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36화 (236/306)

< 236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2) >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신흥강호, 잉글랜드의 포츠머스와 전통의 명문,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간의 유로파리그 결승전!

경기전부터 일주일 뒤에 시작되는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만큼 관심을 받는 경기답게 공개된 선발명단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먼저, 선발명단으로 서포터들의 의견이 갈리던 포츠머스는,

[GK: 아론 람스데일.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찰스 말로리.

RB: 매튜 다이스.

DM: 칼빈 필립스.

CM: 도봉산.

CM: 델리 알리.

LW: 조쉬 킹.

ST: 마리오 발로텔리.

RW: 모하메드 살라.]

이라는 놀라운 명단을 공개했다.

기초적인 골자는 별로 다르지는 않았지만 몇몇 선수들의 등장은 시작부터 호사가들의 입을 무한으로 움직이게 했다.

-매튜 다이스? 이제 완전히 후보선수로 올라온 친구잖아? 아슈라프 하키미가 다쳤나 봐.

-원더키드로 선정된 데클란 라이스가 보이질 않아···! 도대체 뭐지?

-찰스 말로리라. 꽤 자주 나오던 선수지만 폼이 확연히 떨어진 노장인데.

-축구 미남, 에링 홀란드는 어디?

-도봉산이랑 델리 알리가 중원에서 호흡을 맞춘 적은 없을 텐데.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중요한 경기에는 항상 보수적으로 접근하던 소하였거늘.

‘깜짝쇼’를 보여주자 서포터들은 놀라움과 함께 불안함을 같이 느꼈다.

분명 기자회견장에서의 소하는,

“우승을 위해 최고의 명단을 준비했다. 필사의 각오로 우승에 도전하겠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아무리 봐도 ‘최고’의 선발명단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하는 언제나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다하는 남자!

이번 선발명단의 진의는 경기가 시작되면 여실히 밝혀질 것이다.

포츠머스에 맞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발명단은 포츠머스와 달리 건실하고 예측범위 안이었다.

[GK: 얀 오블락.

LB: 뤼카 에르난데스.

CB: 디에고 고딘.

CB: 호세 히메네스.

RB: 시메 브르살리코.

LM: 코케.

CM: 가비.

CM: 토마스 파티.

RM: 사울.

ST: 디에고 코스타.

ST: 페르난도 토레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매특허, 4-4-2를 기반으로 짜인 17-18시즌의 최고 선수가 총출동했다.

4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중앙에 배열해 더욱 두터운 2줄 수비를 구성하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진용이다.

바뀌지 않은 세계였다면 페르난도 토레스 대신 앙투안 그리즈만이었겠지만 그는 이번 시즌에 1억 유로의 엄청난 금액으로 리버풀을 향해 떠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공격력 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면이 돋보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하지만 단단한 수비를 기반으로 짜임새 있는 역습을 보여주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스타일은 포츠머스에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과연, 17-18시즌, 유로파리그의 우승팀은 과연 어디 팀일까요!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됩니다!]

프랑스에서 울려 퍼지는 장내 해설의 우렁찬 목소리!

119년의 역사 속에서 사상 첫 유럽대항전 우승컵을 노리는 포츠머스의 가장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

-삑!

OL스타디움에서 기어코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식명칭은 그루파마 스타디움이었지만, UEFA 주관 대회에서는 스폰서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에 OL스타디움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하여튼 선공은 포츠머스였다.

늘 그렇듯, 전방에서 공을 주고받은 포츠머스는 후방으로 공을 보내 천천히 빌드업을 시작했다.

[전형적인 포츠머스의 시작이군요. 천천히 몸을 풀다가 순식간에 톱기어로 올리며 상대를 흔드는 플레이를 즐겨합니다!]

[그 타이밍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조심해야 합니다. 갑자기 빨라지는 속도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팀이 수두룩했거든요.]

갑작스러운 긴 패스 한방으로 후방을 노리며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는 포츠머스의 정석!

수많은 팀에게 패배의 쓴잔을 선물한 매우 강력한 공격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수비를 잘한다고 소문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이를 알고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강한 압박 대신 천천히 지역 방어를 유지하며 상황을 관망한다.

-툭, 툭툭.

하지만, 포츠머스의 기습공격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보통 5분이나 10분쯤 지나면 본격적으로 엄청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거늘.

전반전이 15분가량 흘렀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이 계속 느린 템포를 유지하며 기회를 엿보기만 한다.

[음. 평소의 포츠머스하고는 조금 다르군요. 혹시라도 긴장한 걸까요?]

[익숙하지 않은 경기장이기 때문에 조금 더 준비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혹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역습을 매우 경계하는 모습일지도 몰랐다.

하여튼, 천천히 기회를 엿보는 포츠머스와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모습은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뭐야, 경기 더럽게 지루하다.

-창과 방패의 승부라더니 방패끼리 몸 비비는 싸움이었네.

-이딴 경기가 결승전이라니. 역시 농어촌 대회는 볼만한 게 아니었어.

-리버풀이랑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나 봐야겠는걸?

-공격 좀 하라고!

경기를 지켜보던 서포터들은 밋밋한 경기력에 아우성을 쳤다.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지만 이런 모습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포터들의 아우성에 화답하듯 곧 경기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포츠머스가 움직임인 걸까?

아니다. 놀랍게도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쪽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럼 우리가 먼저 압박 강도를 올린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가진 외모답게 거칠게 들이박기로 했다.

얼른 보면 소하가 만들어둔 함정으로 들어가는 멍청한 짓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판단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었다.

‘먼저, 익숙지 않은 선발명단 때문에 선수들의 합이 맞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경계심을 부추겨 천천히 시간을 끌고 가는 것이 함정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전력은 맞지만, 이런 선발명단이라면 우리가 확실한 우위다.’

세 가지의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움직였다.

그리고 소하가 어떤 감독이던가!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놓고 기만책을 펼치는 감독이라 상대하는 처지에서는 정말 까다로운 감독이다.

‘즉, 얕은 계책에 휘말려 진흙탕에 빠지기 전에 압도적인 힘으로 경기를 끝내면 된다.’

소하의 페이스에 끌려다니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주도권을 잡겠다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의지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압박이 점점 더 거세어집니다!]

[포츠머스가 공을 소유하기 어려워졌어요. 이제 무슨 사건이 터질 거 같습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압박의 강도를 올리자 포츠머스의 점유율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흠···. 과연 명장이군.”

천천히 주도권을 빼앗기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하는 아쉽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먼저 움직이면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보였지만, 너무 나대지 않으면서 선을 정말 잘 지키는군.”

경기 초반의 느린 템포는 역시나, 소하의 계략이었다.

분명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맹렬한 공격에 엄청난 수비를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경기장에 들어왔을 거다.

소하는 그 리듬을 깨버리고,

상대가 역으로 포츠머스의 진형으로 들어오고,

오히려 역습을 얻어맞게 되는 그림을 그렸다.

즉,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방패와 창을 싸움으로 역전하는 그림이었다.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말이다.

“압박 강도를 올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은 넘어오질 않아.”

압박해서 공을 따냈으면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점유율을 회복했을 뿐. 쉽사리 소하가 파놓은 함정으로 걸어들어오지 않으며 역으로 천천히 공격을 주도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잔머리는 그만 굴리고 제대로 한번 붙어 볼 수밖에 없어.”

재미를 보지 못한 소하는 재빨리 선수들에게 작전의 변경을 알렸다.

“원래의 계획으로 돌아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버럭 외치는 소하!

첫 번째 작전이 실패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작은 미소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

전반 20분.

굉장히 지루했던 경기는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으로 변해버렸다.

[포츠머스가 드디어 기어를 올립니다. 그 선봉장은 깜짝 등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매튜 다이스!]

[멋진 긴 패스입니다. 반대쪽 측면의 조쉬 킹에게 정확히 떨어지는군요.]

공격의 선봉장은 오른쪽 풀백으로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매튜 다이스였다.

매튜 다이스.

아슈라프 하키미에게 완전히 밀리며 후보로 전락한 포츠머스의 성골 유스!

소하가 발도 느리고 공격력도, 수비력도 특출나지 않은 그를 선택한 이유는 ‘정’ 따위가 아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밀집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더욱더 빨라야 하거든.”

아슈라프 하키미는 빠르다.

하지만 날아가는 패스보다 빠르진 않다. 아니, 세상천지에 공보다 빠른 선수는 없었다.

“매튜 다이스의 패스 솜씨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다시 진형을 잡기 전에 전방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지.”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진 아슈라프 하키미와 매튜 다이스.

소하는 이 두 명의 선수 중에서 더욱 확실한 카드를 꺼냈을 뿐이었다.

-슈욱!

쭉쭉 뻗어나가는 매튜 다이스의 측면 전환 패스!

풀백이 뿌린 패스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날렵하다.

“우랴압!”

조쉬 킹은 매튜 다이스의 멋진 긴 패스를 소유하지 않았다.

충분히 잡아내서 다음 플레이로 이어갈 수 있었지만, 조쉬 킹은 놀라운 서전트 점프를 이용해 헤더로 동료에게 연결했다.

-툭.

조쉬 킹의 헤더로 인해 공이 향한 곳은 대한민국의 스타, 도봉산의 발밑!

“···.”

눈을 부릅뜬 도봉산을 놀라운 퍼스트 터치로 방해하기 위해 달려온 가비의 압박을 벗겨낸다.

“도봉산의 선발도 마찬가지다. 정 따위가 아니야. 밀집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개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든.”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생각했다면, 니콜로 바렐라나, 칼빈 필립스, 혹은 유리 틸레만스를 기용했을 거다.

하지만, 최고의 방패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최고의 창이 필요한 법이다.

도봉산과 델리 알리라는 강력한 창은 개인의 힘으로 균열을 만들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도봉산은 좁은 공간과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공을 지켜내며 유일한 패스 길을 찾아내었다.

-팡!

도봉산이 본길은, 정말 좁고도 유일한, 마리오 발로텔리로 향하는 실낱같은 길!

엄청난 개인 기술이 아니었다면 보지도 못했고 만들어내지도 못할 길이었다.

[대단합니다! 도봉산! 마치 유려한 춤을 추는 것만 같았어요.]

[뛰어난 윙어가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로서 제대로 각성했네요!]

“Yo!”

도봉산의 멋진 플레이로 공을 소유하게 된 마리오 발로텔리.

이 남자가 요즘 세간의 화제인 에링 홀란드 대신 경기장에 나온 이유도 별거 없었다.

“홀붕이는 뛰어나지. 하지만 발밑 기술이 좋은 선수는 아니야.”

에링 홀란드는 뛰어나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보자면 뛰어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그의 장점은 엄청난 침투 능력과 뛰어난 신체조건이다.

하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는 썩 궁합이 좋지 않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기본적으로 수비 라인이 낮았기 때문에 침투 능력을 살리기 어려웠고,

강건한 신체 능력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두 중앙수비수를 이기기엔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를 상대할 땐 강력한 신체 능력과 이를 뒷받침할 기술을 보유한 선수가 필요하지.”

뛰어난 신체 능력!

뛰어난 기술!

이를 모조리 가진 선수는 극히 드물었지만, 포츠머스는 예외였다.

바로, 마리오 발로텔리라는 전직 악동이야말로 극히 드문 스타일 가진 선수였기 때문이다.

결국 소하의 선발명단은 오롯이 승리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한 결과란 이야기였다.

-펑!

이를 증명하듯 마리오 발로텔리는 신체 능력을 활용한 뛰어난 기술로 슛까지 연결했다.

그 유럽 최강이라 불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질식 수비를 이겨내고서!

-텅!

아쉽게도 골대를 맞추며 튕겨 나가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슛!

드디어 경기가 본격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축포였다.

< 236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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