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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천재 감독-228화 (228/306)

< 228화. 리그컵 결승. (5) >

모하메드 살라의 선제골은 경기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특기 중 하나인 역습을 제대로 성공시킨 포츠머스는 기세가 올랐고,

익숙하지 않은 전술과 대형으로 경기에 임하던 맨체스터 시티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공격적이었나?’

선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진첸코는 멘탈이 크게 흔들렸다.

너무 전진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델리 알리가 패스길을 잡아냈고, 모하메드 살라도 침투할 여건이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진첸코의 생각보다 크게 자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3~5m쯤.

즉, 어디까지나 찰나의 빈틈을 뚫어낸 포츠머스 선수들의 능력이 대단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처음 겪어보는 전술 속에서 진첸코가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했을 리가 없다.

‘좀 많이 내려가자.’

3~5M 정도 실수한 사실을 모른 채 진첸코는 10m 이상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진첸코의 이 선택은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리듬을 완전히 깨트려 버리는 악수였다.

“뭐 하는 거야! 더, 더 앞으로 가라고! 그렇게 뒤로 물러나 있으면 3백을 채용한 이유가 없잖아!”

진첸코의 잘못된 선택에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선제골의 빌미가 된 작은 실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작은 실수 때문에 주눅 들어 큰 실수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 어···?!”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벼락같은 꾸중에 진첸코는 완전히 고장이 나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전술.

익숙하지 않은 역할.

우승컵이 걸린 경기의 중압감.

절대적인 보스의 해일 같은 분노.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진첸코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안절부절못하며 공격과 수비 모두 엉망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

번쩍!

경기장을 주시하던 한 인물이 눈빛을 번뜩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매우 불행하게도, 약점을 후벼파는 능력만큼은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인간에게 제대로 걸려버렸다.

“지금이다! 진첸코가 고장 났다!”

버럭!

진첸코가 엉망이 됐다는 점을 순식간에 파악한 소하가 노호성을 내지르며 오른쪽 측면으로의 집중 공격을 명했다.

“···!!”

“알겠습니다.”

“바로 그거군요.”

끄덕. 끄덕.

소하의 명령이 떨어지자 포츠머스의 선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 스승의 그 제자답게 진첸코가 맨체스터 시티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했음을 빠르게 눈치챘다.

“가자.”

소하가 내지른 고함의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오른쪽을 향해 포츠머스의 맹공격이 퍼부어졌다.

“아, 안 돼.”

이를 목격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기겁하며 빠르게 파비안 델프를 준비시켰다.

전반 중반이라는 매우 이른 시간이었지만 빠르게 교체를 통해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금 늦었다.

[모하메드 살라가 이번에는 앤디 로버트슨의 좋은 긴 패스를 쉽게 받아냈습니다!]

[왼쪽 수비지역에서 오른쪽 공격지역까지 단 한 번의 패스밖에 사용하지 않은 포츠머스의 멋진 플레이입니다!]

50m가 넘는 패스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앤디 로버트슨의 멋진 플레이가 나왔다.

이게 왼쪽 풀백인지, 패스로 유명한 미드필더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멋진 패스!

“와우.”

바뀌기 전의 미래에서도 동료였으며, 바뀐 현재에도 동료인 모하메드 살라는 앤디 로버트슨의 멋진 패스를 안정적으로 잡아내고 질주를 시작했다.

-파파팟.

또다시 선제골과 같이 엄청난 속도로 오른쪽 측면을 질주하는 모하메드 살라!

순식간에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공을 몰고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의 선택은 슛이 아닌 컷백.

이번에도 엄청난 달리기 솜씨로 박스 안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한 조쉬 킹에게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를 가르는 멋진 컷백을 시도했다.

-샤악.

잔디 끝을 시원하게 가르며 날아간 모하메드 살라의 컷백은 막힘없이 조쉬 킹의 오른발에 안착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올 장면은 매우 명확하고 명백했다.

-쾅!

한 번의 좌절을 겪고 최고를 노리는 선수로 각성한 조쉬 킹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철써억!

에데르송 골키퍼가 몸을 날리기는커녕 공의 위치마저 순간 놓쳐버릴 정도의 강슛은 그대로 골망을 찢어발겼다.

“우오오오오!”

좌절감이 키운 사나이, 조쉬 킹은 수적 열세에 처한 포츠머스 서포터석으로 포효하며 달려 들어갔다.

“우호!”

열광하는 서포터들 앞에서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보디빌딩의 규정 자세,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를 취하는 조쉬 킹!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다운,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셀레브레이션이었다.

***

전반 28분 터진 조쉬 킹의 추가골은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거의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

“이게···. 이게 말이 되나?”

“갑자기 왜 이상한 전술을 들고 온 거야? 이유가 뭐냐고!”

“아니, 포츠머스한테 지금 전반전에만 2-0으로 끌려가고 있는 게 맞나?”

“미치겠다.”

이미 우승컵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기던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은 얼이 나갔다.

부비적, 부비적, 눈을 비벼보며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모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이었을 뿐.

괜히 눈만 더 밝아져 비참한 현실을 더욱 생동감 있게 관람하게 되었다.

반면, 물량에 밀려 조금 주눅이 들었던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상당히 표정이 밝아졌다.

“혹시?”

“설마···.”

“일단 설레발은 자제하자.”

“스코어는 잊고 응원만 하자!”

“그래, 0-0이란 마음가짐으로 우린 끝까지 응원하는 거야.”

2-0이란 점수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금 신중한 모습이다.

조금 즐거워해도 충분할 점수 차이였지만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불과 얼마 전에 크게 혼났기 때문이다.

‘챔피언스 리그 본선 토너먼트.’

대부분의 서포터들은 챔피언스 리그의 16강 진출을 몇 달 전부터 대단히 자신했었다.

어지간한 서포터들은 다른 팀의 서포터들에게 ‘우린 16강 팀’이라며 으스댄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지랄의 1분’으로 유로파리그로 직행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찌나 놀림당하였던지···.’

‘입조심 해야지.’

‘설레발은 필패다.’

당연히 잘난척한 만큼 조롱으로 돌아왔다. 아니, 몇 배의 조롱으로 돌아와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며칠간 숨어다닐 정도였다.

그러니 2-0이란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마음을 놓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야. 하여튼.”

랜선 속에서 인터넷 여론조작을 종종 하느라 서포터들의 마음을 잘 파악한 소하는 생각이 달랐다.

소하는 60분이나 남은 결승전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첫째는 지금 나오는군.”

때마침 맨체스터 시티가 무려 전반전에 선수교체를 감행했다.

당연하게도 교체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국적의 올렉산드로 진첸코였다.

“···죄송합니다.”

“···.”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하는 진첸코에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인간적인 면이 없다는 평을 받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으로서도 이례적으로 냉담한 태도였다.

그만큼 진젠코의 활약상은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족쇄였고, 포츠머스에게는 날개였다는 방증이었다.

“이제 남은 카드는 두 장. 결승전에서, 그것도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이미 반쯤 졌지.”

심지어 이번 카드는 기존의 전술을 유지한 채 너무나도 부진한 선수를 바꿔주는 용도였을 뿐이다.

“즉,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전술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지. 후후.”

“···누구한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소하가 턱을 매만지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자 밀러가 깊은 한숨과 함께 끼어들었다.

“···뭐야? 엿듣고 있었어요?”

“아니, 혼자 중얼중얼하시길래···.”

“닥터 마법사처럼 미래에 있을 경우의 수를 살펴보고 있었을 뿐이에요.”

“···.”

밀러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한 차례 더 내쉬더니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교체 카드 2장 정도면 전술 변화를 꾀할만하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죠.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는 시한폭탄이 있어요.”

소하는 슬쩍 고개를 틀어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중 한 명을 턱짓했다.

그 선수는, 조금 좋지 않은 표정을 지은, 맨체스터 시티의 레전드 수비수였다.

“뱅상 콩파니. 이 선수는 30분 내내 내 사랑 살라에게 시달렸죠. 심지어 두 번이나 균형을 잃고 넘어졌고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몸에 무리가 왔을 거예요. 아마 80%의 확률로 병원으로 외출할 거예요.”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것은 의외로 몸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행위다.

이래저래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는 증거였으니까.

게다가 뱅상 콩파니는 유리 몸으로 아주, 아주 유명한 선수!

연약한 그에게 넘어질 만큼 큰 부담이 여러 차례 연이어 닥친다면 결과는 뻔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하의 예언은 잠시 뒤에 곧바로 이루어졌다.

“봐봐요. 넘어졌네요. 혼자서! 아! 의료진을 부르네요!”

“···와···. 귀신같으시네요.”

밀러는 실려 나가는 뱅상 콩파니를 바라보며 즐거움 반, 아쉬움 반의 표정을 짓는 소하에게 감탄을 내뱉었다.

어찌 이리도 귀신같이 미래를 맞추는 건지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 그럼 이제 교체 카드를 한 장 더 써야겠네요. 지금 시간이 전반 40분. 앞으로 50분이나 남았는데 교체 카드가 한 장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리고 점수 차이는 2점 차죠.”

2점이나 따라잡아야 하는데, 남은 교체 카드는 한 장이다.

게다가 필드의 선수들은 아직도 새로운 전술에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우리가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이 경기는 이미 끝났어요.”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는 소하의 모습에 밀러는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

-삑! 삑! 삑!

리그컵 결승전의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최종 점수는 4-1.

승자는 신흥강호, 포츠머스였다.

[포츠머스가 드디어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이변이에요! 대이변입니다! 100명 중 99명은 맨체스터 시티의 승리를 예견했지만, 또다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잔뜩 흥분한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말처럼 이번 결과는 또 다른 기적이었다.

경기전 포츠머스의 배당률은 27/1.

즉, 100만 원을 걸면 2,700만 원으로 돌아오는 극히 희박한 확률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27번 싸워서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할 경기에서 이겼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와아아아아! 드디어 트로피다!”

“성소하! 성소하!”

“포츠머스! 포츠머스!”

“해냈다고!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

“우리가 리그컵 디펜딩 챔피언이다!”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은 포츠머스 서포터들은 옷을 찢어발기며 광분했다.

119년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1부리그 우승도 두 번이나 해봤고, FA 컵도 우승해본 포츠머스다.

하지만, 리그컵 우승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서포터들의 기쁨은 하늘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

[챔피언스 리그의 아쉬움을 리그컵 우승으로 보답했네요. 서포터들은 물론, 선수들도 부둥켜안고 기뻐하네요.]

[참, 감회가 새로울 겁니다. 잊으셨을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 선수들은 5년 전만 해도 4부리그 선수였어요!]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은 서포터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 우리가 우승했구나.’

‘지옥 같은 훈련의 나날들이었지.’

‘우린 뭐든 할 수 있다···!’

특히, 주장, 케빈 도슨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눈을 질끈 감은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

“후우.”

몰랐다. 정말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바랬을 뿐인 우승컵이 실체화되자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주장, 우는 거 아니죠?”

“설마. 겨우 리그컵 우승컵으로 눈물을 내비칠 하남자가 아니라고. 우리 주장들은.”

“킹이가 주장단 됐다고 기어오르네?”

풀타임을 뛰었음에도 갓 잡은 활어 같은 악동 3인방이 케빈 도슨에게 몰려들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누, 눈물이라니요. 누, 누가. 큼큼. 여기서 이러지 말고 함께 서포터들에게 인사나 하러 갑시다.”

“좋아요.”

“감독님이 칭찬해주실 듯?”

“가자아!”

주저 없이 등을 돌리는 악동 3인방의 등을 바라보는 케빈 도슨의 입가에는 어느덧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맞아요. 여러분들과 함께라면 더 큰 우승컵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눈물을 흘리기엔 리그컵은 격에 맞지 않지요.’

모처럼 어린 동료들에게 든든함을 느낀 케빈 도슨이었다.

그들의 말처럼 리그컵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이를 증명하듯 소하 또한 크게 기뻐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표정을 풀지 않고 있다.

[아, 성소하 감독은 아직 배가 고프다는 표정이군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요. 아마 경기 종료 직전에 한 골 내준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정말 대단한 감독이에요.]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의 말이 나오자마자 웸블리 스타디움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소하를 비추었다.

“···.”

팔짱을 풀지 않고 미간을 좁힌 채 표정을 굳힌 소하의 모습이 나오자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

포츠머스의 서포터들은 물론, 중립 팬과 자리에 남은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이 보내는 기립박수!

대단히 명예로운 환대였지만, 여전히 소하의 표정은 얼음장 같다.

정말로 마지막에 헌납한 골이 마음에 들지 않을 걸까?

하지만 실상은 매우 개인적인 사정이었다.

‘제기랄···. 너무 기뻐서 소리 지르려다가 옆구리에 쥐 났어···. 빨리 카메라 치워봐···. 스트레칭이라도 하게···.’

급격히 찾아온 근육경련에 크게 고통스러웠지만, 그저 폼을 잡고 싶어 꾹 참고 있었을 뿐인 소하였다.

< 228화. 리그컵 결승. (5) > 끝

ⓒ 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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