 말로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게 뛰었다.
전성기 시절에도 어림도 없었던 엄청난 서전트 점프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수들을 공중에서 제압해버렸다.
더는 그를 옭매인 사슬 따위가 없었으니까.
더는 어깨 위에 올려진 짐 따위가 없었으니까.
그 누구보다 가벼운 몸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높게 뛸 수 있었다.
“으아아아!”
포효를 내지르는 찰스 말로리!
매튜 다이스의 코너킥을 강력한 헤더로 연결했다.
-쾅!
발로 찼다고 해도 믿을 찰스 말로리의 강력한 헤더 슛!
그 슛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날아가, 90분 동안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얀 오블락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철썩!
속이 뻥 뚫릴만한 엄청난 헤더 골이 터졌다.
[골입니다! 경기 종료 직전! 찰스 말로리의 엄청난 헤더 골이 나왔습니다!]
[철벽을 자랑하던 얀 오블락을 뚫은 선수는, 조쉬 킹도 아니고! 마리오 발로텔리도 아니었으며, 모하메드 살라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36세의 수비수, 찰스 말로리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됩니다!]
[포츠머스가 우승입니다! 포츠머스가 17-18시즌, 유로파 리그의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경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외침!
그와 동시에 폭발하는 포츠머스 서포터들의 울음 섞인 열광!
그러나 찰스 말로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나마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덕분에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 내쉬지 않았다면 시체라고 해도 믿을만한 몰골의 찰스 말로리.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238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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