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머리 천재 감독-235화 (235/306)

< 235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1) >

5월 20일.

유럽축구계에서 단 두 개밖에 남지 않은 경기 중 하나인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이 시작되는 날!

물론, 일주일 뒤에 열리는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 같은 대축제는 아니다. 하지만 축구계의 관심을 모조리 끌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경기였다.

5년 전만 해도 4부리그에서 팀 해산의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내 컵대회를 모조리 제패하며 잉글랜드의 강자로 우뚝 선 포츠머스 FC!

디에고 시메오네라는 걸출한 감독의 지휘 아래 유럽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현시대의 축구계를 주도하는 두 정상급 팀이 맞붙는 데 관심이 없기가 더욱 힘들었다.

포츠머스와 아틀레티코.

아틀레티코와 포츠머스.

두 팀은 의외로 서로 굉장히 닮아있는 팀이기도 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3-14시즌에 라리가의 우승을 달성하면서 본격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즌은 성소하 감독이 포츠머스에 부임한 시즌이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설이었다.

13-14시즌.

양 팀에게는 마법이 시작된 시즌이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부임한 시기는 11-12시즌, 2년 전이지만, 제대로 강팀으로 자리를 잡은 시기는 부임 이후 첫 우승인 13-14시즌이었다.

그 후에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며,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라리가’에서 ‘3강’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포츠머스의 13-14시즌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는 시즌이었다.

[성소하의 부임.]

당시, 28세의 어린 감독이 5년 후에는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으로 팀을 이끌 거라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건 상상의 영역 밖이었다.

망상, 그것도 중증 망상증 환자도 개꿈이라고 여길 엄청난 망상이었다.

당시 포츠머스의 시내에서 소하가 5년 뒤에는 리그컵과 FA 컵을 우승하고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에 진출한다고 말했다면, 아직도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거다.

하지만 소하는 정신병원으로 직행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상 이상의 업적을 이루었고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그야말로 13-14시즌은 포츠머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는 전설의 시작과도 다름없는 시즌이었다.

이렇듯 13-14시즌이란 공통분모를 가졌으며 팀에서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감독이 장기 집권하는 상황마저 똑같은 포츠머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하지만 경기장 내에서의 모습은 천지 차이였다. 불과 물. 말 그대로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 팀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날아오른 양 팀. 하지만 매우 공교롭고 재미있게도 플레이 스타일은 정반대다.

-묘한 동질감을 가진 그들이지만 성격은 아예 다르다.

-드디어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 논란을 잠재울 경기가 다가왔다.

최강의 창!

최강의 방패!

양 팀의 스타일을 표현하기엔 이보다도 명확한 말이 없을 거다.

17-18시즌만 보자면, 포츠머스의 공격력은 ‘최강의 창’이란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을만한 모습을 보여줬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엄청난 수비력으로 위명을 떨치던 팀이다.

특유의 4-4-2, 두 줄 수비는 공격적인 라리가의 스타일을 역습으로 바꿔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줬다.

세계 최고의 리그가 뽐내던 스타일마저 바꿔버릴 엄청난 전술이었다.

감히 ‘최강의 방패’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만한 팀!

이 때문에 전술적으로 큰 관심을 가진 전문가들은 챔피언스 리그보다도 유로파리그에 관심을 가졌다.

-축구가 시작되고 나서 공격과 수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확실한 우위가 가려지지 않았다. 즉, 이번 경기는 드디어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가름이 나는 날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현대 축구에서 공격과 수비를 따로 떼어놓고 우열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양쪽을 모두 잘해야지만 강팀으로 불렸으니까.

하지만 이런 현대 축구의 흐름 속에서 포츠머스와 아틀레티코는 돌연변이였다.

유달리 공격이나 수비가 뛰어난 팀들이었기 때문이다.

축구의 역사를 뒤져봐도 이렇게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진 팀들이 결승전이란 무대에서 맞붙은 적이 없었기에, 전문가들의 기대감은 매일 높아졌다.

-‘수비를 잘하면 우승컵을 가져온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승리가 예견된다.

-길고 긴 축구계의 역사 속에서는 항상 수비가 조금이라도 더 강한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일 것.

-적어도 토너먼트에서는 수비가 강한 팀이 이긴다. 17-18시즌의 유로파리그 결승전도 같은 그림일 거다.

일단 전문가들은 접전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아틀레티코의 승리를 점쳤다.

팀 수준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축구의 역사는 수비가 이긴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포츠머스에는 조금 아쉬운 예상이었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그리 아쉽지도 않았다.

-포츠머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력은 동등하다. 이름값만 보자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앞서겠지만, 축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포츠머스의 실력이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거다.

-잘라 말해, 첼시와 아틀레티코가 붙는다면 실력 차가 있겠는가? 전혀 아니다. 그리고 포츠머스는 첼시를 FA 컵 결승전에서 2-0으로 완전히 찍어 누른 팀이다.

-기세 면으로는 오히려 포츠머스가 근소 우위라고 볼 수 있다.

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결승전에서 맞붙는데, 실력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니.

이것만으로도 포츠머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린 강해졌다.’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솟아오르는 무한한 자부심!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서포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소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개소리에 불과했을 뿐이다.

“당연히 과정은 중요하다. 좋은 결과에는 건실한 과정이 필요하지.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과정이 얼마나 좋던 아무런 의미조차 없다. 그냥 똥쓰레기라고.”

소하는 선수들이 조금 들뜬 외부의 분위기에 휩쓸릴까 봐 미리 선수를 쳤다.

“좋은 꿈을 꾸고 좋은 기분으로 복권을 샀다고 치자. 아주 좋은 과정이야. 근데, 당첨이 안 됐어. 그럼 뭐냐? 별거 없어. 그냥 개꿈 꿨다는 거야. 좋은 꿈을 꾸고 당첨까지 돼야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는 거다.”

조금 멀리 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꿈속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와 번호를 불러줘도 당첨이 아니라면 개꿈이었으니까. 아마 옆집 할머니였을 거다.

“졌지만 그동안 잘했으니까, 라고 자위하면서 진드기처럼 서로의 등을 핥아줄 생각 따윈 접어라. 그냥 이겨라. 역사에는 승자만 기록된다. 나머지는 그냥 패배자들의 불쌍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승리와 최고를 향한 무한한 욕심!

이것이야말로, 포츠머스가 단시간 내로 최고의 팀으로 진화한 근본적인 이유이자 팀의 오리진이었다.

그리고 선수들 또한 그 누구보다 이러한 정신을 잘 이해한 친구들이었다.

“네!”

“당연하죠!”

“이기고 나서의 풍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겼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이긴다!”

“최강의 방패? 한번 뚫어보죠!”

활화산 같은 소하의 웅변에 열렬히 호응하는 포츠머스의 선수들!

그 모습에 소하는 작은 걱정조차 사라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소하는 몰랐다.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이 흔들릴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

5월 18일.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이 열리기 이틀 전이다.

이제 곧, 결승전이 열리는 올랭피크 리옹의 홈구장 ‘그루파마 스타디움’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시간!

결전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해서,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결승전 때문에 ‘선발 명단’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베스트 11로 나오겠지?

-베스트 11? 우리에게 그런 게 있었나? 그날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나오겠지.

-모두가 결승전까지 최선을 다해줬어. 하지만 선발은 11명밖에 뛰지 못하지.

-유로파리그는 발로텔리가 주전으로 기용됐어. 그런데 결승전에서 난데없이 홀란드를 쓸 순 없잖아?

-하긴···. 그것도 문제긴 해. 그래도 우승을 위해선 제일 잘하는 선수를 뽑아야겠지.

참으로 힘든 선택이 다가왔다.

어디 파파존스 컵이나, 아우디 컵도 아닌,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이 아니던가!

평범한 선수들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높디높은 곳이었고,

제법 이름깨나 날린다는 훌륭한 선수들도 평생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그런 무대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무대로 팀을 견인한 선수가 실력에서 밀린다고 결승전에서 뛰지 못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유해진 선수가 있었지.”

지금은 포츠머스의 단장을 역임하는, 이 대한민국의 스포츠 스타가 불행한 사건의 예시였다.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07-08시즌.

유해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었다.

세계최강, 바르셀로나를 꽁꽁 묶어버리며 결승전으로 팀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유해진은 결승전에 뛰지 못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고심 끝에 유해진보다 활약이 미미했던 하그리브스를 선발로 출장시켰다.

“정말 난리가 났지···.”

소하는 그날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참 유럽에서 UEFA 코치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 고생할 때라 더욱 기억이 생생했다.

“전 국민이 아시아인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기대했건만. 아마, 우승하지 못했으면 퍼거슨 경은 아직도 욕을 옴팡지게 먹었을 거야···.”

사실, 소하도 당시 퍼거슨 감독의 결정에 대해서 맹렬히 비판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를 명단제외 할 수 있냐는 거였다.

하지만, 막상 퍼거슨 경의 고뇌가 자기 일로 들이닥치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어쩌지?”

포츠머스에도 07-08시즌의 유해진 같은 선수가 제법 많았다.

먼저, 마리오 발로텔리.

이 선수는 유로파리그에서는 주전으로 우뚝 선 홀란드보다 훨씬 더 큰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도봉산도 마찬가지다.

도봉산은 챔피언스 리그 도중에 발견한 새로운 포지션, ‘메짤라’ 자리에서 델리 알리 대신에 대단한 활약을 해주었다.

여기에 더해서 잭 해리슨과 마이클 반즈같은 선임 선수들도 결승전 진출의 숨은 공신들이다.

격렬한 팀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무한한 로테이션을 가동하자 나온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

“···씨발.”

마음 같아선 시원하게 제비뽑기로 뽑고 싶은 소하였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누굴 넣어도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깐.”

차이는 미비하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승부를 결정지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후벵 디아스의 부상 이탈로 수비진 선발에 대한 고민까지 있는지라 머리가 지끈거리는 소하였다.

“찰스 말로리냐, 데클란 라이스냐. 이것도 머리 아픈 일인데. 후우. 일단 이럴 땐 방법이 별로 없지.”

소하는 감독 사무실에서 온몸을 베베 꼬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장점이라면, 엄청난 감독이라고 찬사받음에도 주위의 도움을 구하는 일에는 거리낌이 없다는 점 아니던가!

자만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타인의 힘으로 메꾸는 유들유들한 성격은 성장하기에 매우 좋은 발판이었다.

“역시,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지.”

후다닥.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향하는 소하. 당사자라면 선수들에게 직접 물어보려는 걸까?

하지만 소하는 그 정도로 무지막지한 사람이 아니었다. 섬세하지 않아 보여도 나름의 섬세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10년 전의 사건을 제 입으로 듣고 싶다고요?”

“네!”

유해진은 명랑하게 십 년 전의 사건을 돌직구로 물어보는 소하의 모습에 잠깐 할 말을 잊었다.

‘후유. 뭐 나름대로 선수들을 배려하신 거겠지. 하긴. 차라리 잘됐어. 내가 쓰린 게 낫지. 큰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멘탈을 날려버릴 이유는 없어.’

대인군자인 유해진 단장은 순식간에 소하의 의중을 파악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절망적이었습니다.”

“호오···.”

“전 맨유라는 팀을 사랑하고 퍼거슨 감독님을 존경했기에 크게 표출하진 않았지만요.”

“다음 시즌의 경기력에 영향이 있었나요?”

“뭐···. 없다곤 말 못 하겠죠. 게다가 무릎 수술도 다시 해서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어요.”

“흐음. 그렇군요.”

유해진의 씁쓸한 미소에 소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침음성을 흘렸다.

저 프로의식 투철한 유해진도 심정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다른 선수들은 어떻겠는가.

조쉬 킹같은 원숭이라면, 몇 년 정도는 잊지 못하고 폼이 나락으로 향할 거다.

“하지만, 감독님. 결국 중요한 건 우승을 하냐 못하냐입니다. 만약 저희 팀이 그날 우승하지 못했다면 전 더더욱 상심했겠지요.”

“···.”

“누가 저의 절차를 밟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우승이에요. 전 감독님이 보기보다 선수들에 대한 정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흔들리신 거겠죠. 그래도 감독님께서 말했듯이 팀의 우승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해진의 진심 어린 조언!

직접 겪어본 사람의 묵직한 일침은 흔들리던 소하의 마음을 제대로 잡아주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고마워요. 역시 단장님을 단장으로 뽑은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네요.”

“저야말로 훌륭한 팀의 단장으로 절 선택해주셔서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서로를 마주 보며 작은 미소를 짓는 대한민국의 전설들. 상부상조하며 잉글랜드 축구의 기린아, 포츠머스를 이끄는 위대한 검은 머리들의 모습이었다.

< 235화. 유로파리그 결승전.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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