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준결승전들. (2) >
여름이 슬슬 다가오는 4월의 마지막 주. 포츠머스에 잉글랜드의 날씨 같지 않게 모처럼 창연한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슈루루룩.
남태평양의 산호바다를 가로지르는 고래처럼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푸르른 하늘을 갈랐다.
물론, UFO 같은 이상한 물체가 아니다.
그저 포츠머스의 자랑스러운 11번, 모하메드 살라의 왼발에서부터 출발한 프리미어 리그의 공인구였다.
-샤아악.
가볍고 날카롭게 대기를 가르는 모하메드 살라의 크로스!
아슬아슬하게 사우스햄튼의 수비수, 요시다 마야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통과했다.
-틱!
포츠머스의 선발 공격수로 나온, 마리오 발로텔리가 재치 있는 헤더로 크로스의 궤적만 바꾸었다.
-텅, 철썩!
왼쪽 골포스트 바를 맞추며 모하메드 살라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골입니다! 골! 후반 86분, 마리오 발로텔리의 해트트릭이 터집니다!]
[3-0! 끝났습니다. FA 컵 결승전 진출팀은 포츠머스가 확실해 보입니다. 최고의 라이벌을 단두대 매치에서 이기고 당당하게 올라가겠네요!]
마리오 발로텔리가 포츠머스 소속으로서 처음으로 달성한 해트트릭이었다.
3년 가까이 포츠머스에 머물며 악동에서 제법 성숙한 축구선수로 환골탈태한 마리오 발로텔리!
해트트릭과 함께 팀을 FA 컵 결승전으로 이끌며 결초보은에 성공했다.
“예압!”
“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친한 조쉬 킹과 함께 이상한 손동작을 하며 해트트릭을 자축하자 서포터들도 더욱 신이 났다.
“마리오! 마리오!”
“슈퍼 마리오!”
“그는 신인가? 그는 신인가?”
프래튼 파크를 찾은 서포터들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119년의 긴 역사 속에서 단 두 번밖에 가보지 못한 FA컵 결승전!
07-08시즌 이후 정확히 10년만인 세 번째 결승전 진출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포츠머스의 서포터는 없었다.
심지어 짓밟고 올라가는 상대가 철천지원수였으니. 맨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이 오히려 맨정신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너흰 이제 우리한테 안 돼!”
“라이벌? 어디서 기어올라?”
“지금까지 5번 붙었는데, 5승이네? 어휴. 너무 시시해.”
“이제 너희는 본머스랑 놀아라. 수준 떨어져서 못 놀아주겠으니까.”
“리버풀 위성구단 주제에 어디서 감히! 다음 시즌엔 누구를 넘길 거냐?”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제법 예절 바르기로 소문났지만, 사우스햄튼에게만은 예외였다.
아픈 곳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모습을 보면, 평소에는 어떻게 인성이 좋다는 말을 듣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씨발.”
“아. 미치겠다.”
“하아. 진짜 힘들다.”
“아니···. 저 병신구단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큰 거야···.”
“진짜 몇 년 전만 해도 존재감도 없는 새끼들이었는데···.”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그저 깊은 한숨을 내뱉었을 뿐. 어떠한 반론의 말조차 하지 못했다.
2년 동안 5번을 만났는데, 이기기는커녕, 단 한 번의 무승부도 거두지 못했다는 현실은 화를 낼 의욕조차 사라지게 했다.
게다가 ‘리버풀의 위성구단’이란 잔인한 조롱에도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실제로 꾸준히 팀의 에이스들을 리버풀에 팔아 치웠기 때문이다.
나다니엘 클라인.
아담 랄라나.
사디오 마네.
리키 램버트.
그리고 이번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엄청난 이적료를 받고 넘긴 버질 반다이크까지.
툭하면 핵심 선수들을 리버풀에게 헌납하는 처지라 포츠머스의 조롱은 조롱보다는 사실적시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욱 분한 사실은, 화가 나기보다는 부럽다는 감정이 더욱 크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저런 감독이 있었다면···.’
사우스햄튼의 서포터들은 그저, 경기가 끝나고 이상한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소하를 부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포츠머스의 역사상 3번째이며 10년만인 FA 컵 결승전 진출에 성공한 소하!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유로파 리그 준결승전, 1차전을 치르기 위해 스포르팅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가 보기엔 이제 우리 구단도 전용기가 있어야 해. 이게 뭐야. 맨날 빌려 타잖아.”
투덜투덜.
소하는 비행 도중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마치, 같이 함께 탄 구단 프런트들이 들으라는 듯 매우 큰 목소리로 말이다.
“···.”
“···.”
“비, 비행기···.”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구매하라는 은은한 압박에 프런트의 핵심 인사들은 비지땀을 줄줄 흘렸다.
‘비, 비행기 가격이 얼마지?’
포르투갈에 일이 있어 예기치 못하게 합승한 재무 이사, 니엘 비숍은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미친. 2억 달러가 넘잖아?’
2억 달러.
한화로 2,500억이 넘는다.
전용 버스도 제법 비쌌지만, 비행기의 가격에 비하자면 그냥 장난감이었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거대 구단들은 전용기를 보유하긴 했다.
워낙에 대륙 간 이동이 많은 팀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앞으로의 포츠머스도 잔뜩 이동할 테니 필요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비싸도 너무 비쌌다.
“가, 감독님 이건···.”
“아! 우리도 비행기에 포츠머스의 푸른색을 칠하고 선수 사진도 박아서 기깔나게 이동하고 싶다.”
“···.”
삐질삐질.
니엘 비숍의 이마에서는 폭포수처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명령이다···!’
단순한 투덜거림도 아니었으며, 부탁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사라는 이야기였다.
‘음···. 뭐, 전용기라고 무조건 제값 주고 사는 건 아니니까···.’
항공사에서 빌리는 식으로 전용기를 보유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아니, 애초에 돈이 썩어나는 맨체스터 시티 같은 구단이나 완전히 소유하지, 대부분은 빌리는 식이었다.
‘그래도 가격이 장난 아닐 텐데···.’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며칠 빌리는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수천억짜리 비행기를 수년 내내 빌린다? 대충 견적을 때려 맞춰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가격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시즌이 끝나자마자 신축 경기장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텐데···. 재, 재정에 여유가 되려나?’
신축 경기장!
이미 사전 밑 작업을 모두 끝내고 드디어 첫 삽을 뜨기 일보 직전이다.
수용인원 6만여 명의 최첨단시설을 모조리 때려 넣는, 엄청난 경기장의 건설이 코앞이란 말이다.
‘사실 신축 경기장 건으로도 우려가 큰 상황인데···.’
니엘 비숍은 머리를 긁적이면 난감해했다. 그의 생각처럼, 포츠머스의 신축 경기장 건설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프리미어 리그에서 겨우 2년 차인 포츠머스에게 10억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사업은 구단을 쫄딱 망하게 할지도 몰랐다.
즉, 소하가 꾸준히 팀을 챔피언스리그에 보낼 거라는, 엄청난 도박수를 근거로 한 위험한 사업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이미 두 번째 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졌다.’
현재, 포츠머스의 리그 순위는 5위.
4위인 토트넘과 승점이 7점이나 차이가 난다.
게다가 남은 경기는 고작 4경기뿐. 솔직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진출에 실패한 것과 다름없었다.
‘뭐, 구단주님께서도 막대한 지원을 해주시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더 지출을 늘리긴 힘들다.’
얼른 보면 무모한 사업이지만, 당연하게도 리처드 맥닐이란 든든한 뒷배가 있어서 탈이 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용기라는 엄청난 지출을 추가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절대 아니다.
‘이상하군. 분명 감독님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니엘 비숍은 전전긍긍하다가 드디어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소하라면, 감독인 주제에 재무 이사인 자기 자신보다 구단의 재정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지 않던가!
거의 구단주 대리급인 사람이 이러한 요구를 한다는 건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다는 말이었다.
‘호오. 바로 그렇군!’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니엘 비숍은 무언갈 눈치챘는지 슬며시 소하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큼큼. 감독님.”
목청을 가다듬고 다 들리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소하를 부른 니엘 비숍.
그 모습에 소하도 진득한 미소와 함께 큰 목소리로 화답한다.
“네! 재무 이사, 니엘 비숍님.”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전설적인 감독과 팀의 재정을 담당하는 핵심인사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당연하게도 소하와 니엘 비숍의 목소리는 선수들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었다.
“말씀하신 전용기 말입니다.”
“네, 벌써 구매하셨다고요? 언제 와요? 일주일 안으로 오나? 한국에서는 이틀 내로 무조건 오거든요. 쿠펑맨들이 전국을 돌아다녀서요.”
“···.”
비행기 구매를 택배 취급하는 소하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잊은 니엘 비숍. 곧 정신은 차리고 유창하게 대답한다.
“그게 말이죠. 견적은 짜봤지만, 조금 아쉽게 됐습니다. 재정적으로 간당간당해서요.”
니엘 비숍은 무척이나 아쉽다는 투로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에, 엿듣던 선수들마저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전용기 타고 싶은데.’
‘괜히 기대했네.’
‘엄청 편하던데. 솔직히 전용기가 있으면 컨디션 관리에 더 좋긴 할 거 같아.’
‘아쉽다.’
‘우린 경기장도 지어야 하니까···.’
매우 아쉬워하는 선수들!
그들의 생각처럼 앞으로 뻔질나게 전 유럽을 떠돌아야 하는 생활에는 전용기만큼 편한 게 없었다.
그리고 편하다는 이야기는 컨디션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뜻이 아니던가.
좋은 컨디션은 곧 좋은 경기력이었으니, 선수들이 아쉬워할 만도 했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던 선수들의 귓가에 또다시 니엘 비숍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일단 저는 다음 시즌 예산을 ‘유로파 리그 진출’에 맞춰서 잡아놨습니다.”
“음. 그럴 수밖에 없죠. 이미 4위를 달성하기는 힘드니까요.”
“네, 감독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만약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게 된다면 상당히 여유가 생깁니다.”
쫑긋!
선수들은 소하와 니엘 비숍의 대화에 귀를 쫑긋거렸다.
‘현재 상황에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해야 한다고? 그럼···.’
방법은 오직 한가지뿐.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는 길밖에 없었다.
“아, 그렇군요. 저엉말 아쉽네요. 아쉽게도 전용기는 힘들겠네요.”
“그래도 만약을 대비한 재무 계획표를 세워두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프런트는 언제나 감독님과 선수들은 믿으니까요.”
“항상 감사합니다아.”
소하는 눈을 찡긋거리며 즉흥 연극에 어울려준 니엘 비숍에게 감사를 표했다.
‘역시 재무 이사님이셔. 제가 좋아하는 거 알고 계시죠? 제법 훌륭한 연기였어요.’
‘당연하죠. 제가 누굽니까. 감독님의 왼팔 아닙니까.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서로 눈을 찡끗거리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소하와 니엘 비숍이었다.
물론, 대화를 엿듣던 선수들의 의욕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
전용기라는 사심 가득한 욕심 때문인지,
순수한 우승을 향한 열망인지,
혹은 둘 다인지는 선수들만 알겠지만, 포츠머스의 실력은 매서웠다.
[또다시 포츠머스가 원정경기에서 승리합니다. 이로써 32강부터 4강까지 원정경기에서 모조리 승리하는군요.]
[원래 홈에서는 매우 강한 팀으로 유명했지만, 원정에서도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스포르팅 리스본의 홈구장, 이스타디우 주제 알발라드 경기장에서 포츠머스는 또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결과는 2-1.
압도적인 결과는 아니었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을 생각해보자면 이미 결승전 진출을 확정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스포르팅을 프래튼 파크에 부른 포츠머스는 또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축제입니다! 포츠머스가 창단 첫 유로파 리그 진출을 달성했습니다!]
[허허. 리그컵 우승이 포츠머스를 완전히 각성시켰어요. 아쉬웠던 챔피언스리그의 악몽을 딛고서 기어코 일어섰습니다!]
길고 긴 포츠머스의 역사상 처음으로 유로파 리그 결승전 진출에 성공한 소하였다.
-성소하 감독의 동상을 세워야!
-감독님이 네 친구냐? 님 붙여라!
-모금하자. 포츠머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에게 동상이 없을 순 없어.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난리가 났다.
유럽대항전에 진출한 것도 기적이었거늘. 꿈에서도 못 꿀 결승전까지 진출하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 농담이 아니었던지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제대로 활동을 시작했다.
[성소하 감독의 동상 모금.]
한 열성 서포터의 모금 캠페인은 순식간에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일주일 만에 100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먹고 튀진 않겠지?”
소하가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흠. 이제 결승전만 남았군.”
금(도금) 동상이 세워진다는 뉴스에 함박웃음을 짓던 소하는 이내, 웃음기를 쫙 빼고 결승전 상대들을 바라보았다.
FA컵 결승전, 첼시 FC.
유로파 리그 결승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히 어깨를 마주할 수 없는 거인들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포츠머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230화. 준결승전들. (2)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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