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준결승전들. (1) >
리그컵 우승!
아무리 무게감이 낮다고는 하지만 평생 이 우승컵 하나 들지 못하는 선수가 수두룩하게 빽빽한 타이틀이다.
어디 우승컵 취급도 해주지 않는 ‘아우디 컵’ 같은 우승 하고는 차원이 다른, 진또배기 우승컵이란 말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수십 년이 지나도 인정해줄 우승컵을 손아귀에 쥔 포츠머스의 기세는 제대로 올랐다.
“리그컵이 이 정도인데, 리그 우승이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어떤 기분일까?”
“솔직히···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꿈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니까 느낌이 다르다.”
“뭐랄까. 이제야 진심으로 감독님의 꿈에 합류한 기분이야.”
꿈의 단편을 맛본 선수들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진심으로 ‘최고’를 노리기 시작했다.
동네 야산이라도 정상을 밟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완등’의 기분이 다르듯이 말이다.
동네의 뒷동산을 완등해본 기쁨과 성취감은 이제 제대로 된 산을 완등하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붙였다.
“좋다, 좋아. 이제야 진짜로 우승컵을 노리는 팀의 모습 같구나!”
의도했던 대로 선수들의 사기가 급격히 오르자, 소하 또한 덩달아 신이 났다.
아니, 애초에 소하 자신도 꿈의 단편을 맛보고 나서 더욱 의욕이 폭발한 상태였다.
“이 기세로 모조리 때려잡자!”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모를, 밀짚모자를 눌러쓴 소하의 명령에, 포츠머스라는 거인은 본격적인 진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 위엄차고 묵직한 진격의 첫 희생자는 프리미어 리그 27라운드의 상대 스토크 시티였다.
[4-0! 포츠머스가 스토크 시티를 엉망진창으로 만듭니다!]
[뭔가···. 뭔가 달라졌습니다. 팀 자체의 체급이 한 차원 상승한 느낌이에요.]
해설의 말처럼, 전까지는 다크호스가 놀라운 잠재성을 발휘해 승리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원래 잘하고 날아다니는 강팀이 약팀을 쉽사리 요리하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5년이나 멈추지 않았으며,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초특급 유망주들의 성장.
새로 영입된 특급 재능들과 기존 선수들의 융화.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폭발한 동기부여와 자신감.
진정한 강팀으로 변하기 위한 삼박자가 모조리 맞아떨어지며 발생한 진화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결정적인 상황에서 눈물을 삼키며 마셨던 패배의 쓴잔은 포츠머스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었을 터.
이제는 어느 팀이든 포츠머스를 만날 때는 몸을 조금 사려야 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천재지변이란 존재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순 없는 노릇 아니던가.
FA컵 8강전의 상대, 레스터 시티와 유로파리그 16강전의 상대, CSKA 모스크바가 바로, 천재지변의 희생양들이었다.
[레스터 시티, FA 컵 8강전에서 포츠머스에 3-1 패배를 당합니다!]
[모스크바, 홈에서 2-0으로 당한 패배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포츠머스는 홈에서 두 골을 더 넣으며 종합 스코어, 4-0으로 8강에 진출하는군요!]
FA 컵 4강전 진출!
유로파리그 8강전 진출!
3월 경기 전승!
이라는,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 포츠머스였다.
[정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기세입니다! 과연, 이번 시즌 포츠머스가 얻어낼 성과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물론, 앞으로의 리그 경기에서 모조리 이긴다고 해도 리그 우승은 힘들다.
기껏해야 턱걸이 4위 정도?
하지만 남은 컵대회인 FA컵과 유로파리그의 우승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엄청난 업적이다.
‘컵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는 포츠머스의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수십, 수백만 명의 축구팬들의 머릿속에는 어느덧 또 다른 기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올랭피크 리옹.
프랑스의 1부리그, ‘리그 앙’에 속한 명문 중의 명문 구단이다.
파리 생제르맹이 엄청난 자본금으로 리그를 독점하기 전까지만 해도 리그 앙을 말 그대로 압살하던 근본이 넘치는 구단이기도 하다.
이들이 세운 사상 최초의 ‘리그 7연속 우승’ 기록은 그들이 얼마나 강팀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특히나, 매년 세계 구급 유망주를 배출하는 그들의 유소년 시스템은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와 비견될 정도!
이렇듯 프랑스 리그를 넘어, 유럽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올랭피크 리옹은 때아닌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유로파리그 8강전에서 포츠머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8강 팀인, 아스널, AC밀란, 라이프치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치오, 스포르팅보다는 제법 무게감이 낮은 이름값이긴 하다.
그러나 요즘 포츠머스의 기세는 다른 팀들을 압살할 정도로 무서웠다.
“···쉽지 않습니다. 포츠머스는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까지 잡아냈어요.”
“FA 컵과 유로파리그까지 합치면 9연승입니다···.”
“9경기 동안 37득점을 하고 7실점밖에 하지 않았어요. 단언컨대 유로파리그에 남은 구단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상태입니다.”
그냥저냥 한 약팀들을 잡아냈다면 이렇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주제 무리뉴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0으로 부숴버렸으며,
18연승을 달리던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마저도 리그에서 침몰시켰다.
게다가 유로파리그에서도 또다시 멀고 먼 러시아 팀을 만났음에도 쉽게 때려잡은 포츠머스다.
“포츠머스라는 이름값을 빼고 보자면, 명실상부한 우승 후보입니다···.”
올랭피크 리옹의 수뇌들은 나날이 수심이 깊어졌다.
이번 난관만 벗어난다면 4강이었고, 곧 결승전도 코앞이었거늘.
그 어느 것도 쉽지 않다.
“일단 홈에서 최대한 이득을 취해야겠지요. 약점을 후벼 파서 승리를 가져간다면···.”
“약점이요? 그게 있습니까?”
“···.”
약점이 있냐는 물음에 전력분석관은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최근 10경기에서 포츠머스가 보여준 모습에 약점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골키퍼는···. 마지막 불꽃을 내뿜는 페트르 체흐와 그런 그에게서 모든 것을 이어받은 아론 람스데일이 있어요.”
“엄청난 선수들입니다. 특히나, 아론 람스데일은 대단한 선수가 될 거예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위퍼 키퍼의 자질도 뛰어났지만, 페트르 체흐에게 정통적인 골키퍼의 능력도 모조리 흡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트르 체흐와 아론 람스데일.
원래 이 둘은 스타일이 완전히 정반대인 선수였다.
빌드업의 아론 람스데일.
선방 능력의 페트르 체흐.
그런데, 서로 함께 지낸 지 2년이 돼가자, 유망주였던 아론 람스데일이 페트르 체흐의 축구 실력을 모조리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괴물인, 빌드업을 잘하는 페트르 체흐가 바로 아론 람스데일이었다.
“매우 뛰어난 잠재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선수인데···.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골키퍼는 약점이 없군요. 그럼 수비로 넘어가죠.”
“수비에도 약점이 없어요. 앤디 로버트슨은 이미 리그 최고의 풀백이고, 케빈 도슨과 후벵 디아스도 철벽을 자랑하고 있죠.”
처음에는 찰스 말로리의 백업이었던 후벵 디아스는, 훗날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수비수답게 어느덧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즉,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와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가 호흡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약점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다.
“그나마 오른쪽 풀백이 약점이었는데···.”
“이번 시즌에 데려온 아슈라프 하키미가 각성했죠. 아마 레알 마드리드는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아슈라프 하키미!
폭발적인 주력으로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주는 이 유망주는, 이미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오른쪽 측면의 공포로 자리를 잡아 버렸다.
물론, 공격력과 비교해 수비력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의 뒤를 커버해주는 선수가 후벵 디아스라는 명수비수여서 약점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뭐···. 노려볼 만은 하지만, 글쎄요. 오른쪽 측면에서 괜히 공격적으로 나가면 오히려 우리 쪽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중앙수비수의 뒷받침에는 한계가 존재했기에 충분히 노려볼 만은 했다.
그러나, 공격력이 문제였다.
괜히 공격적으로 나가다가 모하메드 살라와 아슈라프 하키미에게 호되게 혼날 확률이 훨씬 확률이 높아 보였다.
이를 노려보기 위해선 포츠머스보다 강한 측면 공격력이 필요한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음···. 미드필더는···. 넘어가죠.”
“네···.”
수비수에서 눈길을 돌린 올랭피크 리옹의 수뇌들은 미드필더는 보지도 않고 그냥 넘어갔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저 완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국가대표가 빡빡하게 포진되어있는 건 둘째 치더라도 니콜라 바렐라, 유리 틸레만스 같은 유망주들도 유망주 같지 않은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중이었으니까.
그나마 조금 떨어진다는 커너 러셀이나 마이클 반즈 같은 선수들도 자신만의 강점이 확실한 선수들이었기에, 약점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공격진은···. 하아.”
“···이게, 5년 전까지만 해도 4부리그에 있던 팀의 공격진이라고요?”
“성소하 감독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요?”
“왜 유로파리그에 있죠?”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모두 강하긴 했지만, 공격진에 비교해보니 제법 약해 보이는 착시까지 일어났다.
“모하메드 살라···. 에링 홀란드···. 조시 킹···.”
“마리오 발로텔리, 도봉산, 잭 해리슨, 알랑 생맥시맹···.”
확실한 구분이 모호하긴 했지만, 후보라고 여겨지는 선수들마저도 올랭피크 리옹에 오면 토할 때까지 주전으로 뛸만한 선수들이었다.
“음···. 최선을 다해봅시다.”
“네. 일단 최선을 다해야겠죠.”
“힘들지만 부딪쳐봅시다!”
엄청난 선수진의 위용에 상당히 당황했지만, 올랭피크 리옹의 수뇌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선수의 이름값은 이름값이었을 뿐. 축구공은 둥글고 축구 경기는 11명이 하는 거였으니까.
전술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떤 팀이든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였다.
***
“뭐래. 킥킥.”
소하는 올랭피크 리옹과의 유로파리그 8강전 2차전의 결과를 바라보며 한껏 썩은 미소를 지었다.
결과는 3-1.
1차전의 1-0 승리와 합쳐서 종합, 4-1의 점수로 4강전 진출에 성공했다.
“나로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님 같은 느낌이지.”
굉장히 오만한 발언이었지만, 의외로 꽤 흡사한 면이 많았다.
이순신 장군.
전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났지만, 전략적인 식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시대의 명장!
“보통은 싸우기도 전에 승리하신 분이었지. 과정을 쌓아서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업을 만드신 분이랄까.”
이미 싸우면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싸웠기에 불패를 달성한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소하가 만들어낸 포츠머스도 똑같았다.
수년 동안 꾸준히 구단 내의 모든 일에 관여하면서 이길 수밖에 없는 팀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젊고 재능 넘치는 선수들.
건강한 재정 능력.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쌓아온 구단의 인지도.
5년이나 영혼에 때려 박은 공격적인 전술.
이 모든 것들은 긴 시간 꾸준히 이루어졌기에 팀의 근본이 되었다.
팀이 어려웠을 때부터 분수도 모르고 강팀이 되기 위해 쌓아 올린 근본은, 이미 전략적인 안목에서 보자면 승리를 달성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제 칠천량 해전 같은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거다.”
쌓아 올린 근본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참사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꿈은 손아귀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포츠머스는 그동안 좋지 않았던 운을 보답받기라도 하듯, 대진까지 좋았다.
FA컵 준결승전, 사우스햄튼.
유로파리그 준결승전, 스포르팅.
상당히 해볼 만한 팀들과 결승전으로의 진출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스포르팅보다는 사우스햄튼이 조금 걸리적거리긴 할 텐데.”
스포르팅은 객관적으로 봐도 포츠머스가 상당히 우세다.
사우스햄튼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철천지원수를 만나는 상황은 썩 달갑지 않았다.
“자고로 경쟁심에 불이 붙으면 가진 실력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기 마련이니까.”
소하는 결승전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상대 팀들을 자세히 분석하며 승리로 향하는 길을 그리기 시작했다.
< 229화. 준결승전들. (1)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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