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FA컵 결승전. (3) >
포츠머스의 조쉬 킹이 선제골을 넣으며 FA컵 결승전은 더더욱 불이 붙었다.
조금 신중하게 경기에 접근하던 첼시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왔고, 포츠머스는 원래 공격 일변도인 팀!
자연스럽게 경기의 템포는 빨라지고 중원을 거치는 시간은 짧아졌다.
-올리비에 지루의 헤더! 아쉽게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군요!
-포츠머스, 에링 홀랑드가 엄청난 속도로 수비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슛! 쿠르투아 골키퍼가 손끝으로 쳐냈습니다.
-에덴 아자르! 다시 한번 엄청난 드리블로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케빈 도슨이 영리한 태클로 공을 뺏어 냅니다.
-체력이 마르지 않는 앤디 로버트슨! 순식간에 끝에서 끝으로 달려가 크로스를 날립니다. 다비드 루이즈가 걷어내네요.
엄청나게 빠른 경기 속도였다.
포츠머스의 골대에서 첼시의 골대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무한으로 왕복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대머리 공룡,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싸우는 모습 같다.
이렇게 무게 중심이 앞으로 제대로 쏠린, 난잡한 경기에 양 팀의 감독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크흠.
수비를 중요시하고 무게 중심을 후방에 두길 원하는 콘테 감독은 인상을 찌푸리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의도치 않은 팀의 공격성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
하지만, 딱히 제지는 하지 않는다.
이미 한 골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히죽.
안토니오 콘테 감독에 반해, 소하는 히죽거리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으며,
매우 빠른 난전이라면,
바로, 소하와 포츠머스의 주전장이 아니던가!
첼시가 조금 불편한 방석에 앉았다면 포츠머스는 안방에서 대자로 누운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조금 첼시가 우세를 잡은 듯 보였으나 점차 포츠머스의 공격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델리 알리! 멋진 터닝 슛! 아쉽게도 티보 쿠르투아 골키퍼의 정면이었습니다!
-니콜로 바렐라. 단단한 작은 멧돼지처럼 저돌적인 돌파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중거리 슛! 아! 골대를 맞추네요.
-앤디 로버트슨의 코너킥. 케빈 도슨의 머리에 걸립니다! 아! 살짝 빗나가네요.
정신 차리고 보니 포츠머스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그림이 나와버렸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기동력은 우리가 훨씬 뛰어나니까!”
소하의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치켜올렸다.
물론, 첼시도 매우 훌륭한 팀임은 부정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기동력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는 빈말로도 훌륭하다고 하지 못할 팀이다.
올리비에 지루는 그냥 느렸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아스널 시절이면 몰라도 지금은 달리기를 잊은 선수다.
여기에, ‘느린’ 윙백 마르코스 알론소는 화룡점정!
게다가 굳이 빠르다고 칭할 수 있는 선수마저도 에덴 아자르 한 명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첼시와 정반대로 거의 다 빨랐다.
세 명의 톱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중원도 니콜라 바렐라, 델리 알리 또한 기본 이상의 주력을 자랑했다.
심지어 주력보다는 민첩함이 더욱 돋보이는 선수들이라 기동력인 측면에서는 첼시의 중원을 압살한다.
양쪽 윙백도 속도로는 절대 꿀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른쪽 윙백은 리그에서 최고로 빠른 선수 중 하나다.
결국 포츠머스에서 기동력이 장점이 아닌 선수는, 케빈 도슨과 데클렌 라이스밖에 없었다.
후뱅 디아스마저도 상당한 준족을 자랑하는 선수였으니까.
즉, 기동력이 가장 중요한 난전에서 이미 포츠머스가 전략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였다.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 바로 승리의 지름길! 괜히 콘테 감독의 얼굴이 썩은 게 아니라고.”
소하의 말처럼 콘테 감독은 이미 이곳이 불리한 전장이라는 점을 알았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골을 헌납했는데. 선택지가 없었겠지.”
지고 있는 팀은 선택할 선택지가 적다.
결국 골을 넣어야만 패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콘테 감독은 난전이란 흐름에 몸을 맡긴 것!
본인들이 위험해진 만큼 포츠머스도 위험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시 명장은 명장이야.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승부수를 띄운 거지.”
불리한 전장에서 활로를 찾는다.
보통 강심장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도 조금 무모한 방식임은 부정할 수 없다.
불리한 전장에서 승리를 쟁취하려면 놀라운 전술적 성과는 필수 불가결이다.
전략적으로 이미 져버린 상황을 전술적인 승리로 메꾸려는 시도는 언제나 어려운 법!
하지만, 첼시에는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전술적 부분이 존재했다.
[에덴 아자르! 오늘 펄펄 날아다닙니다. 또다시 멋진 드리블을 보여주며 날카로운 컷백을 찔러주네요.]
[공격포인트는 없지만 정말 대단한 활약입니다.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고 있어요!]
바로, 에덴 아자르라는 필승 카드였다.
후반 40분이 지나도록 전략적으로는 계속 지고 있음에도 에덴 아자르는 계속해서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마치, 전쟁에서는 계속 지고 있지만, 전투에서는 무패를 자랑하는 패왕, 항우의 강림이 따로 없다.
“흠···. 계속 이대로 전술적 승리를 깡그리 모은다면 전략적 승리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소하는 눈을 번뜩였다.
아무리 불리한 전황이라도 영웅적인 전술적 승리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면, 판이 뒤집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러셀아. 준비해라.”
“···네.”
수비 전문 미드필더 커너 러셀은 소하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이라 의문이 생길 법도 했지만, 묵묵히 명령에 따르는 모습이 참으로 듬직하다.
[어? 포츠머스가 교체를 준비합니다. 데클란 라이스를 불러들이는데요?]
[상당히 이른 교체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전반전에 교체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거든요.]
장내 해설과 아나운서는 상당히 당황했다. 보통, 이른 교체는 선발진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츠머스는 이미 강적 첼시를 상대로 압도적인 우세였고 이미 한 골 앞선 상태다.
즉, 완벽한 선발명단이었다는 뜻!
게다가, 이기고 있는 팀이 먼저 변화를 주는 건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라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러셀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 임무를 알고 있겠지?”
“···네.”
“포지션은 상관없다. 그냥 에덴 아자르만 따라다녀라.”
“···알겠습니다.”
“너를 믿는다.”
전문가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든 말든, 소하는 곧바로 커너 러셀을 투입했다.
“수고했다. 네가 못해서 교체한 게 아니야. 너도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소하는 훌륭한 경기를 펼쳤지만 빠르게 교체당한 데클란 라이스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보통 이른 교체는 선수의 자존심을 깎아 먹을지도 모르는 일. 충분한 심리 캐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데클란 라이스는 쾌활하게 미소를 지어줬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우승컵을 위해서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전 감독님이 어떤 명령을 내리시더라도 따를 겁니다.”
참으로 훌륭한 선수였다.
하긴, 데클란 라이스는 원래부터 소하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다.
첼시의 유소년팀에서 버려진 자신을 직접 찾아와 영입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국가대표급으로 키워준 사람이 소하다.
부모님만큼이나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자, 그럼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럼, 콘테 감독의 반응을 봐볼까?”
씨익 웃는 소하.
슬쩍 훔쳐본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굳어지자 늘 그렇듯 사악한 썩은 미소를 지었다.
***
‘···무슨 뜻이지?’
전반 41분.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투입한 소하의 선택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에게 두통을 선물했다.
‘목적은 알겠다.’
목적은 쉽게 파악이 됐다.
에덴 아자르를 전담 마크하겠다는 뜻임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 거다.
‘하지만 왜?’
에덴 아자르를 ‘완벽하게’ 막아서 지울 수만 있다면 좋은 선택이긴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커너 러셀 정도로는 남은 시간 내내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을 거다.
이것은 콘데 감독도 알았고 소하도 분명히 아는 사실이다.
‘물론, 데클란 라이스보다는 아자르를 더욱 귀찮게 만들겠지. 그렇다고 해도 잃는 것이 너무 많다.’
데클란 라이스는 단순히 수비만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수비는 수비대로 잘하고 빌드업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다.
여기에 더해서 종종 튀어나오는 오버랩으로 공격에도 큰 힘을 불어넣어 주는 대단히 좋은 선수란 말이다.
이에 반해 커너 러셀은 비글처럼 엄청난 활동량과 굉장히 뛰어난 전담 마크가 장점인 선수일 뿐.
공격성은 아예 없었으며 패스도 간단한 패스나 백패스 말고는 하지 못하는 단점투성이 선수였다.
요컨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많은 교체였다.
‘그리고 너무 냄새가 나는 미끼다. 성소하 감독이 그간 보여줬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이기는 상황에서 수비를 강화한다고?
이것은 소하의 포츠머스하고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행위였다.
포츠머스는 선제골을 넣으면 더욱더 공격적으로 임하는 팀으로 유럽에서 매우 유명한 팀이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포츠머스가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의 승률이 90%에 육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기반한 것이다.
덤으로 다득점으로 승리하는 이유도 똑같은 이유였고.
그런데, 평소답지 않게 수비를 강화하는 카드를 먼저 꺼낸다? 냄새가 풍겨도 너무 풍겼다.
‘일단 두고 봐야겠군. 잘만하면 역전의 기회가 생긴 건 분명하다.’
아무리 봐도 바로 반응하기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쪽이 이득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삑! 삑!
이윽고 별다른 이상은 생기지 않은 채 전반전은 종료되었고,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라커룸으로 향했다.
소하가 뿌려둔 작은 불안감과 함께 말이다.
***
-삑.
포츠머스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변화를 준 포츠머스는 그대로 후반전에 임했고, 첼시 또한 일단은 전반전에서 변화를 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미끼를 푼 사람이야 당연히 기다리는 게 순서였고, 첼시 또한 미끼를 풀었다고 덥석 무는 멍청한 물고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계획대로 진행되는군요.”
“···무슨 생각이십니까?”
소하의 썩은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자 밀러는 비지땀을 흘리며 슬쩍 물어봤다.
“성동격서, 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전 아시안이 아닌 잉글랜드 인입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흠. 그렇겠네요. 성동격서란 병법 ‘삼십육계’ 중 승전계의 제6계에요. 무협지에서도 많이 쓰는 전술이죠.”
“···.”
밀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온종일 틀어박혀 축구에만 미쳐있는 사람이 뭐 이리 아는데 많은지 모를 일이다.
“큼큼. 하여튼, 그게 무슨 병법입니까?”
“한자를 알면 쉬워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습격한다!”
“우회 공격이란 말이죠?”
“얼추 비슷하죠. 적의 수비를 흩트려두고 기습공격을 가하는 거니까요.”
검지를 치켜들며 의기양양한 소하!
그에 반해 밀러의 표정은 한층 더 아리송해졌다.
“원뜻인지는 대충 알겠군요. 좋습니다. 커너 러셀은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라는 건 이해했어요. 근데 기습공격은 누가 합니까?”
소하의 말처럼 성동격서를 하려면 기습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소하가 교체로 투입한 선수는 커너 러셀 한 명뿐이었다.
“그야, 이미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죠.”
“···커너 러셀이 들어왔다고 그 선수가 갑자기 잘해지는 겁니까?”
“아니요.”
“···.”
“다만, 콘테 감독이 커너 러셀에게 집중하느라 첼시의 약해진 부분을 눈치채지 못하겠죠.”
“첼시가 약해졌다고요? 누가···.”
밀러의 질문은 소하가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때마침 주심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답을 대신해줬기 때문이다.
-삑!
[반칙입니다. 빅터 모지스가 너무나도 거친 태클로 옐로카드를 받는군요.]
[평정심을 잃은 모습입니다! 거칠게 항의하는데요. 사실 이런 태클은 항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명백하거든요.]
그렇다. 그랬던 것이었다.
소하가 노리던 부분은 바로 꾸준히 조쉬 킹에게 정신공격을 받던 빅터 모지스였던 것이었다.
커너 러셀이란 연막을 쳐 점점 멘탈이 부서지던 빅터 모지스를 숨기는 데 성공한 소하였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죠.”
“···.”
진득하게 미소를 짓는 소하의 모습에 밀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정말, 비열함으로는 세계 최고의 감독임을 또 한 번 인정하는 밀러였다.
< 233화. FA컵 결승전. (3)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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