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리그컵 결승. (4) >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하는 포츠머스의 선발명단과 대형은,
[GK: 아론 람스데일.
LB: 앤디 로버트슨.
CB: 케빈 도슨.
CB: 후벵 디아스.
RB: 아슈라프 하키미.
DM: 데클렌 라이스.
MC: 칼빈 필립스.
MC: 델리 알리.
LW: 조쉬 킹.
ST: 에링 홀란드.
RW: 모하메드 살라.]
상당히 전통적이고 안정적이며 대표적인 조합을 들고나왔다.
‘마법사’ 혹은, ‘사기꾼’이란 명성과 악명을 전 세계에 떨치는 소하의 선택이라고 보기엔 다소 평범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동안 소하는 정작 정말 중요한 경기에서는 항상 정석을 들고나왔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일생에 몇 번 없을 무대에서 제대로 실력을 뽐내지도 못하고 질 수는 없으니까.”
괜히 전술을 꼬았다가 잘하던 것도 하지 못하고 망하는 꼴만은 결단코 피하고 싶은 소하였다.
“심지어 반면교사가 상대로 눈앞에 떡 하니 있는데 멍청한 짓을 할 순 없지.”
소하는 슬쩍 반대편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경기장을 주시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흘겨보았다.
한 번쯤 만져보고 싶은 잘생긴 두상을 훤히 내놓은 전설적인 명장, 펩 과르디올라.
그로 말하자면, 중요한 경기만 다가오면 전술을 꼬았다가 낭패를 보는 ‘명장병’의 대표 주자였다.
갑자기 3백을 사용하지 않나, 일카이 귄도안을 수비형미드필더로 써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말아먹지 않나.
그냥 평상시처럼 리그를 폭격하던 모습만 보여줘도 쉽게 앞으로 나아갈 일을 어렵게 가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명장이었다.
그런 펩 과르디올라를 상대하는데 보고 느끼는 것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감독직을 때려치우고 돼지고기 불고기 백반집이나 차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명장병’의 화신인 펩 과르디올라는 소하와는 달랐다.
괜히 명장병의 아이콘이 아니었단 말이다.
‘성소하 감독은 까다로운 상대다. 분명 우리에 대한 대책을 완벽하게 세웠을 터. 역으로 생각해서 약점을 비집고 들어가자.’
프리미어 리그에서 16연승을 달리는 전술을 그대로 들고 왔으면 무난하고 쉽고, 편했을 것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은 또다시 숨어있던 명장병을 자극했다.
[GK: 에데르송 모라에스.
LB: 올렉산드르 진첸코.
CB: 뱅상 콩파니.
CB: 니콜라스 오타멘디
RB: 카일 워커.
DM: 페르난지뉴.
MC: 다비드 실바.
MC: 케빈 더 브라위너.
LW: 라힘 스털링.
ST: 세르히오 아궤로.
RW: 르로이 사네.]
평상시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다른 전술이었다.
일단, 라힘 스털링과 르로이 사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이 명장병의 초기 증상이다.
물론, 라힘 스털링의 주발은 오른발이고 르로이 사네의 주발은 왼발이라서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펩시티’의 2년 차에는 두 선수를 ‘정발 윙포워드’로 기용했다.
즉, 원래의 전술이라면 두 선수의 위치가 바뀌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냄새가 나네요. 르로이 사네는 오른쪽에 두면 더럽게 못 하는 선순데···. 라힘 스털링은 양쪽 가리지 않지만요.”
소하는 순식간에 구린 냄새를 잡아냈다.
현대적인 윙포워드는 주발과 반대의 측면에서 중앙으로 찔러 들어오는 플레이를 했지만, 르로이 사네는 이 플레이에 굉장히 미숙했기 때문이다.
그런 르로이 사네를 오른쪽에 배치하고 왼쪽 풀백에 진첸코를 기용했다?
그렇다면 답은 쉽게 나왔다.
“변형 3백을 준비했군요.”
정답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뒤에나 사용할 펩 과르디올라의 변형 3백이 조금 일찍 튀어나왔다는 이야기였다.
“네? 변형 3백이요? 그게 뭡니까?”
소하의 말에 옆에서 보좌하던 밀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변형 3백이라니. 아직은 굉장히 낯선 단어였기 때문이다.
“어···. 뭐랄까. 쉽게 말하면 4백을 가장한 3백이란 말이에요. 수비 시에는 4백을 만들어 두 줄 수비를 하고, 공격 시에는 한쪽 측면 수비수를 위로 쭉 올리고 또 다른 측면 수비수는 내려서 3백을 만드는 전술이죠.”
“음? 그렇게 하면 어떤 이점이 있습니까?”
“일단, 공격 시에 후방 빌드업 플레이가 편해지죠.”
소하는 재빨리 수첩을 가져와 펜으로 동그라미 세 개를 일렬로 그렸다.
“자 보세요. 공격 시에는 이 일렬도 된 수비진 중에 중앙의 선수가 앞으로 튀어나와요.”
슥슥.
소하는 재빨리 손을 놀려 그림을 수정했고, 동그라미들의 위치는 정삼각형으로 변했다.
“이 중앙에서 조금 튀어나온 선수가 후방 빌드업에 지대한 관여를 하죠.”
“그렇다면···.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중앙 수비수가 ‘라볼피아나’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바로 그거에요. 이렇게 된다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의 페르난지뉴가 좀 더 앞으로 전진할 수 있죠.”
“아하! 그렇게 된다면 공격 시에는 더욱 많은 선수를 중앙선 위로 투입할 수 있겠군요!”
“우와.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천재로 각성하셨네요. 밀러 아저씨 맞아요?”
“···저, 본인 맞습니다.”
소하가 진지하게 의심하자 밀러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물론, 그러든지 말든지 소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여기서 성장한 밀러 아저씨라면 한 가지 의문이 들 거에요. 바로, 중앙 수비수 두 명으로 빌드업을 해도 되지 않냐는 거죠.”
“···정확하십니다.”
“물론, 두 명의 수비수가 월드 베스트에 무조건 들어갈 선수라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해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수비수를 보유한 팀은 매우 적죠. 아니, 없죠.”
“하긴, 맨체스터 시티는 지금 수비진이 매우 불안 불안하죠.”
“게다가, 원래 빌드업은 삼각형이 기본이에요. 패스 길을 언제나 2개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형태니까요. ”
빌드업의 기초는 소하의 말처럼 삼각형이 기본이다. 훗날 뭐 하는 건지 모르겠을 U자 빌드업 전술도 삼각형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물에 불과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빌드업까지 수비수에게 맡겼으면 당연히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가지겠죠.”
“한 명 정도는 자유롭겠군요. 그럼 저희도 마크맨을 붙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좋은 생각이지만, 한 가지를 잊으셨어요. 윙어처럼 공격할 왼쪽 풀백, 진첸코를 말이죠.”
“아! 그렇군요.”
“분명, 양쪽 윙포워드들을 하프 스페이스에 위치시킬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진첸코는 자유로워질 테죠.”
“진첸코가 핵심이었군요? 그렇다고 진첸코를 막자니 중앙에서 수적으로 불리해지고···. 이것 참 큰일이군요.”
밀러는 한 줄기 식은땀을 흘렸다.
이론상으로만 보자면 절대 무적의 전술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소하가 준비한 전술을 잘 공략한 전술이기도 했다.
17-18시즌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정발 윙어를 사용해서 중앙 수비수와 측면 수비수의 사이를 벌려, 그 틈을 파고드는 전술로 왕관을 차지한다.
이를 본인보다 잘 알고 있는 소하는 측면 수비수들에게 대인 방어가 아닌 지역방어를 지시한 상태다.
상대의 윙어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하프 스페이스를 내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변형 3백이라면 결국 왼쪽에서 깊게 오버래핑하는 진첸코를 막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래저래 전술적으로는 일단 한 대 얻어맞은 소하였다.
“후후. 뭐,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말이죠.”
“네? 이론적으로요?”
밀러는 한 대 얻어맞았음에도 자신만만한 소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
-삑!
드디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리그컵 결승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공은 맨체스터 시티.
소하가 예상했던 대로 맨체스터 시티는 4백에서 3백으로 변형하며 현시점으로서는 굉장히 독창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오, 상당히 독특한 대형이군요.]
[오른쪽 수비수로 나온 카일 워커가 측면 스토퍼로 내려오며 3백을 구성하는군요.]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은 전문가들과 장내 아나운서, 해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하기야, ‘천재’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새롭게 선보이는 전술을 그냥 넘겨볼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조금 느리게 진행되는 경기 초반과 맞물려 경기보다는 전술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건 말이죠···.”
“제가 보기엔 라볼피아나 역할을···.”
“경기장을 넓게 사용···.”
등등. 이미 소하가 모조리 파악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열띤 토론을 나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맨체스터 시티가 다소 우세했지만, 15분가량 잠잠하던 경기장에 드디어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장난의 시작을 알린 선수는 놀랍게도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포츠머스의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였다.
-툭.
압박을 유려한 한 바퀴 회전으로 벗겨낸 델리 알리의 패스가 오른쪽 측면을 길게 가로질렀다.
패스의 끝에는, 이미 가속을 끝내고 최고속도에 진입한 이집트의 파라오, 모하메드 살라가 있었다.
[델리 알리의 좋은 패스가 모하메드 살라의 앞에 떨어집니다!]
[측면이 너무 비었어요. 진첸코 선수는 어디 있죠?!]
허허벌판을 뛰는 모하메드 살라의 앞길을 막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뻔했다.
너무 다수가 중앙선 위로 올라가 있었고, 왼쪽 수비수인 진첸코마저도 생각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한 압박을 이겨낸 델리 알리의 멋진 플레이와 때맞춰 침투한 모하메드 살라가 만들어낸 멋진 장면! 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말했잖아. 이론하고 현실은 다르다고.”
물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가져온 전술은 아주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전술을 실행하는 건 완벽하지 않은 선수라는 게 문제지. 아니, 정확히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게 문제야.”
종종 적응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는 천재가 튀어나오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변화에는 적응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축구선수들도 마찬가지.
전술의 변화에는 그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선수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말로만 찔끔 가르친다고 쉽게 쉽게 대형을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완벽하다는 말에는 ‘어렵다’라는 뜻도 포함된 법.
현시점으로서 보자면 이론적으로 너무나도 완벽한 전술이었기에 오히려 선수들의 적응이라는 측면에서는 역효과가 났다.
“책 속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은 천지 차이인 법이지. 최소한 1년은 훈련하고 전술을 선보였어야 해. 원래도 차근차근 준비시켰었는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그놈의 명장병이 뭔지.
차근차근 다음 시즌부터 적응시킬 계획을 세웠던 전술을 왜 굳이 리그컵 결승에서 꺼냈는지 소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명장병은 불치병이라던데···. 그래도 난 친절한 동종업계인을 자부하는 몸. 이참에 물리치료를 해줘야겠군.”
소하의 물리치료!
첫 번째 물리치료의 도구는 모하메드 살라라는 날카로운 메스였다.
“이익.”
왼쪽 수비수로 나선, 뱅상 콩파니가 모하메드 살라의 돌파를 막아서기 위해 거리를 좁혀갔다.
뱅상 콩파니.
뛰어난 피지컬과 그에 걸맞은 수비 능력을 갖춘 맨체스터 시티의 전설이다.
심지어 빌드업 능력도 출중한 완전무결한 수비수!
어디까지나 건강했을 때는 말이다.
뱅상 콩파니의 나이는 이제 겨우 31세.
22년도 기준으로 31세면 아직 펄펄 날아다닐 나이였지만, 유리 몸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가진 덩치에 맞지 않게 잘 부서지는 몸을 가진 대표적인 유리 몸 선수였다.
이번 시즌만 해도 부상으로 골골거리느라 바빠서 2월에 들어서야 간신히 첫 선발 출장을 달성했을 정도다.
그리고 유리 몸의 특징이라면 기량 저하가 빠르다는 것.
요컨대, 뱅상 콩파니에게는 31세의 팔팔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더는 모하메드 살라를 홀로 막아낼 힘이 없었다는 거다.
-휘릭, 휘릭.
-털썩.
모하메드 살라의 급격한 좌우 방향 전환에 균형을 잃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
뱅상 콩파니를 페널티박스 안에서 완전히 무력화시킨 모하메드 살라.
그는 이집트의 팰컨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주위를 빠르게 훑어봤다.
‘킹과 홀란드가 이미 박스 안쪽이다.’
포츠머스의 3톱이 가진 속도는 자타공인 유럽 최정상급!
예기치 못한 기회였음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박스 안으로 침투한 킹과 홀란드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정석적인 플레이는 컷백이다.
하지만, 모하메드 살라의 눈에는 에데르송 골키퍼의 머리 위쪽에 길이 보였다.
골대로 보자면 오른쪽 모서리 상단!
각도도 없고 난도도 높은 위치였지만 모하메드 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그곳을 향해 슛을 내질렀다.
-투확!
조쉬 킹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견될 수준의 강슛이 살라의 왼발에서 뿜어졌다.
“!!”
당연하게도, 컷백을 의식하고 있던 에데르송 골키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날벼락이었다.
-철썩!
모하메드 살라의 슛은 골네트를 송곳처럼 찔러버렸다.
[골입니다! 골! 전반 17분. 다소 수세에 몰렸던 포츠머스가 날카로운 역습 한 방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포효하는 모하메드 살라! 정말 벼락같은 슛이었어요!]
“으아아아!”
오른팔을 힘차게 치켜들며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는 모하메드 살라!
과연, 소하가 자신 있게 꺼낸 물리치료 도구다운 모습이었다.
< 227화. 리그컵 결승. (4) > 끝
ⓒ 블라님
=======================================