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3) >
경기는 모두가 예상했으며 기대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날카로운 창을 바짝 곤두세우며 끊임없이 공격하는 포츠머스!
두툼한 방패를 들고 끈끈하게 방어하며 종종 위협적으로 방패를 휘둘러 반격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야말로 모두가 염원하던 창과 방패가 제대로 맞붙은 경기 양상이었다.
[포츠머스의 압박이 점점 거세어집니다! 오늘 깜짝 선발 출장으로 얼굴을 내비친 선수들이 맹활약하는군요!]
[절묘한 선택이었어요. 성소하 감독은 늘 언제나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처럼 소하의 선발명단은 굉장히 신묘했다.
-뻥! 팡!
전반적으로 에링 홀란드보다 큰 이점이 없다고 여겨졌던 마리오 발로텔리는 벌써 6번째 슈팅을 성공시켰다. 아쉽게도 얀 오블락 골키퍼의 손가락에 막혔지만 말이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장면이었다.
유럽 최고 수비수들의 협공을 이기고 연거푸 슛을 성공시키다니.
놀라지 않는 것이 더욱 놀라울 정도의 엄청난 퍼포먼스였다.
“신체 능력과 기술적 능력이 하나로 합치어진 경지로구나···. 이것이 바로 ‘신술일체(身術一體)’의 경지가 아닐까 싶군···. 끌끌.”
“한국말로 해서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개소리겠군요···.”
“이제 더는 가르칠 것이 없구나. 하산을 허락하노라···.”
“···.”
뒷짐을 지고서 무림 고수 같은 웃음을 흘리는 소하에게 밀러가 거칠게 딴지를 걸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하여튼, 근본도 없는 단어인 ‘신술일체의 경지’는 솔직히 마리오 발로텔리의 활약에는 굉장히 잘 어울렸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유럽에서 최고급에 속할 기술이 서로 융화되어 디에고 고딘과 호세 히메네스를 혼쭐내주는 모습을 보자면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
분명, 완전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거다.
[공격에 마리오 발로텔리가 있다면 중원에는 도봉산이 있습니다!]
[저 선수, ‘왼쪽 메짤라’라는 역할로 5경기도 뛰어보지 못한 선수가 맞나요? 포츠머스는 이번 시즌에 미드필더 영입을 많이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또다시 터진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찬사!
-슈슈슉.
두툼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블록을 개인 기술로 허물어뜨리는 모습은 이게 메시인지, 도봉산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이에, 소하는 또다시 인자한 눈웃음을 지으며 뒷짐을 졌다.
“허헛. ‘민주적 선발명단’이 가져온 최고의 이득이노라! 도봉산의 메짤라는 본좌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박이었다.”
“···.”
“우리 팀은 물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도 크나큰 흥복임이 분명하노라! 끌끌···.”
“···어휴.”
이번에도 밀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지만, 소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여튼, 소하의 말처럼 도봉산의 포지션 변화는 신의 한 수였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발이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크나큰 약점을 지닌 도봉산!
느린 속도란 윙어로서는 결코 극복하기 힘든 약점이었다.
물론, 도봉산이 느리다고 깎아내릴 선수는 아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축구선수 중에서는 상당한 상위권이다.
하지만, 유럽의 1부리그, 그것도 신체적으로는 가장 강하다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윙어치고는 느린 선수가 맞았다.
윌프리드 자하.
알랑 생막시맹.
아다마 트라오레.
훗날 팬들이 농담 삼아 윙어 3대 수문장이라 불리는 선수들의 명단이다.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빠르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매우, 많이!
그런데 이 선수들은 프리미어 리그로 치자면 A급과 B급 사이를 단단히 지키는 수문장이다.
즉 결코 A급 윙어가 아니라는 뜻!
프리미어 리그의 A급 윙어가 되려면 이 선수들보다 잘해야 하는데, 도봉산의 속도로는 넘어서기 굉장히 어려웠다.
게다가 포츠머스에는 조쉬 킹과 모하메드 살라라는 확실한 A급, 아니, S급 선수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결국 우리 팀에서는 영원히 윙어로서 주전으로 뛸 수 없다는 거지.”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로 이동하면 이야기가 상당히 달라진다.
윙어로서는 느렸지만 중앙 미드필더로서는 상당히 빠른 축으로 돌변한다.
여기에 더해서 그간 피땀 흘리며 매진했던 파워 트레이닝은 강한 압박을 견딜 강건한 육체를 선물했다.
비록, 달리는 속도를 올려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최상급 기술.
민첩하며 단단한 육체.
날카로운 창의성.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자 도봉산은 메짤라로서 완벽한 선수로 탈바꿈했다.
“이래저래 노력은 배신하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노라! 허허허헛.”
“···어휴.”
피지컬을 키우지 않았다면 정말 어림도 없는 포지션 변경이었다.
실제로도 훗날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쫄딱 망한 미래가 있지 않던가.
노력은 바로 성과를 안겨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언젠간 꼭 보답하는 법이었다.
[전반전 종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포츠머스가 경기를 꽉 쥐어버렸어요!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됩니다!]
[마리오 발로텔리, 도봉산도 대단하지만, 오늘의 이 우세에는 깜짝 등장한 매튜 다이스의 지분도 엄청납니다.]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의 외침처럼 매튜 다이스의 활약은 두 선수에 비해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시종일관, 후방에서 날카로운 롱패스 날려대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괴롭히는 중이다.
[상당히 놀라운 일이에요. 그리 특출나 보이지 않은 선수였는데 말이죠.]
[풀백으로서는 정말 독특한 스타일입니다. 흡사, 리버풀의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 같은 느낌이에요.]
신이 인간에게 내린 한계이자 가능성인, ‘재능의 벽’에 가로막혀 점점 잊혀가던 매튜 다이스.
몇몇 프런트의 상급자나 극성 서포터들은 판매를 주장할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딱히 극성맞은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팀 그로운을 충족하는 선수는 차고 넘쳤기 때문에 팔아도 아쉽지 않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덤으로 포츠머스의 팀 그로운이란 뜻은 잉글랜드의 홈 그론운도 충족했다는 뜻 아니던가!
자고로 홈 그로운을 충족하는 선수는 몸값이 비싼 법이었다.
“중하위권 구단에게 판매하면 20~30M은 받아낼 만한 선수지.”
나이도 어린 데에 제법 쏠쏠한 수입을 당겨올 선수였다.
하지만 소하는 판매하자는 의견에 콧방귀도 뀌지 않고 철저히 무시했다.
매튜 다이스는 아직도 제법 쓸만한 선수였으니까.
“오늘 왜 잘하냐고? 일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상성이 잘 맞기 때문이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윙어들은 솔직히 중앙 미드필더라고 불러야 하는 선수들이다.
그러니까, 발이 빠른 선수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프리미어 리그의 달리기만 빠른 윙어들보다는 훨씬 수준이 높다.
그렇지만 발이 느린 풀백인 매튜 다이스로서는 오히려 더욱 상대하기 쉬운 상대들이었다.
덧붙여 매튜 다이스에는 한 가지 괴벽이 있는 남자였다.
“관심종자. 큰 무대에서 가진 실력보다 훨씬 더 잘하는 독특한 성격이지.”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펄펄 날아다니는 성격은 현재까지도 그대로다.
그리고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많이 받는 경기!
자연스럽게 매튜 다이스가 펄펄 날아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모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자면, ‘중요 경기 20’을 보유한 결과였다.
[이래저래 성소하 감독의 기가 막힌 용병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외의 선발명단이었지만, 승리로 향하는 길을 정확히 꿰뚫은 완벽한 선택이었어요. 도대체 이 33세의 젊은 감독은 어디까지 성장할까요?]
전문가들에게 엄청난 극찬을 쏟아져 내리게 한 멋진 선발명단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극찬을 받음에도 소하의 표정은 어느샌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골이 없어.”
소하의 말처럼 골이 없다.
아무리 잘해도 골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놀이에 불과했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클리셰로 한 골 넣어주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군···.”
남은 시간을 슬쩍 바라본 소하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점유율을 70% 가까이 가져가며 맹공을 퍼부었건만. 승리의 여신은 미소를 지어주지 않았고 그대로 전반전이 끝이 났다.
-삑! 삑!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이에 맞춰 소하는 후반전을 대비하기 위해 서둘러 라커룸으로 향했다.
***
-삑!
15분간의 휴식 끝에 유로파리그 결승전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포츠머스는 변화 없이 그대로 기조를 유지했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상당히 변화를 줬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두 명의 선수를 바꾸어 주는군요!]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페르난도 토레스를 케빈 가메이로로 바꿔줬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파티와 앙헬 코리아를 바꿔주는군요.]
[그럼 사울이 중앙으로 이동하고, 코케는 왼쪽으로, 앙헬 코레아는 오른쪽 미드필더로 옮기겠군요.]
한계까지 밀려버린 전반전 때문에 승부수를 던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었다.
먼저, 공격수인 케빈 가메이로는 전형적인 포쳐스타일의 선수이다.
민첩하고, 지능적이며 훌륭한 오프더볼 움직임을 자랑하는 날카로운 킬러!
덤으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지도로 연계 능력과 수비 가담 능력까지 갖추게 된 제법 좋은 공격수다.
“공격수의 교체로 우리 쪽 수비진에 압박을 주겠다는 뜻이군. 지금까지 아무런 걱정 없이 라인을 올려서 두들겨 팼으니까.”
정확한 분석이었다.
케빈 가메이로 같은 킬러가 전방에 배치되면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차 하는 순간 골네트를 갈라버릴 터. 자연스럽게 라인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앙헬 코레아는 인사이드 포워드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반대쪽 사이드에서 넓게 벌려주는 역할을 맡겠군.”
이름이 상당히 친숙한, 앙헬 코레아는 전형적인 드리블러이다.
빠르고 민첩하며 기술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추가로 활동량도 많아서 수비적으로도 큰 도움을 준다.
단점으로는 저열한 축구 지능.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뇌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만큼 멍청한 플레이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하지만 멍청한 건 때로는 플러스 효과로 돌아올 때가 있지.”
괜히 영리하게 연계플레이를 하려다가 공을 뺏기느니, 무식하게 돌격해서 좋은 기회를 얻어내는 경우가 왕왕 나왔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완전히 밀리는 상황에서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 존재라는 뜻이다.
“제법 괜찮은 변화지만, 글쎄. 그리 위협적이진 않군.”
이것저것 수를 보여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정성을 소하는 단박에 무시했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완전히 기운 경기의 양상을 바꿀 정도의 무게감을 지는 선수들이 아니었다.
“앙투안 그리즈만의 공백을 채우지 못한 게 실수지.”
월드 클래스 포워드 앙투안 그리즈만의 공백! 1억 유로라는 거금이 생겼지만 그 돈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리즈만이 없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격 따위, 그리 무섭지 않아. 계속 공격해라 얘들아!”
소하는 아무런 변화 없이 거침없는 공격을 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계략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판단이었다.
‘제기랄. 통하지 않는군.’
거침없이 공격을 이어나가는 포츠머스의 모습에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험악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평소 마피아 같은 흉악한 외모가 유명했던지라 더더욱 무섭게 변했다.
‘블러핑이었는데, 제대로 간파했어.’
그렇다. 제법 위협적인 교체였지만 실상은 속이 빈 강정이었다.
소하의 생각처럼 케빈 가메이로와 앙헬 코리아로서는 포츠머스를 뚫어낼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투입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포츠머스를 뒤로 물러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숨조차 쉬지 못해서는 경기가 이어지지를 않는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수가 생길 텐데.’
조금이라도 숨을 쉴 틈을 찾으려는 처절한 발악!
마치 복어 같은 허세였지만, 교활한 소하는 단박에 눈치챘다.
포커로 보자면,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자신감 있게 레이즈를 치며 허세를 부렸고, 소하는 올인으로 맞받아친 격이었다.
손에 개패가 들어왔는데, 상대가 올인으로 맞받아쳤다?
그럼 결과는 뻔했다.
파산! 멸망!
마지막 히든에 정말 좋은 패가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패가망신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제기랄···.’
주먹을 불끈 쥐며 욕지거리를 읊조리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이대로 가다간 필패다.
기댈 건 운밖에 없다.
“···어?!”
그런데, 운이 터졌다.
히든에 잘 들어온 카드 한 장이 제법 괜찮은 패를 만들어줬다.
그 히든카드란, 오늘 엄청나게 찬사받은 소하의 선발명단이었다.
마리오 발로텔리의 실수? 아니다.
도봉산의 실수? 아니다.
매튜 다이스의 실수? 아니다.
잊고 있던 한사람, 오늘 라인별로 4개의 특이점에서 최후방을 맡은 선수!
바로, 찰스 말로리였다.
[아! 이게 뭔가요! 케빈 도슨의 패스를 받으려던 찰스 말로리가 미끄러졌어요!]
[수년 전 리버풀이 겪었던 상황과 매우 비슷한 상황입니다!]
작은 실수였다.
케빈 도슨은 평범하게 패스를 건넸지만 찰스 말로리는 평범하게 받아내지 못한, 작은 사건이었을 뿐이다.
하필이면 그때 디에고 코스타가 압박을 위해 쇄도했고, 공을 그대로 디에고 코스타의 소유가 되었다.
최후방에서 공을 빼앗겼다.
그렇다면 디에코 코스타의 앞길에는 오직 한 선수, 골키퍼밖에 남지 않았다.
[자! 끊어내고 올라갑니다! 코스타!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 코스타! 코스타아아아!]
국내의 리버풀 팬들에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지옥의 해설이 울려 퍼졌다.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
‘아, 안 돼!’
서둘러 일어나 코스타의 등 뒤를 따라가는 찰스 말로리의 눈에는 어느덧 진득한 절망이 어렸다.
< 237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3) > 끝
ⓒ 블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