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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34화 (234/306)

< 234화. FA컵 결승전. (4) >

“이런, 한눈팔았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호루라기 소리에 빅터 모지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을 빠르게 파악했다.

다소 밀리긴 했지만, 조쉬 킹을 잘 막아냈거늘. 어느새 조쉬 킹에게 탈탈 털리며 연거푸 위험을 초래했다.

‘이게 목적이었나?’

커너 러셀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고 조쉬 킹으로 하여금 경기를 끝내게 할 작전으로 보였다.

‘어째서 빅터 모지스가 갑자기 무너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바꿔줘야겠군.’

서둘러 교체를 준비하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 이미 작년에도 FA 컵 결승전에서 퇴장당하며 경기를 말아먹은 전적이 있던 빅터 모지스였기에 다급하기 짝이 없다.

[첼시가 교체를 준비합니다. 차파코스타가 몸을 푸는군요.]

[옐로카드를 받은 빅터 모지스로서는 남은 30분을 버티기 힘들 겁니다!]

빅터 모지스의 대타로 다비데 차파코스타가 경기장에 얼굴을 내비쳤다.

다비데 차파코스타.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350억이란 거금을 주고 데려온 오른쪽 윙백!

제법 큰 기대를 모았지만, 명백히 실패한 이적생이기도 했다.

빅터 모지스에게 밀려서 경기에 나오지도 못한 신세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이 선수의 등판이야말로 소하가 차근차근 꾸려온 비열함의 결정판이었다.

“됐어!”

소하는 다비데 차파코스타의 등장에 쾌재를 내질렀다.

혹시라도 변칙적으로 윌리앙을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저 기우로 끝나서 마냥 기뻤다.

“?!. 감독님. 이렇게 된다면 작전은 실패한 거 아닙니까? 그 뭐냐 성종경성? 그거 말이에요.”

밀러의 물음은 당연했다.

빅터 모지스를 무력화시켜 조쉬 킹으로 하여금 경기를 끝내려는 그림으로 봤기 때문이다.

“응? 왜요?”

“아니···. 빅터 모지스를 퇴장시켜서 경기를 끝내려던 거 아닙니까?”

“네. 됐잖아요. 나갔잖아요.”

“네?!”

“이제 교체당해서 경기장에서 안 보이잖아요. 그리고 차파코스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는 조쉬 킹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해요. 그리고···.”

잠시 눈빛을 번뜩이던 소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이제 커너 러셀에게 기회가 올 거예요. 콘테 감독의 실수는 단 한 가지에요. 5년 동안 열심히 포츠머스에 헌신했던 러셀을 무시했던 거죠.”

“···!”

눈을 부릅뜨며 놀라는 밀러.

그리고 그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장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어?! 에덴 아자르의 그림자였던 커너 러셀이 언제 저렇게 위로 올라온 거죠?!]

[페널티박스 바로 위, 중앙에서 좋은 슛 기회를 잡았습니다!]

분명히 저 뒤에 있어야 할 커너 러셀의 놀라운 돌발행동!

이것이야말로 소하가 계속해서 빌드업했던 큰 그림의 결정체였다.

먼저, 다비데 차파코스타는 말 그대로 조쉬 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괜히 350억이란 거금으로 이적했음에도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 때문에, 첼시의 핵심 중 하나인 은골로 캉테는 전반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가져가야만 했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붙어줘야겠다.’

동료가 힘들어하자 위기감을 느낀 수비형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의 평균 위치가 오른쪽으로 치우쳐졌다.

빅터 모지스가 밀리긴 했어도 충분히 1인분을 해줬기에, 전방위로 커버하러 다니던 전반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에 맞춰 포츠머스의 뛰어난 재능인 니콜로 바렐라와 델리 알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몇 발자국 더 측면으로 위치를 옮겼다.

즉, 티에무에 바카요코와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앙에서 측면으로 끌어들였다는 이야기!

결국 첼시는 중앙의 선수들이 모조리 측면으로 이동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커너 러셀은 자랑스러운 포츠머스의 선수였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어떻게 공격을 잘할지’에 온 힘을 다했어요. 공격은 우리의 오리진 그 자체란 말이죠. 그리고 이 오리진은 분명히 커너 러셀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포츠머스의 선수이자 저의 자랑스러운 제자이니까요.”

커너 러셀은 분명 수비밖에 모르는 선수다. 공격하고 싶어도 재능이 따라주지 않아 할 수 없는 선수다.

그러나, 그의 영혼에는 분명히 포츠머스의 혼이 담겨있었다.

그도 지난 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포츠머스를 위해 땀을 흘린 선수였으니까.

수많은 선수가 들어오고 떠났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훌륭한 선수였으니까.

이를 증명하듯 커너 러셀은 놀라운 공간 침투로 굉장히 좋은 기회를 잡았고, 그대로 슛으로 연결했다.

-팡!

조쉬 킹이나 에링 홀란드처럼 폭발적인 힘이 담긴 슛은 아니었다.

케빈 도슨이나 스티븐 데커처럼 쭉쭉 뻗어가는 시원한 슛도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올곧은 자세로 포츠머스를 위해 헌신하던 그답게 매우 정확한 올곧은 슛이었다.

-슈와악.

커너 러셀의 발에서 출발한 공은 곧은 직선을 그리며 정확히 골대의 오른쪽 모서리로 뻗어갔다.

-철썩.

쭉 뻗은 티보 쿠르투아의 손끝을 스쳐 지나간 공은, 청량하게 골네트를 출렁였다.

[골입니다! 골! 커너 러셀이 멋진 중거리 슛으로 추가 골을 넣었습니다!]

[도대체 몇 년 만에 골을 넣은 겁니까! 정말 중요할 때 드디어 골을 넣었습니다! 이때를 위해 공격본능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요!]

침을 튀기며 환호하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와,

“커너 러셀! 러셀! 러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커너 러셀의 골을 봤다고! 그것도 결승전에서!”

“미쳤다. 미쳤어!”

핵융합처럼 터지는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커너 러셀을 반겼다.

“···.”

커너 러셀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엄청난 열광!

너무나도 생소한 경험에 어떻게 셀레브레이션을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을 짓던 커너 러셀. 그는 이윽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감독님···.”

그가 달려간 장소는 포츠머스의 테크니컬 에어리어. 번개같이 소하의 앞으로 달려간 커너 러셀은 끝내 차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소하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 자식아. 너 목소리 크잖아. 이럴 땐 이렇게 환호하는 거다.”

소하는 능구렁이처럼 커너 러셀과 어깨동무를 하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예에에에에에!”

흡사, 자기가 골이라도 넣은 듯이 굉장한 고함이었다.

아니, 해트트릭을 했다고 해도 믿을만한 격정이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으아아아아!”

언제봐도 독특한 소하의 행태에 작은 미소를 짓던 커너 러셀도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항상 조용하던 커너 러셀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렁찬 소리!

그리고 그 포효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기쁜 감정이 담겨있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

후반 25분경 터진 커너 러셀의 추가 골!

이 결정적인 골은 그대로 경기의 향방을 정했다.

-삑! 삑! 삑!

드디어 울린,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이것은 포츠머스의 3번째 FA컵 우승을 알리는 축하포이기도 했다.

[포츠머스가 또다시 기적을 써 내렸습니다! 07-08시즌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첼시를 꺾고 FA 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2-0 완승! 이로써 포츠머스는 17-18시즌에만 벌써 두 개의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환상적인 결과였다.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에서의 아쉬움을 토너먼트 대회에서 모조리 날려버리는 엄청난 업적이었다.

“선수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오롯이 저의 완전한 패배입니다. 커너 러셀은 명백하게 훌륭한 선수였지만, 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습니다. 그도 5년이나 포츠머스의 일원이었단 사실을 망각했어요. 그러니 이 패배는 저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입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만약, 커너 러셀이 아니라 마이클 반즈나, 칼빈 필립스. 혹은 유리 틸레만스였다면 선수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켰을 터.

그렇게 쉽게 공간을 내어주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을 거다.

게다가 커너 러셀의 활약은 골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0으로 접어들며 포츠머스는 완전히 수비태세로 전환했고, 여기서도 아자르를 꽁꽁 묶으며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성소하 감독은 정말 놀랍다. 이미 엄청난 감독임에도 성장하고 있어···!’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굳이 기자회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소하의 성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포츠머스는 이기는 상황에서도 수비하지 않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수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비를 하지 않는 팀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어느새 제법 훌륭한 수비 실력을 보여주면서 경기를 굳혀버렸다.

그야말로 팀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단순히 선수들의 실력이 높아지는 정도가 아닌, 경기의 운영마저도 점점 농익는 모습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경기의 운영이 매끄러워졌다는 이야기는 감독이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리그를 진행하면서 몇 번 보여줬던 모습이 모두 성장의 발판이었다니. 그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되는군.’

씁쓸한 미소를 짓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 두 번째 시즌을 무관으로 마감하며 팀을 떠나게 됐음에도 소하에 대한 기대감을 지우기는 힘든 그였다.

하여튼,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아쉬움과 기대감이 섞인 묘한 감정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포츠머스의 FA 컵 우승!

대단한 결과였으며 또 다른 축제의 시작이었다.

오늘 경기의 MOM은 당연하게도 커너 러셀이다.

조쉬 킹과 모하메드 살라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지만, 그들은 늘 해주는 선수가 아니던가.

커너 러셀같이 눈에 띄지 않은 선수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MOM으로 뽑히기에는 충분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처음으로 MOM을 받아 정말 기쁘시겠습니다. 지금 감정이 어떠신지요?”

“···좋습니다.”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커너 러셀은 잔뜩 흥분한 기자의 질문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기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조금 텐션이 떨어질 법한 무덤덤한 반응!

하지만, 포츠머스시의 언론사여서 그런지 기자는 다시 한번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고 질문을 퍼부었다.

“놀라운 골이었습니다! 평소에 수비 전문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더욱 놀라운 골이었는데요, 혹시 오늘 결승전을 위해 연습하신 겁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운이나 본능적인 슛이었나 보군요?”

“···비슷합니다.”

키우는 고양이에게 질문을 던져도 이거보다는 말을 많이 해줬을 거다.

하지만, 목석같은 커너 러셀의 태도는 마지막 질문에 무너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한 말쯤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동료들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 음침한 저에게도 언제나 유쾌하게 다가와 주는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

“또한 감독님에게는 그저,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는 말밖에 전할 말이 없습니다. 4부리그에서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을 저를 당당한 프리미어 리그의 선수로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짧은 대답에도 생글생글 웃던 기자는 커너 러셀의 폭포수 같은 대답에 그만 할 말을 잊었다.

겉보기에도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었건만. 동료들과 감독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변호사로 변하는 모습은 뭐랄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 반해 소하의 인터뷰는 언제나 그랬듯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말했잖습니까. 우리는 강팀이라고요. 이제 강팀이라 분류해 주십쇼! 네?!”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감동의 눈물 한 방울 없이 그저 강팀으로 불러 달라고 징징거리는 모습은, 과연 소하다웠다.

그래도 무척이나 기뻐 보이는 미소는 소하 또한 FA 컵 우승컵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마냥 행복한 소식만 줄줄이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후벵 디아스. 발목 염좌로 유로파 리그에 불참하게 됐다.]

[수비진에 빨간불이 들이어온 포츠머스. 후벵 디아스의 대체자로 데클란 라이스나 찰스 말로리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후반 80분경, 가벼운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당한 후벵 디아스가 결국 이탈하고 말았다.

케빈 도슨과 함께 포츠머스의 주력으로 올라선 후벵 디아스의 이탈은 탭댄스를 추던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일주일 뒤, 유로파 리그의 결승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그리 절망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성소하 감독이 있다!

그들의 믿음처럼, 소하라면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 234화. FA컵 결승전. (4)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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